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63
0362 IF 외전 – 군인 신수환(4)
“소대장아.”
“소위 하로우.”
평소에는 이게 군인인가 싶을 정도로 미친놈 같지만, 그래도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는 그 누구보다도 군인 같은 소대장이었다.
“육안으로는 놈들 상황 안 보이지?”
“예, 그렇습니다. 지금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경계 중입니다.”
여전히 총을 쥔 채 경계하고 있는 소대장이 꽤나 믿음직하게 보였다. 평소에도 이러면 얼마나 좋아?
나는 모처럼 만족스러운 소대장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주변을 바라보았다.
두터운 철판으로 만들어져 있는 상자를 펼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채로 경계하고 있는 모습은 어엿한 군인의 모습이었다.
“소대장님. 이제 교대……. 앗, 중대장님!”
“사격 계열 둘이서 교대로 보는 거야?”
그리고, 소대장을 보며 나름 흡족해하고 있으니, 호인두가 찾아왔다. 사격 계열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나서서 경계를 서는 것 같았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줘.”
“최대한 열심히 하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호인두와, 그저 자기만 믿으라는 듯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소대장을 뒤로하고 숙영지 중심으로 돌아왔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쥐새들이 놈들의 본거지를 구석구석까지 다 파악하고 나서 돌아올 때까지 할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신병 역시 비슷했다. 이미 다들 자기 할 일을 찾아서 움직이고 있는 이들과 다르게, 신병은 뻘쭘하게 서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슬쩍 지임군에게 가서 뭘 도와줄 게 있냐고 물었으나, 도움 따윈 필요 없다는 지임군의 말에 뻘쭘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신병.”
“이병, 이신병!”
“이런 곳에서는 목소리를 작게 해야지.”
“죄,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신경 쓰고.”
절대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겠다는 듯한 신병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차량의 짐칸 구석탱이에 쑤셔 넣어두었던 접이식 캠핑 의자를 꺼내 펼쳐 앉았다.
“아직 어색하지? 부대에 적응도 못 했는데 이런 곳에 끌려오니까 더 적응 안 될 거 아냐.”
“……괜찮습니다.”
“뭘, 너 뭐 해야 할지 몰라서 허우적거리는 거 다 봤는데. 흐흐.”
손을 들었다 내리고, 입술을 뗐다 붙이고, 한 걸음 움직였다가 멈추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내향적인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내 말에 신병이 부끄럽다는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뭐 어때. 원래 신병 때는 다 그런 거야. 오히려 뭔가 하겠다고 설치다가 사고 치는 것보단 낫지. 나도 처음 복무할 때 사고도 많이 쳤어.”
“그렇습니까?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와, 이번 신병은 예의 바른척하면서 흑역사를 까발려 달라고 하네?”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정말 단순히 궁금했을 뿐이었던 건지, 신병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으니까.
“임무를 받은 게 세 번째였나, 네 번째였나. 아무튼, 그때 아프리카에 왔었어. 아, 여긴 아니고 다른 곳. 거기에 초능력을 이용해서 비핵 방식의 EMP를 훔쳐 간 놈들이 있었거든. 근데, 문제는 내가 실수로 거길 몽땅 밀어버렸다는 거지.”
“잘못 들었습니다……?”
“싹 다 밀었다고. 아, 이유는 있었어. 진입은 해야 하는데 폭탄은 없고, 놈들은 농성을 시작했고. 조금 있으면 놈들의 지원군이 오는데, 우리는 시간도 장비도 없지. 그런 불리한 상황에 딱 생각이 든 거야. 이 씹, 이러다가 내 커리어에 흠집이 생기겠구나.”
당시에는 진심으로 심각했었다. 지금이야 임무 성공률 100%라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게다가 당시엔 나도 좀 젊은 혈기라고 해야 하나? 패기가 있었어. 근처에 지나가던 코뿔소들을 냅다 불러와서, 능력으로 바로 강하게 만들었지.”
“설마……?”
“설마는 무슨. 당연히 밀어버리라고 했고, 수십 마리 코뿔소들이 건물을 냅다 들이받았지. 나 때문에 강화된 코뿔소들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두부 부수듯이 밀고 지나갔고, 순식간에 재건축 예정지로 바뀌었어. 문제는…… 우리 목표물인 EMP가 개박살이 났었단 거고. 그나마 다행인 건 터지진 않았단 거지.”
목표물인 EMP에 코뿔소 발자국이 떡하니 찍혀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랬던지. 아직도 생각하면 한 번씩 소름 끼칠 때가 있었다. 그나마 여차하면 파괴해도 된다는 조항이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이었다.
“중댐! 중댐!”
그런데, 신병에게 내 흑역사를 스스로 까발려주고 있으니, 우리 차량 안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던 공병남 하사가 뛰쳐나왔다. 손재주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지 구축이나 기기를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야? 우리 여기 있다고 광고하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놈들의 본거지로 코끼리 떼가 이동 중입니다!”
“뭐? 코끼리?”
