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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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의 다르바드
새로운 땅에 대한 조사단이 꾸려지기까진 보름 정도가 걸렸다.
그 사이 대일 길드가 데리고 있던 바다 길드의 포로들이 전원 무사히 부산 길드성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생각처럼 모진 고초를 당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선 풍신 길드에 있던 사람들보다 더 나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언어적인 모욕은 있었어도 육체적인 폭력이나 강간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바다 길드는 그간의 아픔을 잊고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자칫 영원히 헤어질 뻔했던 이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릴 때는 그것을 지켜보던 김유린까지 눈가를 훔치며 코를 훌쩍거렸다. 다소 무뚝뚝한 성격의 신소진도 코끝이 찡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눈물의 상봉이 끝난 후에는 곧바로 길드장 선출이 이뤄졌다. 새롭게 뽑힌 이는 30대 후반의 박상영이라는 남자였다. 직업은 마법사로 원래 바다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다는 모양이다.
마른 체구에 안경을 쓴 모습이 약간 신경질적으로도 보였으나, 세현을 비롯한 류한의 인원들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모습은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여태껏 임시 길드장을 맡던 문하랑은 부길드장을 맡게 됐다. 성을 점령할 때 보여준 활약상과 지금까지 무난하게 사람들을 이끌고 다독여온 모습 덕이었다.
세현은 박상영을 두 번째 휘하 영주로 임명했다. 그리고 길드포인트를 지원해 병영 시설을 대폭 업그레이드 시켰다.
풍신과의 전투에서 인원이 줄어든 바다 길드가 이곳의 치안과 최소한의 방어를 유지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조치였다.
그렇게 대략적인 안정화를 끝냈을 때쯤, 마침내 조사단이 출발할 시기가 다가왔다.
세현은 이번에도 김유린, 박수진과 신소진을 조사단에 포함시켰다. 김인환과 권태수는 각각 대전과 부산 성에서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 빼낼 수가 없었다. 부길드장 혜진 역시 이런저런 일이 많아 데려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구성된 총 30명의 인원들이 새로운 땅의 중심부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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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면식이 있는 시노부가 세현을 맞이하며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대일 길드는 부산 길드성에 사절로 왔던 30명의 인원 그대로였다. 서로가 조사단을 30명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시노부 일행이 그대로 조사단이 된 듯했다.
“이쪽은 쇼후쿠테이 소조라고 합니다. 저희 조사단에서 부단장을 맞고 있으니, 제게 뭔가를 말할 상황이 아니라면 이 친구에게 말하시면 됩니다.”
그 소개에 반짝거릴 정도의 대머리가 인상적인 험상궂은 근육질 남자가 슬쩍 고개를 숙였다.
방패와 워해머, 그리고 전신에 두른 묵빛의 금속 갑옷에서 단단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직업은 전사 혹은 기사인 듯하다.
“좁지 않은 지역이니 전부 돌아보는 것은 힘들고, 특징적인 지역부터 살펴보는 것으로 하죠. 혹시 갖고 있는 정보가 있으면 미리 교환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데.”
세현이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나침반 하나를 거내들었다. 스존 나아디인의 나침반이었다.
“그게 뭡니까?”
“중요한 물건의 위치를 나타내는 물건이다. 마침 지형도 불룩하니 여기 중앙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면 되겠군.”
이 나침반에 의지해서 한 바퀴만 돌아도 숨겨진 중요한 아이템은 찾아낼 수 있다. 세현은 시노부에게 나침반을 건네 옵션을 확인시켰다.
“이건…… 대단한 물건이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필드형 던전을 정리하고 얻었지. 더는 구할 수 없을 거다.”
그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었다.
“대단히 귀한 물건이군요. 필드형 던전 정벌이라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현은 어깨만 으쓱했다.
서로의 소개가 끝나고 조사단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가 일정 거리를 벌린, 그러나 아주 떨어지진 않은 기묘한 간격을 유지한 채였다.
