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58
0057 괜찮겠는데?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츄르를 그릇에 뭉텅이로 짜내어 남캣에게 주었다.
녀석은 그대로 그릇에 얼굴을 박고 츄르를 핥아댔다. 식탐 하나는 강한 녀석이다보니, 곁에 다가온 치킨이가 괜히 한 대 얻어맞고 널부러지는 일이 있었다.
“좋냐?”
좋으냐는 내 물음에도 남캣은 대답을 할 생각 따윈 없다는 듯이 츄르를 핥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겨우 츄르 일곱 개로 그 몇천 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으니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를 무시하든 말든, 얼마든지 용서가 가능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악덕업주 그 자체였네.’
나중에 따로 보답을 하기로 하며, 나는 곧장 침실로 향했다.
“나 없는 동안 일 없었지?”
“응. 그냥 남캣이 없다는 거 때문에 아쉬워하는 사람이 조금 있긴 했는데, 평소랑 다르지는 않았어.”
“나 없어서 아쉽다는 사람은?”
“없었는데?”
“한 명도?”
“응.”
단호하게 말하는 누나의 모습에, 나는 의도적으로 과하게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며 누나를 끌어안았다.
“한 명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누나는 내가 없으면 아쉬워 해야지.”
“영지랑 수다떤다고 너 없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는데?”
“와아, 너무하네!”
괜히 장난치는 것이 뻔히 보이는 누나의 모습이었다. 나 역시 그런 누나의 장단에 맞춰 과장된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우리 아기는 엄마처럼 그러면 안 돼. 알았지? 아빠 없으면 좀 울고 그래야 돼.”
“간지러워! 이상한 소리도 하지 마!”
이제 슬슬 볼록하게 올라온다기 보다는 살짝 ‘뽈록’ 수준으로 부푼 누나의 아랫배를 보며, 배에다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간지럽다며 발버둥치는 누나와 가볍게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나를 밀어내고 옷을 정리한 누나는 곁에 누우라는 듯이 침대 옆을 툭툭 두드렸다. 누나에게 찰싹 달라붙어 어깨를 감싸니, 머리를 슬그머니 기대왔다.
“너는 오늘 어땠어? 거기 촬영하는 곳 말이야. 저번에 애니멀 팜 촬영할 때랑은 달랐지?”
오늘은 누나와 함께 간 것이 아니라 나 혼자 갔기 때문인지 누나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특히, 내가 영화를 촬영하는 곳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더더욱 호기심이 생기는 듯했다.
“신기하긴 하더라. 카메라도 엄청 큰 걸 들고 있고……. 아, 그것도 봤어. 크로마키. 초록색 천 앞에서 연기하는데, 보는 내가 좀 부끄럽더라? 영화로 보면 엄청 대단한 장면일 건데, CG를 씌우기 전의 모습을 보니까 엄청 초라했어…….”
“푸흐흐, 뮤튜브에 그런 거 많잖아. 막 뒤에서 번개치고 난리인 장면인데, 실제로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폼잡고 있는 거.”
“그러니까. 오늘 찍는 것도 그렇더라니까. 듣기로는 무슨 동굴에서 함정을 피하는 내용이라는데, 실제로는 크로마키 앞에서 폴짝폴짝 뛰는 게 다였거든.”
“진짜? 남캣이랑 영희 그 사람이 같이 뛴 거야?”
“응. 영상 보여줄까? 감독님한테 허락받고 찍은 거야. 개봉 전까지 인터넷에만 공개하지 않으면 된다 하더라고.”
“보여줘 보여줘!”
누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휴대폰을 찾았다.
“아……. 잠깐만. 휴대폰 밑에 두고 왔나봐. 남캣한테 츄르를 주기로 해서, 그거 짜주다가 놔뒀나보네.”
“기다릴게, 가져와.”
내게 기대고 있던 누나가 일어나라는 듯이 몸을 살짝 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그런 누나를 다시금 잡아당기며 품에 끌어안았다.
나는 일어나는 것 대신,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를 향해 소리쳤다.
“청호야!”
청호를 부르고 잠깐 기다리니, 개들이 걸을 때 발톱 같은 것들이 부딪히며 나는 타닥타닥 소리가 들려왔다.
“부르셨슴까?”
“미안한데, 아랫층에서 내 휴대폰좀 갖다줄래? 내일 맛있는 거 줄게.”
“알겠슴다.”
청호는 내 말에 곧장 몸을 돌려 1층으로 내려갔다.
“청호한테 휴대폰 갖다달라고 하면 어떡해. 쟤도 쉬어야지.”
“괜찮아. 쟤는 오히려 뭐 시켜주면 좋아하거든.”
누나는 내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내가 귀찮아서 움직이지 않고 청호를 부려먹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뻔했다.
하지만 진짜였다. 청호는 군견출신이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무언가를 시키면 즐거워하는 것이 눈에 띄는 녀석이었다.
특히, 요즘은 누나를 지킨다고 가만히 있다 보니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시키주면 정말 좋아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해명을 하기 위해서 입을 열려는 순간, 다시금 청호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으그 그즈 읏슴드.”
휴대폰에 연결해둔 스트랩 부분을 물고 가져온 청호는 침대 위로 휴대폰을 툭- 떨궜다.
“또 시키실 거 있음 알려주십셔.”
“아냐, 너도 이제 가서 쉬어.”
“그럼 주무십셔.”
청호는 마치 경례라도 하듯이 오른쪽 앞 발을 슥 들어올렸다가 내리고선 밖으로 빠져나갔다. 심지어, 손잡이를 가볍게 물어 당기며 문까지 닫았다.
