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9
0028 자판기 아저씨(2)
“간식…… 자판기요?”
세희 아버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한 반응으로 되물었다.
하긴 어느 누가 남이 자신을 자판기 취급하다고 하는 걸 금세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런 세희 아버지를 이해시켜야 했다.
“세희 아버님. 세복이를 데려왔을 때 간식을 자주 주셨죠?”
“그렇긴 했습니다만…….”
“아빠가 처음에 세복이 귀엽다고 사료 같은거 한두 알씩 자주 줬어요!”
세희 아버지의 말에, 세희가 살을 덧붙였다.
“그게 문제가 된 거예요.”
“……그게 문제가 됐다고요?”
“네. 세복이는 지금 세희 아버님을 주인이 아니라, 자판기로 보고 있는 거죠. 간식 주는 자판기로요.”
“허…….”
세희 아버지는 황당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기르던 개가 자신을 자판기로 본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렇지만 세복이에게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세희 아버님도 약간의 잘못이 있긴 합니다.”
“제 잘못이라뇨?”
“세복이가 짖을 때 시끄럽다고 간식을 준 경우도 많으시죠? 뭔가를 먹으면 당장은 조용해지니까요.”
“……예.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학습한 거예요. 아, 내가 짖으면 간식을 주는 구나! 저 인간은 내가 짖으면 간식을 갖다 바치는 구나! 이렇게 학습 한 거예요. 세복이가 세희 아버님을 보면서 뭐라고 짖냐면, 간식이라고 짖습니다. 그냥 간식을 달라고 짖는 거예요. 세희양은 그러지 않으니까 짖지 않는 거고요.”
“그럴 수가…….”
애정의 표현이었던 것이, 훈육의 과정이었던 것이 잘못된 학습 결과를 낳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이런 경우라면 간단하게 교정할 수 있을 거예요. 이유만 알고 계시다면, 제가 아니더라도 교정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건 다행이군요.”
“와! 그럼 아빠가 세복이 싫어하지 않겠다!”
세희와 세희 아버지는 안도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세희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럼 세희양은 세복이를 좀 데리고 와줄래요?”
“네에!”
드디어 아빠와 세복이의 관계를 되돌릴 수 있다 생각한 건지, 세희는 기쁜 얼굴로 호다닥 달려가 세복이를 데려왔다.
“간식! 간식! 간식!”
세희의 방에서 나온 세복이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세희 아버지를 발견하고 간식이라 짖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세희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굳었지만, 내가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그 기대에 부응하기로 했다.
“멈춰!”
“간……!”
간식이라 짖으려던 세복이는 내 약속된 승리의…… 아니, 정지 명령에 짖는 것을 멈추었다.
온 몸을 굳힌 것처럼, 세복이는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눈알만 데로록 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간식달라고 막 짖으면 안 돼.”
“왜욧?”
“어…….”
갑자기 들어온 가드 불가 기술, ‘왜?’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기에, 가볍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무리 짖어도, 간식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설명해준 것이다.
“요즘, 아무리 짖어도 간식을 주는 일이 잘 없었지?”
“맞아욧! 그래도, 계속 달라고 하면 주긴 줘욧!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욧? ”
“처음에는 네가 예쁘고 귀여우니까 간식을 바로 줬게지만, 지금은 아니거든.”
“제가 예쁘거나 귀엽지 않단 소리예욧?”
세복이는 스스로의 외모에 꽤나 자신감이 넘치는 듯했다.
“그 말이 아니야. 만약에, 네 주인님이 너를 계속 콕콕 찌르면 어떨 것 같아? 쉬려고 앉았는데 옆에서 콕콕 찌르고, 밥 먹으려고 하는데 옆에서 찌르고.”
“그럼 기분 나쁠 것 같아욧!”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게 딱 그거야. 너는 그냥 간식달라고 짖는 거지만, 주인님의 입장에서는 네가 계속 옆에서 찔러대는 거랑 똑같게 여겨진다고. 너는 널 괴롭히는 누군가를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할 수 있어?”
