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21
0420 외전 – 판타지(5)
이동에 정령을 이용하기로 하긴 했지만, 마냥 정령들만 부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엔 효율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할 수 있지?”
그렇기에, 동물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정령들과 하나가 되면 어마어마한 힘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바로 출발함까?”
“응. 최대한 빨리 움직여서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자.”
“알겠슴다!”
집으로 가자는 것에 청호는 물론, 다른 동물들이 기분 좋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미 이곳에서 며칠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우리는 모두가 집을 그리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동물들도 집에 가는 것을 고대하고 있는 만큼, 순식간에 정령들과 융합한 녀석들이 힘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힘을 쓰는 것은 청호였다. 땅의 정령과 융합한 녀석은 땅을 아주 잘 다뤘는데, 그 힘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나는 것처럼 땅이 잠시 뒤흔들리다, 그대로 주변 일대가 낮아졌다. 아니, 바닥이 솟아오르며 우리가 높은 곳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렇게 땅을 들어 올려 우리를 높은 곳으로 올린 청호는 다시금 힘을 써, 주변에 변화를 만들어냈다. 마치 동물원에서 돌아다니는 마차를 만들어낸 것처럼 주변과 머리 위로 벽이 생겨난 것이었다. 심지어, 외부를 볼 수 있도록 중간중간 창문 같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마차와는 조금 달랐다, 바닥에 내려놓은 계란을 형상화한 것처럼 형태가 잡힌 것이었다. 당연히 그런 형상을 취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청호가 땅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것을 타고 이동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형태를 취하는 것이 적합했다.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족한 부분은 다른 동물들의 도움을 받을 예정이었으니 문제가 아니었다.
“한무야. 가자.”
청호의 힘으로 일단 허공으로 떠오른 땅덩이였으나, 그것은 그저 떠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움직이기 위해서는 한무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한무는 청호가 만들어낸 구조물의 가장 앞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더니, 곧바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강한 바람이 몰아치더니, 거대한 구조물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거대한 구조물인 탓에 움직이기 시작한 직후의 속도는 무척이나 느렸다. 이게 움직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차라리 한무가 느긋하게 걷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무가 조금씩 더 강하게 힘을 끌어올리니 구조물이 움직이는 것에 속도가 붙었다. 한무가 걷는 속도에서 소은이가 걷는 속도로, 소은이가 걷는 속도에서 내가 걷는 속도로. 그렇게 조금씩 붙기 시작한 속도는 어느덧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
하이퍼카로 분류될 내 차의 최고속도로도 비비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소닉붐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속도로 움직였지만, 마왕이나 여신과 정령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다 보니 문제는 없었다.
“언제 봐도 용사님의 힘은 이해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는 구조물에 함께 타고 있는 에로흐가 질렸다는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내게 정령술을 가르치는 동안 경험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몇 년은 걸렸던 일을 내가 몇 시간 내에 끝내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니 말이다.
물론,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창문으로 다가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구에 있을 때는 쉬이 볼 수 없던, 자연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한무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제어하는 중이었기에, 산들바람 수준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 방향으로 쭉 가면 지금 마왕에게 피해를 입고 있는 곳이 나온다는 거죠?”
“어……. 네. 저쪽에 보이는 큰 강이랑 저쪽 산맥을 보면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아요.”
내비게이션 용도로 태운 에로흐는 본인의 임무를 아주 확실히 수행했다. 중간중간 에로흐가 잡아주는 방향대로 한 시간 정도를 움직였을 때, 저 멀리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검은 연기가 피어나고 있는 곳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와서 신체도 좋아진 건지, 몽골사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눈이 좋아진 덕이었다.
“……해골이네?”
“네. 전대 용사님이 네크로맨서셨거든요. 압도적인 패배를 경험한 마왕은 다시 나타날 때 그 용사를 따라 하거든요.”
“전대 용사가 네크로맨서였다고요? 아니, 그거 좀 사악한 느낌의 그런 거 아닌가……?”
네크로맨서라고 하면 흑마법사고, 흑마법사 하면 나쁜 놈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용사였다니 무척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공인 흑마법사라는 것이 있어요. 흑마법 역시 여신께서 만들어낸 이 세계의 법칙 중 하나니까요.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문제없어요.”
이 세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사고가 유연한 것 같았다. 흑마법사가 용사라니. 흑마법사가 일으킨 해골들이 마왕을 두들겨 패는 걸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 제가 사는 세계에서는 보통 흑마법사가 마왕의 끄나풀이라는 개념이 있거든요. 마왕도, 흑마법사도 없는 세계긴 하지만요.”
“그런가요? 하긴, 그 용사님께서는 꽤 독특한 분이긴 했죠. 흑마법사이기도 하지만 대장장이셨으니까요.”
“대장장이? 그, 쇠를 두드려서 칼 같은 걸 만드는 그 대장장이요?”
“네! 그분께서 만든 물건들은 꽤나 유용한 것들이었어요. 특히 저희 엘프들이 그분께서 만든 제품들을 애용하곤 했어요. 저희 종족 자체가 불이나 쇠에 가깝지 않거든요.”