나는 그 모습을 황당하게 잠시 바라보다가, 누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청호의 행동이 신기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것 보다도 신기한 짓거리를 하는 동물들이 우리 집에는 차고 넘쳤다.
“자, 이거 봐.”
휴대폰에 저장된 영상을 재생해주었다. 오늘 촬영장에서 남캣이 영희와 크로마키 앞에서 이리저리 뛰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푸흡!”
누나는 그 영상을 보고서 곧장 웃음을 터트렸다.
영희가 그냥 평평한 땅바닥에 폴짝 뛰었다가 뒤로 넘어지려는 듯한 연기를 하고, 그 모습을 남캣이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장면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남캣이야 평지에서 넘어지려는 영희를 한심하게 본 것이 전부지만,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나와 누나에겐 충분히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기 충분한 장면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이런저런 사진이나 영상들을 누나에게 보여주며 오늘 내가 본 것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재미 있었겠네. 나도 보고 싶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같이 가자.”
“안 되지 않을까? 영화 같은 거 촬영하면 비공개로 하는 곳이 많다고 하잖아.”
“뭔 상관이야. 내가 그러겠다는데. 내가 바로 국내 유일의 대체불가 초능력자라는 말씀! 내 능력으로 도움받고 싶으면 이 정도는 해야줘야지.”
자랑하듯 어깨도 활짝 펴고 고개도 살짝 치켜드니, 누나가 배시시 웃음 지었다.
“그래, 그래. 우리 남편 대단하다.”
“……뭔가, 애 달래는 느낌인 건 착각이겠지?”
“그러엄~ 내가 남편을 애라고 생각하겠어?”
“뭔가 조금 찜찜한데.”
“기분 탓이야, 기분 탓.”
장난기 그득한 눈빛으로 내 가슴팍을 토닥이는 누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짓고서,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누나에게 들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들은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남캣이 영화를 찍을 수 있게 했다는 것이 연희 아줌마의 귀에 들어갔다.
“사장님! 진짜 남캣이 영화를 찍었어요? 그것도 크로마키 앞에서?”
“어……. 어떻게 알았어요? 어제 다녀왔는데.”
“정마알! 그 정도면 미리 말씀해주시지 그랬어요. 생각해둔 거 엄청 많았는데. 괜히 가능할까 고민하다가 버린 게 얼만지……. 버리지 말고 일단 모아둘 걸 그랬잖아요. 으으! 그랬으면 조회수 엄청 올라갈 영상을 만들었을 건데! 설마 동물이 연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제 잘못이긴 한데, 아무튼!”
“……예?”
나는 갑자기 다가와 이야기를 쏟아내는 아줌마의 모습에 살짝 황당함을 느꼈다.
“사장님. 남캣이 말고, 다른 아이들도 남캣처럼 연기할 수 있도록 하실 수 있으세요?”
“해보지는 않았는데,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요? 대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행동만 지정해주는 거나 다름 없으니까요.”
내 말에 연희 아줌마가 무척이나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가 다시금 1층으로 돌아왔다.
계단을 열심히 뛰어오르고 뛰어내리며 가빠진 숨을 씩씩거린 아줌마는 내게 몇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뭐예요?”
“한 번 봐요. 미리 생각해둔 기획서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게 그거 밖에 없어서 그거라도 봐줘요.”
기획서라는 말에 나는 곧장 종이를 바라보았다.
[펩드라마 제작 기획]“펩드라마는 뭐예요?”
“펫과 웹드라마의 합성어라고 할까요? 그냥 펫드라마 라고 봐도 되긴 하지만……. 아무튼! 한동안 웹드라마가 엄청 유행했잖아요. 웹툰 원작 웹드라마도 있고. 그래서 생각해본 거예요.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아이들이 많으니, 이 아이들로 드라마를 찍으면 어떨까- 하는 거죠.”
“오…….”
연희 아줌마의 말에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남의 영화나 드라마만 찍어줄 것이 아니라 내가 자체적으로 만들어도 되는 것이었다.
비록 장비의 열악함이라던가 하는 문제에다가, 배우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긴 했지만 연희 아줌마의 기획서대로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말 그대로 동물만 등장하는 드라마였으니 말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해오던 뮤튜브 촬영에 스토리가 붙는다는 것 외에는 차이가 없었다. 굳이 차이를 찾아내자면 자막으로 달아야 할 대사가 많아진다는 것 정도?
“진짜로 해볼까요? 괜찮은 거 같은데.”
연희 아줌마가 내게 준 기획서를 보니 정말 괜찮은 것이라고 여겨졌다.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스토리 부분도 방송국 출신으로 아는 작가가 많은 연희 아줌마가 해결 할 수 있다고 기획서에 적어두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는 작가들이 좀 있어요?”
“아는 작가야 많죠. 제가 방송국에서 제일 오래 있던 곳이 드라마국이니까요. 시나리오 작가 몇 명한테 물어보고 괜찮은 거 하나 받아올게요. 작가 보수 같은 부분은 그 때 이야기 해요.”
연희 아줌마는 나보다도 더 열성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장 휴대폰을 꺼내 아는 작가에게 전화를 돌리는 등, 펩드라마의 제작에 관한 준비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마냥 기다리고 있기만 할 수는 없다고 느껴졌다.
나는 손님들에게 애교를 부리며 간식을 약탈하듯 얻어내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연기를 가르쳤다. 연기를 가르친다기 보다는 내가 말하는대로 따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지만, 가르치면 가르칠 수록 영상을 찍기 딱 좋은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