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81
0380 외국인 노동자(1)
“무하마드 아저씨!”
“오, 꼬마 공주와 꼬마 왕자!”
소은이와 아이들은 무하마드를 발견하더니, 그대로 손을 붕붕 흔들었다. 무하마드 역시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무하마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밭이에요. 앞으로 여기서 여러 작물들을 기를 예정이고요. 주로 소들의 힘을 빌려서요.”
“오, 정말 소로 농사를 짓는 건가요?”
“그렇죠. 꽤나 오래된, 전통적인 방법이죠. 기계를 이용해서 농사를 하기 힘든 곳에서는 여전히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요.”
무하마드는 황희에게 연결된 쟁기를 보며 무척 흥미를 보였다.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는 것이었다.
보통 역사를 배울 때 같이 배우지 않나- 싶었지만, 이어지는 무하마드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제가 배운 역사는 대부분 군주의 역사였어요. 위대한 번영을 만들어낸 군주의 역사를 본받으라는 거였죠. 세세한 역사를 배웠다기 보다 군주들이 펼친 정책이나 그로 인한 파급력 등을 배운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동의 부자였으니, 제왕학 같은 것을 그런 식으로 배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애초에 다른 나라 사람이니, 학습하는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으앙! 그거는 머그면 안대!”
중동 지역 출신의 무하마드와의 차이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은수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주 다급한 목소리로 말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니, 몇 마리의 양들이 밭 너머에 있는 식물들을 탐욕스럽게 먹으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은수는 그런 양들의 앞에서 팔을 벌린 채, 녀석들을 막고 있었다.
“아, 벌써 다 먹었어?”
양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미 밭으로 쓰기 위한 곳에 있는 풀들을 모조리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었다. 풀을 뿌리까지 다 먹는 것이 양이었기에, 밭에는 정말 풀뿌리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발로 흙을 살짝 헤집어 봐도, 풀뿌리의 조각 하나 나오지 않았다.
밭에 있는 것들을 다 먹고서도 배가 고픈 상태였기에, 주변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었다. 풀이 아주 그냥 지천으로 깔려 있는 자연구역을 향해서 말이다.
당장이라도 자연구역에 있는 풀이란 풀은 다 뜯어 먹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멈춰!”
녀석들이 자연구역으로 풀려나게 된다면 자연구역의 일부가 황폐화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재빨리 마법의 단어를 내뱉어 녀석들을 제지했다.
“아뿌아아!”
그리고, 자연구역의 약탈자가 될 뻔한 양들을 제지하니, 은수가 도도도도- 달려와서 덥석 안겨들었다. 은수는 내게 안겨, 아빠가 최고라면서 방긋방긋 웃음을 터트렸다. 자연구역이 황폐화될 뻔한 것을 막아주었으니 기쁘다는 것이었다.
그런 은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며 소은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소은아, 양들을 여기 계속 놔두면 풀을 전부 다 뜯어 먹을 것 같아. 소은이가 데리고 돌아갈 수 있지?”
“웅! 갔다 올게! 가서 얘들 밥도 줄게!”
“역시 우리 딸이야!”
칭찬의 의미를 가득 담아서 양손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니 소은이가 푸히히- 웃음을 터트리며 양들을 몰고 떠나갔다. 은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언젠간 네게 물려주면 다 네 거니까 소중히 여겨.
다시금 은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서, 나는 계속해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아직 밭을 다 만들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밭의 흙을 깨고, 잡초를 골라낸 수준이었다.
“자, 황희야. 갈까?”
잠시 휴식을 취하던 황희에게 다시금 쟁기를 고정하며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이제 밭에 제대로 된 고랑을 만들어서, 작물들을 심을 예정이었다.
황희의 목덜미 부근과 연결된 줄을 살짝 당기니, 녀석이 신호를 눈치채고서 앞으로 나아갔다. 아까보다 조금 더 쟁기를 깊게 누르고 있으니, 고랑이 더 깊게 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랑을 파고 있으니 곁으로 무하마드가 다가왔다. 아주 흥미가 가득한 표정으로.
“드루이드, 그게 소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기구인가요?”
“맞아요. 이 부분을 쟁기라고 하는데, 이렇게 밭을 갈아내는 용도로 쓰는 거죠. 단단한 땅을 부숴서 농사짓기 좋게 만들 때 쓰는 거예요. 손으로 하면 힘들어 죽을걸요?”
내 말에 무하마드가 푸흐흐- 웃음을 흘렸다. 이 양반이 고생을 안 해봐서 모르나 보네. 딱딱하게 굳은 땅을 깨부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하지만 그러한 사실까지 알려줄 이유는 없었기에, 나도 가볍게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그 와중에도 호기심이 가득해 보이는 무하마드가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이 밭에는 뭘 심을 건가요?”
“이것저것 다 심어 보려고요. 밭을 제법 넓게 잡아놔서, 꽤 심을 수 있을 거예요. 일단은 초식동물들을 위한 알팔파랑, 땅콩이나 고구마 같은 것들도 좀 심을 거고요.”
“드루이드가 직접 키우는 알팔파라…….”
“나중에 뽀니에게 줄 것도 따로 챙겨줄게요.”
“오, 정말인가요?!”
