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5
0044 조련(1)
“수환아. 해결 됐어?”
카페로 들어가니,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지 누나가 다급히 달려와서 나를 반겨주었다.
“어. 이제 괜찮아. 여기 아저씨 덕분에 해결했거든. 아, 누나는 처음 만난 거지? 저번에, 애니멀 팜 출연했던 뭉치 견주셔.”
“안녕하세요. 수환이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누나는 아저씨를 보며 가볍게 인사했다. 그러면서도 이 아저씨가 왜 여기 있냐는 듯한 시선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수환씨가 도와달라고 해서,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됐습니다. 한 번 찾아오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됐네요.”
누나가 눈빛으로 보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저씨가 해주었다.
하지만 부드럽게 웃으며 누나에게 인사한 아저씨는 이내 몸을 휘청거렸다.
“놀게 해줘요! 놀고 싶어! 놀고 싶어!”
당연히, 그 원인은 여전히 몸줄을 아저씨에게 붙잡혀 있는 뭉치였다.
널찍한 잔디밭과, 거기서 뛰노는 동물들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뭉치는 아저씨에게 몸줄이 붙잡혀 있지 않았더라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갔을 모습으로 열심히 몸을 흔들어댔다.
“뭉치!”
“놔요! 놔아!”
“으억!”
아저씨는 뭉치의 발광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끝내 줄을 놓지 않았다.
녀석을 한 번 풀어주었다가 이별하게 된 경험이 있으니, 카페 안이라고 해서 마냥 안심하고 놓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냥 풀어주셔도 돼요. 따로 나갈 수 있는 구멍 같은 건 없으니까요.”
내 말을 들은 아저씨는 그제서야 붙잡고 있던 뭉치의 몸줄을 놓아주었다.
“헉헉헉헉헉헉헉헉!”
뭉치 녀석은 아저씨에게서 풀려나자마자 미친듯이 잔디밭을 향해 달려나갔다. 순간 유리창에 들이박을 뻔 했으나, 용케 문을 찾아 잔디밭으로 빠져나갔다.
“하아……. 저 녀석을 어찌 해야 좋을지…….”
아저씨는 미친듯이 잔디밭을 뛰노는 뭉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쟤는 얌전한 편이예요. 잡는다고 잡혀 있었잖아요.”
그렇다. 뭉치는 얌전한 편이었다.
“그게 무슨 마…….”
아저씨는 내 말에 반문하려다가, 뭉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뭉치를 스쳐지나가는 마루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저 속도만 봐도 사람이 버틸 수 있을 힘이 아니라는 것을 보는 순간 알 수 있겠지.
그 힘 좋고 체력 좋은 체대 출신 직원들도 마루의 몸줄만 잡았다 하면 미친듯이 끌려다니는데, 거기에 비하면 뭉치 정도는 얌전한 편이었다.
“아저씨, 도움 받아놓고 죄송한 말이지만……. 제가 할 일이 조금 있어서요. 편하게 둘러보고 계실래요?”
“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일 봐요. 뭉치 녀석 말고, 다른 동물들도 한 번씩 만나보면 되니까요.”
아저씨는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리고서는 정말 안내 같은 도움은 필요 없다는 듯이 카페 곳곳을 기웃거리며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기 시작했다.
“뭐 하게?”
내게 도움을 준 아저씨를 혼자 내버려두고 할 일이 있다는 내 말을 들은 누나가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사실상 내가 카페에서 하는 일은 동물들이랑 노닥거리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3층에서 편집이나 조금씩 하던가.
“새들한테 도움 받은 게 있어서. 먹을 걸 주기로 했거든.”
“새……? 너 설마 차를 망가트린 거야?”
“망가트린 건 아닐 걸? 새똥 범벅이 됐다고 차가 운행하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
“어휴…….”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도 큰 문제 없이 해결했다면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얼마전에 견과류 세트랑 과일 산 거 있지?”
“응. 창고에 뒀는데, 그거 주게?”
“나름대로 고생했는데, 보상은 제대로 해 줘야지. 그래야 다음에 또 써먹는다고.”
