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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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군주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은 부모의 반응으로부터, 다음은 유치원의 선생님들이 보이던 반응으로부터.
아무런 감정 없는 아이는 가끔 사람이 아닌 잘 만든 인형처럼 느껴져 무서울 때가 있었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여느 아이라면 대번에 무서워 부모 품을 파고들 만화영화 따위를 보면서 그는 울기는 커녕 흥미조차 느끼지 못했다.
반면 다행스럽게도 머리는 굉장히 좋았다.
그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부모의 얼굴에서 본인들조차 의식하지 못한 미약한 공포를 목격한 후,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가정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단위, 그 작은 보금자리의 중요성을 이해한 후 그는 자신의 어떤 행동이 꺼림칙함과 두려움을 유발하는지 유심히 살폈다.
작게는 웃지 않는 표정부터가 문제였고 크게는 그가 말하는 내용이나 행동이 문제였다. 그런 것들을 고치지 않고 지속할 경우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그의 부모들이 되려 그를 공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을 학습하고 흉내내는 것은 어려웠지만 결과는 뚜렷했다. 그저 여느 아이들보다 조금 다른 정도로만 보여도 그의 부모들이 가끔 보이던 꺼리는 태도가 눈 녹듯 사라졌으니까. 가끔 실수를 저질러도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나 약한 면모를 보이면 금방 해결되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애정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타인은 부모처럼 애정을 갖고서 그의 실수에 너그럽지 않았기에, 그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꽤 고생을 했다. 초등학교 때 그는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그것으로 마음의 상처 따위를 입진 않았지만 경각심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인간은 자신들과 다른 존재를 배척한다. 초등학교에서야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약간 괴롭히는 것으로 끝났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그때부터 스스로를 지킬 힘의 필요성을 느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운동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자신을 꺼림칙하게 여기며 공격하는 아이들을 역으로 때려눕혔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를 향한 괴롭힘은 사라졌다. 오히려 그가 보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굳이 보통을 흉내내지 않아도 된다.
남들보다 우월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면, 스스로를 맞추며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그가 인간의 사회에 녹아들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그렇게 대학교까지 나름 무난하게 살아오던 어느 날, 에레도스 사태가 터졌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남들과 달랐던 점들이, 그저 사회에 녹아들 때 방해만 되었던 것들이 사실은 상당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혼란과 공포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수많은 타인들과는 달리 그는 좀비를 처음 마주치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죽이려 하기에 죽였고, 그 과정에서 상대가 잘 죽지 않았기에 일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으며, 주변에서 이런 것들이 다수로 출몰하는 것을 깨달은 후 곧장 놈의 시체를 해부했다. 약점을 알아낸 후로는 한결 죽이기 쉬웠다.
그리고 각성한 후 흑마법사 계열의 특화직업, 사령술사로 전직했다. 처음은 그저 사방에 넘쳐나는 좀비들을 역이용해볼까 싶은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는 자신의 선택에 더 만족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진 힘이 커지자 야망이라는 게 생겼다. 그게 이 위험한 세상에서 서승태가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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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랑은 최근들어 엄청나게 바빴다.
교세를 확장하는 일이 주 업무였고, 심판자로 바뀐 스스로의 직업과 신성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한때 자신과 같은 창립자의 위치였다가 이제는 아랫사람이 된 자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 기세대로라면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반 년 안에 류한국의 모든 곳에 수호교가 뿌리내릴 겁니다.”
“성서 제작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순조롭습니다. 마냥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믿음이 가는 실증적인 것들과, 신자들 개개인의 발전 및 정신적 수양을 위한 내용들을 주로 구성 중입니다. 장차 이곳은 성지가 될 겁니다.”
수호교는 기존의 종교와는 상당히 다르다.
기존의 종교가 갖고 있던 성서들이 신을 찬미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와 다양한 규율들을 통한 정신적 수양 목적이 주를 이뤘다면, 수호교의 성서는 비슷하면서도 보다 사실적이고 실용적인 내용들이었다. 성서의 특성상 수호교의 발원지에 대한 내용도 빠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신학과 철학에서부터 문학과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과학에 이르기까지, 최소 박사 학위를 가진 수호교 신자 전문가들 스무 명이 동원되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성서 집필에 집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종교의 정체성을 말해주니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수호교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이라면 몰라도, 만약 기준이 될 성서조차 없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변질되어버릴 것이다. 게다가 무수히 많은 분파가 만들어지며 사이비가 횡행할 가능성마저 있었다.
문하랑은 그 밖에도 다양한 안건들에 대해 보고받으며 문제가 없는 자료를 살피고 점검했다. 그녀는 벌써 일주일 동안이나 하루에 한 시간 밖에 잠들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컨디션이 좋았다.
모두 신성력 덕분이다. 현재 수호교에서 그녀보다 더 세현의 신성력 덕을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대주교다. 에레도스 시스템의 힘을 제하고서라도 세현의 신성력을 다루는 것만으로 어지간한 각성자보다 체력이 좋을 것이다.
거의 모든 안건에 대한 보고가 끝나고 마지막이 남았다. 조급함을 참지 못했던 문하랑이 먼저 물었다.
“반고국에 대한 건?”
“순조롭습니다. 그쪽 왕가에선 아직 모르는 눈치입니다.”
“하아.”