“뭐, 제가 안 줘도 소은이가 알아서 먹일걸요? 소은이한테 뽀니는 좋은 친구니까요.”
내 말에 무하마드가 그것도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꼬마 공주에겐 언제나 고마움뿐이네요. 그런데, 드루이드. 저 소의 이름이 항히인가요? 무슨 뜻이죠?”
“황희라는 이름이에요. 조선시대의 정치인 중 한 명이었죠. 다른 칡소의 이름은 황희의 직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정승이고요. 아, 정승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총리 정도 되겠네요.”
“많이 유명한 인물인가요?”
“좀 그런 편이긴 해요. 여러모로…….”
세종대왕에게 죽기 직전까지 부려먹혔다는 말을 황희……. 그러니까, 칡소 황희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이 녀석이 괜히 오해라도 하면 무척 곤란할 것이 뻔했다. 아무리 이름이 황희로 지어졌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부려먹을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내가 말을 대충 얼버무리니, 무하마드는 나중에 직접 찾아봐야겠다면서 메모를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음을 금세 눈치챈 것이었다.
그런데, 무하마드는 메모를 하면서도 내가 쟁기를 누르고 있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한 번 직접 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한 번 해볼래요?”
“그래도 되나요?”
이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무하마드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안 시켜줬으면 실망했을 것 같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무하마드에게 쟁기를 잡게 했다. 물론, 근처에 있던 비서가 다가와서 위험하지 않겠냐는 등의 설득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하마드는 아직 건강을 회복하는 단계에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하마드는 그런 비서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오히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무하마드는 쟁기의 손잡이를 붙잡고 황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몇 걸음 걷던 황희는 다시금 멈출 수밖에 없었다. 쟁기를 끌던 무하마드가 쟁기를 놓치며, 쟁기가 바닥으로 나뒹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러했듯, 쟁기를 처음 쓰다 보니 서툰 것이었다. 그나마 쟁기랑 같이 바닥을 나뒹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어렵죠?”
“와, 이거 꽤 어렵네요.”
“저는 처음에 넘어졌어요. 그걸 잡을 때 팔에 힘도 좀 주면서, 중심을 잘 맞춰야 해요. 안 그러면 쟁기가 다른 방향으로 나가려고 해서 길이 이상하게 날 수도 있거든요. 이번에는 조금 체중을 실리도록 해서 잡아봐요.”
곁에 딱 붙어서 무하마드가 쟁기를 움직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러한 것처럼 버벅댔지만, 이내 요령을 깨우쳤는지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오, 잘하는데요?”
“하하하! 이거 꽤 재미있네요!”
쟁기가 땅을 파며 고랑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무하마드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꽤나 신기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쟁기질이라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병원에 장기간 있으면서 체력이 약해진 무하마드였는데, 많은 체력을 요하는 쟁기질까지 하니 금세 지쳐버린 것이었다.
이제 겨우 고랑을 한 줄 만들었을 뿐인데, 무하마드의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 흘러내리다 못해 방울져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힘들죠?”
“확실히 힘들긴 하네요. 그런데, 뭐랄까……. 운동을 제대로 한 느낌이 들어요. 땀을 흘리고 나서 아주 개운한 그 느낌이요.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 같은 것들도 다 사라진 것처럼 개운하고, 해방감까지 느껴지네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음에도, 무하마드는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말한 것처럼 개운함과 해방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진된 체력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무하마드 님. 이제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곁에 있던 비서가 그런 무하마드에게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휴식을 권할 정도였다. 말을 듣지 않으면 상급자고 뭐고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살짝 흠칫 한 무하마드는 그런 비서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 스스로도 더 이상 쟁기질을 할 체력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무하마드가 쟁기질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드루이드. 혹시, 내가 드루이드의 농사를 같이 해도 괜찮을까요?”
“농사를요? 여기서?”
“네. 생각해 보니, 농사라는 건 꽤나 체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체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는 내게 충분한 운동이 되지 않겠어요? 그것도 드루이드와 함께 하는 농사라면 더더욱.”
농사가 체력을 필요로 하는 것도 맞고, 적당한 수준의 농사는 충분한 운동이 되는 것도 맞았다. 지금의 무하마드에겐 꽤나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뭐, 의사가 듣는다면 환장할 이야기긴 하지만.
게다가, 혼자서 농사를 한다는 것은 꽤나 심심했다. 집 마당에 있는 화단을 가꾸는 것도 혼자 하면 심심한데, 이렇게 넓은 밭을 혼자서 관리하려면 지루할 것이 뻔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하마드와 함께 농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같이 해보죠. 그래도 무하마드는 아직 체력을 회복해야 하는 단계니까, 너무 무리해서 하지는 말고요. 딱 재활 훈련 정도로만.”
아주 걱정이 한가득인 비서의 얼굴을 보며, 무하마드에게 약간의 제약을 걸었다. 농사를 한다고 몸 상태를 호전시킬 체력까지 쓰는 일을 방지하니, 그제야 비서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하지만, 무하마드는 농사를 아주 본격적으로 할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간 무하마드가 다시 밭으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웬 밀짚모자를 머리에 쓰고, 어디서 구해온 건지 모를 몸빼 바지와 낚시 조끼를 입고 있는 무하마드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어깨에는 웬 괭이까지 걸쳐놓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