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60
0159 외전 – 하은의 하루
* 이번 편만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야옹.”
하은은 매일 아침, 조금은 이르다 싶은 시간에 잠에서 깨어난다.
따로 휴대폰으로 알람을 설정해두는 것은 아니고, 아침마다 찾아와 깨워주는 폭신이 덕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유대감 때문인지, 하은이 가장 친밀하게 느끼는 동물은 폭신이었기 때문이다. 폭신이 역시 하은이 자신을 가장 잘 챙겨주니 좋아하는 편이었다.
“폭신아, 잘 잤니?”
“먀.”
수환과 달리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없는 하은이었지만, 하은은 폭신이의 대답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안다기보다는 느낄 수 있었다.
잘 잤다고 답해주는 듯한 폭신이의 울음소리에 웃은 하은은 폭신이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몸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즐기던 폭신이가 만족한 듯 떠나니, 하은은 곁에 있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누가 부녀지간 아니랄까 봐, 자는 모습이 완전 판박이나 다름없는 수환과 소은이 있었다.
“참, 생긴 건 날 닮았는데 하는 건 완전히 지 아빠 판박이야.”
한쪽 팔을 들고, 한쪽 발을 다른 쪽 종아리에 붙인 괴상한 자세로 자는 모습은 두 사람이 부녀지간임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아도 100% 부녀지간이라고 확신이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던 하은은 침을 주륵- 흘린 상태로 자고 있는 소은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우움.”
침을 닦아주니 소은이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귀엽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찰칵, 사진 한 번 찍은 하은은 만족한 얼굴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가볍게 씻고 머리를 질끈 동여맨 하은은 그대로 주방으로 향했다.
“으흥흥, 흐응.”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방으로 향한 하은은 곧바로 아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돈도 많겠다, 사 먹거나 다른 사람을 부려도 되겠지만 가족이 하루의 처음을 여는 식사만큼은 스스로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하은의 고집이었다.
미리 전날 저녁에 준비해둔 것들을 이용해, 반쯤 조리 식품을 만들어내듯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찹!
“꺅! 노, 놀래라!”
그리고, 그렇게 아침을 만들던 하은은 갑자기 누군가 제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는 것에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소리 없이 다가온 수환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친 것이었다.
“역시 아침에 두드리는 누나 엉덩이가 최고라니까?”
“야!”
프흐흐- 웃으며 도망치는 수환의 모습을 바라본 하은은 고개를 내저으며 식사 준비에 다시금 집중했다.
색색의 채소들과 약간의 고기 같은 것들을 곁들여 만드는 볶음밥과 달걀국이 오늘 아침 식단이었다. 하은 본인은 물론이고 수환과 소은이 역시 좋아하는 메뉴였다.
“엄마아앙!”
그리고, 접시 같은 그릇에 볶음밥을 덜어내고 있으니 수환이 깨우고 씻겨낸 소은이가 달려와 하은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잘 잤니?”
“웅!”
하은은 제게 달라붙어 있는 소은에게 어린이용 수저세트를 꺼내주었다. 양손에 숟가락과 손가락 고리가 있는 젓가락을 쥔 소은이는 식탁으로 달려갔다.
조금은 높다고 할 수 있는 의자가 있었지만, 소은이는 그 의자를 등반하듯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밥!”
“소은아. 엄마가 뭐라고 했지?”
“식탁에선 얌전히!”
양손에 수저를 쥐고 흔들던 소은이는 하은의 말에 얌전하게 앉아 자기 앞에 식사가 오길 기다렸다.
수환까지 자리하고, 식사가 나오자 소은이는 행복한 얼굴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본인이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먹고, 계란국을 떠먹으며 김까지 집어먹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먹기 싫은 것들을 입안에서 재주 좋게 골라내는 소은이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편이었다.
“역시 누나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네.”
“엄마 밥 최고!”
“많이 먹어.”
자기가 해준 음식이 최고라는 말에 부드럽게 웃은 하은은 수환에게 정리를 맡기고, 소은이의 유치원 등원 준비를 시작했다.
수환이 미리 씻기고, 옷까지 입혀두었지만 사실 손볼 것이 많았다.
말 그대로 입혀두기만 한 옷을 예쁘게 정리해 주고, 반쯤 산발이 되어 있는 머리카락을 귀엽게 묶어주었다.
