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42)
EP.541 541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7)
541화 – 207호, 관문의 방 – 네 번째 시련 ‘몰락한 왕’ (27)
– 해리슨
모든 일이 시작된 지 약 4년 차.
느지막한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탁자에 기대었다.
승리를 거머쥐었기에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상황이라서?
…
안타깝게도 그 반대다.
나는 졌다.
나와 비슷하지만, 더 뛰어난 자에게 졌다.
— 부스럭!
멀리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상대의 체구가 작았기에 소리 또한 크지 않았다.
인사 정도는 하는 게 좋겠다.
설령, 상대가 날 사냥하러 왔다 해도 말이지.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어?”
“…”
“갈 때 가더라도, 홍차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 너도 한잔할래?”
‘그녀’는 살짝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간단히 답했다.
“난 콜라가 좋아.”
“하하! 양키답군! 물론, 콜라도 있지.”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마시며 마지막으로 내 패배를 복기했다.
나는 왜 이 미국인 소녀를 당해내지 못했는가?
상대가 더 강대국에서 시작했으니까?
인구도 많고, 그만큼 파편도 많아서 힘을 키우기 쉬워서?
“후우….”
아니지, 아니야.
힘을 사용하는 방법론 자체가 미묘하게 달랐다.
내가 수십만에 달하는 육신에 의식을 흩뿌려 일종의 군체 의식이 되었다면, 이 아가씨는….
“너무 쳐다보지 마.”
“실례.”
단 하나의 점에 의식을 뭉쳐서 강고한 절대 자아를 구현했다.
말하자면, 나는 ‘나’를 잃었고 그녀는 ‘그녀’를 유지했다.
“힘을 너처럼 쓸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미래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랄까?”
“미래에 대한 고민?”
“왕자.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어? 조각이 전부 모이고 위대한 자가 깨어나면, 그를 ‘우리’라고 할 수 있을지.”
“… 글쎄다.”
“나는, 최후의 순간 이후로도 ‘나’를 남기고 싶어. 그뿐이야.”
기묘한 고민이다.
한편으론 이해 가기도 했다.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보기보다 생각이 깊으시군.”
“내가 너보다 똑똑하니깐!”
“이것 참, 겸손함을 모르는 아가씨인데.”
“아직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지 못했는걸?”
더없이 오만한 모습에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나, 콜라 다 마셨어.”
“내 홍차는 아직 꽤 남았는데?”
“무슨 상관이야? 내가 다 마셨는데. 바쁘니까 이쯤 하자.”
찰나의 순간, 격렬한 투쟁심이 들끓었다.
어떻게든 힘을 써서 ‘세레나’의 몸을 빼앗을 수 있다면!
“… 후.”
“오? 마지막으로 힘을 쓰려는 것 아니었어?”
“나는 잉글랜드의 왕족이다. 갈 때 가더라도, 품위는 있어야겠지.”
그 말에 세레나가 빙그레 웃으며 양손을 모았다.
“왕자님, 방금 말은 좀 멋있었답니다.”
직후, 이마를 향해 다가오는 손을 보며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나는 졌지만, 누군가 이 건방진 계집애를 참교육해서 예의범절을 가르쳐줄 수 있기를!
— 콰직!
*
– 세레나 K 와일드
잉글랜드의 해리슨이 가지고 있던 파편을 회수한 후, 약 3개월이 흘렀다.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어렴풋이 느껴졌다.
4년에서 5년 가까운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벌어진 살벌한 살육전이 이제야 끝나가는구나.
돌이켜보면, ‘우리’는 마치 모래사장에 흩뿌려진 자석 조각과 같았다.
언뜻 생각하면 34만 8천 개나 되는 파편이 언제 다 합쳐지나 싶지만, 서로서로 끌어당기니 조각은 곧 덩어리가 되기 마련이다.
“…”
모스크바 인근을 걷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날 감시하는 눈길이 느껴졌다.
물정 모르는 자는 러시아에도 큼직한 파편이 있는 줄 착각하겠지만, 아니다.
이미 이 일대 파편은 중국 총서기가 쓸어간 지 오래.
그러므로 감시자 역시 총서기의 수족이리라.
“…”
어지간한 상대는 어렵지않게 쓰러트리고 흡수해왔지만, 진목경 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서’의 힘을 자각한 나와 달리 ‘빛’의 힘을 얻은 사람.
그는 물경 억 단위 중국 인민의 충성심을 끌어모은 끝에 사람보다는 차라리 불사조와 같아졌다고 들었다.
그 정도면 빙의든 육체 조작이든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을 느끼던 시점.
누군가가 다가왔다.
설마 암살 시도?
어이가 없네.
평범한 인간 정도는 나랑 눈만 마주쳐도 –
— 털썩!
“… 뭐야?”
마주치기도 전에 상대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나, 나는, 목성준이라 하오. 주, 중화 인민 공화국 비서실 -”
“진목경 부하?”
