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88
0087 은혜 갚기
잠시동안 배를 타고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한적한 해변이었다. 바다사자도, 다른 동물도 거의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 한적한 해변이었다.
물이 일렁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파도가 아주 잔잔하게 치고 있는 해변인 것이었다.
“여긴 어디죠?”
“해수욕장이라고 할까요? 아무래도 따로 먹을만한 것이 없다보니 동물들이 잘 접근하지 않는데다, 파도도 약한 곳이라서 물놀이 하기에 안성맞춤이거든요.”
가이드의 말에 나와 누나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지만 누나도 은근히 물을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매번 여름만 되면 바다나 계곡을 찾았는데, 소은이를 가진 이후로는 찾아가지 못했었으니 더더욱 반가웠다.
우리는 곧바로 물놀이를 즐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우리는 가족임을 티라도 내듯이 복장을 통일했다.
무릎보다 살짝 높게 오는 반바지와 레쉬가드를 셋이서 똑같이 입은 것이었다. 나와 누나는 물론, 어린 소은이까지 완벽하게 똑같아졌다.
“소은이 물놀이 할까?”
“노리!”
누나에게 안겨 있는 소은이는 열심히 팔다리를 파닥거렸다.
그 모습에 흐뭇하게 웃으며 사진을 찰칵, 찍은 나는 곧바로 소은이 전용의 튜브를 꺼내들었다. 크고 튼튼하고 뒤집힐 염려도 없는 튜브였다.
바다에 먼저 튜브를 띄우고, 소은이를 튜브에 앉히니 시원한 바닷물 느낌이 신기한지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는 소은이였다.
누나까지 물에 들어와 소은이가 앉은 튜브를 잡는 것에, 나는 곧바로 물속으로 잠수했다.
“뽀그르륵!”
그리고, 물속으로 잠수한 나는 곧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쬐끄마한 소은이의 다리와 발이 파닥파닥 열심히 움직이면서 물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조마냥 수면 위는 평온한데, 그 아래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수면 위로 올라가서 누나에게 알려주니, 수면아래로 내려간 누나도 나와 똑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소은이는 그저 우리가 웃으니 좋다고 따라 웃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동안 웃음을 터트리던 나와 누나는 소은이에게서 살짝 떨어져, 손을 뻗었다.
“소은아!”
“뿌아! 어마!”
소은이는 우리가 멀어지자, 곧바로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우리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어린 소은이가 쉽사리 다가올 수는 없었기에, 연결 된 줄을 살며시 당겨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꺄아앙!”
잠깐 멀어졌던 우리가 다시 가까워지니, 소은이는 좋다며 튜브를 팡팡 쳐대며 웃었다.
그 모습에 우리는 다시금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방수케이스 사길 잘했지.”
“응. 잘 샀네.”
방수되는 휴대폰인데 방수케이스를 산다고 타박했던 누나도, 바닷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에 무척 만족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소은이와 물놀이를 하며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으니, 뭔가가 내 허벅지를 스윽-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에 화들짝 놀라 물속을 내려다보니, 웬 밧줄 같은 것이 내 허벅지를 휘감기 직전이었다.
“뭐야 이건.”
“왜 그래?”
“아니, 이게 다리를 감더라고. 난 또 누나가 신호 보내는 줄 알았는데.”
“뭐래.”
누나는 어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이내, 내 다리에 휘감기고 있는 밧줄 같은 것을 풀어내는 걸 도와줬다.
“근데, 이거. 밧줄이라기 보다는 그물 같은 거 아니야?”
“글쎄? 그래도 이게 쓰레기라는 건 확실하지.”
아무리 봐도 목적이 있어서 자리한 것이 아니라,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해양 쓰레기가 분명했다.
쓰레기임을 확신한 나는 곧바로 그 밧줄을 휘휘 감았다. 하지만, 어느정도 감다보니 그 끝에 묵직한 것이 걸린 듯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 잠깐 이거 좀 말아올게.”
“다녀와.”
잠깐 자리를 벗어나기로 알린 나는 줄을 천천히 감으며, 줄의 끝 부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가슴팍까지 물이 차오르는 수준이 되며 주변에 자그마한 바위 섬 같은 것들이 보일 때 즈음, 그 끝을 찾을 수 있었다.
“엥……?”
그리고, 밧줄이 걸린 그 끝을 찾은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름이 아니라, 밧줄 끝에 웬 바다거북 한 마리가 휘감긴 채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려주시게…….”
“…….”
살려달라며 애처롭게 바라보는 바다거북의 모습에 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바다거북을 살며시 감쌌다. 살려주는 건 살려주는 거고, 영상은 좀 찍어야지.
밧줄을 대충 정리하고 바다거북을 감싼 나는, 그대로 녀석을 데리고 누나와 소은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건 또 뭐야?”
“무우!”
바다거북을 데려가니, 누나와 소은이의 반응이 확 갈렸다.
황당해하는 누나와, 한무로 착각하여 손을 뻗는 소은이였다.
“밧줄에 묶인 게 이 녀석이더라고. 소은아, 얘는 한무가 아니고, 바다거북이야.”
나는 누나의 물음에 가볍게 대답하며, 소은이에게 바다거북을 슬쩍 내밀었다.
