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81
0180 봄
매우 추운 날씨가 점점 풀리고, 따듯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누나의 배가 볼록하니 부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요기 동생 있어?”
“응. 소은이 동생이 엄마 배 안에서 열심히 크고 있어.”
“우아!”
소은이는 무척 신기하다는 듯, 누나의 배를 슥슥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면 내 동생 언제 나와?”
“음……. 여름이 조금 지날 때 즈음?”
“빨리 여름 됐으면 조케따!”
얼른 동생이 보고 싶은지, 소은이는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누나의 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오히려 얼굴을 슬그머니 가져갈 정도였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큰 변화는 드디어 소은이가 6살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소은이 몇 살? 하고 물어보면 한 손을 쫙 펼치는 것이 아니라, 한 손을 다 펼치고도 다른 손으로 따봉을 날리는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매일같이 소은이를 보는 우리도 소은이가 많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키가 제법 큰 상태였다.
그래도 여전히 어린아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압빠!”
아빠를 아빠라고 하지 않고 압빠, 라고 하는 것도 여전했다. 본인 스스로가 딱히 바꿀 생각이 없는 듯했다.
“왜?”
“엄마 배 움직여써!”
“엄마 배가? 소은이 동생도 소은이가 좋은가 봐. 나 여기 있어~ 하고 알려주네.”
“히히.”
소은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이 그리도 좋은지, 제 엄마 배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누나의 배를 스윽- 스윽- 부드럽게 문지르는 소은이는 동생에게 이야기하듯, 누나의 배에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른 보고 싶어! 나도 동생 있으면 잘해줄 거야! 맨날, 뽀뽀도 해주고 그럴 거야! 그러니까 얼른 나와야 돼?”
심지어, 소은이는 볼록한 배에다가 뽀뽀까지 쪽쪽- 소리가 나도록 하고 있었다.
“소은아, 그렇게 하면 엄마 간지러운데?”
“우웅……. 그럼 이케?”
제 손바닥에 뽀뽀를 한 소은이는 그 손바닥을 누나의 배에 살포시 얹었다. 마치 도장을 찍는 듯한 그 모습에 나와 누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중에 동생이 태어나면, 소은이가 뽀뽀해 줬다고 알려주자?”
“웅! 꼭 알려줄 거야!”
다짐하는 듯한 모습의 소은이를 본 나는 흐뭇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 살려……!”
“응……?”
그런데, 흐뭇하게 웃던 나는 창밖에서 구조 요청 같은 것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괴물의 둥지를 진행할 때에도 도전자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워낙 방음이 잘 되게 집을 지어놨더니,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싶었다.
“수환아,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어……. 그런 거 같긴 했어. 살려 달라는 느낌인 것 같았는데.”
“그래? 나는 꾸우웅- 이런 소리였는데.”
누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이 낸 소리라면, 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소리와 누나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소리가 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나갔다 올게.”
나는 소리가 들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마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웬 갈색의 덩어리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것을 하나 발견했다.
“살려주세유우!”
“……? 뭐지, 어디서 들어본 목소린데.”
“지 곰돌이여유!”
갈색의 덩어리는 바로 동물원에 있는 곰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집의 파수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벌들에게 뒤덮여 있는 곰이었다. 족히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꿀벌들이 곰을 뒤덮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냐?”
“달콤한 냄새가 나서 지도 모르게 왔지 뭐예유?”
“아하.”
녀석의 말에, 어떻게 된 일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봄철이 되며 주변 일대에 꽃이 만개한 상태였다. 내 초능력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보다도 조금 이르게 개화했으나, 그 어떤 곳보다도 꽃이 더 활짝 핀 상태인 것이었다.
당연히 꽃들이 만개하니, 우리 집의 파수꾼인 벌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겨울 동안 소비하기만 하던 꿀을 보충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며 다시금 꿀을 보충해놓고 있었다. 그러한 과정으로 인해, 지금 마당 주변에는 달달한 꿀 내음이 진동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달달한 냄새에 이끌린 곰돌이가 결국 담벼락을 넘어, 우리 집 마당으로 침입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성인 남성 두 명은 합친 것보다도 더 거대해진 집에 생겨 있는 발톱 자국으로 보아, 곰돌이가 벌집을 뜯어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너, 꿀 훔쳐먹으려고 했지?”
“……그게 말이쥬.”
‘꿀. 도둑. 척살!’
곰돌이가 무어라 변명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보다도 꿀벌들이 대답하는 것이 빨랐다.
내게 빠르게 대답해 준 꿀벌 녀석은 곰돌이에게 날아가 착지하더니, 그대로 벌침을 놓기 시작했다.
세대교체가 빠른 꿀벌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영향권 아래에서 종의 진화를 벌써부터 이뤄낸 녀석들이었기에 벌침을 놓는다고 해서 죽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곰돌이에게 내려앉은 꿀벌들은 연신 벌침을 놓으며 꿀 도둑에게 참교육을 선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보고 있지만 말구, 살려줘유!”
“너 안 아프잖아.”
“엄……. 그건 그래유.”
물론, 곰돌이에겐 솔직히 아무런 피해도 없는 일이었다. 워낙 가죽이 두꺼운 녀석들이다 보니, 내 초능력의 영향을 받은 꿀벌들이라고 해도 이길 수는 없었다.
