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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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
세현은 호텔의 군인들 문제를 급하게 처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단 주변부터 정리하고 자잘한 문제들을 모두 처리한 후, 천천히 그들을 살펴 자세한 계획을 짤 생각이었다. 막강한 화력을 가진 무장 집단을 상대하는 것이니만큼 신중을 기하려던 거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굳이 미룰 이유가 없었다
그들 스스로 타락해서 세현에게 명분을 쥐여준 상황이다. 이런 놈들을 처죽인다고 손가락질 받을 이유도 없고, 이들 중에서도 뜻이 다른 이들을 흡수하는데 문제도 없다.
그는 지금 무도하고 잔인한 침략자가 아니다. 정의를 집행하고 약자를 구하는 구원자다.
“듣기론 너희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납치해서 노예처럼 부려먹는다는데.”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여기 와서 이 지랄을 떨었다고?”
“고작? 지랄?”
세현이 청월을 고쳐잡았다.
“애써 사람을 끌어모을 준비를 해놨더니 너 같은 놈들이 훼방을 놓는데, 내가 참아야 할 이유가 있나?”
“……뭔 개소리야? 이유는 니미 씨벌, 위층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여기선 안 통해! 벌집되기 싫으면 그 검 버리고 꿇어!”
청월이 한순간 사라지듯 움직여 허공을 갈랐다.
한 줄기 자색 번개가 거구 중년인의 목을 꿰뚫는다. 힘없이 떠올랐다가 아래로 추락하는 사람의 머리통이 꽤 비현실적이었다. 누구도 그게 잘리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까.
옆에 섰던 다른 중년 군인은 뿜어진 피를 뒤집어쓰고 눈을 껌뻑거리며 얼어붙었다.
“지금부터 공격하는 놈은 전부 죽는다. 살고 싶으면 엎어져라.”
“미, 미친! 쏴! 저……!”
스컥!
군인들이 그 명령에 반응하기도 전, 재차 섬광이 번쩍이며 두 번째 지휘권자가 사망했다.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던 군인들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마지막 경고야.”
“뭐해! 쏘란 말 안들려?!”
누군가의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망설이던 병사들도 표정을 굳히며 적을 겨냥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그 모습을 보던 세현이 피식 웃고는 땅을 박찼다.
쾅!
찰나의 찰나.
폭음과 함께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든 세현의 검이 정면 병사들의 몸통을 쪼개고 지나친다. 이후 곧장 허공에 서린 자색빛 발판을 박차고 방향을 튼 그가 다시 한 번 대포처럼 쏘아졌다.
검광이 쉬지 않고 번쩍이며 사람의 팔다리가 장난감처럼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를 노리고 날아든 총알들은 어느새 진로를 가로막은 청월의 칼날에 부딪혀 방향을 틀었다.
도탄된 납덩어리가 정확하게 다른 군인의 미간을 파고들어 두개골을 부수고 뇌를 곤죽으로 헤집었다.
“씨, 씨발!”
명령을 내렸던 간부가 기겁하여 도망치려는 순간, 그 앞에 사신처럼 나타난 세현이 손을 들어올렸다.
“으, 으허어…!”
뻐엉!
번쩍이는 광휘가 지나가고 사람의 몸뚱이가 물풍선마냥 터져나갔다. 산탄총처럼 뒤쪽으로 폭발한 새하얀 뼛조각들이 뒤에 있던 군인들을 덮쳐 전신에 구멍을 뚫었다.
각종 비명이 홀을 쩌렁쩌렁 울렸다. 운이 좋아 그 골편 공세에서 벗어난 이들도 피분수와 살점조각들을 뒤집어쓰고 목석처럼 굳었다.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수를 상대할 땐 최대한 잔인하게.
빠르고 안전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다.
세현이 겪은 무수한 경험이 그것을 증명했다. 딱 지금처럼.
“으아, 으아아!!”
한 군인이 고함을 내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일반적인 납탄이 아닌 푸른빛의 마력이 뭉친 스킬 탄환, 허나 그 속도는 보통 총알보다 훨씬 느리다. 재장전을 할 시간이 없었던 걸까, 어쨌든 세현을 상대하기엔 더 나쁜 선택이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스킬을 사용했던 군인의 목이 180도 돌아갔다. 목의 거죽이 잔혹하게 찢겨지며 피를 뿜어내는 광경 뒤로, 어느새 우뚝 서 청월을 치켜든 세현이 깊게 호흡을 내쉬었다. 그리고 남은 군인들을 향해 허공을 횡으로 크게 베었다.
