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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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성 스탄헤이드
“시스템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파견을 나올 정도라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긴밀한 관계인 듯한데.”
대답은 없었지만 들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천계는 지구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에레도스와 접촉한 듯하다.
그에 별 감정은 없다. 오히려 안심이었다. 에레도스라는 것이 오직 세계의 파멸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하나의 증명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시험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대비하고 또 대비하며 견디다 보면 마침내 달콤한 결실을 볼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위해선 세현 그 자신의 무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길드의 성장 역시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개인이 강한 것은 한계가 있다. 무력적인 부분에서 세현은 그 어떤 보라색 등급 괴물이 나타나도 압도할 자신이 있지만, 놈이 이전의 악마와는 다르게 정면승부를 철저히 회피하며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동시다발적인 공세를 펼칠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니 류한은 최소한 보라색 등급 하나 정도는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야 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현재의 성장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머지 않아 이뤄질 꿈이다.
천공성은 그러한 강함의 한 축이 되어줄 것이다.
“전직소를 이용하는 조건은 뭐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보신 전직소 내부의 포탈을 통과해서 시험을 받으면 되고, 통과하면 전직할 수 있습니다. 실패하면 90일 후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전직한 직업이 마음에 안 들면?”
“선택 전 전직했을 경우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무를 수 없는 선택이나 결정은 개인의 몫이고, 나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자신의 경솔함과 변덕을 탓할 수밖에.”
“나도 이용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만약 전직을 선택하지 않는다 해도, 시험을 통과한 것만으로 최소 한 가지 이상의 패시브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호, 그런가?”
그건 몰랐던 정보다. 시스템 상점에서 천공성에 대한 설명한 중 없던 내용이었다.
“지금 도전하시겠습니까?”
새로운 패시브 스킬이라는 것은 확실히 구미가 당겼다.
아마도 특별할 것이 분명하다. 무려 보라색 룬 3개를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천공성에서, 게다가 그냥도 아니고 모종의 시험을 통과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스킬이다. 그냥저냥 평범하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하지만 당장 시험을 볼 것은 아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은…… 쓰레기 정리부터 하고 생각해보지.”
세현은 허공에서 태블릿을 꺼내들었다. 이미 천공성 시스템과 연계가 되었으니, 조건 설정만 한다면 영지에서 일어나는 불온한 사건을 탐지해낼 수 있다.
“이바노프, 박수진.”
“예.”
“예.”
정보부장과 감찰단장이 이번 일에서 빠질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치안 문제이기에 별 상관이 없지만, 정보를 통해 불순분자를 걸러 내부를 단속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관련이 있다.
“그리고 권태수.”
“예.”
이번 일에 책임감을 느끼던 권태수 역시 빼놓으면 섭섭할 것이다.
“그물을 뿌릴 시기와 장소 선정은 이바노프가, 조이는 건 권태수가 한다. 걸려든 쓰레기 처리는 나와 박수진이 할 거다.”
“직접 나서시려고요? 그럼 저도……”
“저도 하겠습니다.”
김유린과 김인환이었다. 신소진 역시 한 발 늦었다 뿐 같은 말을 꺼내려는 기색, 허나 세현은 고개를 저어 그것을 막았다.
“나와 박수진만 한다. 만약 손이 부족하게 되면 그때 따로 선발하지. 김유린은 빼고.”
“예에? 왜요?!”
자신만 콕 집어 빠지라는 말에 당연히 발끈하는 김유린이다. 그런 김유린에게 이유를 설명하려던 세현이 잠시지간 멈칫했다.
“흐음……”
“저도 할래요! 할 거예요!”
망설임을 눈치채고 떼를 쓰듯 말하는 김유린을 보던 세현이 픽 웃음을 흘렸다.
“힘든 일이 될 텐데.”
“아뇨! 전혀요! 저도 수진 언니만큼은 아니어도 잘 할 수 있거든요!”