“… 나는 그분의 말을 전하러 왔소이다.”
“말해봐.”
“스스로 읽으시오.”
“뭐?”
이게 뭐야?
“내가 그분의 뜻을 이러쿵저러쿵 떠든다 한들, 당신이 쉽게 믿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 몸에서 정보를 직접 얻어가시지요.”
조금 당황했다.
그동안 수많은 파편을 만나 싸워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
잠깐 별의 별생각이 다 들었다.
“좋아.”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은 모스크바의 밤길.
나는 진목경이 보낸 ‘살아있는 편지’로부터 상대의 뜻을 전달받았다.
편지의 내용은 정말이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는데, 마지막에 이런 메시지가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해라. 떠나면 협상 거부로 알겠다’라고…?”
*
3일이 흘렀다.
오늘이 오기까지 나는 수 없이 고민했다.
적이 모스크바에 있으라 했으니, 시킨 대로 앉아있는 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
하지만, 나는 결국 모스크바에서 기다렸다.
왜냐하면 총서기의 제안이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또한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무렵, 총서기가 탑승한 비행기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직접 날아다니는 재주도 있다고 들었는데, 무의미한 일에 힘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던 걸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정말 의문인 건, 총서기가 날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지.
“…”
공항 대기실로 다가오는 총서기를 보자 나도 모르게 압도당하는 기분을 받았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어마어마한 경호 부대를 끌고 올 수 있는데도 홀로 왔기 때문일지도.
하긴, ‘우리’사이의 싸움에서 평범한 인간이 별 의미 없다는 건 상대 또한 잘 알고 있으리라.
그는 날 발견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그대가 세레나 양이군. 휴전하자.”
‘휴전하자’라고.
“조금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
“이유는 이미 전달했다. 너도 이해했을 터.”
“…”
약 4년 반 전, ‘계시’를 받은 이래 하루도 쉬지 않고 싸우고 또 싸웠다.
세상에 흩어진 신의 파편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뿐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였을까?
한 가지 불길한 상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싹텄다.
다른 모든 파편을 흡수해 최종 승자가 된다 치자.
그 승자는 과연 ‘나’일까?
아니면, 날 집어삼키고 태어날 정체 모를 마신인가.
불길한 운명을 인지했기에 내 정신을 견고하게 만드는 등 여러 수단을 썼지만,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세상에 남은 유의미한 조각은 이제 몇 없다. 이들이 전부 모이면 무슨 일이 생길까?”
“…”
“합일은 곧 우리의 죽음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쯤에서 싸움을 멈추고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
그는 한참 동안 협상안을 전했다.
너는 미국에 있어라, 나는 아시아권에서 활동하겠다.
유럽 혹은 인도는 협상할 일이 생길 때 만나는 거점으로 하자 등.
— 탁!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신의 말, 다 이해했어. 휴전 제안은 합리적이라고 봐. 받아들일 생각도 있어.”
“그래?”
“그런데, 딱 한 가지를 모르겠네.”
“말하라.”
“왜 굳이 날 만나러 여기까지 온 거야?”
“… 만약을 대비해서.”
“뭐?”
바로 그 순간.
“실례.”
— 쿵!
진목경이 갑자기 손을 뻗어 날 붙잡더니, 같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벼락같은 움직임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
— 우르릉!
불가해한 힘이 단박에 건물을 무너트렸다!
눈빛을 빛내며 총서기를 살피니, 그는 이미 전투 태세였다.
“세레나. 싸울 준비 해라. 이제부터 잠깐은 한 편이다.”
삽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총서기가 날 만나러 모스크바까지 온 이유?
나와 함께 싸우기 위해서!
부른다고 내가 중국에 갈 리는 없으니, 본인이 직접 온 거야?
본인이 절대권력을 쥔 중국 내에서 싸우지 않은 이유는?
수하들도 믿을 수 없다?
— 우르릉!
다시금 날아드는 보이지 않는 공세.
이번에도 벼락같은 움직임으로 날 보호했다.
물론, 나 역시 가만 있지 않았다.
“하앗!”
단박에 의식이 사방으로 확장한다.
주변의 모스크바 시민에게 흩뿌려둔 의식이 호응하며 머리가 터질 정도의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흉수의 정체를 알아내는 순간, 크게 당황했다.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진목경과 함께 언론 및 TV에도 자주 나왔던 사람 아닌가!
“뭐야? 네 비서잖아! 이런 재주가 있었어?”
“비서라. 그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지.”
“무서운 사람? 아니, 그보다 왜 우릴 공격하는 -”
다음 순간, 최소 수백 M는 떨어져 있는 것 같던 상대가 갑자기 하늘을 날아왔다!
“… 저 여자! 시, 신발이 -!”
총서기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뻗자, 주홍빛 열선이 번뜩이며 허공을 수놓았다.
