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67
0166 괴물의 둥지(2)
“꺄아아아악!”
“어, 벌써 포기하시는 거예요?”
“네, 네! 도저히 못하겠어요! 여기 왜 이렇게 무서워요? 낮엔 안 그랬잖아요오오옥!”
한 여성 도전자가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서 도망쳐버렸다.
“저기요! 참가 굿즈 가져가셔야죠!”
심지어, 도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는 굿즈마저도 받지 않고 도망쳤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젓고선, 다음 도전자를 불러들였다.
이번 도전자는 남자였는데, 손에는 기다란 셀카봉을 쥐고 있었다. 그 끝에 휴대폰과 보조배터리가 고정되어 있는 걸로 보아, 뮤튜브 같은 플랫폼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신수님! 저는 뮤튜브에서 미스터리를 비롯해서 공포체험 콘텐츠를 찍는 하꼬입니다!”
이번 도전자의 정체는 공포체험을 하는 뮤튜버였다.
나는 과연 그가 괴물의 둥지가 된 우리 동물원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가 뭔가 하기도 전에, 그가 먼저 질문을 건넸다.
“저기, 신수님. 혹시 내부에서 촬영을 진행해도 될까요? 보통 귀신의 집 같은 곳은 미리 알고 가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내부 촬영이 금지되는 경우가 많아서요.”
“아, 상관없어요. 구조는 애초에 동물원을 그대로 이용하는 거라서요. 뭐……. 자세한 건 들어가시면 아시게 되겠지만요.”
“오오……!”
내 말에 감탄하는 하꼬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종이를 건넸다.
“일단 여기 서명해 주시고……. 이건 도전한 분들 모두에게 드리는 굿즈입니다. 원래는 나올 때 드리는데, 사정상 못 가져가는 분들이 계셔서 입장할 때 드리는 거예요.”
기절이라던가, 도망친다던가 하는 이유로 받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유부 피규어네요. 어? 이건 조금 다른 거 같은데…….”
“괴물의 집 버전이라고 할까요?”
내가 건네준 피규어는, 우리 동물원 기념품 상점에서 파는 피규어와 조금 다른 형태였다. 기존의 굿즈가 평범하게 있는 모습이라면, 괴물의 둥지 버전은 고개를 90도 정도 꺾은 형태였다.
“참고로, 완주하시면 완주자용 굿즈도 드리고 있으니 열심히 해보세요.”
괴물의 둥지 역시 돈을 받고 입장하는 것이었기에, 나름대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선물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완주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그것도 들어가시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알겠다고 말한 그는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다른 직원들에게 내 자리를 맡기고서 하꼬라는 뮤튜버가 괴물의 둥지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구경하기로 했다.
○ ◑ ● ◐ ○ ◑ ● ◐ ○
동물원 내부를 비추는 CCTV를 비롯하여 하꼬가 직접 방송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그의 반응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형님들. 확실히 조명이 많이 꺼져 있으니까 음산하네요.”
산속에 있는 동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동물원이었기에, 조명을 조금 줄이니 무척 으슥한 광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탓인지, 무척 위축된 모습이었다.
하긴, 조명을 줄이면 나도 조금 무섭긴 할 정도니까.
아무튼, 그렇게 입구를 지난 하꼬는 씩씩하게 관람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들어가면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가 의문을 표하는 것과 동시에 일이 벌어졌다.
“샤하!”
“으아아아악!”
갑자기 나타난, 뼈로 이루어진 듯한 뱀 한 마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평범한 누렁이에게 검은 바탕에 흰 뼈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혀둔 것뿐이었다.
“와, 진심 심장마비로 죽는 줄 알았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어깨를 툭- 건드린 누렁이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던 하꼬는 바닥에 주저앉아 식은땀 한 방울을 훔쳤다.
그런데,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하꼬는 누렁이가 제 곁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보더니, 누렁이의 주둥이에 물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져가라고?”
하꼬는 누렁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녀석이 물고 있는 것을 조심스레 받았다.
