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 * *
그가 더듬거렸다.
“무슨, 너는, 왜, 말을,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 당연히 필요해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느냐, 병이 더칠까 봐 그런 것이라고….”
“애초에 좀 어울리는 핑계를 대셔야죠.”
단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손바닥만 한 소읍에 가도 공관 방문부터 시작하시는 어르신네가, 귀찮은 일 싫으니까 그냥 지나가자 하시는데 그걸 누가 믿어요?”
호란은 믿었다. 아프시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싶었다.
단이 더 말했다.
“아무리 몸이 안 좋으시기로서니, 딴 데도 아니고 다천관이잖아요. 북방 3성하고 중부의 연결 고리 역할이고, 함락된 벽명관하고도 가깝고. 이런 동넬 와서 비공식으로조차 관과 상황 공유를 안 하신다는 게…. 뭐 따로 이유가 있겠거니 싶더라고요.”
“설령 다른 이유가 있더라도, 놀이였을 리가 있느냐….”
시현이 분한 듯이 투덜거렸다. 단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진짜 이유가 뭐였든 충분히 즐기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당황하지.
시현은 졌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말했다.
“병이 더칠까 봐 그랬다는 게, 꼭 너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가라앉으니 평소처럼 사람 대할 자신이 없더구나.
하지만 단 말이 맞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타지 관인들에게 약한 데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법력이 사라져서 이미 문의 권위가 온전치 않은데, 더 흠을 잡혀서 무엇이 좋겠느냐. 자칫 과장된 소문이라도 퍼지면 민심까지 동요할지 모르고….”
“그런 걸 걱정하셨으면, 처음부터 말해주셨어도 되는데….”
호란이 시무룩하게 말하자 시현은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관과 관을 주재하는 땅인은 백성이 의지해야 할 처음 것이자 마지막 것이다. 아무리 타지라지만 관을 온전히 믿기가 어렵노라고 어찌 내 입으로 말하겠느냐.”
“말씀 안 하신다고 그걸 누가 모릅니까. 관인들이 믿을 치들 못 되는 건 제가 나리보다 훨배 더 잘 알죠.”
단이 핀잔했다.
“여튼, 몸 다 나으신 것 확실해질 때까지는 다천관 관인들하고 안 마주치고 싶으신 거지요? 문관이든, 법군이든.”
“그렇다. 끝까지 숨길 수는 없더라도 이름을 대는 것은 최대한 늦추고 싶구나.”
“그래도 그 네 발 달린 거석 일은 당장 조사를 시작하고 싶으신 거고요.”
“그래야지. 오히려 우리끼리 몰래 조사하는 것이 결과가 더 나을 수도 있다. 온의가 귀띔해준 말만 보아도 다천관 상층부가 심히 수상하지 않으냐. 그쪽이 무엇을 숨기려 할지 모르니 미리 단서나 증거를 갖춰둘 필요가 있다.
다천관에서 그 이상한 거석에 관해 무엇을, 왜 그리 오랫동안 숨겨왔는지, 거석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철저히 밝혀낼 것이다.”
“…? 네? 다천관 땅님들이… 거석하고 연관이 있다고요?”
갑자기 훅 건너뛴 이야기에 호란은 눈을 깜박였다.
시현과 단이 하던 말을 멈추고 호란 쪽을 보았다. 논의를 끊은 게 민망해진 호란이 변명했다.
“저도 그렇게 이상한 거석 얘길 비밀로 한다는 게 수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요! 그래도 위험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고….”
“음. 온의 어른이, 안 그런 척 이것저것 정보를 알려줬어. 속내야 모르지만 그 어르신 입장상 거짓 정보는 아닐 거야.”
단이 설명했다.