가까이서 보며, 그제서야 한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소은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바다거북을 바라보았다.
특히,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닐 수 있는 형태의 다리를 가진 한무와 다른, 바다를 헤엄치기 위한 지느러미 같은 다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만지게 해도 되지?”
내 물음에, 바다거북은 소은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녀석의 앞쪽 다리 중 하나를 소은이에게 슬쩍 내밀었다.
“오아앙!”
소은이는 그런 지느러미 같은 다리를 슬쩍 만져보더니,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바다거북에게는 안타깝게도, 녀석이 소은이에게 간택되는 일은 없었다. 토끼즈나 페엥처럼 잡고 놓지 않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꾸우웅…….”
그에 아쉽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바다거북에 피식 웃은 나는,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가이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칼이나 가위 같은 것 좀 주실래요?”
“아, 예. 잠시만요!”
가이드는 급히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자그마한 칼 하나를 가져왔다.
그것을 건네받은 나는 곧바로 바다거북의 몸을 칭칭 휘감고 있는 밧줄을 탁! 잘라내버렸다.
그래도 엉킨 부분이 있어, 몇 번 더 칼질을 해주고 나니 바다거북의 몸을 감은 밧줄은 더 이상 없었다.
“고맙소이다!”
제 몸을 휘감은 밧줄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바다거북을 놓아주니, 허리에 몸을 슥슥 부비더니 그대로 휙하니 사라져버렸다.
거북이는 느리다- 라는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듯이, 녀석은 정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우아!”
지금까지 보던, 느릿하디 느릿한 한무와 전혀 다른 바다거북의 모습에 소은이는 놀란 듯이 박수를 짝짝 치며 좋아했다.
나와 누나는 또 그 모습을 보며 촬영을 이어갔다. 이런 걸 놓칠 수야 없지.
그런데, 그렇게 물놀이 겸 촬영 시간을 가지던 도중 또 다시 무언가가 내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
그리고, 내 다리를 건드리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순간, 볼 수 있었다. 해양 쓰레기에 칭칭 감겨 있는 바다사자와, 바다거북, 바다이구아나를 말이다.
“하핫!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기 오면 이걸 풀어준다고요?”
“…….”
바다거북 그 녀석이 소문이라도 낸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가이드에게 다시금 칼을 건네받고서, 나를 찾아온 녀석들에게 묶여 있는 해양 쓰레기들을 풀어주었다.
“고마우이!”
“감사!”
“고맙습니다!”
해양 쓰레기에서 풀려나게 된 녀석들은 내게 고맙다 말하고서는 재빨리 사라졌다.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물놀이 포인트로 알려진 탓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왔는데, 내 행동을 다 본 것 같았다.
덕분에 황당함은 사라지고 괜히 쑥쓰러워졌다.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쑥쓰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다시금 누나와 소은이와 함께 물놀이를 즐기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집중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또 다시 뭔가가 내 허벅지를 휘감았기 때문이다.
“아, 또 뭐…….”
또 다시 뭔가가 내 다리를 감는 것에, 나는 짜증어린 표정으로 물을 내려다 보았다. 또 어떤 쓰레기가 내 다리를 휘감고 있나- 하는 것이었다.
“으아아악!”
하지만 나는 이내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웬 문어 한 마리가 내 허벅지를 휘휘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그마한 것이 아니라, 수산시장에서도 쉽사리 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녀석이었다.
“꺄악! 무, 문어!”
내 비명에 시선을 돌린 누나 역시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워낙 커다란 놈이 내 허벅지를 감고 있으니, 물 밖에서도 그 모습이 훤히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왜 그러는 것이오!”
그리고, 그런 나와 누나의 비명소리에, 수면 아래에서 바다거북의 대가리가 쏘옥! 튀어나왔다. 한껏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네가 범인…… 아니, 범귀(거북 귀龜)였냐!
“이걸 왜 가져와!”
“보답을 한 것이오만…….”
“누가 보답 하랬냐!”
나는 안간힘을 쓰며 바다거북이 물어온, 내 허벅지에 감겨 있는 문어를 뜯어냈다.
덩치에 맞게 그 빨판이 당기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허벅지 살이 아플 정도였다. 문어를 떼고나니, 허벅지 살에 문어 빨판 모양으로 붉은 자국이 남은 상태였다.
“누가 이런 거 가져오래.”
“인간들이 잘 먹는 것, 아니오? 그래서 가져왔소만…….”
“끙…….”
나는 기껏 신경써서 보답하려 했다는 바다거북의 말에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딴에 보답하겠다는 것이었는데, 그걸 마냥 내팽겨치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곧바로 내팽겨치고, 도망쳐야 했다.
“보답하러 왔습니다!”
“받은 게 있으면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처음 해양 쓰레기에서 풀어준 바다거북 이후에 해양 쓰레기에서 풀어준 동물들이 저마다 보답이라며 물고기같은 것들을 더 잡아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바다사자 한 마리는 내 허벅지만한 물고기를 어떻게 물고온 건지는 몰라도, 보답이라며 가져온 상태였다.
“……다 필요 없어!”
나는 재빨리 누나와 소은이를 이끌고 해변에서 빠져나갔다. 여기서 더 있다간 해산물로 둘러싸이게 될 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