그것은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판으로, 총 5개의 스탬프를 받아 오면 완주로 인정해 주는 것이었다. 몇 개는 동물들이 들고 돌아다닐 거고, 몇 개는 특정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오, 여기저기 좀 돌아다녀야 하네요. 이런 형식이면 뒤도 안 보고 뛰어다니는 건 의미가 없겠어요.”
[“쫄?”]“어허, 형님. 쫄이라뇨. 저 하꼬. 오늘, 괴물의 둥지를 정복해 보이겠습니다!”
후원 메시지에 발끈 한 듯한 하꼬는 두렵지 않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패기 넘치는 모습은 잠깐이었다.
“부우우-!”
“까악-! 까아악-!”
“으헉!”
유부와 까마귀들이 울음소리를 내자마자 고개를 붕붕 돌려대며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동물들이 자신을 놀래키려고 하는 건 아닌지 찾기 위함이었다.
그렇지만 어두운 깃털 색 덕분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녀석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쫄?”]“……일단 움직이겠습니다.”
잠시 멈춰 있던 하꼬는 다시금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파라라라락!
“뭐, 뭐야!”
갑자기 무언가가 그의 뒤편으로 불쑥 다가온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그가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뭐 오지 않았어요?”
“마루……. 그럴 수 있겠네요. 걔 속도면 못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까아아아아악!”
자기 곁을 지나갔던 것이 마루임을 확신하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던 마루가 다시금 나타났다.
거미 다리가 달린 듯한 옷을 입고, 머리에는 붉은색 안광을 표현한 듯한 LED 머리띠를 달고 있는 마루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하꼬의 곁에 다가섰다.
“거미이이이이익!”
마루에게 씌워진 거미 옷 덕분인지, 하꼬는 탭댄스라도 추듯이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내질러댔다.
그래도, 이내 마루라는 것을 확인한 하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림?”]“안 지렸거든요! 쫄지도 않았다고요!”
분명 무서워하는 티가 팍팍 났는데, 하꼬는 아니라며 발끈하더니 다시금 성큼성큼 움직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방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 금세 첫 번째 스탬프를 찾아낼 수 있었다. 관광안내소에 있는 스탬프였는데, 내 채널의 아이콘이 그려져 있는 스탬프였다.
“드디어 첫 스탬프네요. 이제 네 개만 더 찍으면 완주!”
스탬프를 찍은 하꼬는 나머지 4개는 금방 찾을 것 같다며 다시금 움직였다.
그렇지만 이제 겨우 초입일 뿐이었다.
그 뒤로 하꼬는 꽤나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한 팀만 들어가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닌 탓에 다른 도전자들과 마주하며 서로 놀라는 것은 기본이었고, 가지고 있던 랜턴이 라쿤들에게 도난당하는 사건마저 있었다.
“이씨……. 이 어두운 곳을 랜턴도 없이 가야 해?”
랜턴을 잃고, 휴대폰의 조명에 기대야 하는 하꼬는 무척 위축된 모습으로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움직이던 하꼬는 어느덧 코스의 중반부 즈음에 접어들었다.
어떻게든 놀리려고 마음먹은 듯한 동물들을 피해, 에어컨 실외기 뒤에 몸을 숨긴 하꼬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형님들. 포기해도 됩니까?”
[“너 딱 절반이라 포기하든 완주하든 똑같은 건 알지?”]“제기랄.”
하꼬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하꼬의 머리 위로 물방울이 몇 방울 떨어졌다.
비가 내리나- 싶어 고개를 들어 올리는 하꼬는 이내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코, 코, 코, 코, 코끼리가 왜 옥상에 있어어어어어어어!”
하꼬가 숨은 실외기 바로 옆 건물 옥상에, 뿌우뿌우가 올라가 물방울을 하나씩 떨어트리던 것이었다.
따로 분장하지 않았음에도, 거대한 그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꼬는 자길 내려다보는 뿌우뿌우의 모습을 보더니 비명을 내지르며 힘차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
“으아아악! 뭐야! 또 뭔데에에에! 뭐가 따라오는 건데! 코끼리야?!”
