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61
0160 범위 공격
“수환아. 편집팀에서 영상 좀 찍어달라는데? 한 이틀 정도면 찍어둔 거 다 쓸 거 같다고.”
영상 업로드의 주기가 짧은 편인 내 채널이었는데, 한동안 영상 촬영이 소홀했더니 비축분이 다 떨어진 것 같았다.
“뭘 찍지?”
하지만 어떤 영상을 찍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의 영상은 제법 많이 올린 탓에, 또 올린다면 중복해서 영상을 올리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들어온 동물들의 영상을 찍을까, 아니면 소은이가 드림팀을 훈련하는 영상을 찍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카메라를 들고 동물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뭐든 영상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방송이나 하면서 찍어야겠다. 다녀올게!”
“응, 열심히 해.”
누나의 배웅을 받으며 나선 나는 곧바로 카메라를 들고 방송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청자들이 몰려오며 채팅창이 난잡해졌다.
[오컨무?] [오리너구리!!!!!!!] [우리집 개가 야옹야옹 짖어요!] [호돌이 먹이 털렸나요?] [경호원 아재랑 곰이랑 힘 싸움하는 거 보여주세요.] [공주님 어딨어!]“어떻게 정상적으로 인사해 주는 사람이 없어?”
난잡해진 채팅창에 투덜거리니 곧바로 후원 메시지가 들어왔다.
[딸랑이지망생 님이 1만 원 후원!] [“신수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공주님 어딨어!”]“…….”
인사하는 줄 알았더니 소은이를 찾는 후원 메시지였다.
“맨날 소은이만 찾으면 나 서운해요? 이건 내 채널이라고.”
[딸랑이지망생 님이 1만 원 후원!] [“공주님 어딨어!”]“유치원에 있다! 왜!”
[딸랑이지망생 님이 1만 원 후원!] [“어케이.”]말 그대로 소은이의 위치를 알고 싶었던 건지, 유치원이라는 소리에 악질 시청자가 조용해졌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딱히 목적지를 두고 간다기보다는, 걸음이 닿는 대로 움직이려는 것이었다.
“……쟤는 저기서 뭐 하는 거야.”
그런데, 길을 걷던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장식으로 놔둔 두 개의 바윗덩이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꼬리를 살랑이고 있는 구박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해가안댕 님이 3만 원 후원!] [“요물이 따로 없네! 빵댕이 살랑살랑 흔드는 거 봐라.”]카메라로 찍히는 화면을 보니, 구박이가 꼬리와 엉덩이를 함께 흔드는 것처럼 찍히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고서는, 바윗덩이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구박이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여우 살려! 누가 좀 꺼내줘!”
“노는 게 아니라 낀 거였냐.”
가까이 다가가니, 바윗덩이 사이에서 구박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구조요청의 의미를 가득 담은 울음소리였다.
장식용 바윗덩이 사이에 낀 녀석을 빼내기 위해, 녀석의 몸통과 머리 윗부분을 감싸며 조심스레 당겼다.
“여우 죽네!”
구박이 녀석이 엄살 부리는 소리가 깨갱깨갱, 들려왔다. 그런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며시 당기니, 녀석이 뽕- 하고 튀어나왔다.
“꾸엑…….”
뽑혀 나온 녀석은 앞발로 제 머리를 감싸는 듯한 모습으로 머리를 북북 부벼댔다. 조금 오랫동안 끼어 있었던 건지, 녀석의 털이 폭삭 눌려 있었다.
그런 구박이의 머리털을 가볍게 쓸어주며 정리해 준 나는 녀석을 붙잡았다.
“왜 저기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던 거야?”
“먹을 게 굴러들어가서…….”
녀석의 말에 바윗덩이 사이를 바라보니 자그마한 과일 같은 것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저거 먹겠다고 저길 기어들어갔다는 거지?”
“마누라가 먹을 걸 다 새끼들한테 줘서, 몰래 먹으려고 숨겨 둔 건데 저 깊숙이 들어가는 바람에…….”
