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20
0419 외전 – 판타지(4)
“한무야 일단 풀어줘.”
정령술이 어떤 건지는 몰라도 에로프…… 아니, 에로흐가 한무한테 깔린 상태로는 배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한무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길쭉한 다리로 몸을 들어 올리며 에로흐에게서 내려왔다.
그제야 압박감에서 해방된 에로흐는 뿌드득-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꽤 긴 시간 동안 눌려있던 건지, 스트레칭을 하는데 무슨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정령술을 가르치러 왔다고 했죠? 지금 당장 하죠. 최대한 빨리.”
세계의 시간이 달라서 귀환해도 얼마 지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1분이라도 빨리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없으면 내가 버티질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1분이라도 빠르게 일을 해결하면 좋은 것은 이 세계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하게도, 나를 가르치러 온 에로흐 역시 내 의견을 무척 반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에, 교육이 곧바로 진행되었다.
“일단 정령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불러낼 수 있어요. 마나를 이용해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잠깐만요. 마나? 마나는 또 뭐죠?”
“마나……를 모르시나 보네요. 거기부터 설명해야 할 줄은 몰랐는데.”
에로흐는 곤란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처음부터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기운이 뒤섞인, 근원에 가까운 기운을 에테르라고 부른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중에서 정순한 기운만을 골라낸 것이 마나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이후, 그 마나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자연과 교감하며 정순한 기운을 몸으로 빨아들이라는데…… 그걸 어떻게 하냐고.
“얼레.”
하지만, 신기하게도 에로흐가 말한 대로 정순한 기운이 내게 몰려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 공기가 마치 비가 오는 날의 것처럼 조금 촉촉하게 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와……. 진짜 용사는 용사네요. 저도 처음에 마나를 느끼는 것만 해도 며칠은 걸렸는데.”
“이게 그 마나라는 거라고요?”
“네. 그걸 느끼셨다면 일단 자연이 생명체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정령을 불러내보세요. 특정 방법을 사용한 게 아니라, 용사님에게 제일 잘 맞는 정령이 소환될 거예요.”
에로흐의 말에 곧바로 그녀가 말한 대로 집중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에로흐가 짓눌리고 있던 바닥에서 변화가 생겨났다.
꾸그드득-
반질반질하던 바닥이 일그러지더니, 바닥을 이루고 있던 돌덩이가 주먹만 한 크기로 토옥-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드득?”
떠오른 돌덩이에 마치 눈과 입 같은 것이 생겨나더니, 돌이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마치 새로운 몸에 적응을 하는 것처럼 눈과 입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몸의 적응을 다 마친 듯한 녀석이 갑자기 내게로 휙 날아들었다. 단단한 돌덩이가 내게 날아오는 듯한 느낌에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그 돌덩이는 아주 부드럽게 내 손바닥에 안착했다. 아니, 안착하다 못해 혼자서 데굴데굴 구르듯 손바닥에서 움직였다.
“땅의 정령이네요. 이제 막 실체화가 된 건지, 최하급 수준이지만요.”
땅의 정령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정말 무언가 정령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돌도 땅의 일부라고 할 수 있었으니, 그것에 영혼 같은 게 들어간 느낌이었다.
“최하급이면 약한 건가요?”
“정령 중에서는 약한 편에 속하긴 하지만, 그래도 전투력 자체가 약한 건 아니에요.”
에로흐는 최하급 정령이라 하더라도 일반인 수십 정도는 순식간에 때려눕힐 수 있는 수준의 강함은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먹만 한 돌덩이가 수십 명의 사람들을 때려눕힌다니 무척 신기했다.
그리고, 최하급이 아니라 조금 더 상위의 정령을 이용한다면 마왕의 퇴치도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 때문인지 내 손에 있던 정령에게 변화가 생겨났다.
“뜨드드득!”
마치 기합을 내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지른 정령은 바닥의 돌덩이들을 더 많이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손가락만 한 돌덩이들이 바닥에서 뽑히듯 나와, 정령의 몸에 탁탁- 붙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러한 과정에서 정령의 덩치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성장한다고?”
정령의 덩치가 커지는 모습을 바라본 에로흐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경악, 불신, 혼란 등등. 온갖 것들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이게 이상한 일인가요?”
“엘프들도 정령들을 성장시키는데 몇 년은 걸리는데! 아무리 용사라지만…….”
에로흐는 차마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입술만 달싹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믿기 힘들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에로흐와 달리, 나는 아주 평온했다. 지금까지 이유 없이 드루이드라고 불린 것이 아니었다. 정령이 자연의 일부라면, 내 초능력의 효과를 강하게 받는 게 당연했다.
“아, 맞다. 정령의 종류가 여럿이라고 했지. 다른 것도 한 번 부를 수 있으려나.”
나는 당황한 에로흐를 뒤로하고, 조금 전의 느낌을 되짚으며 다시 한번 정령을 불러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조금 전 땅의 정령을 불러낼 때처럼 주변에 변화가 생겨났다. 심지어, 이번에 생긴 변화는 하나가 아니었다. 분명 문이나 창문이 다 닫혀 있음에도 방안에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마시라고 놔둔 듯한 물컵에 있던 물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심지가 조금 남아 있던 촛불이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오……?”
땅의 정령이 그러했던 것처럼, 주변의 변화와 함께 정령들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우주 정거장에서 물을 허공에 띄우는 것처럼 둥둥 떠다니는 물방울과, 허공에서 활활 타오르는 숯덩이 같은 것과,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한 덩어리 하나가 나타난 것이었다.
“히에에엑! 무, 물에 불에 바람까지? 히이이…….”