[“뒤지기 싫음 뛰어야 하겠는데? 뒤에 코뿔소 따라옴.”]“제기라아아아아알! 코끼리도 아니고 코뿔소라니!”
차마 뒤를 돌아 볼 용기가 없어, 휴대폰을 뒤로 비추었던 하꼬는 시청자의 후원 메시지를 듣고 더더욱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 선택 역시 무척이나 잘못된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크르릉.”
“아니이이이이! 호랑이는 또 왜 풀어 놓냐고오오오오!”
우리에서 빠져나와, 옹기종기 모여 있던 호랑이들 사이로 파고든 듯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호랑이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하꼬를 부드럽게 맛보았다.
“까, 까, 깍…….”
호랑이의 까끌까끌한 혓바닥이 하꼬의 얼굴에 닿는 것과 동시에, 하꼬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쓰러졌다.
호랑이들이 정말 기절했는지 보겠다는 듯 앞발로 툭툭 건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형님. 얘 웃는데요?”
“내버려 둬. 집에 가는 꿈이라도 꾸는 거겠지. 가자.”
호랑이들은 그 모습에 흥미를 잃은 듯, 하나둘씩 그 자리를 떠났다.
“푸하! 형님들 봤습니까? 이게 바로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겁니다. 그 짧은 시간에 죽은 척하기 기술을 펼친 거죠.”
[“근데 코뿔소는 아직도 근처에 있는데?”]“어……? 어, 어어어어어아아아아악!”
하꼬는 후원 메시지를 보더니, 다시금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탬프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채로 뛰던 하꼬는 동물원 전체를 한 바퀴 돌고서 입구로 돌아왔다.
“헉, 허어억……! 헉, 헉……!”
“즐거운 관람 되셨나요?”
“즈, 즐겁……. 허어…….”
생글생글 웃으며 맞이해주는 직원의 모습에 하꼬는 허탈하다는 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과정에서 떨어진 스탬프 판을 주워든 직원은 1개의 스탬프가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탬프가 한 개 밖에 없네요. 다시 돌아가서 나머지 스탬프를 찾으시겠어요? 아니면 스탬프 한 개에 해당하는 상품을 받으시고 퇴장하시겠어요?”
“퇴자아아아앙!”
하꼬는 절대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듯, 퇴장을 외쳤다.
시청자들이 그 모습에 실망이다- 돌아가라- 하는 채팅을 쳤지만, 하꼬에겐 보이지 않는 듯했다.
“여기, 상품 받으시고요. 우측 상점에서 속옷이나 바지도 판매하고 있으니, 필요하시면 들렀다 가세요.”
하꼬는 들어올 때 받았던 피규어보다 조금 더 커진 크기의 피규어를 챙기고, 걸음을 옮겼다. 잠깐 직선으로 걷던 하꼬는 이내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동물원 내부로 향했다.
“압빠!”
“왁, 깜짝이야!”
그리고 내부로 향하던 도중, 뽀니를 타고 있는 소은이를 발견했다. 아주 옅은 녹색으로 빛나고 있는 조명이 달린 옷을 입은 뽀니와, 그런 뽀니 위에서 새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소은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던 소은이었기에 하꼬가 미처 조우하지 못한 것이었다.
“히히.”
“소은이도 조금만 더 놀다가 자러 가야지?”
“웅!”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이를 지나친 나는, 천천히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있는 코뿔소를 발견했다.
“수고했어. 근데, 그렇게 뛰어다녀도 돼?”
새끼를 배고 있는 코뿔소였기에, 나름대로 걱정했지만 녀석들은 괜찮다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녀석들이 신경 쓰는 건 다른 것이었다.
“인간들이 필요한 거라고 해서,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그냥 도망갔어요…….”
자기 뿔 끝에 달린 스탬프를 하꼬에게 주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녀석을 쓰다듬어주며, 또 다른 피해자……. 아니, 도전자의 비명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