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21
0120 두기농
“응? 수환아, 그 옷은 뭐야?”
작업복으로 쓰는 옷을 입고, 챙이 넓은 밀짚모자까지 쓰고 있으니 누나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하긴 지금 내 꼴이 좀 이상하긴 하지. 손에는 모종삽까지 들고 있었으니 더 이상하긴 할 거야.
그렇지만 내가 이런 복장을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 화단 작업 좀 하려고. 어제 두더지들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서, 요 앞에 화단을 다 망쳐놨잖아.”
“직접하게?”
“할 것도 없으니까 겸사겸사? 하는 김에 방송도 좀 할 생각이고.”
“알았어. 내가 도울 거 있으면 말해.”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를 뒤로하고, 나는 곧장 화단으로 다가갔다.
화단에 다가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두더지들이 화단을 엉망으로 만들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집에 가까운 곳에 심어놓은, 참외나 수박 같은 작물들은 물론이고 조경용으로 심어둔 자그마한 꽃 같은 것들이 싸그리 쓰러져 있었다.
“일단 방송부터 킬까.”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그대로 삼각대를 꺼내 휴대폰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대로 뮤튜브 라이브를 시작했다.
[ㄷㅎ!] [패션 뭐임?] [신수님 귀농한듯 ㅋㅋ]라이브가 시작되자마자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심지어, 내가 라이브를 켰다는 것을 확인한 관람객들 중 일부가 주변으로 휴대폰을 들고 다가올 정도였다.
[오컨무새 님이 1만 원 후원!] [“오컨무?”]“딱 각 나오지 않나요? 작업복과 밀짚모자, 거기에 모종삽까지.”
[알았다! 양봉하려는 거구나!]“……제가 양봉은 잘 몰라도 이건 알아요. 꿀을 모종삽으로 퍼내는 건 아니라는 거요.”
고개를 휘휘 내저은 나는 휴대폰을 다시금 잡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두더지들이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화단을 촬영했다.
뿌리가 뽑혀 쓰러진 꽃대나 작물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곳곳에 깊숙한 구멍이 그득하게 있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오늘 하려는 건 화단 정리예요.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제 능력이 식물에도 통하잖아요? 그래서 키우고 있었는데……. 두더지 놈들이 다 작살을 내놨더라고요.”
“잡긴 잡겠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잡이는 아닙니다.”
내 말에 무수한 물음표, 갈고리가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그럼 뭐 잡음?] [두더지 고래잡이?] [더지쿤! 돔황챠!] [아아, 그는 좋은 두더지였습니다.]“어허,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다 보면 알아요.”
나는 씩, 웃으며 의자를 꺼내 앉았다. 캠핑갈 때 구매한 건데 요긴하게 잘 쓰고 있는 중이었다.
“얘들아, 나와라.”
“뀨엥…….”
내 말에 화단이 조금씩 들썩이더니, 그곳에서 주먹만한 두더지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거진 열 마리에 가까운 숫자였다.
하나씩 흙속에서 머리를 내미는 모습에, 왠지 모르지만 모종삽이 아니라 뿅망치를 들고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전일 님이 3만 원 후원!] [“범인은 범행 현장에 다시 돌아오는 법이야! 할아버지의 마취제를 걸고!”]“맞습니다, 여기 이 녀석들이 화단을 엉망으로 만든 녀석들입니다. 자, 너희들도 여기 보고 인사해.”
“어디로 인사해야 하오…….”
“아. 너희 시력이 거의 없었지.”
내 말에 시청자들이 마구 채팅을 쓰기 시작했다. 주로 사건사고와 논란이라던가, 해명해 같은 쓸데없는 어거지가 대부분이었다.
채팅을 가볍게 무시한 나는 두더지들이 카메라 쪽으로 앞발을 붕붕 흔들어 인사하게 만들었다.
흙이 좀 묻어 있어서 그렇지, 자세히 보면 조금 귀여운 모습이 보였다.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눈과 온 몸에 있는 주름이 조금 마이너스 요소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귀여움은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움직이겠다고 짧디 짧은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고 있을 정도였다.
“일단, 오늘은 이 녀석들이 화단 정리를 도와줄 겁니다. 원래 사고는 사고친 놈이 수습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사고치지 마세요.”
나는 곧바로 두더지들을 부려 화단 정리를 시작했다.
열 마리 가까이 되는 두더지들에게 지시를 내리니, 일이 아주 착착 진행되어갔다.
[노동 착취의 현장?] [이거도 일단은 친환경 농법인가……?] [두기농 농산물 재배의 현장!] [밭갈이에는 역시 두더지!]시작은 두더지들이 엉망으로 만들어낸 화단을 갈아 엎는 것이었다. 화단 위에 쓰러져 있던 것들을 치우고 밭갈이를 시키니, 두더지들은 아주 능숙하게 밭을 갈아엎었다.
흙을 모조리 다 부숴버린 듯이, 화단의 흙은 무언가를 심기에 아주 좋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두더지들이 아주 열심히 땅을 갈아낸 덕분이었다.