“단순히 목표를 죽이는 게 아니다. 가능한… 흐음, 최대한 잔인무도하게 죽여야 하거든.”
“아, 잔인무도하게요?”
그냥 죽이는 것 정도는 김유린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녀는 세현이 박수진보다 먼저 제자로 받아들인 인재다. 초기에 길드성 주변 악질적인 무리를 정리하면서 수십 이상의 사람을 망설임 없이 살해하기도 했다.
김유린은 타고난 전사다. 싸움에 재능이 있고 살인 후 여느 평범한 사람이라면 으레 겪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도 겪지 않았다. 크로나드 숲에서는 세현과 담소를 나누며 위험하게 변해버린 세상이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살인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심성이 잔인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김유린은 싸움에서 적을 죽이는 전투에는 재능이 있지만, 상대를 무참하게 살해하는 도살(屠殺)에는 재능이 없다.
냉혹함과 잔인함 역시 어느 정도는 타고나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 그녀는 아직 휘하 인원이 없지만 그래도 전단장 급의 대우를 받는 주요 간부다. 다양한 방면에서 보다 많은 경험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 네 말도 맞다. 언제까지 애지중지 오냐오냐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
“애지중지, 오냐오냐요?”
이상한 데 핀트가 꽂혀 잠시지간 헤벌쭉하던 그녀가 이내 정신을 차린다.
“그러니까, 잔인무도하게 어떻게 죽여야 돼요?”
“……”
이래서 재능이 없다고 한 거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세현은 태블릿을 조작하기 시작하며 나직한 설명을 이었다.
“여러 방법이 있지. 잔인하게 죽인다는 건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상대에게 최대한 많은 고통을 주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주위에 공포를 흩뿌리기 위해서. 전자를 위한 방법으로 가장 간단한 건 불이야.”
작열통, 뜨거움에 몸이 구워지는 고통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최상위다. 불만 붙이면 되니 간편하기도 하다. 강도를 조절하며 적절한 치료를 더하면 원하는 만큼 끌 수도 있다.
“후자를 위한 방법은 다양하지. 약간의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랄까, 상대가 겪을 고통보다는 보여지는 모습과 충격이 중요해. 가령 목을 붙잡고 뚜껑 따듯 돌려 뽑아내거나, 이 경우 척수다발이 딸려나와 시각적 공포감이 더하지. 뱃가죽을 찢어 내장이 쏟아지게 만들거나, 그걸 허겁지겁 주워담게 만드는 게 포인트다. 김유린 너는 창을 쓰니 상처를 크게 만드려면 찌르기보단 베기를 사용해봐라.”
“아, 네, 네…… 왜 그렇게 죽여야 되나요?”
“왜 잔인함이 필요하느냐 하면, 그게 다양한 상황에서 무기가 될 수 있으니까. 왈라키아의 블라드 체페슈를 아느냐? 드라큘라의 모티브가 된 인물 말이다.”
“아, 네.”
드라큘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흡혈귀 하면 떠오르는 것이 드라큘라 아니던가.
“공포를 무기로 사용한 유명한 사람이지. 그가 즉위한 당시 나라에는 치안 문제가 아주 심각했다고 하는데, 해서 그는 범죄자를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는 정책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범죄율이 감소했지. 너도 아는 그 꼬챙이 형벌 말이다.”
땅에 박아 세운 말뚝에 기름을 칠하고 그 뾰족한 윗부분에 사람의 항문을 꿰어 놓는다. 경우에 따라서 입이나 여자의 경우 질에 찔러 넣기도 했는데, 그러면 중력의 힘에 따라 점점 몸이 아래로 내려가며 신체에 심각한 훼손을 입힌다. 끔직한 것은 그렇게 죽기까지 며칠이나 걸리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는 공포를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써먹었어. 역시 아주 효과적이었고. 왈라키아의 수도를 정복하고도 퇴각을 결심했으니…… 물론 우리가 그 정도로 공포정치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저 확실한 경고를 위함이다.”
