Druid RAW novel - Chapter 106
0105 드루이드입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헬기도 타보고 좋았는데요.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다행이네요- 하고 말한 지부장은 곧바로 나를 거대 장비의 중심부에 앉혔다.
계측은 장비가 다 하니 그냥 편안하게 있으면 된다는 말이 들려왔다.
거대한 크기만큼, 들어 있는 기능도 다양하니 편하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엑스레이도 되고, MRI 같은 기능도 하며 온갖 계측 센서들이 다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조금씩 움직이는 것도 된다며, 심심하지 말라고 만화책도 몇 권 가져다 주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우웅- 소리와 함께 만화책에 집중했다.
“수환님. 계측이 다 끝났습니다.”
삼십여 분 정도 만화책에 집중하며 앉아 있으니, 지부장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들어온 길을 통해 다시금 장비 밖으로 나가니, 잔뜩 상기 된 듯한 표정의 지부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과가 나온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의 표정으로 유추해 물어보니, 한껏 상기 된 표정의 지부장이 허리를 숙이는 건지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모를 정도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 부분을 보시죠.”
그리고 지부장은 나를 불러, 전광판이나 다름 없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여기 보시면 이 수치가 초능력자가 초능력을 발산하며 생겨나는 파장을 나타내는 겁니다. 대부분의 초능력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한정된 초능력이라, 이 수치가 잘 나와야 삼십 정도입니다.”
“……저는 칠천이 넘는데요?”
“그게 바로, 수환님이 범위형 초능력을 보유하신 거라는 증거입니다. 저희가 카페에서 계측을 한 것도, 수환님의 초능력이 어느 정도 범위에 영향을 주는 건지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지부장은 내게 결과라며 간단하게 요약한 요약본을 건네주었다.
“이게 진짜 제 초능력에 대한 결과라고요……?”
요약본을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내 초능력이 아니라, 내 초능력의 부가적인 기능이었다고?
믿기 힘든 이야기에 입을 벌리고 있으니, 지부장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혹시, 초능력을 개화한 이후로 잔병치레를 하신 적이 있나요? 따님과 부인께서도요.”
“어……. 그러고 보니 없는 것 같은데요?”
생각해보니 나나 누나, 소은이가 아파서 병원을 찾은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가끔 과식을 한다던가 신선도가 떨어지는 음식을 먹었다가, 체하거나 배탈이 나서 병원을 찾는 것이 전부였다. 일교차가 큰 날, 배를 까고 이불을 차고 자도 그 흔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었다.
“잘 생각해보시면 그 외에도, 수환님의 초능력이 범위형 초능력으로 주변에 영향을 끼친 사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부장의 말에 나는 잠시동안 고민하며, 초능력을 얻은 이후로 바뀐 내 삶을 돌아보았다.
선물받은 선인장도 죽이던 내가 누나의 도움이 있다고는 해도 화단을 텃밭 이상의 수준으로 키워냈고, 카페의 잔디는 딱히 관리를 하지 않음에도 아주 푸릇푸릇하게 자라난다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외에도 분명 여름이 제철인 수박이 비닐하우스가 아님에도 늦은 가을까지 열린다던가, 바다거북도 아닌 땅거북인 한무가 수영장에서 이십 분 넘게 잠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나씩 더 나오는 기억에, 나는 정말 내 초능력이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에 내 초능력이 전혀 다른 것임을 인정하고 있으니, 지부장이 살짝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수환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부탁……이요? 일단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괜히 먼저 수락했다가 곤란해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수환님이 가지고 계신 초능력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라고 판단되며,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은 능력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제가 그 초능력에 대한 이름을 붙여도 되겠습니까?”
지부장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긴, 아무래도 연구소라는 곳의 지부장인 만큼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이겠지.
어떤 초능력이든 최초로 등장한 초능력이라면 그 보유자가 역사에 기록 되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는 보유자는 나지만, 그 초능력의 이름을 붙인 사람의 이름 역시 기록 될 가능성이 무척 농후했다.
하지만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걸어다니는 풍요와 건강의 인간토템같은 이름으로 지으면 어떡해. 이름도 지 부장인 양반인데.’
헬기를 타고 오면서 들은 건데, 지부장의 이름이 지 부장인 것은 지부장이 된 기념으로 본인이 직접 이름을 개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이 짓는 이름이니 꽤나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바로 가부를 정해 말하는 대신,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묻기로 했다.
“어떤 이름으로 지으실 거죠?”
“걸어다니는 풍요와 건…….”
