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82
0181 자재줄게 새집다오
3월 23일.
세계 강아지의 날이기도 하면서, 우리 소은이의 생일인 날이었다.
당연히 하나뿐인 딸을 위해 나는 나름대로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소은이가 정말 좋아하는 유치원 친구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열어준 것이었다.
예전에 카페로 쓰던 곳이 방치되고 있었기에, 그곳에서 파티를 즐기게 해주었다. 각종 음식들을 쫘악, 깔아놓고 친구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햄버거나 치킨, 피자같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음식들을 쫙 깔아놓으니, 소은이와 친구들이 무척 좋아했다.
“히히히!”
입에 각종 양념을 묻히고 있는 소은이와 친구들이 동물원에서 데려온 일부 동물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척 만족할 수 있었다.
“소은이 엄마. 덕분에 저희 딸이 정말 좋아하네요.”
“에이, 제가 한 건 별로 없는걸요.”
“그래도요. 이렇게 자리까지 마련해 주셨잖아요.”
“다 소은이 생일이라서 그런 건데요, 뭐. 아 맞다. 예지 어머니. 저번에 유자차 레시피 알려주신다고 하셨는데, 오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다른 어머님들도 알려드릴까요?”
특히, 누나도 친구는 아니지만, 같은 학부모라는 유대감을 가진 사람들과 하하호호 수다를 떨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구석진 곳에 위치한 카페다 보니, 아이들을 케어할 부모님들이 찾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소은이도 알아서 잘 놀고, 누나도 즐거워하는 듯한 모습을 바라본 나는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다름이 아니라, 소은이의 생일선물로 준비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좁은 곳에서 오래 기다리게 했네. 미안해, 괜찮아?”
“괜찮습니다!”
내가 준비한 것은 바로, 한 마리의 동물이었다.
언제나 동물들을 좋아하는 소은이에게 가장 좋은 생일선물은 새로운 동물 친구였다. 귀여운 인형 세트 같은 장난감은 소은이에게 줘봐야 관심도 못 받는 물건이었다.
“괜찮다니 다행이네. 자, 이제 나와.”
나는 이동장 안에 숨어 있던 녀석을 스윽, 꺼냈다.
어지간한 소형견보다는 큰 덩치의, 털이 수북한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찰팍찰팍.
그리고, 그렇게 이동장 밖으로 나온 녀석은 몸을 풀듯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와중에 특유의 넓적한 꼬리가 바닥을 치며 철퍽철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준비한 녀석의 정체는 바로, 자연의 목수이자 건축가라고도 불리는 비버였다.
설치류 특유의 살짝 굽어진 듯한 등허리 라인과, 주둥이 부근에 위치한 앞 다리, 소은이의 손가락보다는 확실히 큰 앞니, 얇고 넓적한 꼬리까지. 어딜 봐도 비버였다.
“오오옹? 압빠, 얘 모야?”
“으악!”
그런데, 비버 녀석을 소은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준비하던 나는, 갑자기 뭔가가 내 허벅지를 잡으며 비버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모습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게다가 나를 놀라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물을 받을 당사자라는 것에 또 한 번 더 놀랐다.
서프라이즈 선물을 생각했더니, 내가 주기도 전에 소은이가 발견해버렸다는 사실에 한숨이 푹-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된 거,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소은이가 비버를 잘 볼 수 있도록 내려주었다.
“얘는 비버라는 동물인데, 강에다가 나무로 댐을 짓는 동물이야. 소은이도 댐이 뭔지 알지? 전에 봤잖아.”
“비버! 나 아라!”
유치원에서 비버라는 동물에 대해서 배우긴 했던 건지, 소은이는 비버를 안다고 외쳤다.
그리고,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그대로 비버를 안아들더니 친구들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새 친구야아아아!”
“우와아아!”
처음 보는 동물이 나타나는 것에, 소은이 친구들이 소은이처럼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던 도중, 소은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근처에 있던 청호를 끌고 정원수에 다가갔다.
“이거 뿌서조!”
조금 크고 굵은 나뭇가지를 잡은 소은이는 청호에게 그것을 부수어 달라며 요구했다.
