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75
0374 한우(2)
“압빠! 빨리! 빨리!”
이른 아침부터 소은이가 방방 뛰며 나를 재촉했다. 어서 칡소라는 동물을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학교를 갈 때는 그렇게 깨워도 자려고 하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한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를 못 자게 하고 있었다.
끄으응-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소은이를 끌어안고 다시금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빠, 소 보러 가자아!”
“소은아, 지금은 소도 자고 있을 거야.”
“우움, 그런가?”
“그래. 소은이도 자고 있는 소를 보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니잖아?”
“웅.”
다행스럽게도, 고개를 끄덕인 소은이가 내 품에서 다시금 고로롱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못다 잔 잠을 다시 즐긴 뒤, 간단한 아침까지 먹고서 소를 보러 이동했다.
“웁, 냄새!”
그리고, 소들을 방목하여 복원하고 있는 현장에 도착한 소은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틀어막았다. 소를 키우면 날 수밖에 없는 냄새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가 코를 막고 있었다.
우리 동물원이야 동물들이 알아서 배설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데다, 주기적으로 씻기는 등의 관리를 하기 때문에 동물들의 냄새가 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런 것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방목하고 있으니, 소들의 배설물 등에서 나오는 냄새가 꽤 나는 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많은 수를 키우는 게 아니라서 냄새가 방목장 치고는 그렇게 심한 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냄새에 적응하는 것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점점 코가 마비되는 것처럼, 냄새가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자, 이거부터 신어.”
아무튼, 차에서 내린 나는 곧바로 장화를 꺼내 아이들과 누나에게 주었다. 그냥 방목장에 소들을 풀어 놓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장화가 없으면 신발이 더러워질 가능성이 무척 높았으니 필수품이었다.
나와 누나는 대충 검은색의 장화를 신고, 아이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그려진 어린이용 장화를 챙겨 신었다.
그렇게 장화를 신은 우리는 곧바로 목장 내부로 움직였다. 정확히는 도도도도- 달려나가는 아이들의 뒤를 나와 누나가 열심히 따라 뛰고 있는 것이었다.
내 초능력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데다, 어마어마한 체력을 자랑하는 어린이들이다 보니 따라가는 게 마냥 쉽지 않았다.
“어, 어어……! 얘들아, 여기는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예요.”
열심히 뛰던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니,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아이들을 막아세웠다. 아무래도 복원 작업을 하는 곳이다 보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뒤따라 뛰어오는 나를 발견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물러났다. 내가 어제 이곳에 방문했을 때 나를 본 사람인 것이었다. 내가 어제 방문했을 때, 아침에 가족들과 함께 다시 찾아올 거라고 미리 알려둔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어제 이야기 드렸는데, 들어가도 괜찮겠죠?”
“아, 네! 전달받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이들을 멈춰 세운 직원은 이제 우리를 안내해 주기 시작했다. 정문의 보안시설을 가볍게 통과하고 소독 절차도 거치고 나니, 목장의 진짜 입구를 앞두었다.
당연히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목장의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뛰려는 소은이를 붙잡아 얌전히 걷게 만들며, 내부에 방목되고 있을 칡소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칡소는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애초에 방목장이 그렇게 넓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책하는 느낌으로 조금 걷고 있으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칡소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와! 압빠, 저기 소 있어! 소!”
“소오!”
나와 누나가 붙잡고 있는 아이들은 소를 발견하고 방방 뛰었다. 얼마 전에 비가 왔었는지,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고 있는 땅이 찰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대로 놔뒀다간 우리를 뿌리치고 달려갈 것 같아서, 곧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처음 보는 인간들이 몰려서 다가오는 것에 소들이 순간 멀어지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녀석들은 이내 나와 소은이의 초능력 영향권에 들어온 듯, 오히려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소들이 다가오니, 소은이가 방방 뛰며 소들을 가리켰다.
“압빠, 압빠! 진짜 칡처럼 생겼어!”
“소은아, 칡이 뭔지 알아?”
“몰라! 근데 검색해서, 어떻게 생긴 건지는 알아!”
내가 칡소가 칡과 비슷하게 생긴 무늬를 가졌다고 말했기 때문인지, 소은이가 인터넷으로 대충 찾아본 것 같았다.
소은이가 자기가 뭘 본 건지 보여주겠다면서 곧바로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한 나는 순간 웃음을 터트렸다. 칡이라고 쓰는 것에 반해, 말하는 것은 칙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은이의 검색 기록에 정확히 남아 있었다.
[칙] [치익] [식물 칙] [칡] [삵말고 칡] [식물 칡]열심히 검색을 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보여,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부루퉁하게 볼을 부풀린 채로 열심히 검색했을 모습을 생각하니 웃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모습에 누나가 의아하다는 듯이 소은이의 휴대폰을 보았고, 똑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왜에!”
“아니, 우리 딸이 검색을 너무 잘 하는 거 같아서 그래. 잘 찾았네?”
“그치? 힘들었어!”
“그래그래. 다 알아.”
힘들었다며 볼을 부풀리는 소은이의 모습에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칡소가 우리 곁에 도착했다.
“안녕!”
“안녕하세요우우우.”
늘어지는 울음소리를 토하며 소은이의 인사에 반응하는 칡소는, 거대한 덩치가 무색하게 아주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소은이에게 머리를 갖다 댔다.
조금 날카로워 보이는 뿔이 소은이에게 상처를 낼까 걱정하듯이 아주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소은이는 그런 칡소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더니, 녀석의 주위를 돌면서 마치 관찰하듯이 녀석을 바라보았다.