구박이의 말을 번역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니 사람들이 불쌍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물론, 미호를 욕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미호와 구박이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 동물원에 합류하게 된 건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은이한테 홀려, 부인이 있는 집의 위치를 불어버려 잡히게 되었으니 구박이가 구박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접시닦이 님이 5만 원 후원!] [“우리 퐁박이……. 이걸로 맛있는 거 사주세요…….”]구박이를 안타까워하는 이들 중에, 간식 사주라며 돈을 후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 요청에 따라 구박이에게 고급 육포를 내어주었다.
“접시닦이라는 사람이 너한테 주라고 한 거야. 고맙다고 해.”
“우머구뭄그웅!”
허겁지겁 육포를 찹찹 씹어먹던 구박이는 내 말에 카메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꾸벅꾸벅 숙여댔다. 나와 함께하며, 카메라와 방송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녀석이었기에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접시닦이 님이 3만 원 후원!] [“동료끼리 돕고 살아야지…….”]왠지는 몰라도 후원 메시지를 읽어주는 AI의 목소리가 서글퍼 보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비슷한 이들의 후원 메시지가 연달아 올라왔다. 후원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의 닉네임이 대부분 유부남인 것처럼 보였다.
구박이를 가장 선호한다는 유부남들 답다고 해야 할지, 구박이에게 힘내라는 내용이 가장 많았다.
구박이에게 육포를 잔뜩 내어준 나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구박이가 그러했듯, 딱히 촬영할 만한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나마 코끼리 밥을 훔치려다가 풍차 돌리기 당하는 대포동의 모습이 찍을만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동물들을 찾아가기도 하며 약간의 분량을 뽑긴 했지만, 뭔가 살짝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겜생 님이 3만 원 후원!] [“신수님은 컴퓨터 게임 안 하시나요?”]그러던 도중 한 후원 메시지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컴퓨터 게임요? 하긴 해요. 실력이 드럽게 없어서 팀 게임은 잘 안 하지만……. 아는 분들은 아실걸요?”
[얼마나 못하길래?] [나 예전에 신수님 겜하는 거 봄 ㅈㄴ 못함 ㅋㅋㅋ] [신수님 덕분에 승급전 똥망했었습니다 ^^7] [한타 하다가 소은이 운다고 뛰쳐간 거 레게노였지ㅋㅋㅋ]예전부터 내 방송을 시청하던 사람들 위주로 목격담 같은 것들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게임하는 방송을 보지 못했던 이들이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참에 게임 방송 한 번 해보라며 외쳐댔기에, 나는 동물원 투어를 중지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건 진짜 오랜만에 하네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켜고 로그인 화면을 보니 꽤 반가움이 느껴졌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못 하긴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하면 꽤나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가움은 이내 사라졌다.
[해당 계정은 블록 처리된 계정입니다.] [사유 : 고의 트롤링(1시간 내 10연패)] [기간 : 2222년 02월 22일 22시 22분 22초까지]“……이건 좀 심하지 않나?”
내가 마지막으로 플레이할 때 1시간 만에 10연패를 하긴 했다만, 그래도 영구정지를 때려놨을 줄은 몰랐다. 사람이, 어? 게임 좀 잘 못할 수도 있지!
[1시간 동안 10연패가 가능함?] [사람 많은 피크시간대에 한 대도 못 때리면서 ㅈㄴ 뒤져서 가능했던 걸로 기억함 ㅋㅋㅋ 사실상 4:6] [심지어 소은이 운다고 뛰쳐나간 게 저거 막판임] [당시 전적 보니까 제일 잘한 게 2킬 16뎃이네 ㅋㅋ]반가움 대신 원망이 자리하게 됐다. 게임 좀 못 한다고 영구정지를 시키다니.
엄청 웃어대는 시청자들의 채팅에, 나는 입술을 비죽이며 게임을 꺼버렸다. 정지 해제를 요구하자니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멍하니 컴퓨터의 바탕화면을 보며 뭘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도중, 그래도 팀 게임보다는 잘 하는 편이던 게임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은 고전 게임이나 마찬가진데……. 이거 아는 사람 있어요?”
야채 같은 캐릭터들이 장애물을 뛰어넘는 게임을 시작하니, 많은 사람들이 안다며 반응했다.
“이것도 막 잘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최종 라운드까지는 잘 가는 편이에요.”