공간이 절단되는 듯 섬뜩한 소리가 울린다. 그 경계에 걸쳐진 모든 이들의 허리가 양분됐다. 시체와 피와 내장이 쏟아지며 수십의 생명이 사그라졌다.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았다.
홀에는 세현을 제외하고 서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죽어버린 자들의 피가 바닥을 가득 매우며 천천히 그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비명과 함께 신음하며 버둥거렸다.
흐느끼던 자들이 하나둘 침묵하기 시작했다. 유령처럼 움직인 세현의 검이 그들의 목을 갈라 숨통을 끊어낸 탓이다.
그렇게 피와 시체가 홀을 가득 채웠을 때, 그가 말했다.
“이제 일어나도 된다.”
그에 여덟 명의 군인들이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세현이 두 번째로 경고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엎드렸던 이들이다.
하나같이 창백한 얼굴로 전신을 떨며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에 든 총을 바닥에 버리고 두 손을 들어보이는 자도 있었다.
인간인 이상 지금의 광경을 봤다면 세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잠시 그들을 쳐다보던 세현이 툭 말을 던졌다.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사람이 더 있나?”
“네, 네! 있습니다.”
“다 데려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덟 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설령 정말 이대로 도망치는 것이라도 상관 없다. 쫓아가서 죽이면 되니까.
“이제 내려와요.”
세현이 위쪽을 향해 말하자 여자들이 머뭇거리며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넓은 홀에 펼쳐진 한폭의 지옥도를 목도하고 우뚝 멈춰 섰다.
세현은 딱히 재촉하지 않았다. 단지 주인 잃은 무기들을 여기까지 오며 그랬던 것처럼, 차근차근 수거해 아공간 주머니에 수납했을 뿐이다
어느새 여자들은 세현의 말을 따라 계단을 내려와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들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차렷 자세로 서있는 폼이, 뭔가 오해를 하는 듯하다. 아니면 단순히 세현이 두렵다거나.
그는 딱히 해명하지 않았다.
잠시 후, 군인들이 호텔에 머물던 사람들 전부를 데리고 올라왔다. 적어도 세현의 기감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따로 도망쳤거나 낙오한 사람은 없었다.
추가로 데려온 이들은 여자 다섯과 남자 일곱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 전부 속옷만 간신히 입은 모습이다.
대체 왜 옷을 벗겨놓는 건지,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린 세현이 그들을 데려온 군인들에게 말했다.
“옷은?”
“어, 옷 말입니까?”
“그래. 당장 가져와.”
싸늘한 명령에 여덟 명의 군인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얼마 걸리지 않아 군복이 헐벗은 이들의 손에 쥐여졌다. 세현은 그들이 옷을 입는 모습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계획했던 방향은 아니지만 어쨌든 호텔을 정리하고 소수의 사람을 얻었다. 이것으로 길드성 근처의 모든 위협요소는 사라졌다고 봐도 될 듯하다. 본격적으로 길드의 성장에 집중할 최소한의 기반이 조성됐다.
단, 식량 문제를 해결한다면.
다행히 그 해결책으로 생각해둔 게 있긴 하다.
“이제 취조를 좀 해볼까.”
상념에서 빠져나온 세현이 군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긴장한 그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침을 삼켰다.
세현이 가장 왼쪽에 있던 남자를 손가락을 까닥여 불렀다. 주춤거리며 다가온 남자를 보던 세현이 살짝 고개를 갸웃한다.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구면이군.”
“예?”
“정문에서 날 돌려보낸 게 너지?”
“……아!”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하지만 그에겐 다행스럽게도, 세현은 그 일로 별다른 유감이 없었다. 그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자신의 앞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꿇어. 나 말고 앞쪽을 보고.”
군인이 머뭇거리며 자리를 찾아 엉거주춤 무릎을 꿇는 사이, 세현은 옥상에 있던 여자들과 군인들이 새로 데려온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지금 이 사람한테 피해 본 사람 있습니까?”
“……저, 저요.”
그 대답에 세현이 눈을 돌렸다. 한 여자가 덜덜 떨면서도 그 군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피해를?”
“저를 강간했어요.”
“저도, 저도요.”
“저도 당했어요.”
더 물어볼 것도 없다.
세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금 청월을 뽑아들었다. 무릎을 꿇은 채 불안한 표정을 짓던 군인이 기겁해서 몸을 돌리며 외친다.
