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65
0164 월동 준비
“압빠! 큰일 나써!”
“왜, 왜?! 무슨 일이야!”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달려온 소은이의 모습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났길래 큰일이라며 뛰어오는 거지?
하지만 이내 그 놀람은 금세 사라졌다.
“하늘이가 빵빵해져써!”
소은이가 큰일이라고 한 것이, 딱히 큰일이라고 보기엔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하늘다람쥐인 하늘이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데다 볼이 빵빵하다 못해 터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하늘이가 빵빵해진 것을 보며 소은이가 놀란 건 이해됐지만, 사실 큰일은 아니었다.
“음, 하늘이가 이렇게 빵빵하게 된 건 다 이유가 있어.”
“그게 몬데?”
“예전에 아빠가 동화책 읽어줄 때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있었지?”
“겨울잠……. 웅! 기억나!”
잠시 기억을 되짚던 소은이는 기억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게 양갈래 머리로 묶어놓은 머리칼이 파라락 흔들려댔다.
“하늘이도 겨울잠을 자려고 준비하는 거야.”
“근데 왜 빵빵해?”
“음……. 소은이도 밥 안 먹고 자면 배고프지?”
내 말에 소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머리칼이 파라락 흔들렸다.
“그래서 그런 거야. 겨울 동안 내내 자야 하니까, 미리 배부르게 먹어두는 거지.”
“그러쿠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해맑은 미소를 지은 소은이는 하늘이의 빵빵한 볼을 살며시 콕- 찔렀다.
“근데, 하늘이는 겨울잠을 안 자도 되는데.”
“왜에?”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 건, 겨울에 먹을 걸 찾기 힘들어서 그래. 겨울에는 열매가 안 맺히잖아?”
“먹을 게 없는 거구나!”
“그렇지. 근데, 하늘이는 소은이가 먹을 걸 챙겨줄 거잖아? 그러니까 겨울잠을 안 자도 되는 거야. 먹을 게 없어서 겨울잠을 자는데, 먹을 게 있으면 문제가 없겠지?”
“웅웅!”
소은이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이 어깨를 활짝 펴 보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빵빵해져서 굴러다닐 것 같은 하늘이를 들어 올렸다.
“너 겨울잠 안 자도 먹을 거 주고, 따듯한 곳에서 지낼 수 있게 해줄 테니까 다 뱉어도 돼.”
“징쟈?”
볼주머니에 먹이를 어찌나 많이 밀어 넣었던 건지, 발음이 뭉그러진 녀석의 말에 가볍게 웃은 나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하늘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볼주머니 가득한 먹이들을 하나씩 빼내기 시작했다.
앙증맞은 손이 녀석의 볼주머니로 들어가 아몬드 같은 견과류들이 하나씩 빠져나왔다.
“……많이도 넣어놨네.”
거의 내가 한 줌 쥐는 수준으로 볼주머니에 견과류를 넣어두고 있던 하늘이었다.
“이건 너희가 먹어라.”
나는 하늘이가 뱉어낸 견과류들을 하늘 높이 흩뿌렸다. 그러자,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앵무새들이 파다닥 날아와 하늘로 던진 견과류들을 다 낚아챘다.
하늘이가 뱉어낸 견과류를 처리한 나는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하늘이를 들고 콕콕 찌르는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소은아. 이참에 동물들이 겨울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구경할까?”
“웅! 조아!”
나는 소은이를 데리고 동물원을 돌기 시작했다.
처음은 어느 동물원에 가더라도 볼 수 있는 양이었다.
다만 양들은 우리 동물원에서는 그리 인기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툭하면 옷가지를 물어뜯는 녀석들이었기 때문이다. 순한 양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개차반이었다.
“소은아, 양들은 겨울에 털을 잘라줘야 할까? 아니면 자르지 말아야 할까?”
“자르면 안대! 옷 없어서 추워!”
“땡! 양들은 털을 잘라줘야 돼.”
“왜에?”
내 말에 소은이가 무척 놀란 모습을 보였다. 털이 많으면 따듯하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겠지.
“소은이는 아빠랑 붙어 있는 게 따듯해? 아니면 그냥 혼자 있는 게 따듯해?”
“가치 있는 거!”
