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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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달려드는 군브룩에게 재차 마법의 창들이 쏘아져 시간을 버는 사이 베이마라의 손이 바쁘게 움직여 허공에 커다란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손끝을 따라 은빛의 기운이 퍼진다. 실타래 같은 그 기운은 꽤 실력 있는 마법사라도 한두 번 봐서는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가진 바 힘은 약해졌으나 갖고 있던 솜씨까지 무뎌지진 않았다. 순식간에 고위급 마법을 짜낸 그가 손을 뻗어내자, 완성된 마법진이 커다랗게 확대되며 선명한 은색 구름을 뭉게뭉게 뿜어냈다.
그것은 군브룩이 뭔가를 하기도 전에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며 근처의 돌무더기들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어어 하는 사이 일정한 형체를 갖추고 더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근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두 기의 골렘, 그 위로 은은하게 흐르는 녹색빛 기운이 머리 부분에서 한 쌍의 눈처럼 빛나며 군브룩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 이런 잡스런 인형으로 나를 막겠다? –
군브룩이 으르렁거림과 함께 대검을 고쳐 잡았다.
목표물을 확실히 인식한 두 기의 골렘이 땅을 울리는 소리를 내며 돌진을 시작했다. 덩치에 걸맞지 않은 빠른 속도, 순식간에 접근한 돌덩어리 주먹이 위협적인 파공성을 동반하고 그를 찍어버릴 듯 내려쳐진다.
아래서부터 올려쳐진 대검과 충돌한 주먹이 굉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또 다른 골렘이 제 몸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 않고 달려들어 시간을 버는 사이, 어느새 부서졌던 주먹이 복원된 처음 골렘이 다시 달려들어 군브룩을 압박했다.
잡스런 것이라 평가절하하긴 했으나 실상 골렘은 무시해버릴 만큼 약하지 않았다.
생명체와는 그 질량부터가 다른 덩치들이 어지간한 오크 전사보다 빠른 속도로 제 몸 돌보지 않고 달려든다. 군브룩은 그런 골렘보다 더한 괴력을 보여주며 돌덩어리 골렘들의 주먹과 팔 등을 달려드는 족족 박살내고 있었으나, 그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골렘 뿐만이 아니었다.
메아리치는 캐스팅과 함께 생성된 마법진에서 갖가지 마법들이 쏟아진다. 그중 절반은 군브룩을 노리고, 나머지 절반은 골렘들을 향해 떨어졌다.
[크하아아악!]쿨타임이 돌아온 예의 고함이 터지며 그를 노리고 쏘아지던 무형의 마법들이 대부분 깨졌다. 남은 몇 개의 마법들 역시 마력을 담아 휘두러진 대검과 날렵한 움직임에 무위로 돌아갔다.
허나 그 덕에 골렘들에게 향한 마법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았다. 애초에 군브룩을 노린 마법들은 그를 방해하려는 의도였을 뿐, 실제 적중된다 해도 그다지 위력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마법이 스며들자 골렘들의 전신으로 선명한 청백광이 번쩍이며 위협적인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군브룩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유연하게 몸을 틀어 피해내자, 스치듯 지나치는 골렘의 주먹에 공기가 타오르며 불꽃을 튀긴다.
속도는 물론 담긴 바 힘까지 강해졌다. 게다가 번쩍이는 스파크를 보건데 전격 속성의 힘이 담겨 함부로 방어하기도 힘들 듯했다.
쉽지 않다. 군브룩이 자신도 모르게 뒤편에서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는 베이마라를 쳐다봤다. 골렘 두 마리에게 발이 묶였으니 상대의 마법을 방해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여태껏 그가 상대했던 주술사들이 제 부하들을 앞세워 시간을 벌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그를 방해하는 골렘들이 단숨에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상대의 주술 실력 역시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 크흐…! –
어쩐지 웃음이 나온다.
계속해서 무섭게 달려드는 골렘의 공격을 피하며 군브룩은 들고 있던 대검의 손잡이를 더 강하게 붙잡았다. 실로 오래간만에 강렬한 위기감이 그의 전신을 오싹하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는 더 강해지리라.
어쩌면 최후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는 전투를 맞이하며, 군브룩은 커다란 포효와 함께 전력으로 대검을 휘둘렀다. 달려드는 골렘의 주먹과 그의 검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빛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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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내뱉는 호흡을 따라 세현의 주위를 감싸고 돌던 세 자루의 검이 속도를 더한다. 청월이 아닌 핵심 길드원들에게 우선적으로 배급되는 중인 ‘류한의 장검’들이었다.