“네 발 거석을 언제 처음 발견했냐는 질문에, 군인으로서 알게 된 건 말할 수 없다고 대답했잖아. 근데 온의 어른이 법군 그만두고 상단 시작한 게 26년 전인가 그래. 그 어른이 군인일 때 이미 놈들의 존재를 알았으면 그게 대체 언제야? 우리 태어나기 전부터 그 거석들이 여기 있었단 얘기야.”
“그렇게 옛날부터?”
호란은 입만 벌렸다. 온성이 다른 말에 섞어 살짝 흘린 말이 그런 뜻인 줄도 몰랐지만 그 내용은 더 놀라웠다.
“아니 말이… 말이 돼? 저렇게 희한한 거석이 돌아다니는데, 그걸 몇십 년을 숨겼단 말이야? 그게 가능해?”
“그러니 수상하다 말하는 것이다.”
시현이 이야기를 넘겨받았다.
“그리 오래되었고, 온의의 암시로는 총령부뿐 아니라 총치부도 관여하고 있고, 그럼에도 이 사실을 다른 관성에 알리지 않았다. 팔대관성이 거석 토벌을 위해 연합회를 만들고 매해 기록과 연구를 공유한 지 40년이 넘었음에도.
이것은 명백히 조약 위반이다. 아무리 놈들이 형상이 다르고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해도, 거석인 줄 몰랐다고 변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이 말했다.
“피해는 고사하고 뭔가 이득을 봤을지도 모르지요. 어떻게 이용할 방법이 있었거나…. 더구나 온의 어른이 변고 때 혼이 안 났다고 언질했는데, 그건 그놈들이 마력이 사라진 후에도 관성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어요?”
“어어?”
호란은 연거푸 놀라기만 했다.
“변고 때는 온 동네 거석이 다 날뛰었잖아요? 그런데 왜 놈들만…. 그럼 그 거석은 돌 인간 편이 아니란 걸까요?”
“글쎄다…. 아직 무얼 추측하기엔 단서가 너무 적구나. 역시 그 금표 구역이란 곳부터 가보아야겠다.”
시현이 말하며 창호 쪽을 보았다. 아직 날은 꽤 남아 있었고 온성과 철보가 돌아오려면 멀었다.
시현이 고개를 돌려 단을 보았다.
“단. 네가 가진 불법 지도 중에 다천관 것도 있느냐? 홍은산 금표 구역의 정확한 경계도 나와 있느냐?”
“대놓고 불법 지도라고 말하지 말아주실래요?”
“불법인 것은 사실이 아니냐. 네 생각엔 언제 숨어드는 게 좋겠느냐? 역시 오늘은 너무 이를까?”
“왜 다 저한테 물어보시는데요….”
단은 불평하면서도 수레에서 지도를 가져오려고 방을 나갔다.
호란도 괜스레 따라 일어나 단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수렛간을 향하던 단이 뒤를 돌아보았다.
“왜?”
“아니. 그냥.”
“뭐 할 얘기라도 있어?”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오늘 좀 정신없어서…. 어제까지만 해도 안 그랬는데, 반나절 사이에 일이 너무 많이 생겼잖아.”
단이 수렛간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긴 하지. 근데 너 그런 거 별로 상관 안 하잖아. 뭐 특별히 맘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었어?”
호란이 입을 옴직거렸다. 호란은 단이 그로서는 드물게 온성을 좋아하고 신뢰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조금 있기는 한데. 이 얘긴 단이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어. 알면 충격받을지도 모르고….”
“뭔데? 그냥 말해.”
단이 좀 답답한 표정을 했다. 호란이 어물어물 말을 꺼냈다.
“있잖아, 온의 나리… 진짜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분 맞잖아.”
“좋은 분인 줄 알았는데, 쓰레기 아버지였어!”
“그렇게 쩌렁쩌렁하게 말하지 마!”
바로 앞 광에는 유가 있고 담 너머엔 통행이 있다. 단은 황급히 수렛간으로 호란을 끌고 들어갔다.