누나는 내 말에 편한대로 하라고 하더니, 곧이어 들어온 손님들의 주문을 받았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곧바로 힘 좋아 보이는 직원들을 몇 이끌고 창고로 향했다.
아무리 새가 먹는다고 해도, 백 마리가 넘는 숫자를 먹이려면 적은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명의 직원들을 부려 과일 상자 몇 박스와 견과류 포대기를 들고 나왔다.
잔디밭으로 향하는 입구 근처에 물건들을 쌓아놓고 자리를 잡은 나는 곧바로 어그로를 끌었다.
“여러분! 지금부터 까치와 까마귀 무료 피딩 이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까치와 까마귀에게 직접 먹이를 주실 수 있습니다!”
내 외침이 끝나자 마자, 자리에 앉아 있거나 동물들을 보며 사진을 찍어대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무료로 먹이를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다니 일단 몰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직원들을 시켜, 사람들에게 견과류와 과일들을 적당히 나눠주도록 시켰다.
덕분에, 나는 백 마리가 훌쩍 넘는 수의 새들을 먹인다고 고생할 필요도 없었고, 손님들은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워 했다.
까치들을 어깨에 얹혀서 견과류를 먹이는 손님도 있었고, 배급할 때 쓴 종이컵으로 까마귀에게 야바위를 하는 손님도 있었다.
‘아니, 왜 까마귀를 상대로 야바위를 하는 거야.’
두 개의 종이컵 가운데 하나에 견과류와 과일을 넣어놓고, 위치를 뒤섞은 다음 까마귀에게 고르도록 하는 손님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까마귀가 잘 찾아 먹는 걸 보니, 나름대로 볼만한 구경거리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따로 준비한 것을 유부에게 내밀었다.
“아닛! 이건!”
내가 내미는 것을 발견한 유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부풀렸다. 하지만, 녀석은 이내 다급한 모습으로 내가 내미는 것을 낚아챘다.
‘비싼 건 알아가지고.’
소고기 중에서도 가장 비싼 편에 속하는 살치살 한 덩이는, 곧바로 유부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허겁지겁 먹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어대는 것이, 정말 맛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흠흠, 잘 먹었소. 다음에도 부탁할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하시오!”
살치살 한 덩이에 무척 만족한 유부는 자신만 믿으라며 날개를 팔락였다.
나는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써먹을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잔디밭의 테두리 부근으로 향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잔디밭에는 무척 위험한 녀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헉헉헉헉!”
“헥헥헥헥헥헥!”
바로, 미친듯이 질주하고 있는 뭉치와 마루였다.
원형을 그리며 잔디밭 테두리를 돌고 있는 두 녀석의 속도는 어지간한 개의 범주를 뛰어넘어선 상태였다.
개들도 시속 수십 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데, 그건 단거리 기준이었다. 하지만 지금 달리고 있는 두 녀석은 벌써 몇 분 째 쉬지도 않고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인간이 자전거를 타고 아무리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고 해도 두 녀석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못 잡겠는데.”
앞을 가로막아 잡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랬다가는 달리는 차에 치이는 것만한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두 녀석이 미친듯이 뛰고 있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지금도 손님들 몇몇이 잔디밭 중앙으로 이동하려다가 두 녀석의 질주에 막혀 넘어갈 타이밍을 보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결국 두 녀석을 멈추게 만들기 위해서 정지 명령어를 꺼내들었다.
“멈춰!”
“으아아아악!”
“아아악!”
멈추라는 내 말을 듣자 마자, 두 녀석은 비명을 내질렀다.
달리던 자세 그대로 몸을 굳힌 탓에,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군 것이었다. 아니, 뒹굴었다기 보다는 달리던 자세 그대로 잔디밭을 슬라이딩하듯 미끄러졌다.
깨갱, 깽! 하고 개의 비명소리를 듣게 된 나는 기겁을 하며 두 녀석에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녀석은 고개를 붕붕 흔들며 어지러움을 호소할 뿐, 다치거나 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한번 더?”
“한번 더!”
“한번 더 같은 소리 하네. 너희들 이리와.”