“우리 딸 이쁘다.”
“히히.”
예쁘다는 소리에 해맑은 웃음을 짓는 소은이의 모습에, 하은은 참지 못하고 꽉 끌어안으며 찐하게 뽀뽀까지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소은이에게 신발도 신겨주고, 유치원 가방을 메어주었다.
“다녀오게씀미다!”
“히이잉!”
“다녀와!”
언제나처럼 뽀니에 올라타, 유치원에 스스로 등원하는 소은이를 배웅해 준 하은은 수환과 함께 가벼운 티타임을 즐겼다.
마당에 있는 벌집에서 갓 따온 꿀을 넣어 마시는 허브티가 그녀의 최애 음료라고 할 수 있었다.
“흐으응, 맛있어!”
“진짜 좋아하네.”
“이 허브티랑 꿀이 엄청 잘 어울린단 말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가볍게 티타임을 즐긴 하은은 먼저 동물원의 동물들을 확인하러 가겠다는 수환을 배웅했다.
찻잔을 정리한 하은은 화장도 하고, 옷도 챙겨 입고서 집을 나섰다.
“언니이이이!”
집을 나서 사무실로 다가가고 있으니, 출근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있는 영지가 뽀르르- 달려와 안겼다.
“언니, 소은이는?”
“소은이는 당연히 유치원 갔지.”
“히잉.”
“나중에 오후에 같이 놀아. 나는 약속이 있으니까, 영지 네가 소은이 좀 챙겨줘.”
“응! 맡겨줘!”
남도 아니고, 사촌 동생인 영지라면 소은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한 하은은 영지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너희도 잘 잤니?”
“꾸악!”
집에서 사무실까지 가는 길에 있는 수많은 동물들이 하은을 보며 다가와 살갑게 인사했다.
아무래도 소은이가 하은의 판박이라 해도 될 정도로 닮았다 보니, 동물들이 하은 역시 좋아하는 것이었다.
동물들을 가볍게 쓰다듬는 식으로 인사해 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사모님 오셨어요?”
“좋은 아침이에요.”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진 사모님이란 소리에 웃어 보인 하은은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따로 외부에서 오는 요청이 있는지 체크를 해보고, 동물원에서 사용되는 비용 같은 부분들을 처리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그리고, 잠시 업무를 보고 있으니 휴대폰이 울렸다. 수환이 방송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중요한 업무는 끝난 상태라, 하은은 곧바로 방송을 모니터링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물들이 하는 말을 번역하는 것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며 잠시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니, 뭔가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수환이 동물원에서 촬영하다 보니 익숙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 동물원에서도 특히나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짜잔! 남편 왔다!”
다름이 아니라, 하은의 사무실 바로 앞이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자신이 있는 사무실을 찾아왔다는 것에 놀라는 것도 잠시, 하은은 침착하게 수환을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찾아온 것이 사실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니, 우리 시청자들이 여왕님을 좀 보고 싶다잖아. 맨날 보던 사람만 보는 건 지겹다고 누나를 좀 보고 싶다네?”
“그 여왕님이라고 하는 거 부담스러운데, 안 하면 안 돼?”
“소은이 별명이 공주님이잖아? 그럼 공주의 엄마를 뭐라고 불러?”
“…….”
순간 할말을 잃은 하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수환이 씩- 웃음을 지어 보였다.
[팬이에오 님이 3만 원 후원!] [“여왕님! 자주 나와주세요!”]“그렇다는데?”
“그건 조금…….”
아무리 수환이 TV에도 나오고, 뮤튜브에서 무척 유명하다고 하지만 하은은 자신이 그곳에 나오는 걸 부끄러워하는 편이었다.
[팬이에오 님이 3만 원 후원!] [“여왕님 부끄러워하신다! 기여어!”]“어허, 남의 마누라가 부끄러워하는 걸 귀엽다고 하면 안 되지.”
“나가!”
그리고, 그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태평하게 찍으면서 히죽거리던 수환은 하은에게 쫓겨났다.
“어휴.”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쉰 하은은 나머지 업무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한 친구가 이곳까지 찾아온 탓이었다. 카페에서 기다린다는 소리에 찾아가, 잠시 동안 수다를 떨어댔다.
“아, 하은아. 너는 결혼생활 어때?”
“나? 나는 좋지.”
“……하긴 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지. 십 년이나 사귀고 결혼했는데.”