다급히 외치는 공병남의 말에, 나도 다급히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교대로 하는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하늘을 날며 조기경보기 역할을 해주는 유부와 아라 덕분에 볼 수 있는 영상이 보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열 마리의 코끼리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에헤이. 조졌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몰살당하든, 코끼리로 인해서 놈들이 몰살당하든 말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인질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가 없었다.
“코끼리들은 이 주변을 통과해서 놈들의 본거지로 향할 것 같습니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보긴 힘든 것이, 코끼리들의 움직임이 너무 일직선입니다. 목적지를 정하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전차같은 모습입니다.”
“이 주변을 통과해서 간다고?”
“예. 이게 코끼리들의 예상 이동 경로입니다. 저희가 있는 곳은 이 위치입니다.”
공병남은 노트북을 두드려, 코끼리들의 예상 이동 경로를 보여주었다. 선으로 표시된 그 경로는 숲의 끝부분을 살짝 스치듯 지나가며, 놈들의 본거지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우리에게 좋을 것이 하나 없는 결과물에,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쉬나 했더니. 갔다 온다.”
이대로 있다간 야생의 아프리카코끼리와 우리가 조우할 수도 있었다. 내가 있으니 문제는 되지 않겠지만, 우리를 마주치지 않고 넘어간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그렇기에 곧바로 달려나간 나는, 놈들에게 발각되지 않을 위치에서 아프리카코끼리들을 불러들였다. 내 몸을 가려주기에 충분한 나무와 수풀을 뒤에 두고, 아프리카코끼리들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소리도 치고 싶지만 그랬다간 발각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코끼리들이 나를 발견하고서 빠르게 다가왔다. 문제는 무언가에 분노하기라도 한 건지,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 주변까지 다가왔을 때는 그 질주의 속도가 느릿한 걸음으로 바뀌었지만.
“인간……? 느낌이 나쁘지 않군요.”
“내가 좀 그렇지.”
내 어깨에 코를 툭툭 얹으며 냄새를 맡는 듯한 우두머리 코끼리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너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던 건지 알려줄래?”
“저 너머에 있는 인간들의 둥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죠.”
“끙……. 거긴 왜?”
내 임무의 수행지와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는 소리에 곤란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어진 녀석의 말에, 그런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의 새끼를 죽이고, 동료를 죽인 놈들에게 복수를 위해서!”
아무래도 초능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는 밀렵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무척 분노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충혈된 듯한 눈과 씩씩대는 숨소리에 나는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녀석들을 보낼 수는 없었다. 이 녀석들에게 나를 제외한 인간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느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들이 공격하는 이들의 범주에는 구출이 필요한 인질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동안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결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너희. 복수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을래? 내가 도와줄게.”
“정말인가요?”
“정말이야. 너희도 알잖아? 인간들이 가진 무기의 위력을.”
코끼리들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천둥같이 큰 소리가 몇 번 일어나면 죽거나 다치는 이들이 속출했다는 것이었다.
“그 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게 해줄게. 대신, 내 부탁 좀 들어줄래?”
“좋아요.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우리들이 가족을 잃을 일은 없겠죠.”
우두머리 코끼리가 내 제안을 덥석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인질들의 구출을 도우며 우리와 인질을 공격하지 말 것, 그리고 내 지시에 따르라는 것이었다.
내 초능력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코끼리들은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따라와. 최대한 조용히.”
놈들에게 발각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아주 조심히 코끼리들을 데리고 숙영지로 돌아왔다.
숙영지로 돌아오니 신병을 비롯한 이들이 놀란 모습을 보였다. 코끼리가 접근하는 것 때문에 내가 간 것은 알지만, 설마 그 코끼리들을 데리고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한 것 같았다.
“자, 인사해. 현지에서 징집한 우리의 새로운 신병이야. 아니, 용병인가?”
내 말에 다들 입을 떡하니 벌리고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이 상황이 나름대로 익숙한 동물들만이 인사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청호가 먼저 나서서 코끼리들과 인사하는 식이었다.
“공병남.”
“하사, 공병남. 부르셨습니까.”
“조립형 방탄 있지?”
“예. 가장 많이 가져온 거잖습니까. 아, 코끼리들한테 씌웁니까?”
“어. 씌워. 눈이랑 코 끝만 빼고.”
열 마리의 코끼리들을 가리키며 씩- 웃음을 지었다. 자그마한 조각 형태로 만들어져,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이어 붙이며 스스로 만들어내는 방탄복이 있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 안에도, 동일한 것으로 만든 방탄복이 있었다.
그런 방탄복을 코끼리들에게 씌운다면, 지상 최강의 생물이라고 하는 아프리카코끼리에게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선사해 줄 것이었다. 범죄자 놈들이 사용하는 소총탄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며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전차처럼.
“그게 인간들의 무기가 너희를 아프지 않게 해주는 물건이니까, 조금 불편하더라도 잠깐만 참을 수 있지? 이번 일만 끝나면 다 벗겨줄 거야.”
내 말에 코끼리들이 뿌뿌- 소리를 내며 긍정을 표했다.
“우리와따!”
“시킨 거 다 해써!”
“맛있는 거 줘!”
“밥 내놔라!”
그리고, 그 순간 때마침 정찰을 나간 쥐새들이 내가 있는 숙영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