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38
0137 복원의 시작(2)
“수환아, 수환아. 일어나봐.”
곤히 자고 있던 나는, 내 몸을 가볍게 흔들며 깨우는 누나의 행동에 의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이 아직도 어둑어둑한 것이, 아침도 밝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아침이 된 것도 아닌데, 왜 깨우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나는 비몽사몽한 정신을 일깨우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왜에……?”
“밖에 야생동물이 왔다나봐. 경호팀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네.”
야생동물이라는 말에 나는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물 보호에 아주아주아주 적극적인 호주였기에, 동물에 관련된 법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각종 야생동물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벌금을 내야 하는 법까지 있을 정도였다.
특히, 귀염성과 붙임성이 무척 좋은 쿼카라는 동물이 있는데, 그 녀석들은 만지는 것만으로도 벌금을 내야하는 녀석들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걸어다니는 벌금형’, ‘호주 국세청 직원’ 같은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야생동물의 접근으로 인해 나를 깨우는 이유는 하나였다. 미리 호주 정부로부터 그 법률에 관해서 허가를 구해, 우리는 그 법률에서 안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법률에서 자유롭다 하더라도, 야생동물에게 무력을 쓴다거나 하는 식의 대응은 불가능하여 나를 깨우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음을 직감한 나는 잠옷차림 그대로 털레털레 밖으로 향했다. 내가 일어나는 소리에 깬 것인지, 청호 녀석이 내 곁에 슬그머니 다가왔다.
“잘 잤냐?”
“적당히 잔 거 같슴다.”
“밖에 야생동물이 왔다니까, 그 녀석만 돌려보내고 다시 자자.”
“알겠슴다.”
청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살짝 열려 있는 숙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풀들이 가득하게 들어 있는 상자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경호원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안에 있는 건가요?”
“예. 아무래도 주변까지 왔다가 먹이를 발견하고 들어온 것 같습니다.”
전날 별 생각 없이 방치했던 풀이 담긴 상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방치할 게 아니라, 뚜껑이라도 제대로 닫아둘 걸.
하지만 후회는 이미 늦은 다음에 하는 것이었다.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었으니, 빠르게 포기한 나는 상자로 다가갔다.
“어제 봤던 웜뱃인가?”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봤던, 그레이스가 웜뱃이라고 했던 동물인가- 싶어 상자 내부를 바라보았다.
상자 내부에는 풀이 가득하게 있었는데, 그 풀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여러 야생동물들이 왔던 건 아닌지, 그 양이 크게 차이가 있진 않았다. 그저, 내부에서 뭔가가 움직이듯이 들썩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곧바로 상자에 손을 푹, 집어넣으며 내부에서 움직이고 있을 녀석을 건드렸다. 그러자, 곧바로 풀들이 확! 솟구치며 그 안에 있던 녀석의 정체가 드러났다.
“……뭐야.”
내부에서 확하고 솟아오른 녀석의 모습을 바라본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내 예상에는 조금도 없던 녀석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보았던 웜뱃이 근처로 다가왔다가 먹이에 이끌려 상자에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내부에 있던 것은 거대한 근육질의 캥거루였다.
“좋은 아침?”
“……좋긴 뭐가 좋아. 그리고, 아침도 아니야.”
“이렇게 맛있는 것이 많고, 잠에서 깼으니 좋은 아침이지요.”
그리고, 태평하게 나를 바라보며 아침 인사를 건네는 캥거루의 모습에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호주의 동물들은 뭔가 하나씩 조금 이상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나는 녀석을 상자에서 빠져나오도록 유도했다. 물론, 녀석은 조금도 들어먹지 않았다.
“모처럼 포식할 기회인데, 더 먹고 싶습니다만. 붉은 재앙 이후로 뭘 제대로 먹은 게 언젠지…….”
근육질의 캥거루는 앞발로 풀을 한 움큼 쥐어 우물우물 씹어댔다. 뭔가, 껄렁거리는 인간이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는 듯한 모습이 덧씌워졌다.
하지만 녀석의 말만 들어보자면 꽤나 사정이 딱했다. 산불로 인하여 계속 굶다가, 오늘 우연찮게 포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녀석의 모습이 세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근육질에 가려져 있었지만, 녀석의 몸은 꽤나 말라 있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빠지지 않은 근육도 조금씩 빠지는 듯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좀 먹어라.”
어차피 이 풀을 준비한 것도, 야생동물들이 새싹들을 먹지 말고 배를 채울 용도로 준비한 것이었다. 이 녀석이 좀 넉넉하게 먹는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부족하면 그레이스에게 부탁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풀 더미에 얼굴을 처박고 풀을 맘껏 포식하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금 근처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한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의 어둠을 통해 모습을 감추던 녀석이었지만, 꼬로록- 거리는 배고픔의 소리는 감추지 못한 것이었다.
“너도 와서 먹어도 돼.”
“끼융!”
어둠속에 정체를 숨기고 있던 것은 어제 본 그 웜뱃이었다.
녀석은 내 허락이 있기 때문인지, 주변의 경호원들을 경계하면서도 다가왔다. 햄스터를 커다랗게 확대해놓으면 이럴까- 싶은 녀석이었는데, 외형이 꽤나 귀여웠다.