“안 됩니다.”
나는 단호히 외쳤다. 설마 내가 생각한 최악의 이름이 지부장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지부장은 단호한 내 말에 시무룩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다.
‘걸어다니는 풍요와 건강의 인간토템 초능력자, 신수환입니다! 이러고 인사할 수는 없잖아. 그런 건 죽어도 못 하지.’
나는 절대 그딴 이름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먼저 찾아와서 내 초능력에 대한 부분을 자세히 밝혀준 그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초능력 이름은 드루이드로 하죠. 동물과 식물이라면 자연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드루이드가 딱 생각나거든요.”
“아……. 잘…… 어울립니다…….”
무척 시무룩한 모습을 보인 지부장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입을 열었다.
“대신, 그 이름은 지부장님이 지은 걸로 하시죠.”
“네? 저, 정말입니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부장은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팍! 치켜들었다.
역시, 중요한 건 초능력의 이름이 아니라 역사에 자기의 이름을 남기는 거였네.
지부장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초의 보유자로 이름이 등록 될 나였으니, 이 정도는 양보해도 상관이 없었다.
혼자 독식한다고 이득 될 것도 없었다. 명예를 인정해주니 뭐니 하는 것도 없는데다, 말 그대로 남들이 잘 찾지도 않는 기록에 남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초능력을 보유한 사람이 주목을 받는 거지, 그 이름을 붙인 사람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단어를 아는 사람은 무척 많지만, 그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지부장의 표정은 밝아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구자에게는 나름대로 중대한 사안이었던 건지, 지부장은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허리를 꾸벅 숙이다 못해, 이제는 나를 끌어안으며 기쁨을 표현하려는 지부장을 슬그머니 밀어냈다.
“그러면 이제 따로 더 검사할 건 없는 거죠?”
“아, 예! 자택으로 다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카페에서 출발할 때 연구원이 에스코트하러 온 것과 달리, 카페로 돌아갈 때는 지부장이 직접 나를 안내해주었다.
할 일이 끝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초능력의 이름을 지부장이 지은 걸로 하게 해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수환아!”
지부장의 배웅을 받으며 헬기를 타고 카페로 복귀하니, 누나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이거 봐!”
잠깐의 포옹과 가벼운 입맞춤을 나눈 누나는 내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휴대폰 화면에는 여러 기사들이 보이고 있었다.
[(단독)국내 대형 뮤튜버, 국내 최초의 기록을 또 다시 가져가다!] [국내 최초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알고보니 전혀 다른 초능력으로 밝혀져…… 충격!] [범위형 초능력이란?] [곁에 있기만 해도 건강해진다?] [뮤튜버의 기상천외한 반려동물들, 이유 있었다!] [새로운 초능력의 발견! 명칭은 드루이드.]헬기를 타고 오는 사이, 지부장이 기자회견이라도 한 것 같았다.
한 기사를 눌러 확인해보니 조금 전까지 만나고 있던 지부장이 온라인 화상 채팅으로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영상이 보여졌다.
“범위형 초능력이라는 것은 초능력자 본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으로…….”
연구자답게 재미 없는 설명을 길게 늘어놓는 모습이 보여 곧바로 꺼버렸지만, 기사가 나온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인간, 생각 이상으로 관종이었다. 내게 쏠릴 관심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먼저 선수를 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부장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국내 최초로 모자라,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초능력이라는 소리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왔기 때문이다.
“정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능력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된 능력인 겁니까?”
“드루이드라는 능력이 정말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건가요?”
“능력에 대한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된 소감 한 마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수환씨가 보유한 초능력이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아니라, 지금 화제가 된 드루이드 입니까?”
순식간에 몰려온 기자들의 플래쉬 세례에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고 알려졌지만, 이제는……. 예, 제가 드루이드입니다.”
내 말과 동시에 다시금 플래쉬가 터지며 눈을 부시게 만들었고, 곧장 그날 저녁 뉴스를 장식했다.
[제가 드루이드입니다!]“……내가 저 말을 왜 해서는.”
실시간으로 흑역사가 박제되어버린 상황에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끄, 흐흡……!”
“엄마 아포?”
곁에서 배를 잡고 웃으며 뒹구는 누나의 모습에 한숨을 더 깊어졌다.
티비를 신경질적으로 꺼버린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소은이를 안아들었다.
“소은이는 저런 흑역사 남기면 안 돼요. 알았지?”
“웅!”
뭔지는 몰라도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니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이였다. 그래, 역시 우리 딸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