호란이 자초지종을 말할 것도 없이, 단은 온성에게 자식이 하나 더 있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방씨 온의가 딸 챙기느라 아들에게 의절당한 건 상단 시절부터 유명한 이야기였다고 했다.
물론 단은 호란이 왜 정색이 됐는지도 눈치챘다. 그가 곤란한 듯이 말했다.
“온의 나리 일은, 서형이랑 길이네하곤 좀 다르지 않냐…. 그 아들이란 사람은 대갓집 땅님이잖아. 가문도 있고 재산도 있고. 다천관 방씨 직계가면 얼마나 부잔데.”
“그렇게 따지면 서형도 최길네 집에 돈 갖다줬다고 했잖아. 그것만으로는 안 되니까 단이 서형더러 쓰레기라고 그런 거 아냐?”
“그건… 그런데. 그래도 경우가 좀 다르지. 길이랑 길이 아버지는 반민이고.”
“땅님들도 부모 양쪽한테 다 책임 있는 건 반민이랑 똑같지 않아? 온의 나린 혼인까지 했으니까, 오히려 서형보다 더 책임이 큰 거 아니야?”
호란은 웬일로 따박따박 따지고 들었다. 단이 투덜거렸다.
“넌 왜 그렇게 서형 편을 들고 싶어하는데….”
“서형 편을 드는 게 아니야. 서형이 쓰레기 어머니면 온의 나리도 쓰레기 아버지란 얘길 하는 거야.”
“일단은, 남의 집에서 집주인한테 쓰레기 쓰레기 말하는 걸 그만두지 않을래?”
호란이 엄숙하게 말했다.
“단. 내가 온의 나리가 싫어서 이러는 게 아냐. 나도 온의 나리 좋아해. 하지만 사람은 이중잣대를 하면 안 된다고 했어.”
“그런 소린 또 어디서 주워들었어….”
“전에 시문 님이 가르쳐 줬어. 이럴 때 쓰는 말 아니야?”
“이럴 때 쓰는 말 맞아. 젠장.”
단은 떫은 얼굴을 하더니 척 팔짱을 꼈다. 그가 결연하게 말했다.
“어쩌라고? 길이는 내 친구고, 그 아들이란 양반은 모르는 땅님 어르신네잖아. 이중이건 삼중이건 알 게 뭐야. 난 하나도 마음 안 쓰여.”
호란이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단. 그런 걸 편파라고 해.”
“나도 알아!”
단이 버럭 성질을 내서 호란은 일단 퇴각하기로 했다. 호란은 단을 남겨두고 먼저 수렛간을 나왔다.
시문 님은 이중잣대를 가르쳐주면서 모든 일에 같은 잣대를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그건 호란도 알았다.
호란의 아빠도 호란이 다섯 살 때 마을을 떠나서 두 번 다시 안 돌아왔지만 호란은 아빠를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는 하란이 아버지랑 사귀기 전에 아빠랑 확실하게 헤어졌고 그때 자기가 호란을 책임지기로 했다.
엄마는 책임을 졌고 호란은 크면서 아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온의 나리의 아들이란 사람은 자기 아버지한테 화나고 섭섭한 게 많은 것 같았다. 그건 호란과는 다른 잣대로 봐야 했다.
최길도 하늘인을 덮어놓고 싫어하는 데는 분명 서형에게 화난 탓이 있을 것이다.
호란은 곰곰 생각하면서 방으로 돌아왔다. 곧 단이 지도를 가져왔다.
* * *
그날 오후 느지막하게 호란과 단은 홍은산을 올랐다.
일부러 몸을 숨기지 않고 길 난 데로 당당하게 갔다.
금표비 앞에는 아까와는 달리 하늘인 보초가 한 사람 서 있었다.
험한 표정으로 가로막는 보초에게 단은 태연히 온성의 이름을 팔았다. 낮에 떨어뜨리고 온 밤 자루를 찾으러 왔다는 핑계였다.