“사, 살려준다면서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내 길드에 쓰레기는 필요 없어.”
서걱!
서늘한 소리와 함께 사람의 머리통이 허공을 난다.
피를 뿜어내는 몸뚱이를 발로 차 옆으로 밀어낸 세현이 얼어붙은 일곱 명의 군인을 보며 한 명을 청월로 가리켰다.
“다음.”
두 번째 차례의 군인인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결과적으로, 군인들 중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눈치가 좋아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엎드려 목숨을 건졌지만, 광기에 먹혀가던 집단 내에서 스스로의 윤리성을 지킬 정도의 신념은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은 저도 죽을 거란 사실을 알아챘는지 마지막 두 명이 악을 지르며 공격해오기도 했다. 물론 그건 결과적으로 더 빠른 죽음을 초래했을 뿐이다. 만약 그걸 노렸다면 아주 성공한 거다.
세현은 딱히 정의감이나 도덕성 같은 것 때문에 그들을 죽인 게 아니었다.
그저 새로 받아들일 길드원끼리 마찰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어느 한쪽을 처리해야할 필요성을 느꼈을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경우 처리해야 할 쪽은 명백하다.
다른 수많은 이유를 제외해도 일단 쪽수부터 피해자 쪽이 우세했다. 또한 이미 길드원으로 받아들인 여자들은 지금 이곳의 피해자들과 유사한 처지기도 했다.
가해자 입장이었던 군인들을 데려가면 문제가 생긴다. 대체 왜 그런 분란을 감수해야 하는가?
골치 아프기 전에 미리부터 배제하는 게 옳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길드성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있는 군인들의 미래는 꽤 어둡다 할 수 있으리라.
세현은 호텔을 전부 뒤져 군인들이 사용하던 무기와 탄약, 옷가지, 쓸 만한 군용 물품들을 수거했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18명의 인원을 데리고 호텔을 나와 길드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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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도착한 건 점심 때가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도착해서 김유린에게 그들을 인계하고, 병에 걸렸는지 상태가 좋지 않은 여자 둘을 누나인 혜진을 불러 치료를 부탁했다.
“……안 듣는데?”
하지만 혜진의 손에서 뿜어지는 신성력에도 증상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세현이 미미마게 눈가를 찌푸렸다.
“외상이 아닌 질병은 치료되지 않는 건가?”
“그러게?”
“……약을 구해야겠네. 가까운 병원이 어디였지?”
“수원 방향으로 대학병원이 있습니다.”
대답한 것은 김인환이었다.
그에게 대략적인 방향과 위치를 설명 들은 세현이 머릿속으로 위치를 가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호텔에서 가득 채웠던 아공간 주머니를 이곳에서 비운 후, 다시 성을 나섰다.
사람은 의외로 강하지만 또 의외로 허약하기도 하다.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었다.
이전이라면 병원에 가서 약 먹고 며칠 쉬면 나을 가벼운 병이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치명적인 위험이 되기도 한다. 애써 구해온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면 약을 찾아야만 한다.
비단 그 이유 뿐이 아니더라도, 신성력이 인간의 모든 상태이상을 치유해줄 수 있는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이상 약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가 가진 무림 쪽 의술이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이라고 해도, 현대의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각종 약물들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혜진이 병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그런 약물이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신경 쓸 게 점점 많아지는군.”
불만처럼 중얼거렸지만 사실 당연히 겪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어디 쓸만한 의사 하나 없을까.
혹시 병원에 가면 살아남은 의사 한두 명 정도는 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약을 구하면서 근처에 던전이 있는지 탐색해보고, 있으면 빠르게 토벌해 길드 포인트도 확보해야겠다.
그런 계획들을 세우며 세현이 계속해서 땅을 박찼다. 조직이 굴러갈 수 있는 기틀을 닦을 때까진 당분간 그 혼자 많이 바빠야 할 듯하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주변의 풍경들이 스쳐지나갔다. 어지간한 스포츠카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지형지물에 영향을 받지도 않는 세현이다.
그는 불과 십 분도 걸리지 않아 목표했던 대학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하.”
세현이 웃었다. 앞에 둔 대학병원의 모습이 이상하다. 누군가 하늘에서 선을 그은 것처럼, 뚜렷한 경계선을 기준으로 안쪽 땅이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덕분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듯하다. 그가 망설임 없이 검게 죽은 대지를 밟았다.
– 필드형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
– 일반 던전보다 위험도가 높습니다. 주의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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