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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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화
물론 흑도에서도 역사가 있다고 쳐주는 문파가 아주 없진 않다.
녹림십팔채는 꽤 유명하다. 하오문도 흑도의 문파로 분류된다. 마교 역시 누군가는 흑도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녹림십팔채는 하나의 문파라고 보기 어렵다. 수많은 산채들 중 가장 강한 힘을 가진 18개의 산채가 녹림십팔채로 불리며, 더 강힌 힘을 가진 산채가 나타나면 기존의 강자를 힘으로 밀어내고 이름을 이어받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하오문도 비슷하다. 각종 잡배들이 모여 만든 그들은 무림의 문파라기 보단 하나의 정보단체에 가깝다. 거기서 무공을 하는 자들은 대부분 이득을 주고받는 계약관계다.
마교는 애초부터 흑도라고 볼 수 없지만, 어쨌든 살펴보면 그들은 여타의 문파들과는 아예 궤를 달리한다. 십만대산이라는 곳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 살아가며 아이들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세뇌시키고,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종의 광신도 집단인 것이다.
즉, 따지고 보면 흑도에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문 문파가 없다. 또한 그건 힘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흑도의 특성 자체가 튼실한 조직을 만드는 것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래 가는 집단을 만들기 위해선 단순히 힘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조직의 구성원이 소속감을 갖고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모두가 공유하는 그럴듯한 가치와 명분이 필요하다.
그러러면 일반적으로 악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가진 이들은 최대한 배제하는 게 좋다. 그런 놈들은 신뢰와 정당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머니까.
“그게 최소한이야. 내 말 명심해라.”
“예, 사부님.”
김인환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새삼스레 세현이 자신보다 오래 살았다는 것을 자각했다. 겉모습이 자식뻘이다보니 자꾸만 잊어버리게 됐는데, 이제는 안 그럴 듯하다.
“나는 부길드장한테 가볼 테니, 너는 다시 군인들에게 가서 필요한 걸 챙겨줘라. 물론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건 안 된다. 길드에 들어오겠다고 할 때까진 잠재적인 적이라고 생각해. 만약을 대비해야지.”
그렇게 김인환과 1층에서 헤어진 세현은 곧장 3층으로 향했다.
이제 혜진을 만나 길드 포인트로 시설을 업그레이드 하는 이야기를 나눈 후, 그가 획득한 전설 아이템을 건네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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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해.”
“진짜 한다?”
“하라니까.”
혜진이 은근히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태블릿을 조작해 식당 시설의 업그레이드를 감행했다.
그들의 앞에 있던 식당 이곳저곳에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병영이 만들어졌을 때와 비슷했다. 푸른 빛의 입자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홀로그램처럼 골격을 만든다. 뒤이어 내부가 빛으로 물들며 회오리치며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기존의 테이블과 의자들은 물론 벽과 천장, 바닥까지 싹 바뀌는 중이었다. 분명 성의 전체적 크기가 커진 것도 아닌데 식당의 넓이가 확장되기까지 했다.
“대박!”
그 중 혜진이 그렇게 외치더니 세현에게 태블릿을 들이밀었다. 변해가는 식당의 모습에서 시선을 뗀 그가 태블릿을 살피자, 새롭게 변한 식당의 설명에서 혜진이 대박이라 외친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다.
[허기를 면할 만한 기본적인 식량이 제공된다.] “잘 됐네.”다행히 세현의 예상이 맞은 듯하다. 식당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으로 아주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앞으로 규모를 늘리기도 상당히 용이해졌다.
마침내 모든 변화가 끝났다. 기존보다 두 배는 더 넓어진 식당을 둘러보던 세현과 혜진이 한 장소 앞에서 멈췄다.
자판기 같은 것이 벽에 들어간 채 고정되어 있었다. 버튼이 하나 뿐이라 매우 단순했지만 그게 자판기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냥 누르면 되나?”
혜진이 신나서 먼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중앙의 투출구에서 탁구공보다 살짝 큰 크기의 빵 한 덩이가 툭 떨어졌다.
혜진의 미소 가득하던 얼굴에 약간 금이 갔다.
“이, 이게 끝?”
황당한 표정으로 빵을 집어들고 살핀 그녀가 세현을 돌아본다. 세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더니 혜진에게서 빵을 받아들어 한 입 맛봤다.
딱딱하게 식은 빵의 질감이다. 퍽퍽하고 밍밍해서 별 맛도 없다.