“양들도 그래. 같이 있으면 훨씬 따듯한데, 털이 있으면 따듯하니까 혼자 있거든. 털을 조금 깎아준 다음에 같이 있게 만드는 거야. 소은이가 한 번 잘라볼래?”
“해볼래!”
방방 뛰며 당장 하게 해달라는 듯한 소은이의 모습에, 소은이를 데리고 양들을 관리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미 양들의 겨울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인지, 몇 마리의 양들이 털을 깎고 있는 상태였다.
“엇, 사장님! 공주님도 왔네요?”
“털 깎는 걸 소은이가 한 번 해봐도 괜찮죠?”
“물론이죠. 공주님이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으니 얼마든지요.”
커다랗고 무거운 기계를 들 수 없는 소은이에게 맞춰, 직원이 가위를 하나 가져왔다.
잘 갈아둔, 날카로운 가위를 조심스레 쥐여주니 소은이가 양에게 다가갔다.
“공주님이 털 깎아준다!”
“내가 먼저 들어갔어야 하는 건데!”
“나도! 나도 깎아줘!”
다른 양들이 부러움에 몸부림치는 사이, 소은이는 양의 털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조심히 잘라야 돼. 가위가 엄청 날카로우니까, 소은이도 양도 다치면 안 되는 거 알지?”
“웅.”
내 말에, 소은이가 조심스레 가위를 가져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양털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손에 쥐어질 만큼 자그마한 양털 뭉치가 생겨났다.
“히히, 귀엽다!”
양의 털을 다 잘라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자른 것이 마음에 든다는 듯한 소은이는 해맑은 웃음과 함께 양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 손길을 받은 양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물론, 자기가 자른 양털을 내게 자랑한다고 달려온 소은이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압빠, 내가 잘라써!”
“잘했어. 양들이 소은이 덕분에 이번 겨울을 따듯하게 잘 보내겠는걸?”
“히히!”
기뻐하는 소은이를 데리고 다른 동물들을 찾아갔다.
“소은아. 곰도 원래는 겨울잠 자는 동물인 건 알지?”
“웅, 동굴에서 쿨쿨 잔다고 해써. 그래서 동굴은 가면 안 되는 거야!”
“그렇지. 근데, 아빠가 아까 말해줬지? 우리 동물원에 있는 친구들은 겨울잠을 안 잔다고.”
“밥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맞아. 대신에, 곰들도 추운 날씨를 버티기 위해서 살을 찌울 거야. 소은이가 많이 먹으라고 밥 갖다 줄까?”
“밥머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은이가 양손 가득 과일들을 끌어안고 곰에게 달려갔다.
곰이 있는 우리에 어린이가 뛰쳐들어가는 것에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잠시, 소은이라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은 신기한 것을 구경한다는 듯 소은이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곰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주둥이에 과일을 밀어 넣어주고 있는 모습은 제법 현실성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자기가 가져간 과일과, 사육사들이 가져다준 과일까지 넉넉하게 먹인 소은이는 그제야 만족한 듯 내게로 돌아왔다.
“압빠, 이제 끝?”
“아니. 파충류관에 갈 거야.”
“한무랑 누렁이!”
파충류 하면 딱 떠올리는 두 마리를 이야기한 소은이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두 녀석을 찾아 나섰다.
벌써부터 조금 추워진 날씨에, 녀석들은 온열 기능이 확실히 작동하고 있는 파충류관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얘들도 밥 마니 줘?”
“아니. 그건 아니야. 얘들은 여기에 있으면 겨울에도 따듯하게 지낼 수 있잖아? 그러니까, 밖에서 부는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해주면 돼.”
소은이는 나를 따라, 틈이 있는 창문 같은 것들을 찾아내어 막는 일을 진행했다. 찬바람이 솔솔 불던 구멍 같은 것들이 사라지니, 파충류들이 조금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소은이가 누렁이를 밖에 데려갈 거면, 이걸 입혀야 돼.”
나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손목 보호대를 100배쯤 길쭉하게 만든 듯한 것을 소은이에게 주었다. 누렁이를 제3의 팔 정도로 부리는 소은이었기에, 겨울에도 누렁이가 따듯하게 지낼 수 있는 옷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따듯하지?”