칡처럼 얼룩덜룩한 느낌의 무늬를 가진 소는 소은이가 아는 소와 꽤나 차이가 있기 때문인지, 무척 신기해하고 있었다. 소은이가 아는 소는 황소가 아니면 젖소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얘는 앞으로 얼룩이야!”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어서 그런 거야?”
“웅!”
얼룩덜룩한 무늬 때문에 얼룩이라는 이름을 짓는 소은이의 모습에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룩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얼룩이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소은아, 은수야. 얼룩송아지 동요 알아?”
“웅! 알아!”
“쏭아지 쏭아지, 얼루욱 쏭아지!”
“그래, 그 얼룩송아지. 거기서 말하는 얼룩송아지가 지금 보고 있는 칡소야.”
“에에에에에엥?!”
내 말에 소은이가 무척 놀란 모습을 보였다.
“젖소 아니야? 얼룩무늬 있는 젖소!”
“소은이가 말하는 젖소는 홀스타인이지? 이렇게 흰색이랑 검은색 무늬가 있는 젖소.”
휴대폰을 꺼내 홀스타인종의 소 사진을 보여주었다. 흔히 젖소 하면 떠올리는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소의 모습이었다.
“웅, 맞아! 이 소가 얼룩송아지 아니야?”
“얼룩송아지라는 동요가 생길 때는 소은이가 아는 젖소보다, 이 칡소가 더 많았어. 그래서 그 동요에서 말하는 얼룩송아지는 칡소를 말하는 거야.”
“오와아아아아!”
동요에 나오는 얼룩송아지가 칡소를 말하는 것임을 알려주니, 아이들이 무척 신기해했다. 동요에 딸려 나오는 영상만 봐도 젖소가 떡하니 달려 있는데, 실제로는 지금 보고 있는 칡소였다고 하니 신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짓던 나는, 근처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직원이 아니라, 이곳에서 칡소들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연구원이었다.
“제가 좀 늦었죠?”
“아, 괜찮아요. 저희가 오히려 좀 더 일찍 온 이유도 있으니까요. 애들도 처음 보는 소를 신기해하고 있으니 재미있어하고 있는 중이고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칡소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란 듯이 가리켰다.
칡소 주위를 뛰기도 하고, 칡소의 털을 슥슥 문질러 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다행이네요.”
연구원은 안심했다는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연구원의 모습에, 나는 바로 누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누나. 애들 좀 잠시 봐줄래? 할 거 좀 하고 오게.”
“응,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누나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연구원과 함께 이동했다. 아이들이 칡소들을 보며 잠시 놀고 있으면, 그 사이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기로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연구원을 따라 잠시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지금 이곳에서 할 일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원과 함께 이동을 하던 도중, 연구원이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하나 던졌다.
“신수님. 유전적 다양성에 대해서 아시나요?”
“유전적 다양성이요? 어…….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대충은 알고 있어요. 근친교배가 이어지면 유전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그걸 피해야 한다는 걸로 기억해요.”
훅 들어온 질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언젠간 들어 본 내용 중 하나였기에 어떻게든 대답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대답에 연구원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지금 유전적 다양성에 대해 말한 이유에는 딱 적합한 대답이네요.”
“아, 근친교배요?”
“그렇죠.”
멸종위기종들을 복원할 때 직면하기 쉬운 문제가 바로 근친교배였다. 비슷한 유전자끼리 계속 번식을 이어가다 보면 유전적인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일단 소수 남아 있던 칡소들을 통해 어떻게 번식은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근친교배가 계속 이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죠. 지금 당장 보더라도, 얼마 전에 한 마리가 유전적인 문제로 인해 폐사한 경우도 있었고요.”
“제 초능력이 좀 대단하다고 평가받긴 하는데, 유전적인 문제까지는 어떻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아, 제가 요청드린 건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칡소의 경우에는 근친교배에 관한 문제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편이니까요. 충청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칡소의 복원이 진행 중이거든요.”
“그럼 왜……?”
“사실, 타 지역에서 복원한 칡소들을 몇 마리 데리고 온 상태에요. 수소 몇 마리를 데려왔는데 도통 번식을 하지 않고 있는지라, 그 부분에 관해서 신수님께 도움을 요청드린 거예요.”
어쩐지, 도와달라는 요청 내용에 단순히 번식이라고 되어 있던 이유가 있었다. 근친교배니 뭐니 하는 것은 그저 이동하는 도중에 잠깐 침묵을 깨기 위해 꺼낸 소리였다. 내 도움이 절실하다는 걸 알리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런 문제가 있으니, 꼭 좀 도와달라는 소리였다.
“일단 가서 확인부터 해보죠.”
내가 동물들의 번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긴 하지만, 반드시 된다는 보장은 없기에 확답은 주지 않았다. 괜히 된다고 했다가, 안 되면 골치 아프니 말이다.
살짝 아쉽다는 듯한 연구원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그와 함께 번식을 위한 칡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열 개의 방이 있었는데, 방마다 칡소 암수 한 쌍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저 안에서 발정기 유도까지 하고 있는데, 번식에 성공한 개체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개체들에게 문제가 있나 싶어서 확인을 해 봐도, 다 멀쩡한 상태고요.”
도대체 왜 한 마리도 번식에 성공하지 못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연구원의 말에, 나는 곧바로 가장 가까이 있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로 내외하듯 멀찍이 떨어져 있던 두 마리 칡소들이 갑자기 난입한 나를 보며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초능력 덕분에 공격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놀란 듯한 두 녀석에게 다가가 안심하라고 녀석들의 등허리를 토닥토닥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