짧은 다리로 허우적거리는 녀석을 들어, 캥거루가 점령하고 있는 상자에 집어넣었다.
순간 놀란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그득한 풀을 보며 빠르게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두 녀석이 쉬지 않고 풀들을 헤치워나갔다.
그렇지만 워낙 많은 양을 준비해뒀다보니, 녀석들이 끊임 없이 먹어도 그 양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적당히 먹고 가라.”
두 녀석이 행복한 모습으로 풀들을 처치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경호원들과 함께 다시금 숙소로 들어갔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대에 들어가 누나를 껴안고 잠든 내가 아침에 다시금 보게 된 모습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숙소 주변으로 수 많은 야생동물들이 몰려와서 풀을 약탈하듯이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마리의 캥거루, 열 마리 남짓한 코알라, 캥거루 보다 두 배 정도 되어보이는 웜뱃들이 풀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이 주변 일대의, 숨어 있던 녀석들이 모조리 몰려온 느낌이었다.
나는 야간에도 교대로 돌아가며 주변을 지키던 경호원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처음에 있던 그 두 마리 있잖습니까. 캥거루하고, 웜……뱃인가? 하는 그 동물 말입니다.”
“네. 그 녀석들이 처음이었죠. 캥거루는 제가 깬 원흉이기도 하고요.”
“그 두 마리가 다 불러온 겁니다. 배를 채우고 그냥 돌아간 줄 알았는데, 동족을 다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이 모양이 된 거죠. 아, 코알라는 어디선가 그냥 나타났습니다.”
캥거루와 웜뱃 녀석에게 알아서 돌아가라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잠깐의 후회를 한 나는 박살나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자였던 것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캥거루들이 박살낸 건지, 처참하게 흩어져 있는 상자는 그 내부에 있던 풀을 흩뿌려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동물들은 그 풀들을 열심히 해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저 멀리서 차량이 다가왔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그레이스가 찾아온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얘들은 어디서 난 거죠?”
“자는 사이에 몰려왔더라고요. 이 주변에 어떻게든 살아남은 녀석들이 먹이를 찾아 온 거죠.”
내 말에 그레이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동물들이 화상을 입은 흔적을 가지고 있거나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아직은 모르겠네요. 밤 사이에 이렇게 찾아온 거라……. 아니면, 이 녀석들한테도 일을 시키죠 뭐.”
나는 열심히 풀을 먹어치우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먹은만큼 일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un! Run!”
저 멀리서 앵무새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마을을 점령한 녀석들을 데려와 일을 시킨 후, 주변 일대에 풀어놓은 녀석들의 외침이었다.
“히익!”
앵무새의 외침에 갑자기 동물들 중 일부가 새된 소리를 내며 주변을 휙휙 두리번거렸다. 뭔가 위험함을 감지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풀을 해치우고 있는 녀석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너희들, 앞으로도 계속 배불리 먹고 싶지?”
내 물음에 동물들이 하나같이 그렇다며 대답했다. 산불 이후로 배불리 먹은 경험이 거의 없는 녀석들이다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며,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풀들을 한 움큼 쥐어들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던 캥거루 중 한 마리에게 다가가, 녀석의 육아낭에 풀을 쑥- 집어넣었다.
“넉넉히 들고가서 너희도 좀 먹고, 바닥에도 좀 뿌려놔. 그러면 이런 것들이 많이 생길 거니까.”
캥거루, 웜뱃, 코알라. 하나같이 유대류로 육아낭을 가진 동물들이었다. 녀석들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마다의 육아낭에 풀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동닙하게쯤미다!”
새끼 캥거루 한 마리가 풀과 동거하게 된 상황에 독립을 선언한 일이 있긴 했지만, 풀을 빼내고 다시 넣지 않는 것으로 어떻게든 잘 해결 되었다.
잠깐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육아낭에 풀을 한 가득 집어넣고 주변으로 뿔뿔이 흩어진 녀석들은 내가 원하는대로의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몇 가닥의 풀을 육아낭에서 꺼내어 질겅질겅 씹으며, 또 몇 가닥의 풀들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있는 것이었다.
바닥에 뿌려진 풀들의 일부는 새싹을 대신하는 먹이가 될 것이었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자연적으로 마르고 썩어가며 천연 비료가 될 것이었다. 바싹 마르기만 하면 또 다시 산불의 원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조만간 비 소식이 있었다.
“자, 그럼 저희도 움직일까요?”
동물들이 흩어진 것을 확인한 나는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옆으로 까딱였다.
“어디로 가실 생각이시죠?”
“일단 주변을 둘러보려고요. 씨앗도 뿌렸겠다, 제대로 됐는지 한 번 봐야죠.”
“벌써요? 어제 저녁 즈음에 뿌리지 않았나요? 싹도 안 났을 건데…….”
그레이스는 별 의미도 없는 걸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오늘 제가, 드루이드 퀄리티가 뭔지 보여드릴게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그레이스와 경호원 일부를 대동하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동안 걸으며 앵무새들이 씨앗을 뿌린 지역에 도착한 그레이스는 무척이나 놀란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