그는 이기어검의 새 지평을 열고 있었다.
사실 예전 무림에서도 시도해본 적 있는 것인데, 그때는 무슨 수를 써도 안 되던 것이 이제는 가능해졌다. 수호룡 레야와 싸우며 얻었던 깨달음 덕이다.
그때 이후로 그가 누리는 모든 종류의 감각이 한차원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평소에는 크게 느껴지지 않으나, 지금처럼 일반적인 무림의 상식으로 불가능한 일을 시도할 때 이전엔 몰랐던 것을 느끼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실로 열심히 수련 중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명확한 목표가 보이는 수련이다. 예전 무공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할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의욕이 불탄다.
며칠 전엔 두 자루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세 자루까지 그럭저럭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심지어 일정 수준의 검술까지 펼칠 수 있었다.
물론 능숙하진 못했다. 집중력은 한 자루 청월을 다루는 것의 수십 배가 들어가는데, 당장 위력을 보면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허나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빠르게 수련의 성과를 내고 강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에 불과하다.
특히나 그는 지금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알려지지 않은 미답지를 개척하는 중이었다. 조심 또 조심해야만 한다. 잘못된 길에 빠지거나 나쁜 습관이라도 든다면 그것을 돌이키기가 굉장히 어려울 테니까.
그의 주위를 천천히 회전하던 세 자루 검에서 희미한 자색 강기가 서렸다. 그리고 일렬로 나란히 서더니 느릿한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투명한 사람 셋이 나란히 서서 검을 들고 휘두르는 듯한 모양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똑같이 움직이던 세 자루 검이 제각각 다른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다르게 움직이면서도 전혀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는 조화로운 움직임, 허나 잠시의 시간이 더 흐르자 세 검의 움직임이 약간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세 자루 검을 각기 다르게 움직이는 일이다. 그것도 그냥 들고 하는 것이 아닌 심상으로 움직이는 이기어검으로.
중간에 흐트러진 것을 자책할 게 아니라 여기까지 해낸 것을 대견하게 여겨야 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은 세현은 움직임을 멈춘 검들을 회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체를 단련하는 종류의 훈련이 아니기에 얼마나 오래 수련하는가는 중요치 않다. 되려 하루 한 시간 남짓 짧게 하는 것이 더 성과가 좋을 수 있었다.
크든 작든 깨달음이란 것이 때로 그렇다. 잡으려 하면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검을 무한의 주머니에 수납하며 수련장을 나선 그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식사를 하고 있던 아엘라가 그를 맞는다.
“앉아 있어.”
일어서려는 아엘라를 앉히며 다가간 세현이 옆자리에 앉으며 잠깐 그녀의 배를 살폈다.
최근 며칠 새에 살짝이지만 부풀어오른 배가 보인다. 그날 아엘라가 꿨던 다소 황당하고 거창한 꿈은 세현의 혹시 했던 예상처럼 태몽이었다.
“얼마나 걸린다 했더라?”
– 한 달 정도면 낳을 듯해요. 그리고 알에서 나올 때까지 다시 한두 달 정도 걸릴 테고요. –
벡스 종족은 임신을 한다.
그리고 인간과는 종족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듯, 태아를 낳는 것이 아닌 알을 낳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벡스 아기가 알을 깨고 태어난다. 임신에서부터 탄생에 이르기까지 길어야 세 달 정도 걸리는 셈이다.
더 특이한 점은 모든 벡스들의 임신 기간과 알이 부화하는 시기가 편차가 심하다는 것이다. 다른 종족의 남성과 교류하여 아이를 낳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이름은 생각했어?”
– 아직이요. 정말 저 혼자 지어도 되는 건가요? –
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볍게 재촉하자, 아엘라는 그간 생각해둔 이름 몇 가지를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모두 벡스 종족의 고유명사로 된 이름들이다.
새로 태어날 아이는 세현의 자식이기도 하나 벡스 종족을 대표하는 족장의 딸이기도 하다. 이곳 방식의 이름보다는 벡스들의 이름을 받는 것이 맞았다.
“난 세 번째가 괜찮은데.”