그는 태블릿 조작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김유린을 쳐다봤다.
“단순히 죽이는 것만으론 부족해. 이왕 죽이는 거라면, 비슷한 부류의 놈들이 감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본보기를 보이는 거다. 우리가 그러한 행태를 결코 좌시할 생각이 없음을 확실하게 알리고, 그럼에도 만약 범죄를 저지르면 걸렸을 때 얼마나 끔찍한 꼴이 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자각하게 만들어야지.”
그게 어차피 죽일 놈들을 그나마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 아닌가.
덧붙인 세현의 말까지 들은 김유린은 이제 완전히 이해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래요.”
“무리는 하지 마라.”
세현은 굳이 만류하지 않았다.
– 나도 껴도 되나? –
의외였던 건 레야였다.
별 관심이 없던 태도였다가 김유린이 한다고 하니 슬그머니 참여 의사를 밝힌다. 잠시 그를 보던 세현이 짧은 웃음을 흘렸다.
“원한다면. 따로 뭔가를 할 필요는 없고 김유린 옆에 붙어 있어라.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고.”
– 그야말로 딱 원하…… 아니, 뭐, 그래. 폴바르가 명하니 그렇게 할 수밖에. –
김유린의 부모 되는 김인환과 이예슬이 짧지만 묘한 표정을 지어냈다.
“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너무 철저하게 할 필요는 없다. 약간은 놓쳐도 천공성이 있는 이상 언젠가는 걸려들 테니. 너무 단번에 끝내버리는 것보단 시간을 두고 몇 차례 보여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이바노프가 고개를 숙였다.
그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면, 권태수가 몰이를 하고 세현과 박수진 그리고 김유린이 놀라 뛰쳐나오는 놈들을 처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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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악.”
퉤-
요란하게 가래를 뱉은 사내가 피던 담배를 끝까지 빨아내고는 근처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깊게 내뱉는 숨결에 따라 하얀 연기가 뭉실뭉실 뿜어지며 이미 뿌옇던 실내를 더 뿌옇게 물들인다. 과거 노래방이었던 지하인지라 연기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노래방이었는데도 방음이 제대로 안 되는 탓에 여러 방안에서 들려오는 신음성들이 복도로 고스란이 흘러나온다. 여기저기서 공수해온 낡은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도 함께 섞였다.
그런 소리들을 한 귀로 흘리며 며칠 전 죽은 이곳의 에이스를 떠올렸다. 이가은, 개인적으로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얼굴과 몸매도 그만큼 예뻤다.
“쯧.”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 알았으면 그렇게 가만히 두진 않았을 텐데. 어차피 죽을 거면서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까칠하게 굴었을까.
그는 그녀를 나름대로 곱게 대하겠답시고 괜히 어울리지도 않는 신사적인 척을 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멍청한 짓이었다.
이가은은 자살했다. 목에 단도를 그어 과다출혈로 일 분도 안 돼 죽었다.
생각해보면 조금 딱하긴 했다. 자살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알고 있으니까. 그녀는 어쩌다 납치되어 이곳에 감금된 피해자였다. 스스로 목을 그어버릴 만큼 괴로웠던 모양이다.
이렇게 보초를 서고 있자니 계속해서 이가은 생각이 났다. 오밀조밀 예쁘던 얼굴과, 매끈하게 떨어지던 허리와 골반의 라인, 그 아래 아슬아슬한 짧은 치마와 하얀 다리.
“흐음.”
그렇게 본격적으로 딴생각에 골몰할 때였다.
바로 그때였다. 입구 바깥쪽에서 낯선 소음이 들렸다. 처음엔 그냥 무시했는데, 소음이 점점 커지고 뚜렷해지자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사람의 비명소리 같다.
위기감을 느끼기 무섭게 전신의 털이 곤두선다. 그는 쓰레기였지만 그래도 에레도스 사태 초기 좀비들을 죽이며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위기라 생각되면 아무리 방심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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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