내 말에 세복이가 살짝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제는 동물들의 표정까지 이해 될 지경이었다.
“정말 그런 거예욧?”
“그래. 솔직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랑은 말이 통하지도 않잖아? 너는 그냥 간식달라고 하는 말이지만, 사람들에겐 시끄러운 소리가 될 수도 있어. 특히, 너는 줄 때 까지 계속 외치잖아?”
“아…….”
내 말에 세복이는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세복이 스스로는 단순히 간식을 달라 조르는 행동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 행동은 상대방 기준에서는 괴롭힘에 가까웠다.
다행히 애초에 심성이 나쁜 녀석은 아닌지, 세복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세희 아버지에게 다가가 몸을 부벼댔다.
“미안해욧…….”
심지어, 녀석은 세희 아버지에게 달라붙어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끼잉- 거리는 앓는 소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내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세복이가 미안하다고 하네요.”
내 통역에, 세희 아버지가 잠시 고민하더니 세복이를 천천히 안아들었다.
평소라면 안기는 커녕,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미친듯이 짖던 세복이가 조용한 모습에 세희 아버지는 꽤 감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와아아아! 역시 신수님이예요!”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세희는 제 자리에서 방방 뛰며 기뻐했다.
‘이 가족이 단독 주택에 사는 이유는 쟤 때문이지 않을까…….’
수다쟁이에 집안에서 콩콩 뛰어다니는 세희를 보자면 세희 가족이 단독 주택에 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희는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덥석 안겨들었다.
“히히, 아빠! 이제 세복이 버린다고 하지 않을 거지?”
“그래. 알았다, 알았어.”
세희 아버지는 무겁다는 듯이 세희를 밀어내면서도 옅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여전히 세복이를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으며.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화기애애한 가족애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따라 웃던 도중, 내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어? 저거 사셨네요?”
“저거요? 아! 강아지 버튼 말씀하시는 거죠!”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던 세희는 내 말에 호다닥 움직여, 내 시야에 잡혔던 물건을 가져왔다.
주먹보다 조금 자그마한 크기에, 투톤의 색깔이 덧씌워진 버튼이었다. 어느 뮤튜버가 동물들에게 쓰며, 꽤 유명해진 제품이었다.
산책가자, 밥줘, 간식줘 같은 여러 음성을 녹음해놓고, 반려견들이 그 버튼을 통해 자기 의사를 표현하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신수님! 혹시 폐가 안 된다면 이걸 쓸 수 있게 세복이 훈련 좀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훈련이요?”
“네에! 세복이가 간식을 먹으려고 아빠한테 짖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간식을 달라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해주면 아빠도 좋고, 세복이도 좋지 않을까요?”
세희의 부탁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돈을 받고 훈련을 시켜준다던가 하는 계획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촬영을 위해서 온 거라면 이 정도는 가볍게 해줄 수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동물과 대화가 되는 내게, 세희의 부탁은 말 몇 마디 내던지는 것만으로도 끝낼 수 있는 종류의 훈련이었다.
“그럼 여기에 간식줘- 라고 녹음 해줄래요?”
“네에!”
밝게 외친 세희는 곧바로 버튼의 뒷편에 있는 녹음 부분을 눌렀다.
“간식쭈때용!”
오우야, 대단하네.
한 치의 부끄러움도 느껴지지 않는 세희의 모습에 감탄한 나는, 그 버튼을 받아 세복이의 눈 앞에서 흔들었다.
“세복아, 앞으로 이걸 누르면 너한테 간식을 줄 거야.”
“정말인가욧?!”
조금 전 까지 미안함 때문인지, 시무룩하게 있던 세복이는 해맑은 모습을 보이며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어댔다.
세희 아버지가 역시 나보단 간식이구나- 하며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모습을 뒤로 한 채, 나는 세희의 방 근처에 버튼을 내려놓았다.