“왜? 결혼하게?”
“응. 오늘 온 것도 사실 청첩장 주러 온 거야.”
“축하해!”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진심을 다해 축하해 준 하은은 친구가 청첩장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뒤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응? 안 들고 왔나? 아닌데.”
“……포동아.”
의자 등받이에 걸어둔 가방에서 찾는 모습에, 하은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포동이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의 부름에 소포동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새하얀 종이봉투 하나를 쥔 채로 말이다.
“끄르응.”
“이게 전부야? 다른 것도 있으면 가져와.”
“끄르르르릉.”
손바닥을 내밀며 말하는 하은의 모습에 작게 울음소리를 낸 소포동이 숨겨둔 다른 것들을 꺼내왔다. 무선이어폰, 자그마한 화장품, 렌즈 케이스 같은 것들을 가져온 것이었다.
“미안해. 우리 집 라쿤 손버릇이 안 좋아서…….”
“아냐, 좀도둑 라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주의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
카페의 벽면에 붙은 ‘좀도둑(라쿤) 주의’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하는 친구의 모습에 하은이 피식 웃음 지었다.
“근데 동물들이 너도 잘 따르는 거 같다?”
친구의 부러움이 가득 담긴 시선에 부드럽게 웃은 하은은 제 품에 있던 붉은여우 암컷, 미호를 슥슥 쓰다듬었다.
“따른다기보다는 뭔가 유대감이라고 해야 할까? 이상하게 새끼 가진 동물들이랑 친한 것 같아. 얘도 새끼들이 있거든.”
폭신이, 미호, 오구리, 코뿔소 등등. 새끼를 키우고 있거나 임신 중인 녀석들과 특히 친밀하다며 하은은 미호의 털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친구와 수다를 즐기던 하은은 어느덧 돌아온 소은이를 맞이했다. 영지와 잠시 놀았던 건지, 영지가 크림 가득 올려주는 핫초코가 소은이의 입가에 묻어 있었다.
“엄마아아앙!”
소은이를 맞이하며 입가를 닦아준 하은은 소은이가 재잘재잘, 오늘 유치원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떠드는 걸 들어주었다.
“오늘 지연이가, 나한테 종이학 줘써!”
“그랬어? 지연이한테 고맙다고 했어?”
“웅! 그리고 지연이랑 수정이랑 병원놀이했는데, 내가 선생님이어써! 어디 아파용? 히히.”
“재미있었겠네.”
“엄청 재미있어써!”
하은은 적당히 소은이에게 맞장구쳐주며, 소은이가 가져온 짐 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가정통신문 같은 것도 확인하고, 흙놀이라도 했는지 흙먼지가 묻은 옷을 세탁바구니에 넣는 등 정리를 한 것이었다.
“엄마, 압빠한테 갈래.”
“아빠? 잠깐만.”
그리고, 하은은 수환을 찾는 소은을 데리고 수환을 찾아갔다. 방송을 종료하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물들의 적응을 돕고 있는 수환에게 소은이를 보내주었다.
“우리 딸, 아빠랑 놀까?”
“조아!”
소은이랑 해맑게 뛰노는 모습을 보며, 애 둘을 키우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하은이었다. 너무 죽이 척척 맞게 노는 모습을 보면 소은이가 어른스러운 건지, 수환이 애 같은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렇게 소은이를 수환에게 맡긴 하은은 그대로 저녁을 준비했다. 보통 저녁은 맛있게 먹자는 주의라, 검증된 곳에서 시켜 먹는 편이라 준비할 것은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배달이 오고 식탁에 세팅이 끝나갈 즈음 수환과 소은이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가볍게 손을 씻고 이어진 식사 자리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맛있는 것들을 한 입씩 먹여주기도 하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즐겁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 이후, 소은이와 샤워를 하며 뽀송뽀송하게 만들어준 하은은 이른 시간부터 잠자리에 들려는 소은이를 재워주었다.
동물들이 나오는 동화를 읽어주고 있으면 금세 꾸벅이며 잠에 빠져드는 소은이었다.
“누나. 둘째 어때?”
“……저리 가.”
“흐흐, 못 가.”
“꺄악!”
그리고, 잠에 빠져든 소은이를 뒤로하고 수환과 잠깐 운동 아닌 운동까지 하고 나서야 하은의 하루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