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4
0043 엿 먹으라고? 너나 먹어(2)
“꿀꺽…….”
백 마리가 훨씬 넘는 새 떼가 주변을 날아다니자, 곁에 있던 아저씨가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냥 참새떼라면 귀엽게 볼 수 있겠지만, 까마귀와 까치가 절반 이상 섞인 새떼는 두려움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특히, 날카로운 부리가 크고 길쭉한 까마귀의 경우에는 쪼이면 단순히 아픈 걸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마저 풍기고 있었다.
“그대가 원하는대로 내, 당장 부를 수 있는 이들을 모두 불러모았소이다.”
“잘 했어. 일단 먹을 건 조금 있다가 줄게.”
“잊지 않고 주기만 하면 되오.”
유부는 나를 믿는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바닥에 착-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아저씨는 곧바로 차량 주변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는 도로 중앙을 막고 있는 차량과, 그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새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 경고를 목적으로 사진부터 보내죠.”
아저씨는 곧바로 차량에 적힌 번호에 사진이 담긴 문자를 보냈다. 차가 유리막코팅이 아니라 새똥코팅이 되기 전에 빨리 이동 주차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문자를 보내고 5분 가량이 흘렀음에도, 답신이 온다거나 차주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안 되겠네요. 그냥 시작하죠.”
“유부야. 저기 보이는 차 있지? 네 부하들 시켜서 똥으로 좀 덮으라고 해.”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소.”
유부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해결하도록 지시한 내가 이제는 차에다가 싸지르라는 말을 하니 이상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렇지만 먹이를 준다고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부는 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툭-!
“오우야…….”
시작은 단 하나의 하얀 무언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니, 그대로 길을 틀어막은 차량의 본닛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 할 정도로 많은 수의 새똥들이 떨어져내렸다. 마치 하늘에서 묵직한 눈이 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크고, 무겁고, 더러운 눈이었다.
“이 정도면 부식이 문제가 아니겠네요.”
순식간에 차를 뒤덮어가는 새똥을 본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거 받아주는 세차업체 찾는 게 며칠은 걸리겠네요. 셀프 세차를 한다고 해도…… 세차장에서 안 받아줄 것 같고요.”
아저씨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에 가깝던 남색의 SUV는 순식간에 하얀 색의 얼룩 무늬 차량으로 바뀌었다. 백 마리가 훌쩍 넘는 새들이 조준까지 해가며 똥을 갈기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차량이 하얗게 된 것을 보고서, 새들을 돌려보냈다. 카페에 가 있으면 따로 먹을 것을 챙겨주겠다고 말하니 녀석들은 신이 나서 카페로 향했다. 심지어 기분 좋다는 듯이 한 번 더 차에 똥을 갈기고 가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나는 아저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저씨, 저 상태가 된 것도 한 번 찍어서 보……. 아, 이미 찍고 계셨네요.”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사진을 찍고 있던 아저씨는 곧바로 사진을 전송했다.
철판은 물론이고, 유리창까지 새하얀 얼룩이 가득한 차량의 사진을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상대측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화 왔네요.”
“진짜요?”
나는 곧바로 아저씨의 휴대폰에 걸려온 전화를 바라보았다. 차량에 적혀 있던 번호와 동일한 번호였다.
“수환씨. 전화를 받을 건데, 만약 화가 나더라도 욕을 하거나 하시면 안 돼요. 욕을 했다는 것도 충분히 상대를 압박할 카드로 쓸 수 있거든요.”
“걱정마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받아보라는 제스처를 취하니, 아저씨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스피커가 찢어질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야아아아아아! 내 차에 뭐 하는 짓이야아아아!”
어제 만났던, 그 진상 아줌마의 괴성이 스피커를 통해 아주 생생하게 전달 됐다.
와인잔을 깨는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가 있다면, 이 아줌마는 스피커를 찢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와 아저씨는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무슨 짓이라뇨. 미리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카페 영업 시간에는 많은 수의 새들이 몰려오는 경우가 있어서 이동 주차하라고 말입니다.”
“그딴 거 알 바냐고! 너!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래! 내가 너 가만 안 둬!”
이 아줌마는 확실히, 멍청한 것 같았다. 협박하냐는 물음에 대놓고 그렇다라고 하는 인간이 어디있냐고.
하지만 상대가 멍청할 수록 가지고 노는 재미가 있다는 듯이, 아저씨는 씩-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뭘 어떻게 가만두지 않겠다는 거죠?”
“너네 카페 망하게 해서 길거리에 나앉게 해줄거라고!”
우리 카페가 망하는 것 보다, 아줌마 차가 부식돼서 망가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은데.
아저씨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피식 웃음 지었다.
“아주머니. 지금 하신 발언은 상대의 재산에 대한 협박죄가 성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발언입니다. 영업 방해에 협박까지, 조만간 경찰서에서 만나실 수도 있겠군요.”
“무, 뭐?”
“아, 물론 차를 옮기러 오시면 만나는 게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괜히 경찰서에서 만나봐야 몇천만 원을 가지고 오셔야 할 건데 말이죠.”
“…….”
아저씨의 말에, 진상 아줌마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포기한다면 진상이 아니었다.
“너, 너도 지금 협박 하는 거 아니야?!”
“네, 아닙니다. 협박은 당신처럼 상대방을 해할 목적으로 말하는 거죠. 저는 통보하는 겁니다. 카페 영업을 방해한 것에 대해서 배상을 받기 위해 소송할 예정이라는 걸 통보한 거죠. 이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깟 카페 길 좀 막았다고 몇천만 원? 이게 협박이 아니면 뭐야!”