안도감이 약간 섞인 한숨이 나온다. 종교는 무릇 시작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은근한 압력만으로도 맥없이 꺼져버리는 게 종교의 불꽃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이 되면, 꺼트리려 할 때마다 역으로 더 크게 활활 불타오른다.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 가려면 멀었지만 일단은 반고국의 왕가가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도 잘 될 거라 믿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사이비처럼 보이는 걸 주의하세요. 중국의 정서적 특성도 주의하시고요.”
“알겠습니다.”
보고가 끝나고 다시 혼자가 된 문하랑이 위로 쭉 팔을 뻗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그리고 다시금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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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과 정현욱은 대련 후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온통 땀에 젖은 박수진과는 대조적으로 정현욱은 아주 말끔한 모습이었다. 둘의 실력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박수진은 쉬는 날 없이 수련하며 홀로 미로 협곡을 사냥하기도 한다. 그녀의 레벨은 벌써 50을 넘겼다. 정현욱은 그녀보다 레벨이 낮지만, 아쉽게도 둘 사이에는 아직 기본적인 실력차이가 까마득했다.
박수진은 확실히 재능이 있다. 거기에 검신이라 불려 마땅할 세현의 벌모세수와 집중적인 지도까지 받고 있다. 그렇게 나날이 실력이 상승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정현욱을 가시거리에 둘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현욱이 무조건 박수진보다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이 실전이고 박수진이 동귀어진까지 각오하며 궁극스킬을 사용한다면, 제 아무리 정현욱이라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어쨌든 대련에서 만큼은 박수진은 정현욱을 이길 수 없다.
“혹시.”
방금의 대련을 정신없이 복기하던 그녀의 귀에 정현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시선을 돌리자, 미약하게 곤혹스러운 듯한 표정의 정현욱이 있었다.
한 번도 이런 표정을 보여준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의아한 기색을 띄자 정현욱이 천천히 말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염려스러운 점이 있어서 그럽니다.”
“뭔데요?”
“혹시 제게 사적인 감정이 있으십니까?”
“……어째서 그런 생각을? 사적인 감정이라 하시면, 이성적인 걸 말하시는 건가요?”
“그렇지요. 그냥, 박수진 씨가 저를 대하는 태도가 남들과 조금 달라서 그럽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정현욱은 상당한 실력의 무인이다. 그는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게 있다. 가령, 평범한 이라면 절대 눈치채지 못할 사소한 신체의 반응까지도.
박수진은 남들을 대할 때 냉막하다. 그냥 냉막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냉막하다. 마치 세상을 따돌리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감정의 교류를 위한 대화를 별로 나누지 않는다. 자연스레 몸의 반응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게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의 스승인 한세현과, 그 스승의 가족인 혜진과 아엘라 그리고 유르미아, 그리고 사형제 관계에 있는 이들이다. 헌데 그 중에서도 김인환이나 권태수 같은 남자들을 대할 때는 또 다르다.
그것을 정현욱은 알고 있었다. 때로 세현의 명령에 따라 혜진을 호위하며 박수진과 마주칠 때라거나, 그녀의 부탁으로 대련을 할 때 다른 사람들과 조우하며 몇 번 본 적이 있다.
헌데 정현욱은 예외였다.
박수진은 그를 대할 때 마치 스승인 세현을 대하는 것 같았다. 예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긴장의 완화 같은 측면에서의 이야기다.
그녀는 명백히 정현욱을 편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마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다. 질문을 받은 그녀는 한동안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아마 정현욱 씨에게서 사부님과 비슷한 느낌이 나기 때문인 듯하네요.”
“비슷한 느낌이라니요?”
“정현욱 씨도 사부님처럼 이계를 갔다 오셨죠. 그러니까 보기보다 나이가 많으시겠죠?”
“쉰은 넘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저를 여자로 대할 생각을 한 적이 없고요.”
“그렇지요.”
정현욱은 뭔가를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원치 않게 타인의 신체적 반응을 보고 심리를 짐작할 수 있듯, 박수진도 마찬가지다. 간단한 이야기다.
모든 신체건강한 남자는 여자를 마주할 때 태도가 달라진다. 딱히 그럴 의도를 품어서가 아닌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행동들을 말함이다. 결혼한 유부남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다.
남자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생명체의 성별이 나눠진 이상 남자든 여자든 그렇게 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박수진에겐 세현과 정현욱이 그런 사람들이었을 뿐인 거다. 그녀의 좁은 인간관계에서는 그 둘 뿐이었다.
“저는 남자가 싫어요.”
“그렇군요.”
“제가 어떻게 사부님의 제자가 되었는지 들으셨나요?”
“아니요. 하지만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싫을 거예요. 제가 어떤 남자와 사귀고 결혼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제가 정현욱 씨에게 그런 감정을 품을 거라고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현욱이 쓰게 웃었다.
“괜한 말을 꺼냈군요.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정현욱 씨는 그런 걸 걱정한 이유가 있나요?”
“이계에 아내를 두고 왔거든요.”
“아.”
“저는 이미 배신자입니다. 여기서 더 큰 배신을 저지를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뭔가 문제가 생기기 전에 그걸 해결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그가 헛헛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시작하죠. 아마 오늘 마지막 대련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둘은 다시 대련장의 중앙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정현욱은 박수진의 성장에 훌륭한 기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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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잎이 아닌 것 같은 세잎!!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