세 정령이 더 나타나는 모습에 에로흐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넘어갔다. 이 광경이 충격적이었는지, 기절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에로흐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내 주변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꽤 귀엽네. 우리 소은이가 봤으면 귀엽다고 난리였겠는데?”
소은이가 이 모습을 봤더라면 귀엽다면서 방방 뛰면서 얘들이랑 어떻게 놀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 뻔했다.
“……소은이 보고 싶네.”
일하러 온 것도 아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처한 상태다 보니 문득 소은이가 무척 보고 싶었다.
“쥔님. 저도 아가씨랑 도련님, 사모님도 보고 싶슴다.”
“허허어.”
“그대의 부인께 온 소포를 전해주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소이다.”
“내 캣닙인간…….”
내가 소은이를 보고 싶어 하니, 동물들 역시 우리 가족들을 보고 싶어 했다.
“얌마, 내 아들은 네 캣닙이 아니라고.”
남캣 녀석은 조금 다른 의미로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갑작스러운 그리움을 느낀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 역시 내가 상황을 설명해 주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대한 빠르게 강해져서, 마왕을 때려 부수고 집으로 돌아가자.”
“좋슴다!”
내 말에 동물들이 강하게 반응했다. 청호는 힘차게 짖었고, 유부는 거칠게 홰를 치고, 한무는 목을 길쭉하게 빼냈다. 그리고, 남캣 녀석은 사냥감을 노리듯 발톱을 한껏 세우며 눈을 날카롭게 떴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주변에서 둥둥 떠다니던 정령들에게서도 반응이 왔다. 아니, 정확히는 반응하는 동물들에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어? 어?”
내 손바닥에 있던 땅의 정령부터 시작해서, 주변에 있던 다른 정령들이 동물들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날개를 퍼덕이던 유부에게는 불의 정령이, 한무에게는 바람의 정령이, 사냥을 준비하던 남캣에겐 물의 정령이, 투지를 드러내던 청호에겐 땅의 정령이 다가갔다.
정령들은 동물들에게 다가가더니, 마치 흡수되기라도 하듯 동물들에게 스며들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모습에 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들도 내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녀석들에게 좋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동물들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저마다에게 흡수된 듯한 정령들과 비슷한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부는 날갯짓을 할 때마다 화르륵- 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었고, 한무는 몸이 두둥실 떠올라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캣은 몸이 물처럼 반투명하게 바뀌어 있었고, 청호는 바위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얘들아, 괜찮아?”
“괜찮슴다. 근데, 좀 신기한 느낌이긴 함다.”
“신기하다고?”
“예. 뭔가, 좀 강해진 느낌임다. 방금 저희에게 들어온 것을 통해서 강해진 것 같슴다.”
“그래? 딱히 몸이 안 좋다거나 하는 건 없어?”
“멀쩡함다.”
단단한 바위로 덮인 듯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을 보면 정말 어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이 상황의 답을 알 것으로 추정되는 에로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충격을 받은 듯 널브러져 있던 에로흐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정신을 일깨우려 했다. 다만, 충격이 조금 강했던 건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깨겠냐.”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답답했던 건지, 물로 이루어진 것처럼 반투명한 몸을 가지게 된 남캣이 다가왔다.
이 녀석이라면 100% 문제를 만들어낼 것 같았기에 말리려 했으나, 마법의 단어를 내뱉기도 전에 녀석이 움직였다. 앞발을 한껏 치켜들더니, 그대로 에로흐의 이마를 내리찍었다.
“어푸푸풉!”
그런데, 내가 걱정한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이마를 깨버릴 것처럼 내리찍은 앞발은, 강한 충격을 주기보다는 물처럼 흩어지며 에로흐의 얼굴을 흠뻑 적셨다.
머리만 물에 담갔다 뺀 것처럼 푹 젖어버린 에로흐는 코와 입으로 들어온 물을 내뱉으며 벌떡 일어났다.
“어……? 에?”
자신이 왜 이러고 있나- 하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에로흐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다시금 널브러지려고 할 정도였다. 먼저 눈치를 챈 남캣이 물주먹을 날린 덕에 다시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정신을 차린 에로흐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을 했다. 에로흐는 얼떨떨한 상태에서도 자신이 아는 지식을 알려주었다.
“이건 정령 융합이에요. 정령술사들이 정령과 하나가 되어 보다 강한 힘을 내는 방법 중 하나죠. 그런데……. 이렇게 동물들이 정령 융합을 한 건 처음 보지만요.”
에로흐는 이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며 남캣의 물 같은 몸을 콕 찔렀다가 물주먹을 한 대 더 얻어맞았다.
덕분에 쫄딱 젖은 에로흐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조그마한 생명체를 쥐어박아서 뭘 하겠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하신 건진 몰라도, 다른 속성의 정령들도 불러내고 융합까지 하셨으니까 그걸 응용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그저, 자기가 할 일을 다 하겠다는 것처럼 내게 정령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융합이니 뭐니 하는 것을 다루는 방법이나, 그걸 응용해서 여러 방법으로 사용하는 방법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운 게 아닌가 싶었으나, 원래 내가 초능력을 신경 써서 사용하는 것처럼 하면 되었기에 딱히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닷새만에 에로흐의 기술 대부분을 흡수할 수 있었고, 용사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의 힘을 갖출 수 있었다. 내 초능력이 내게도 적용되는 만큼,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전투민족처럼 숨만 쉬어도 강해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마왕을 퇴치하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가족을 보고 싶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마왕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탓이기도 했다.
“얘들아, 집에 갈 준비 하자!”
네 마리의 동물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판타지 세계였기 때문에 차량이나 비행기 같은 이동수단은 없었으나,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정령들을 이용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