순 밀가루로만 만들어진 듯한데, 어떻게 빵이 나오는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이것만 먹어서는 사람은 살 수 없었다. 탄수화물을 공급해줄 수는 있겠지만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과 미네랄 등이 없을 테니까.
“진짜 말 그대로 허기만 면하게 해주는 모양인데.”
“하, 어이없네!”
혜진이 그렇게 탄식했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나름대로 납득했다.
“그래, 내가 너무 욕심부린 걸지도.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그지?”
“그렇지. 허공에서 빵이 나오니까. 적어도 굶어 죽진 않겠네.”
세현의 예상은 딱 절반만 맞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한 번 더 업그레이드를 해보기엔 너무 비쌌다. 그럴 길드 포인트로 시설 세 개를 짓거나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다.
“그럼 훈련장으로 가자.”
마지막으로 식당을 둘러본 둘이 지하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감옥에 갇혀 저들끼리 격렬히 토론하던 군인들이 내려온 세현을 발견하고 입을 다문다.
“한다?”
“해.”
둘은 그런 군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혜진이 기대감 서린 표정으로 태블릿을 조작했다. 이어 식당에서와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졌다.
“어어?”
“뭐, 뭐야?”
군인들이 덩달아 놀랐다.
감옥과 훈련장은 서로 붙어있는 구조다. 또한 감옥은 당연히 한쪽이 쇠창살로 이뤄졌다. 안에서 바깥 훈련장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사방에서 나타난 푸른빛 덩어리들이 훈련장 이곳저곳에서 빠르게 구조를 바꿔가기 시작했다. 기존의 구조물이 역으로 빛으로 화해 스러지기도 했다.
순식간에 넓이가 확장하며 기존에 없던 훈련용 도구와 기구들이 생겨난다. 일부는 체력단련을 위한 공간인지 헬스장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마침내 빛이 사라졌을 때, 세현과 혜진 모두 식당에서보다 좀 더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존의 황량하기만 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천지차이였다. 길드 포인트를 소모한 보람이 있었다.
“대체 지금……?”
“아, 별 거 아니에요. 업그레이드 좀 한 겁니다.”
세현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렇게만 말한 후 혜진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버렸다.
“마지막은 뭘로 할까?”
“일단 놔두자. 뭐가 갑자기 필요해질지 모르니까. 급한 건 다 해결하기도 했고.”
세현의 그 말에 혜진이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듣기에도 타당했다. 하나를 더 짓거나 업그레이드할 포인트가 남긴 했지만, 이걸 당장 사용해야할 필요는 없다.
“잠깐 와 봐.”
“어딜?”
“밖에. 보여줄 게 있어.
세현이 앞장서서 성을 나섰다. 혜진이 의아한 기색으로 그런 동생을 쫓았다. 둘이 멈춰 선 곳은 병사들이 지키고 선 성벽 위였다.
“받아.”
세현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전설 아이템, 추락한 천사의 눈물이었다. 난데없는 반지 선물에 혜진이 의아한 기색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예쁘네. 근데 뭐야 이거?”
“다시 잘 살펴봐.”
“응?”
반지를 쳐다보던 혜진이 어느 순간 눈을 크게 뜨고 입까지 살짝 벌리며 말을 잊었다. 세현이 피식 웃었다.
“전에 줬던 마력 보주는 잘 갖고 있지?”
“어, 응. 갖고 있어. 근데 이거, 이거 대체 어디서 난 거야?”
“병원에서. 말했지? 필드형 던전이었다고. 이거랑 그거랑 같이 얻은 거야.”
세현이 자신의 머리에 착용한 리오론도 왕가의 서클렛을 살짝 건드려보였다. 혜진은 여전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반지를 든 채 요리조리 살폈다.
“와, 대박……”
“껴 봐. 어떻게 쓰는 건지 나도 좀 보게.”
혜진이 군말없이 반지를 검지에 착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등 뒤로 신성한 은빛의 휘광이 서려 양 옆으로 길게 뻗어 나갔다.
“어, 어어?”
혜진의 몸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불안하게 기우뚱거리는 통에 세현이 놀라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행여나 비행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제멋대로 날아가버릴까 걱정된 것이다.
“괜찮아?”
“아, 응. 놔봐. 괜찮으니까.”
세현이 걱정 반 기대 반 심정으로 손을 놓자, 이번엔 혜진이 안정적으로 살짝 떠오른 상태를 유지하며 바로 섰다.