소은이의 말은 이해하지 못하는 청호였지만, 단순히 느낌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었다.
폴짝 뛰어올라, 소은이가 가리킨 나뭇가지를 베어 문 녀석은 그대로 몸을 퍼드득 움직여 나뭇가지를 부러트렸다.
“비버야! 이거로 댐 만들어조!”
소은이는 청호가 부러트린 나뭇가지를 가지고 비버에게 뛰어가더니,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비버는 소은이가 뭘 원하는지 몰라 멀뚱멀뚱 있다가, 일단 나뭇가지를 잡아들고 갉아내기 시작했다.
까각까각까각,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반 토막 나서 부러졌다.
“우아아아!”
“나무를 잘랐어!”
“소으나! 그거 나 주라!”
“이빨 아푸게따!”
아이들은 순식간에 나뭇가지를 잘라내버린 비버의 위용에 감탄하며, 비버를 마구 쓰다듬어댔다.
그리고, 소은이 역시 댐을 지어달라 말했지만, 나뭇가지를 자른 것이 더 신기한 듯한 모습으로 비버를 보고 있었다.
나는 비버를 무척 좋아하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에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었다. 특히, 소은이가 비버를 보며 무척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니, 비버를 데려온 보람이 느껴졌다.
소은이와 친구들이 비버를 비롯한 동물들과 놀고, 누나를 비롯한 어머니들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는 모습에, 이제 그만 파티를 끝내기로 했다.
“소으니 안녕! 유치원에서 봐!”
“지여니 안녕! 예지 안녕! 유지니도 안녕! 은희도 안녕! 응응, 세정이도! 지유랑 조현이랑 은비랑 서하도! 유치원에서 봐!”
소은이는 제게 인사하는 친구들 하나하나 다 부르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렇게 친구들이 하나둘씩 엄마 손을 잡고 떠나니, 어느덧 카페에 남은 것은 우리 가족과 동물들이 전부였다.
“우리도 이제 집에 갈까?”
“웅!”
나는 오랜만에 들린 카페의 문을 꼼꼼하게 잠그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 ○ ◑ ● ◐ ○
“자, 여기가 이제 네가 살 곳이야.”
“으음, 좋네요.”
수로 중간중간에 따로 물이 고이게 만들어둔 연못 같은 곳에 비버를 내려주니, 녀석이 좋다는 듯이 꼬리를 찰팍찰팍 두드렸다.
“여기에 집을 지어도 되는 거죠? 주변에 나무도 많고, 집 짓기에 좋은 것 같아요.”
“아. 집은 지어도 되는데, 저기 있는 나무들은 베어내면 안 돼.”
“엑.”
내 말에 비버가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손가락보다 큰 앞니가 떡- 벌어지며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왠지 골려주고 싶었다.
“참고로, 여기 수로가 흙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부수는 것도 안 돼.”
“으억!”
간혹 나무가 멀리 있으면 운하까지 파낸다고 하는 비버에게, 내 말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나 보다.
녀석은 턱관절이 빠진 건가 걱정될 정도로 주둥이를 크게 벌리며, 주둥이 근처까지 올리고 있던 앞발을 축- 늘어트렸다.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녀석의 아래턱을 살며시 닫아주었다.
“너무 놀랄 필요는 없어. 집을 못 짓는다는 건 아니니까.”
비버 녀석의 턱을 닫아준 나는, 미리 준비해둔 것들을 꺼냈다.
각종 나무의 가지들과 통나무 같은 것들을 수로 근처에 왕창 쌓아준 것이었다.
“오오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비버는 무수히 쌓인 나무를 보더니 호다닥 달려가, 나무를 끌어안으며 안도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놀린 건가- 싶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비버야. 집을 짓는 건 상관없는데, 물이 잘 통하게 해야 돼. 따로 동물들도 통과할 만한 자리가 나와야 하고. 여기서는 널 잡아먹으려는 동물이 없으니까 안전에 관한 부분은 걱정하지 말고. 수로가 막히게 되면 미안하지만, 집을 철거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참고해 줘.”
“알겠습니다.”