말을 하자마자 믿지 못하겠다며 증명해 보라는 채팅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조금 전 보였던 것의 여파인 것 같았다.
나는 증명해 보겠다 외치며 게임을 시작했다.
“아니, 이건 아니지이이이!”
다만 문제가 있다면 30명으로 시작하여 장애물 경기를 펼치는 게임인 주제에, 단 3명만이 앞으로 뛰쳐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럼 나를 제외한 나머지 26명은 뭘 하냐면……. 당연히 나를 방해하고 있었다. 나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둘러싸고 방해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앞서나간 3명 중 2명 역시 입구 앞에서 내 골인을 막겠다는 듯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었다.
[겜생 님이 1만 원 후원!] [“아무고토 모타죠?”] [그거해봐 님이 1만 원 후원!] [“최종 라운드까지는 잘 가는 편이에요. 실제로 한 말.”]게임 자체를 진행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비웃어대는 시청자들의 모습에 나는 괴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나를 비웃듯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나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시작 지점에서 끝을 맞이했다.
거진 1억에 가까운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 보니, 30명으로 진행되는 게임의 참가자 전원이 악질로 구성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게임 시작 화면을 숨기고 해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나를 노리고 있다 보니 몇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압빠, 모해?”
그리고, 내가 괴성을 내는 것에 다가온 소은이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게임하는데, 소은이도 해볼래?”
“웅!”
소은이를 내 무릎에 앉히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주니 캐릭터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짧은 손가락과, 조작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소은이는 당연하게도 이리저리 마구 움직였다.
하지만 내가 게임할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 보였다.
밟으면 캐릭터가 터져나가는 함정으로 다가갈 땐 다른 참가자가 희생해 터져나갔고, 절벽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대신 떨어지며 발판이 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심지어, 소은이라 하더라도 방해하려던 한 인간은 다른 이들에게 집단으로 린치 당하고 있었다.
[1등!]“히히, 나 1등이야?”
“어……. 응, 소은이가 1등이네.”
“1등이다!”
1등이라며 좋아하는 소은이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너무들 하네 진짜.”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금 후원 메시지들이 들어왔다.
[실례합니다만 님이 2만 원 후원!] [“슨생님은 그냥 동물들이랑 놀아주시죠.”] [겜생 님이 1만 원 후원!] [“우리 집 강아지가 더 잘할 듯?”]나를 놀리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매의 눈으로 채팅창을 봐도, 나를 옹호해 주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보고 또 봐도, 다들 내 고통에 기뻐하고 있는 것만 보였다.
그 모습에 자그마하게 한숨을 내쉰 나는 게임을 종료하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진짜 게임은 못하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동물들을 키울 때 꿀팁을 방출해 드릴게요. 일단 오늘은 개 위주로 알려드릴 테니, 반려견을 키우는 분들은 다 데리고 오세요. 스피커 볼륨도 키우시고요.”
내 말에 채팅창에 기다려달라는 내용이 가득했다.
잠시 기다려주니, 다들 준비가 됐다며 어서 꿀팁이라는 걸 알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산책 가자! 목줄 가져와! 산책이다! 즐거운 산책이야! 미친 듯이 뛰러 가자고! 짖어! 나갈 때까지 짖어! 지칠 때까지 산책하는 거야!”
복식호흡으로 외치니, 시청자들과 게임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채팅창은 불타올랐다.
[산책 다녀옵니다 ㅠㅠ] [아니 좀 전에 산책 갔다 왔는데!] [Damn! It’s 5 a.m. here!] [개가 아니라 고양이 키우길 잘했다 진짜;;] [Sorry, Sorry, Sorry, Sorry, Sorry, Sorry, Sorry!]불타오르는 채팅창을 보고 있으니 무척 즐거웠다.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 마,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
[겜생 님이 1만 원 후원!] [“딜교 씹손해 봤네……. 산책 나갑니다.”]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방송을 종료할 수 있었다. 편집팀에서도 꽤나 쓸만한 영상이 나왔다며 좋아했다.
나도 좋고, 편집팀도 좋고, 개들도 좋아할 게 뻔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견주? 견주에게 산책은 의무니까 더더욱 문제 될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