양측은 한동안 아무 대화도 없이 탐사 작업에 열중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이 지나자 슬슬 잡담을 나누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미 몇 차례나 풍신과 대일 길드원들이 왔다갔다 하며 괴물들을 죽인 탓에 출몰하는 적대적 존재도 없었던 탓이다.
김유린이 슬그머니 세현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사부님, 있잖아요.”
“뭔데?”
“꼭 쟤네들하고 같이 조사할 필요가 있어요? 그냥 우리끼리 몰래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세현은 미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분쟁이 일어나서 좋을 게 없다. 지금은 내실을 다져야 할 때야.”
“그래도 꼭 싸움이 일어날 거란 보장은 없잖아요?”
“저들이 먼처 찾아왔고, 우리는 포로들을 돌려받아야 할 상황이었지. 협약을 맺은 이상 그걸 어겨서 좋을 게 없지 않느냐. 왜, 여기서 뭔가를 발견하면 나눠야 할까봐 걱정이라도 돼?”
“음…… 그런 것도 있고, 그냥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요.”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걸리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세현은 그게 어떤 마음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원주인 격이었던 풍신을 처리한 건 우리인데, 어째서 저들과 함께 이곳을 조사를 해야 하는지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했다. 그녀가 풍신 몰락에 일익을 담당한 장본인이기에 특히 그럴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해는 가나 더 좋고 유리한 길이 있지 않았을까 미련이 남는 모양이다. 그래서 세현이 말을 덧붙였다.
“너무 불만스럽게 생각할 필요 없다. 뭔가 중요한 게 나오면 우선적으로 우리가 가질 생각이니까.”
“그래도 돼요?”
“포로들을 돌려주는 대가로 시마네 현과 이곳에 대한 조사에 껴주는 것까지 양보한 상황이니,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 역시 할 말이 있지.”
또한 그걸 관철시킬 힘도 있다. 만약 수작을 부려온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주면 될 일이다.
“그냥, 복잡하게 처리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사부님이 싹 정리하는 건요?”
생각 없이 그런 말을 주절거리는 김유린의 머리에 꿀밤이 작렬했다. 아야, 하며 머리를 문지르는 그녀에게 질책이 떨어진다.
“명분이 있다면 모를까, 나보고 이유도 없는 학살을 저지르란 말이냐?”
“풍신하고 동맹이었던 놈들이잖아요.”
“그것만으론 부족하지. 저들이 먼저 사람들을 보내 평화적인 협상을 제안한 상황에서, 그것도 포로들 전원이 무사히 양도되기까지 했는데 갑자기 쳐들어가 전부 죽이면 무슨 말이 나올 줄 알고?”
이제는 슬슬 생존자들이 나름의 자리를 잡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한 개 집단 전체를 이유도 없이 학살하면 당장 사방으로 소문이 퍼질 게 뻔했다.
다른 집단에게 언제든지 공격당할 수 있는 빌미를 주면, 지금 당장은 몰라도 미래에 반드시 피곤해진다. 여태까지 류한이 걸어온 행보와도 어긋나는 일임은 물론이다. 집단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했다.
물론 그는 아무도 모르게 대일 길드를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게 없었다. 정체를 감추고 그들을 처리하면 나중에도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대일 길드가 가졌던 영토와 각종 자원들에 대한 소유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회수하지 못하고 방치된 그것들은 근처의 또 다른 세력에게 들어갈 것이다. 고생해서 남의 배를 불려주는 꼴이다. 게다가 그놈들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에 따라 대일보다 더한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김유린이라고 마냥 아무것도 몰라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의문을 풀어내려는 생각일 것이다.
세현 역시 그걸 알기에 차근차근 정리해서 설명을 해줬다.
“정리하자면 그렇다.”
“음……네. 이제 좀 이해가 돼요.”
그녀는 세현의 결정이 최선에 가깝다는 것을 납득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는 것보단 확실하게 듣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때, 아무런 의미 없이 천천히 회전하던 나침반이 어느 한쪽 방향에 고정됐다. 그것을 민감하게 알아챈 세현이 걸음을 멈추며 손짓으로 신호했다.
류한의 전원이 즉각 멈춰 섰다. 대일의 조사단 역시 한 발 늦게 걸음을 멈췄다.