나무를 꼬옥 끌어안은 비버는 알겠다며 꼬리를 탁탁 쳐댔다.
비버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주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수로의 보수 공사를 통해 비버가 따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비버의 집 때문에 수로 전체가 막히는 일이 있으면 안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데려온 비버가 얼마나 집을 잘 짓는지 말이다.
“수환아. 시설팀에서 전화 왔는데?”
소은이 친구 엄마에게 배웠다며 유자차를 만드는 누나를 돕던 나는, 동물원의 시설을 관리하는 시설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시설팀장입니다.”
“네, 무슨 일 있나요?”
“그게……. 비버가 수로를 막았습니다.”
“……? 벌써요?”
비버를 동물원에 내려놓은 것이 어제 오후였는데?
나는 비버가 자리를 잡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수로를 틀어막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리통에 담긴 유자 위에 설탕을 붓던 나는 설탕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갔다 올게.”
“다녀와.”
누나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서 나온 나는 곧바로 수로를 체크했다.
“무슨 물이 이거 밖에 없어?”
수로에 흐르는 물이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보뚜 녀석이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수면에 눈만 내놓은 채로 걸어 다니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재빠르게 비버 녀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니, 수로에 나뭇가지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로에서 흐르고 있어야 할 물들이 비버 댐에 가로막혀 주변으로 범람한 것은 덤이었다.
“하아……. 얌마. 내가 말했지?”
“비버는 건축에 관해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댐 위에 서 있는 비버 녀석은 나를 보더니, 나뭇가지 하나를 푹- 끼워 넣었다.
‘아니, 어제는 저런 성격 아니었잖아.’
생각보다 수긍이 빠르길래 말을 잘 듣는 녀석인 줄 알았더니, 사고뭉치 기질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고개를 내저은 나는 비버 녀석에게 다가가, 녀석을 들어 올렸다.
“내가 어제 말했지? 수로를 막으면 어쩔 수 없이 철거해야 한다고.”
녀석을 들어 올린 나는 시설팀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시설팀이 수로에 들어가 비버가 지어낸 집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단단하게 엮인 나뭇가지들을 뽑는 것이 꽤나 힘든 건지, 낑낑거리긴 했지만 하나둘씩 나뭇가지들이 뽑혀 나왔다.
“아이고! 내 집 무너진다 이놈들아!”
비버는 내게 붙잡혀, 자기 집이 무너지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시설팀이 빠르게 비버 댐을 철거하고, 나뭇가지들이 뭍으로 꺼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후, 나뭇가지들이 모두 건져내지고, 수로가 원상복구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버 녀석을 놓아주었다.
“아이고! 내 집!”
“그러게 수로를 다 틀어막으면 안 된다니까?”
“비버는 건축에 관해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아악!”
내 말에 비버가 집의 일부이던 나뭇가지를 끌어안고 오열하듯 외쳤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하루라도 빨리 수로의 정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수로의 정비가 끝나며 새로운 물길이 생기고 비버가 안심하고 집을 지을 수 있을 때까지, 매일같이 비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수로의 정비가 끝나고 새로운 물길이 생겼다고 해도 비버의 울음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 대한 욕심이 어찌나 강한지, 이 녀석은 자그마하게 만든 집을 점점 확장해가더니, 새로 생긴 물길까지 침범하려 했기 때문이다.
“저렇게 우는 거 보니까 조금 미안하네.”
내 집- 하고 울며 나뭇가지를 끌어안고 수로에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본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하지만 이어진 한 사육사의 말에 그 미안함은 금세 씻겨나갈 수 있었다.
“사장님, 동물원에 있는 비버 집은 원래 주기적으로 철거를 해야 합니다. 사냥을 하면서 생활하는 게 아니다 보니, 필요한 활동량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집을 계속 지을 필요가 있거든요.”
“그래요? 그럼 편하게 철거하면 되겠네요.”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비버 댐의 철거를 지시할 수 있었다.
“오냐! 너희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 인간 놈들아아아!”
집의 일부였던 나뭇가지를 끌어안고 수로를 떠내려가는 비버의 절규는, 어느덧 익숙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