다치긴 커녕, 아직도 체력이 남아 도는 듯한 두 녀석의 말을 들은 나는 그대로 몸줄 두 개를 붙잡았다.
그제서야 나를 확인한 두 녀석은 슬그머니 꼬리를 말아 감췄다.
“누가 이렇게 미친듯이 뛰래? 저기 잔디 꼴이 보여?”
나는 잔디밭에 테두리를 따라 크게 원형으로 생긴 자국을 가리켰다. 어찌나 빠르게 반복적으로 뛰었는지, 뛰지 않은 부분과 확연한 차이가 나고 있었다.
“헤헤!”
내 말에도 해맑게 웃는 마루의 턱살을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너희는 잠깐 교육 좀 받아야겠다.”
나는 두 녀석을 이끌고 잔디밭의 구석, 정확히는 카페를 두르고 있는 담장 앞으로 향했다.
“앉아.”
두 녀석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엉덩이를 착- 깔고 앉았다.
“그렇게 빠르게 뛰면 어떡해? 사람들이랑 부딪히면 너희도 다치고, 사람들도 다칠 거 아냐.”
“죄송해여…….”
“잘못했어요!”
두 녀석은 내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이러면 잔소리하기 힘들잖아.
이런저런 변명 하나 없이, 냅다 잘못을 시인하며 사죄하는 두 녀석을 마냥 혼내기도 해매했다.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두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녀석들이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것은 넘치는 체력을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그것을 해소해준다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리고, 체력을 소진하기에는 단순히 미친개 마냥 뛰는 것 보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회가 뭐였더라……. 장애물 대회가 있었는데.’
개들이 장애물을 통과하며 달리는 대회가 있었다. 가볍게 검색을 해보니, 어질리티라는 이름의 대회였다.
“그렇게 뛰고 싶으면 뛰게 해줄게.”
“정말이죠?!”
내 말에 두 녀석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반색했다. 그 모습을 보니 이것도 잘 못 생각한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두 녀석의 체력을 수월하게 빼기 위해서는 어질리티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에, 나는 두 녀석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창고에서 물건들을 꺼내왔다.
내가 창고에서 가져온 것은 별다른 것은 아니었다. 몇개의 말뚝과, 상자 몇 개. 거기에 길다란 판자가 전부였다.
카페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남은 자재들이었는데, 혹시 쓸 일이 있을까 싶어 놔둔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곧바로 직원들 몇 명과 함께 잔디밭 구석에 어질리티에 쓰이는 장애물 같은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따로 특근비를 약속하니 직원들이 열성적으로 임해준 덕분에, 십 분 만에 그럴싸한 장애물들을 만들어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박힌 말뚝 사이를 좌우로 지나가는 슬라럼, 점프해서 지나가야 하는 50cm와 100cm 높이의 상자들, A자 형태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판자 언덕을 설치해둔 것이었다.
“그냥 뛰는 것 보다는 이렇게 뛰는 게 재미 있을 거야.”
나는 장애물들이 완성되는 것과 동시에, 두 녀석에게 장애물 통과하기를 가르쳤다.
워낙 체력도 좋고 뛰는 걸 좋아하는 녀석들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 녀석은 장애물 통과하는 것을 아주 빠른 속도로 습득했다.
“무, 뭉치야?”
카페 구경을 적당히 하고 나타난 아저씨가, 말뚝 사이를 미친듯이 달려가는 뭉치를 보고 놀랄 정도로 말이다.
“헉헉헉! 너무 좋아!”
5m 정도의 슬라럼을 눈 깜짝할 사이에 통과한 뭉치는 너무 좋다며, 그 앞에 놓인 100cm 높이의 상자를 아주 가볍게 넘었다. 그 뒤에 있는 판자 언덕은 발을 세 번 구르는 것만으로 통과해버렸다.
직선 질주에서는 마루보다 느린 뭉치였지만, 장애물 달리기에서는 마루를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장애물들은 단순히 넘치는 체력을 주체하지 못 하는 두 녀석을 위한 장난감이었는데, 의외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