“뭔가 감지됐습니까?”
“동쪽 방향이군.”
세현이 나침반을 슬쩍 시노부에게 보여줬다.
당연하게도, 조사단은 곧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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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십 분 정도에 걸쳐 도착한 곳은 야트막한 분지처럼 생긴 지형이었다.
이곳까지 오며 한차례 원숭이처럼 생긴 주황색 등급 괴물들을 조우했다. 허나 정예로만 이뤄진 60명의 조사단들에겐 한 끼 식사거리도 되지 않는 놈들이었다.
분지의 가운데에는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그냥 나무처럼 생겼지만, 다시 자세히 살피면 그 나무 안에 한 채의 집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창문과 문 등이 덩굴식물에 가려져있었기에 그냥 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집이군.”
세현이 나침반의 거센 진동을 느끼며 앞장서서 이동했다. 그러다 문 앞에서 잠시 멈추더니 뒤쪽의 시노부를 쳐다본다.
“먼저 들어가볼 텐가?”
“양보해주시면 고맙지요.”
세현이 뒤로 물러섰다. 그를 지나친 시노부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세현이 뒤따랐다.
내부는 좁고 단촐했다.
완전히 썩어버린 탁자와 의자, 그리고 먼지와 각종 이끼들만 보인다. 하지만 나침반은 여전히 진동하고 있었다. 바늘의 방향은 세현이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180도씩 휙휙 돌았다.
위치가 이곳이 맞다면 미지의 물건이 있는 장소는 위나 아래라는 뜻이다. 위쪽은 다시금 살펴도 완전히 막힌 나무의 몸체일 뿐이었으니, 남은 것은 아래 뿐이다.
세현은 발을 사용해 두텁게 깔린 이끼를 헤집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흙더미에 가려졌던 입구의 문짝이 드러났다.
석재로 이뤄진 그 문짝은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다.
오랜 세월 덕인지 단단히 굳어버린 문을 강제로 힘으로 뜯어내듯 열자, 어슴푸레 아래로 뻗은 사다리가 보였다. 워낙에 낡아서 내구도를 신용할 수 없는 그 사다리는 꽤 긴 거리까지 아래로 뻗어 있었다.
“흐음.”
세현은 아래 구석구석을 살핀 후 바깥에서 대기하던 류한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기다려라. 살피고 올 테니까.”
여럿이 들어가기엔 너무 좁은 통로였다. 시노부 역시 대일 길드의 나머지 인원들에게 대기하란 명령을 내렸다.
“이번엔 내가 먼저 가지.”
“알겠습니다.”
세현이 앞장서서 입구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는 사다리의 양쪽을 잡고 미끄러지듯 빠르게 내려갔다. 시노부 역시 세현과 같은 방법으로 쭉 아래로 내려섰다.
사다리가 있던 좁은 장소와 이어지는 짧은 통로가 있었다. 다행히 사람이 허리를 펼 수 있을 정도는 되는 통로였다. 이삼 미터 정도 되는 그 통로를 지나자 20평 정도 되는 공동이 드러났다.
천연 암석처럼 보이는 바닥과 벽면에선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져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시야를 확보하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드러난 그곳에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을 증명하는 썩어버린 책들이 가득 들어찬 책장들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가구들이 있었다. 무언가 완전히 말라버린 내용물을 담고 있는 비커 같은 물건도 보인다.
세현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물건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바스라진 그곳에서, 썩어 무너지기 직전의 책상 위에 단 하나의 물건이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래시계였다. 놀랍게도 안쪽의 황금빛 모래가 아직까지 사락사락 떨어지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한 손으로 쥐기에 벅찬 정도, 안쪽의 모래와 유리를 제외한 재질은 은빛과 푸른빛이 회오리치듯 뒤섞인 기묘한 금속이었다.
============================ 작품 후기 ============================
퇴고를 마치고 업로드 하고픈 욕심에, 정신을 차리니 벌써 2시가 넘었군요. 크흡 ㅠ 이렇게 오늘도 지각을 합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