지금 곰돌이가 바닥에 엎드려서 머리를 감싸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가죽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눈, 코, 입, 귀 같은 부분을 방어하려는 것이었다.
“내 말을 안 들은 벌이라고 생각해. 저번에 벌집 털어먹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치만 엄청 달달한 냄새가 났단 말이예유.”
“매일매일 달달한 간식 주잖아.”
“특히 달달했시유!”
당당하게 말하는 곰돌이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적당히 벌받고, 돌아가. 꿀벌들 꿀 노리지 말고.”
“아, 안 구해주는 거여유?”
“벌은 받아야지. 얘들아, 적당히 찌르고 보내줘.”
내 말에 꿀벌들이 붕붕- 날갯짓을 하며 곰돌이를 마구 쏴댔다.
“으악! 거긴 안 돼유!”
갈색 덩어리가 퍼드득 움찔거리는 것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뭐, 어디 잘못 쏘인 것 같긴 하지만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진짜 아픈 거면 알아서 도망쳤겠지. 그럴 능력이 없는 동물도 아니고 말이야.
곰돌이에 대한 걱정을 가볍게 털어낸 나는 문을 열고 집안으로 돌아왔다.
“수환아, 무슨 소리였어?”
집으로 들어가니, 여전히 배를 까놓고 소은이에게 쓰다듬어지고 있는 누나가 소리의 근원에 대해 물었다.
“아, 꿀을 탐내는 덩어리 하나가 있더라고.”
“덩어리?”
“곰돌이 있잖아. 꿀 냄새 따라왔다가, 꿀벌들한테 참교육 당하는 중.”
내 말에 누나가 푸흐흐-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까, 이제 진짜 봄이네. 꿀벌들도 다시 움직이고, 동물들도 많이 돌아다니잖아. 꽃도 많이 폈고.”
“그렇지.”
동물원의 풍경만 보자면, 완연하게 봄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추위에 떨던 동물들이 따스한 햇볕이 내리쬘 때는 바깥 활동을 즐기고 있었으며, 살이 통통하게 올랐던 동물들이 살을 빼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은 휑하던 화단이 다채로운 색감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동물원을 찾은 관람객들은 봄이 왔음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부터 여러 블로그나 SNS에서 우리 동물원이 봄나들이 추천 관광지로 꼽히고 있었다.
“이참에 잠깐 주변 산책이나 할까?”
“나도오!”
그리고, 그렇게 추천되고 있는 관광지의 주인인 우리 가족은 1분 거리의 관광지로 관광을 가기로 했다.
간단한 외출 준비를 하고, 소은이를 안아들며 동물원에 진입하니 딱 1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디부터 갈까?”
“음……. 모처럼 꽃도 많이 폈으니까 광장 쪽에서 꽃구경이나 할까?”
“꽃!”
누나의 희망 대로, 우리 가족은 광장을 시작으로 하여 동물원 투어를 즐기기 시작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온 탓인지 우리에게도 나름대로 볼만한 것들이 있었다. 겨울 동안 익숙해졌던 풍경이, 봄이 찾아오며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듯한 실내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던 동물들이 야외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 추위에 약한 앵무새들이 딱 알맞은 온도의 조류관을 벗어나 동물원 전체로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히이이, 히~이힝!”
소은이는 앵무새들이 부르는 허밍을 따라 하며 손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마치 지휘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찰칵, 소리를 내며 그 모습을 찍은 누나는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동물원 투어를 이어갔다.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랐던 호랑이들이, 날이 풀리며 또다시 나타난 약탈자들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추격전을 벌이는 것이 가장 먼저 보였다.
“수환아, 포동이들도 이제는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쟤들은 갱생 불가능한 녀석들이야.”
이제는 재미로 호랑이 먹이를 훔치는 라쿤들은 갱생의 여지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누나도 그 부분은 이해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안에 있어야 할 화장품이 없어져서 찾으면 라쿤들이 범인일 확률이 100%였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살찐 저 녀석들도 살을 빼야 하니까 나름 윈윈이지.”
이게 돼지인가 싶을 정도로 살이 토실토실하게 오른 호랑이들이 움직이게 만드는 것에는 라쿤들만한 녀석이 없었다.
라쿤들 나름대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인정한 누나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이런저런 동물들을 만나며 돌아다닌 누나는 코뿔소 우리로 다가갔다.
“잘 지냈어?”
유독 코뿔소나 미호, 폭신이 같은 녀석들과 친한 누나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코뿔소들은 누나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똑같이 배가 부푼 코뿔소와 누나가 어울리는 모습은 뭔가 신기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임산부끼리의 유대감 같은 게 있는 느낌이었다.
“너도 잘 먹어야 해.”
나는 누나가 직접 코뿔소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나와 함께 잠자코 바라보던 소은이가 내 옷깃을 툭툭 잡아당겼다.
“압빠, 코뿔소 애기는 언제 태어나?”
“음……. 정확한 건 아닌데, 소은이 동생이 태어나고 두세 달 있으면 태어날 거야.”
“우웅, 그러쿠나. 동생두 보구 싶구, 코뿔소 애기들도 보구 싶어!”
“그러면 소은이가 엄마랑 코뿔소들한테 잘 해줘야겠지?”
“응!”
내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소은이는 내 품에서 벗어나더니, 누나와 코뿔소들에게 쪼르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