누렁이에게 옷을 입힌 소은이는 제 몸을 휘감는 누렁이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소은이와 계속해서 동물들의 겨울나기 준비를 도와주었다.
한국의 겨울을 겪어보지 못한 몇몇 동물들에게는 따듯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옷을 입혀주기도 하고, 살을 찌워 겨울을 따듯하게 보낼 동물들에겐 풍족한 먹이를 선사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준비를 도와주지 못한 녀석들이 있었다.
“벌도 겨울잠 자?”
“음……. 겨울잠이라고 하긴 그렇고, 겨울에는 집에만 있을 거야. 밖에는 추우니까 집안에서 따듯하게 있는 거지. 소은이가 좋아하는 꿀을 열심히 모으는 것도, 겨울 동안 그 꿀을 먹으려고 그런 거지.”
“그러엄, 꿀을 줘야 해?”
맞다고 하면, 당장 우리가 퍼먹는 꿀이 담긴 벌집을 통으로 떼어내 전해줄 것 같은 소은이의 모습이었다.
다급히 소은이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벌들이 충분히 먹을 만큼 만든 다음에 우리 가족이 먹을 수 있게 꿀을 주는 거야. 그래서 우리 벌들은 꿀을 주지 않아도 돼.”
“우웅.”
소은이는 아쉽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조금 빵빵하게 부푼 볼을 콕- 찔러 바람을 빼낸 나는 벌집을 가리켰다.
“대신, 소은이가 해줘야 하는 게 있어.”
“뭐 해야 하눈데?”
“벌집을 보면 많이 추울 것 같지?”
“웅, 엄청 얇아 보여!”
“그래서, 소은이랑 아빠가 벌집을 따듯하게 해줄 거야.”
나는 미리 준비해둔 나무판자들을 보여주었다.
“저기 있는 나무로 벌집 주변에 벽을 만들어줄 거야. 찬 바람이 못 들어가게 하고, 안에 있는 따듯한 기운이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거지.”
“나두 할래!”
“그럼 소은이가 아빠 도와주는 거다?”
“웅!”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소은이를 데리고, 소은이만큼 거대해진 벌집 주변으로 판자를 세우기 시작했다.
소은이가 앙증맞은 손으로 판자를 붙잡고 있으면, 내가 그 판자를 튼튼하게 고정하는 식이었다.
“소은이가 도와줘서 엄청 빨리 끝났네? 고마워.”
“후히히!”
허리춤에 손을 척- 얹고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인 소은이는 언제 가져온 건지 모를 펜을 꺼내어 판자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삐뚤빼뚤하고, 조금은 큼직한 크기로 ‘소은이가 만든 거!’, ‘붕붕이 집’, ‘마싯는 꿀이 이써요’ 같은 문구를 새겨 넣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꽃이나, 꿀벌을 그린 듯한 그림들이 가득 그려졌다.
그리고, 소은이가 그 그림들을 그리는 사이, 뚝딱거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온 몇 마리의 벌들이 내게 다가왔다.
‘온도 적절. 감사. 겨울 문제없음.’
“고맙긴. 인사는 소은이한테 해. 소은이가 아주 열심히 해줬으니까.”
‘소은님. 무척 감사.’
몇 마리의 벌들과, 뒤늦게 나온 여왕 벌이 소은이 주변을 날아다니거나 손등에 안착하여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겨울에 따듯하게 이써야 대!”
소은이는 그런 벌들을 쓰다듬어주었다.
“자, 그러면 이제 소은이를 위한 겨울 준비를 해볼까?”
“웅? 우와아아!”
나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소은이를 위한 선물을 꺼내주었다.
평소에도 동물 잠옷을 무척 사랑하는 소은이를 위해, 겨울용으로 내부가 따듯하게 만들어진 동물 잠옷을 선물해준 것이었다.
당장 포장지를 북북 찢어낸 소은이는 잠옷을 입었고, 새하얀 겨울토끼 한 마리가 자리하게 되었다.
“겨울잠 잘래!”
잠옷을 갖춰 입은 소은이는 갑자기 겨울잠을 잔다고 하더니, 냅다 침대로 뛰어들어 정말 잠에 빠져들었다.
동물들의 겨울나기를 돕는다고 열심히 움직인 덕에 낮잠이라도 잘 생각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