“당신이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몇 시간 길을 막고 끝낼 생각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차가 이곳에서 길을 틀어막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그쪽이 배상해야 하는 금액도 커진다는 걸 알고 있으셔야 할 겁니다.”
정말 몇천만 원을 지불할 생각이 없다면 바로 오는 게 좋을 겁니다- 하고 말을 덧붙인 아저씨는 그대로 전화를 탁- 끊어버렸다.
이후로 진상 아줌마로 추정되는 전화가 왔지만, 아저씨는 받지 않았다.
“아저씨, 정말 몇천 까지 나와요?”
“과장이죠. 이렇게 길을 틀어막았다고는 해도 도보로 이동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영업 방해에 대한 배상은 그리 크지 않을 거예요. 실제로 돌아간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근처에 주차하고 카페로 들어갔잖아요.”
아저씨의 말대로, 상대가 반응하기를 기다리던 사이 사람들이 꾸준히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어서라도 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평균 매출을 비교해서 실제로 손해를 본 부분에 대해서만 배상이 될 확률이 무척 높아요. 몇천만 원 단위로는 솔직히, 불가능한 거죠. 소송 비용을 겨우 건질 수도 있죠.”
“아쉽네요. 공돈 생기나 했더니.”
“원래 이런 건 크게 부풀리는 겁니다. 상대방을 위축시킬 카드로도 쓸 수 있고, 실제로 소송에 들어갈 때도 받을 금액이 커질 확률이 높으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확실히 변호사 인맥이 있으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으니, 저 멀리서 택시 한대가 다가와 우리 앞에 섰다.
“꺄아아아아악!”
택시에서 내린, 어제의 진상 아줌마는 새하얗게 변해 있는 자신의 차를 보더니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내질러댔다.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였지만, 그래도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고소했다. 그러게 누가 길을 틀어막으래?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합니까. 당신이 치워야죠. 차나 빼세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줌마는 손잡이 역시 새하얗게 변한 것을 가리키며 역정을 냈다.
차를 뒤덮은 새똥이 굳어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완전히 굳은 것도 아니었다. 그 말은, 어떻게든 문을 열기 위해서는 멀쩡하지 않은 손잡이를 잡고 당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 이거 책임 져!”
차마 새똥이 그득한 차의 손잡이를 잡을 순 없던 건지, 진상 아줌마는 나를 타겟으로 잡은 듯했다. 아저씨는 차마 말로 이길 수 없다고 여긴 것 같았다.
하지만 아저씨는 내 앞을 슬며시 가로막으며 진상 아줌마의 시선을 차단했다.
“이야기는 변호사인 저와 하면 됩니다. 저 차량에 대해 배상을 하라고 하신다면 저희는 바로 카페 영업 방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할 것이고, 조금 전의 협박에 대한 부분 역시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할 겁니다.”
“이, 이익!”
진상 아줌마는 아저씨의 말에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딱 봐도, 아저씨가 말했던 몇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걸리는 게 분명했다.
“그럼 이 차는 어떻게 할 거냐고!”
“배상할 책임은 없습니다. 이 분은 부엉이를 사육하고 계시지만, 까치와 까마귀들을 사육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미리 이동 주차에 대해 권고하기도 했으나, 거부하신 건 본인 아닙니까.”
아저씨의 말에, 진상 아줌마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빨리 차 빼세요. 차를 뺄 생각이 없다면, 영업 방해로 인한 손실을 전액 배상하시면 됩니다.”
아저씨의 말에, 진상 아줌마의 눈에서 드디어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뺀다고! 빼면 되잖아!”
진상 아줌마는 역정을 내면서도 차마 손잡이에 손을 얹지 못했다.
그래도 뒤에서 무섭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 아저씨의 시선을 버티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만 손잡이에 걸쳤다.
“으으윽!”
손가락에 닿는 감각 때문인지, 진상 아줌마는 인상을 기괴하게 찌푸렸다. 덕분에 웃음이 터져나올 뻔 했으나, 가까스로 참아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꺄아아악!”
그리고,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아줌마의 입에서 또 다시 비명이 튀어나왔다.
완전히 굳지 않았던 하얀 것들이 문이 열리며, 그 틈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실내까지 더럽혀진 것에, 아줌마는 나와 아저씨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돌아올 반응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줌마는 그대로 차에 올라타 쌩하니 도망쳐버렸다.
찰칵!
“뭐 하세요?”
“아, 이대로 보내긴 아쉬워서 말입니다. 번호판에도 새똥이 가득한데, 저 상태로 주행하는 군요. 번호판 가림으로 신고하면 과태료가 꽤 나옵니다.”
아저씨는 못 해도 50만 원은 나올 거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와……. 아저씨한테 연락하길 잘 한 것 같네요.”
“언제든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해요. 얼마든지 도와드릴테니까요.”
뭉치 때문에라도 내게 빚을 갚아야 한다며, 아저씨는 부담 갖지 말고 얼마든지 부탁하라 했다.
나도 내 가치를 잘 알기에, 아저씨의 말에 정말 부담을 갖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내가 동물을 조련해주고 돈을 받는다면 유명 변호사를 몇 번이고 수임할 수 있는 비용이 나올테니 부담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럼 카페로 가요. 뭉치 녀석도 놀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나는 몸을 들썩이기 시작하는 뭉치와 아저씨를 이끌고 카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