꽤나 신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내가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기 때문에 무척 반가웠다.
아무리 마왕이니 뭐니 해도,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해치는 것은 떨떠름했으니 말이다. 해골이라면 그 부담을 꽤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릴 때 학교 과학실에 하나씩 있던 모형 같은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부담도 덜고 전대 용사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도 듣다 보니, 어느덧 수많은 해골들이 모여 있는 곳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곳이 마왕의 본거지다- 하고 말을 하듯, 이게 수만인지 수십만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수의 해골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용사님, 이제 어떻게 해요? 정말 혼자 하실 건가요?”
그리고, 그 광경을 함께 본 에로흐가 무척이나 걱정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원래라면 어마어마한 수의 병사들까지 동원해서 총력전을 벌이는 것이 마왕 퇴치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네 마리 동물들과 인간 하나, 엘프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나와 내 동물들이 낼 수 있는 힘이 마왕을 압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긴요. 싹 밀어버려야지.”
불법 침입해서 불법적으로 체류하고 있으니, 밀어버리는 것이 답이었다.
“네? 밀어버린다고요? 설마……. 아니죠? 아니라고 해줘요!”
“얘들아, 밀어!”
“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에로흐를 무시하고, 동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조금 높은 곳에서 빠르게 움직이던 구조물의 각도가 틀어지며, 해골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구조물의 뒤편에서는 불의 정령과 융합한 유부 녀석이 힘을 쓰고 있었다. 추진체가 로켓을 밀어내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불기둥이 구조물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러한 속도로 내리 꽂히면 우리에게도 충격이 있을 수 있었기에, 남캣이 힘을 쓰고 있었다. 외부에는 단단한 얼음을 만들어내고, 그 얼음과 구조물 사이에 물을 가득 채워 놓았다. 얼음으로 더 단단하게 충격을 주며, 물을 이용해서 우리가 느낄 충격을 상쇄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들로 인해, 구조물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땅을 향해 내리 꽂혔음에도 내부에 있는 우리는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우리와 달리, 주변에는 엄청난 수준의 충격이 있었음을 알리는 흔적이 있었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 있었고, 주변에 가득하던 해골들의 대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도 땅에 파묻혀 있다거나 한 상황이었다.
그 꼴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동물들을 데리고 구조물에서 빠져나왔다. 구조물 안에 있던 에로흐는 마왕의 앞까지 가는 게 무서웠던 건지는 몰라도 잠시 망설이다가 내 뒤를 쪼르르 따라왔다.
그렇게 구조물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딱 봐도 ‘나 마왕이오-‘하는 듯한 해골 하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가장 거대하고, 가장 시커먼 색의 해골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의 그 충격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마왕으로 추정되는 해골이 눈이 있을 법한 자리에서 푸른 귀화를 일렁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리석구나. 겨우 이런 것으로는 마왕인 내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다.”
거대한 해골은 스스로가 마왕임을 실토했다. 묻지 않았음에도 알려주는 것에 아주 미약한 고마움을 느끼며, 정령들과 융합한 동물들의 힘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있던 남캣 녀석이 반투명한 모습으로 마왕의 어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한 물로 변해 있다가 마왕의 어깨로 이동한 것이었다.
당연히 남캣이 마왕의 어깨에 올라간 것은 그 어깨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공격을 하기 위함이었다.
“뒤져!”
마왕의 어깨로 올라간 남캣은 그대로 마왕의 두개골을 향해 냥냥펀치를 날렸다. 마치 수중에서 폭탄이 터지듯, 마왕의 두개골에서 거대한 물보라가 터져 나왔다.
“크윽!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꽤나 큰 충격을 받은 건지, 마왕이 휘청이며 어깨에 올라가 있던 남캣을 공격하기 위해 허우적댔다. 하지만 이미 물로 변해서 사라진 남캣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왕이 남캣에게 시선이 팔린 사이, 다른 동물들도 움직였다.
온몸에 불꽃을 휘감고 있는 유부는 빠르게 날아가, 마왕의 척추를 공격했다. 강렬한 불꽃이 뿜어지며 마왕의 척추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조금 녹아내렸다.
바람을 내뿜으며 허공에 두둥실 떠있던 한무는 유부처럼 날아, 머리와 네 다리를 등껍질 안에 숨기고 등껍질로 몸통박치기를 시전했다. 덕분에 마왕의 갈비뼈 몇 대가 부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바윗덩이를 갑옷처럼 입고 있는 청호가 달려나가 마왕의 대퇴골을 베어물었다. 마치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개들이 큼직한 뼈다귀를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해골 상태인 탓에 몇몇 부위의 뼈들이 파손된 마왕이 나자빠지자, 동물들은 집단으로 린치를 가하듯 마왕을 공격했다.
물보라가 터져나오고,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흙을 가득 머금은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돌기둥이 솟아 올랐다가 쓰러지기도 하는 등의 현상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끄억- 억- 악- 하고 짤막한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터져나오기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동물들의 린치가 5분 정도 지났을 때, 마왕이 내뱉는 비명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흥분한 동물들이 마왕을……. 아니, 마왕이었던 것을 산산조각내고 있는 소리가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