“한 번 눌러봐.”
내 말에 세복이가 타닥타닥 발소리를 내며 세희의 방 앞에 놔둔 버튼으로 다가갔다.
“간식쭈때용!”
세복이가 버튼을 쿡- 누르자, 세희가 녹음 해두었던 혀 짧은 소리의 간식을 달라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질 좋은 스피커가 아닌 탓에 세희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변해버렸지만, 사람이 알아듣기에는 조금도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 버튼을 누른 세복이는 화들짝 놀랐는지, 그 버튼에서 호다닥 멀어졌다.
“자! 세복이 간식!”
하지만 그렇게 멀어졌던 세복이도, 세희가 버튼 근처에서 간식을 주니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이해했지? 그렇게 버튼을 누르면, 네가 간식을 달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대신, 그것도 너무 많이 누르면 안 되는 거 알겠지?”
“넷! 알겠어욧!”
“간식쭈때용!”
내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세복이는,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버튼을 눌렀다.
‘저 놈 저거, 내 말 진짜 이해한 거 맞아?’
내 당부의 정 반대로 행동하는 세복이의 행동에 의문이 들었지만, 자그마한 사료 한 알을 얻어 먹고서 만족했다는 듯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 이해하긴 한 것 같았다.
“신수니이임!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세복이가 다시금 세희의 아버지에게 다가는 것과 동시에 세희가 내게 다가왔다. 여전히 높은 텐션을 유지한 채로.
세희는 내 손을 붙잡고 감사하다며 붕붕 흔들어댔다. 이게 악수인지, 아니면 내 팔을 잡아 뜯어내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볍게 호응을 해주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뭘.”
“그래도 대단한 걸요! 저는 정말 신수님한테 부탁하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신수님처럼 대단한 분이 아니었으면, 저랑 세복이는 영영 헤어졌을 거예요! 생각만해도 슬픈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을 거예요! 다 신수님 덕분이예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세복이의 문제가 해결 되었음에도, 세희는 더더욱 수다스러웠다. 오히려 텐션이 더 높아지며 더 재잘거리는 느낌이었다.
“하, 하하하…….”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수다스러운 세희에게 잠시 붙잡혀 있던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며 세희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세희 아버님. 세복이 문제도 해결 된 것 같으니,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벌써 가시려고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게 많지는 않지만…… 근처에서 식사라도 근사하게 대접하겠습니다.”
“저희도 가서 할 일이 조금 있어서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세희 아버지는 무척 미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근처에 오실 때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꼭 보답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에이, 아니에요.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 걸요.”
사양하는 내 말에도 세희 아버지는 꼭! 꼬옥! 보답하고 싶다며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
“네, 근처에 오게 되면 연락 드릴게요. 아, 참. 그리고 영상이 만들어지면 업로드 하기 전에 먼저 보여드릴테니 문제가 될 것 같다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나는 곧바로 세희 아버지와 세희, 세복이에게 작별을 하고 누나와 함께 도망치듯이 그 집에서 빠져나왔다.
그대로 있다간 식사 대접을 하겠다는 세희 아버지에게 붙잡혀 저녁까지 먹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후……. 참 독특한 가족이야.”
“그러게. 나중에 세희 같은 딸 있으면 재미있긴 하겠다. 그치?”
세희 같은 딸이 있다면 재미있을 거라며 말한 누나는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세희 같은 딸은 초큼…….’
“나는 세희 같은 딸 보다는 누나를 닮은 딸이 좋을 것 같은데.”
“어우, 야아!”
“억, 어억! 나 운전! 운전하고 있어!”
내 말에 갑자기 부끄러워하는 누나는, 내 어깨를 퍽퍽 두드렸다.
간신히 핸들을 바로잡은 덕분에, 아빠 차의 휠을 긁어 먹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속도가 높은 도로나, 사람이나 차가 많은 곳이 아닌 골목길임에 감사하며 누나를 째려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누나는 자기 잘못은 아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미안- 하고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