날개는 그 표현대로 뚜렷한 날개의 형태를 띄진 않았다. 하지만 은빛의 기운이 오오라처럼 양 옆으로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모습이 확실히 멋있긴 했다.
“광휘의 창인가, 그것도 만들어봐.”
“알았어.”
곧바로 혜진의 손에서 창 한자루가 금빛 휘광을 휘감으며 등장했다. 날개처럼 형태가 불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눈처럼 새하얗지만 확연한 금속의 느낌이 나는 재료를 바탕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금빛 장식이 더해진 창이었다. 어디 신전의 예식용 창으로 가져다 놓으면 그보다 멋질 수 없을 듯한 외형이다.
“멋있다.”
혜진도 자신이 만들어낸 창에 감탄하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썩 마음에 든 눈치다. 세현이 덩달아 뿌듯함을 느끼며 혜진을 재촉했다.
“한 번 던져봐. 아무 데다.”
“흡!”
혜진이 기합과 함께 힘껏 창을 던졌다. 그간의 훈련으로 힘은 제법이었다. 허나 자세가 엉망이라 창의 속도는 빈말로도 빠르다 해줄 수 없었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던 창이 땡!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혀 나뒹굴었다. 자신이 던져놓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잠시 헛웃음을 흘리던 그녀가 손을 뻗는다. 그러자 작은 번쩍임과 함께 창이 다시 혜진의 손에 들렸다.
“대박!”
혜진의 등에서 은빛의 날개가 한차례 크게 요동치며 펄럭였다. 이후 그녀의 신형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잠깐!”
“괜찮아-!”
혜진의 목소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처음임에도 꽤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그녀의 신형이 허공을 이리저리 맴돌았다.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짧게 흘러들었다.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세현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진짜로 마음에 든 모양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무려 전설 아이템이다. 게다가 성능을 둘째로 치더라도 날개가 달린다거나 창을 소환해낸다는 등의 기능은 누구라도 좋아할 만했다. 광휘술사 직업을 선택한 그녀와 꽤 잘 어울리기도 했다.
“추락한 천사라……”
왕자는 어떻게 그 반지를 갖고 있었을까. 대륙의 누구도 찾지 못했다더니 왕가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걸까.
만약 병원에서 마주친 게 왕자가 아니라 공주였다면, 사악한 힘을 다루지 않는 존재와 허공을 날아다니는 전투를 치뤘을지도 모르겠다. 매섭게 날아드는 창날과 끝임없는 투창세례를 피하는 전투를.
문득, 왕자에겐 반지가 단순한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물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흔한 경우니까.
혜진이 바닥에 내려선 것은 그 뒤로 삼십 분이나 더 지난 후였다. 마력이 바닥나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날아다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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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슬은 자청해서 길드의 여자들을 돌보는 역을 맡았다. 그녀가 가장 한가했기 때문이다.
세현에게 같이 훈련을 받긴 해도 애초에 전투직이 아니기에 싸울 일이 없고, 문장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나 당장 무엇을 집필하거나 복사할 게 없었다.
물론 지금까진 그랬다. 세현이 그런 이예슬을 방문해 병원의 연구소에 얻은 각종 의학서적과 연구일지를 건네줬다.
“복사할 수 있겠어?”
“보관용인가요?”
“보관 겸 학습용이지. 문장사 직업으로 책을 집필하면 학습에서도 보너스가 붙지 않아?”
“네. 맞아요. 그런데, 학습을 할 사람이 있던가요?”
“아직은 없지. 하지만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니까, 이럴 때 미리미리 해놓으면 나중에 그만큼 덜 바쁠 거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하면 될까요?”
“짬짬이 해 놔. 너무 여유부리진 말고. 김유린한테 받은 정보는 계속 집필하고 있고?”
“네. 아직 소량이지만요.”
괴물도감을 작성하는 것 역시 이예슬의 몫이었다. 아직까진 마주친 괴물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아 별 내용은 없었다.
“여기 있어요.”
이예슬이 지금까지 정리한 내용을 세현에게 건넸다.
작은 책자에 정말로 인쇄기로 찍어내기라도 한 듯한 정교한 글자들이 있었다. 아쉽게도 그림 같은 건 없었지만, 실제 본 경험과 김유린의 증언을 통해 중요한 특징은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약점에 대한 설명은 물론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하는지 상세히 적혀있다.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만 데이터를 모아도 그게 쌓인다면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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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