“아이고, 온의 나리님이 또? 아무리 그 나리님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보초는 온성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한숨을 쉬며 난처해했다.
고개를 저으면서도 표정은 바로 풀리는 것이, 아무래도 온성이 이 동네서 모두에게 친절한 무법자 노릇을 하고 다닌 게 하루 이틀이 아닌 모양이었다.
“금방 들어가서 자루만 들고 나올게, 응? 나 진짜로 빨라! 아무한테도 안 들키고 순식간에 나올 수 있어!”
호란이 사정하는데 옆에서 단이 끼어들었다.
“호란 나리는 안 됩니다요. 제가 가야죠. 아까 산에서 높으신 나리님들 잔뜩 보셨다지 않았어요? 법군 나리님들이 얼마나 예리하신데, 관병 아닌 하늘인 나리가 돌아다니시면 기세 때문에 바로 들키지 않겠습니까? 제가 살금살금 가서 조용히 들고 나오겠습니다요.”
“단은 느려서 안 돼. 꾸물꾸물하다가는 순찰한테 걸릴걸.”
“아이고. 이왕 걸릴 거면 하늘인 순찰꾼 나리한테 걸리는 게 낫지요. 땅님 윗전한테 걸렸다간 들여보내주신 이 나리 입장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야, 나 너희들 들여보내준다는 소리 한마디도 안 했거든!”
둘의 수작을 보고 있던 보초가 성질을 냈다. 그래도 정말로 화낸 것은 아니었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고 말했다.
“휴…. 별것도 아니고 밤 몇 자룬데, 그깟 일로 온의 나리님한테 정 없게 굴기도 싫고. 그쪽 몫꾼이 후딱 갔다 오쇼! 더 줍거나 하지 말고 있는 것만 갖고 나와!”
“응! 그럴게!”
호란이 냉큼 대답했다. 하지만 단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랬다가 땅님 나리들에게 들키면….”
보초가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됐어. 진작에 다들 내려가셨어! 얼른 다녀오기나 해!”
“응! 진짜 고마워! 밤 나눠줄게!”
호란은 후다닥 산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까는 온성에게 맞춰서 느긋하게 걸어갔던 길이라, 호란이 맘먹고 달리자 정말 코앞이었다.
호란이 채웠던 커다란 밤 자루는 두 개 다 원래 둔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노끈으로 매어두었던 자루 입구는 활짝 열리고 하나는 반쯤 쏟아져 있었다.
누가 안을 확인해본 것 같았다. 아마 오전에 산을 수색한 하늘인 대열일 것이다.
쏟아진 밤을 훅훅 쓸어 담자 자루가 도로 꽉 찼다.
내용물을 확인만 하고 손대지 않은 것을 보면 군기가 엄정한 대열이었다.
반면 금표비 앞의 보초병은 맡은 몫 하는 것이 영 허술했다. 긴장감도 없어 보였고, 보초 서는 데 짝조차 안 지었다.
수색대와 소속이 다른 건 물론이고 거석이 나타난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중요한 비밀이 있는지 모르지만, 몫꾼을 믿지도 않으면서 위험한 상황을 숨기고 몫을 맡기다니. 호란은 조금 화가 났다.
떠나기 전 호란은 거석들이 처음 나타난 장소를 한 번 더 둘러보았다.
굽이진 산면에 나무가 꺾이고 수풀이 짓밟힌 자국이 산속으로 한참을 뻗어 있었다.
놈들은 바깥이 아니라 금표 구역 더 깊은 곳에서 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 것을 다 본 호란은 자루를 들고 한달음에 돌아왔다.
금표비를 떠날 때 단이 눈짓해준 걸 보면 시간을 끌다가 올 필요는 없었다.
단을 붙잡고 뭐라 떠들고 있던 보초가 호란을 보고 사람 좋게 웃었다.
“진짜 빨리 왔네.”
“요 앞이었거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