– 저도 그게 마음에 들긴 하지만…… 아직은 정하지 않을래요. 더 좋은 이름이 떠오를 수도 있잖아요. –
잔잔한 분위기에서 나누던 대화는 곧 서울에 간 류한의 지원군들에 대한 화제로 바뀌었다.
“방어에 성공하면 공격을 준비하겠지. 놈들의 기세가 꺾였을 때 역공으로 소탕까지 할 수 있다면 큰 이득이니까.”
세현은 대통령 차석원의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점점 시민들이 힘을 얻어가며 정치적인 입지가 흔들리는 이때, 강 건너 서울 북쪽을 점령하고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괴물들을 소탕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의 걱정은 사라진다.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훌륭한 성과이자 업적이기 때문이다.
– 그때도 도와주실 건가요? –
“그럴 생각이야.”
차석원은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컨트롤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를 도와주는 건 결과적으로 세현과 류한을 돕는 일이다.
그리고 차석원 뿐만이 아닌 서울 전체에 류한의 영향력을 넓히는 일이기도 했다. 또한 파견된 길드원들에게 전투경험을 쌓아주는 것은 물론, 안테아와 베이마라의 실력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기여도를 쌓게 함으로써 전단장 급으로 배정하는 일도 매끄러워진다.
원래라면 싸우는 과정에서 희생이 날 수 있다는 위험부담이 있겠지만, 레야가 있으니 이것은 이득만 있는 싸움이 된다.
세현은 생각하는 것들을 아엘라에게 듣기 좋은 표현으로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던 그녀가 약간 묘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본다. 류한 길드의 내부사정이랄 수 있는 이야기를 세현 개인의 의도까지 풀어서 설명해주는 일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 기색을 알아챈 세현이 희마하게 웃었다.
“네가 괜찮다면 널 아내로 맞고 싶어.”
– 네, 네? –
“얼마 후면 아이가 태어나겠지. 어디 가서 내 아이가 사생아라는 소릴 듣게 하고 싶지 않아. 물론 아엘라 네가 악의어린 소리를 듣는 것도.”
여태까진 아엘라와 세현의 관계를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세현도, 아엘라도, 그리고 둘의 관계를 아는 주요 간부들도 모두 침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오래 걸리지 않아 둘이 어떤 관계인지 알려질 수밖에 없다. 세현의 명성이 대단한 만큼 그녀는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유명하고 대단한 이의 흠결을 떠들어대기 좋아하니, 정식으로 부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그녀가 아이를 낳는다면 필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 ……아내라 하면, 정식으로 부부가 되자는 건가요? –
“그래. 너무 갑작스레 이야기해서 미안하군. 하지만 가볍게 생각하고 말하는 건 아니야.”
실상 뭔가 특별한 분위기를 잡고 작든 크든 이벤트와 함께 결혼을 이야기하기엔 세현의 감수성이 너무 닳고 낡았다. 하지만 당황하면서도 기쁜 듯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아엘라를 보니 그렇게까지 나쁜 프로포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엘라와의 결혼은 최근부터 염두에 두며 누이인 혜진과도 상의한 적 있는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세현의 생각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 이렇게 애매한 관계로 계속 지내는 것은 썩 좋지 않다.
일반적인 커플과는 전혀 다른 관계로 시작했기에 우려스런 부분이 없지 않으나, 그래도 그는 아엘라라면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네 생각은 어때?”
– 저는 좋아요. 다만…… 괜찮으신가요? –
뭐가 괜찮은지 전부 생략된 물음, 하지만 세현은 곧바로 알아듣고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고 골치아플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것이 원래 그러니까.
허나 지금까지 그가 봐왔던 아엘라라면 이미 마음이 노쇠한 그를 다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가 생겨도 서로 잘 조율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코멘 하나를 봤습니다. 자유연재로 전환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연중테크를 탄다고 꽤 심한 소리를 하시더군요.
완전 악플러는 아니고 최근까지 좋은 코멘 달아주시던 분이셨습니다. 아마 제가 쓴 아버지 수술 관련 후기를 못 보고 그러셨을 게 분명한데……
마음이 좀 많이 아프더군요.
독자분들 즐겁게 읽으시라고 글 올려놓고 후기에 이런 거 써도 되나 지웠다가 썼다가 하고 있네요.ㅋㅋ 그냥 좀 서럽기도 하고 그래서 하소연이라도 해봤습니다. ㅠㅠㅋㅋ
부디 이번 화도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꾹! 부탁드리면서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