“잘했어.”
화단을 다 갈아내고 위로 올라온 녀석들에게 밀웜을 하나씩 내어주니, 녀석들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함에도 아주 열심히 밀웜을 해치웠다.
[극한의 가성비ㅋㅋㅋㅋㅋ 밭갈이 시키고 100원도 안 쓰네ㅋㅋ] [팩트) 밀웜은 1마리에 10원 이하 수준이다.] [두더지가 만족하는 거 같아서 킹받는데? 겨우 그거에 만족하지 말라고!]노동착취 당하는 두더지들이라며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나는 다시금 녀석들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녀석들이 망친 것이니 양심에 찔릴 것도 없었다.
이번에 녀석들에게 시킨 것은 식물들을 심을만한 크기의 구덩이를 파게 만든 것이었다. 열 마리에 가까운 두더지들이 내 지시에 따라 착실히 구덩이를 파내었다. 그것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말이다.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간격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두더지 녀석들에게 밀웜을 가득 안겨주었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식물들을 꺼내들었다. 조그마한 두더지들이 제 몸보다 큰 것들을 들어올릴 수는 없었으니, 내가 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두더지들이 화단을 아주 잘 갈아주고, 구덩이도 알맞게 파준 덕분에 식물들을 제대로 심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참외부터 시작해서 수박이나 토마토 같은 것들은 물론이고 온갖 종류의 꽃들을 심었다. 엉망진창이 되었던 화단은 어느새 식물들이 가득 자리하게 되었다.
“후, 힘들다.”
[악덕사장 님이 3만 원 후원!] [“예? 사장님이 왜 힘들죠? 일은 두더지가 다 했는데요. 이거 완전 두기농이잖아요.”]“무슨 말씀이시죠? 제가 심는 거 다 봤잖아요?”
뭐가 문제냐는 듯이 카메라를 바라보니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나는 후원 메시지와 채팅을 애써 무시했다. 열심히 식물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땅을 가볍게 다지고 있는 두더지들도 무시했다.
[악덕사장 님이 3만 원 후원!] [“모종삽은 두더지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하면 묻으려고 들고오신 건가요?”]“얘들을 묻어서 뭐해요. 묻어봐야 자기들이 알아서 파고 나올 건데. 얘들이 워낙 일을 잘 해줘서 쓸 일이 없던 거지, 다른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내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모종삽을 구석에 던져놨다. 그러니 두더지들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탓이겠지?
그리고, 일을 끝마치고 밀웜 먹방을 찍으려는 두더지 녀석들을 미리 준비해둔 구역으로 이사시켜주었다. 괜히 멀쩡한 화단을 망가트리지 않도록, 서식지를 제공해준 것이었다.
“앞으로 다른 곳에 막 돌아다니면서 땅 파지 말고, 여기서 살아.”
두더지들은 새롭게 살게 된 곳이 좋다는 듯이 몸을 떨어댔다. 그러더니 저마다 흩어지며 그 일대에 다수의 구멍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대로 먹으라고 밀웜을 뿌려주고선 카메라를 챙겨들었다.
“저는 동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준다니까요? 집 주고 밥도 챙겨주는데. 이 정도면 아주 천사같은 사장 아녜요?”
[하긴 저 정도 넓이의 집을 챙겨주는 거면…….]내가 동물들을 부려먹는 악덕사장이란 소리는 두더지들이 살게 된 서식지가 공개됨과 동시에 사라졌다. 꽤 널찍하고 두더지들에게 딱 맞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가정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제공해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니 더 이상 악덕사장이라 할 수 없었다. 녀석들이 한 것에 비하면 내가 제공해준 것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부려먹은 게 아니라 거래라니까요? 일하는 대신 먹을 걸 주는데. 아무튼, 썰이라…….”
한 시청자의 요구에,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법 많았다.
‘헬륨 풍선이 하늘로 날아간 걸 유부한테 시켜서 가져오게 했고, 움직이기 귀찮아서 포동들한테 휴대폰 좀 가져오라 했었지. 아, 프러포즈할 때도 다 애들 시켰지.’
제법이 아니라, 무척 많았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계속 기억났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들어간 물건을 꺼내기 위해 치킨이를 부렸고, 무거운 짐이 있는데 끌차가 없어 한무에게 옮기도록 부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전에 예비군 훈련 갔던 거라도 이야기할까요? 소은이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인데, 아마 아는 사람들도 있긴 할 거예요. 당시에 같이 훈련 받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려서.”
예비군 훈련을 갔을 때가 기억난 것이었다.
[예비군에서 동물들을 볼 수 있나?] [그거 참새술사 말하는 거 아닌가 ㅋㅋㅋ] [형님! 저 그때 같이 했던 사람입니다!]“제가 드루이드가 아니라,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고 알고 있을 때의 이야기인데…….”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라디오 방송을 하듯, 그 때의 기억을 읊어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