하지만, 상대의 움직임이 워낙 교묘해서 쉬이 맞히지 못했다.
다시금, 의식을 집중하려는 순간.
“몸을 직접 빼앗지는 마라!”
“뭐?”
“‘서’의 힘으로 아리의 몸에 들어가면,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잡아먹힌다. 그러니 움직임만 방해하는 느낌으로 -”
“대체 네 비서의 정체가 뭐냐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보이지 않는 검을 휘두른다.
움직임은 어찌나 빠른지 인간의 눈으로 포착하는 것조차 힘든데, 직접 빙의했다간 잡아먹힌단다.
이게 인간이야?
우리보다 더한 괴물 아니냐고!
진목경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그러게. 저 여자의 정체가 뭘까.”
삽시간에 폐허가 된 모스크바의 도모데도보 국제 공항.
그 한편에 그야말로 코믹스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현실적인 외모를 자랑하는 소녀가 내려앉았다.
“…”
워낙 아름다운 여성이라 세간에는 총서기의 애인이라는 말이 많았지.
나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오늘에야 알았다.
애인은커녕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겠네!
그녀의 첫 말은 간단했다.
“실망이야. 진목경.”
“…”
“휴전이라니…. 정말 실망이다.”
“무엇이 그리 실망이시오?”
“내가 너에게 베팅한 건, 네 품성이 딱 독재자 같아서였거든.”
“…”
“마지막까지 폭군처럼 날뛰면서 모든 파편을 모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멈추겠다고? 왜 그러는 거야? 서일도에게 이상한 소리를 듣더니 깨달음이라도 얻었니?”
“… 역시 당신은 내 동료가 아니었군.”
“그건 오해야. 난 지금도 널 위하고 있단다.”
“하!”
진목경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대, 교활한 자! 교묘한 수가 있음은 진즉 알고 있었지. 한데, 당신 혼자서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 거기 세레나 양도 나랑 싸울 생각?”
“…”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일단 저 여자를 처치해야 할 모양이다.
“풋! 가인이도 실망이네. 가만 구경하고 있으면 너희끼리 알아서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자기들끼리 싸움을 멈추려 들 줄이야….”
‘가인이’?
대외적으로 진목경의 비서로 알려진 소녀, 아리의 품에서 갑자기 핸드폰이 튀어나왔다.
“다들 핸드폰은 있지?”
“무슨 -”
“꺼내 봐. 보안을 지킨답시고 몰래 와서 둘 다 확인하지 못했을 텐데, 재밌는 뉴스가 있어.”
진목경이 눈살을 찌푸리는 시점.
나는 태연히 핸드폰을 꺼냈다.
“세레나! 저 여자의 수작에 -”
“재밌는 뉴스 정도는 확인할게.”
“넌 말이 통해서 좋네.”
과연, 국제 뉴스 항목을 누르자마자 충격적인 헤드라인이 보였다.
“… 이건 진짜 봐야겠는데.”
「중화인민공화국 진목경 총서기가 사임을 표하다!」
「후임자, 리훠펑은 누구인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인가?」
당황한 듯, 기사를 살피던 총서기 – 아니, ‘전 총서기’가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목경아. 내가 전에 말했지? 너 자신이 무신론을 경전으로 삼은 신임을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넌 마지막까지 ‘총서기 직책’으로 만족했지. 직책은 타인에게 빼앗길 수 있단다.”
“…”
“이제 인민의 충성이 네게 향하지 않으니, 넌 추가적인 힘을 얻을 수 없다.”
“하! 교묘한 수작을 부렸구나. 그래 봤자다. 남은 힘만으로도 능히 널 죽일 수 있고, 직책은 본토로 돌아가서 되찾으면 그만이니!”
“맞는 말이네. 돌아간다면, 돌아간다면 그렇겠지.”
그리고.
— 따각!
뒤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하나가 아니었듯, 아리 또한 혼자가 아니었던 것.
“…”
기묘하다.
‘새로 나타난 그녀’는 정말이지, 아리와 똑 닮은 존재였다.
*
– 서드
흐릿한 조명.
낡고 어두운 병실.
그야말로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이다.
허약한 사람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으리라.
다행히, 내가 찾아낸 사람은 육체적으로 건강한 나이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찾느라 오래 걸렸습니다.”
“…”
“이런 데 계실 줄은 몰랐네요. 미리 알았으면, 더 좋은데 모셨을 텐데요.”
그때, 옆의 TV에서 중국 총서기가 난데없이 사임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 참…. 동료분들이 부지런도 하십니다.”
“…”
“뭐 하지 말고 가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듣질 않으시네요. 뭐, 이렇든 저렇든 괜찮습니다.”
한참 동안 그가 입은 더러운 옷을 갈아입히고, 병실을 청소했다.
그랬음에도 남자의 흐리멍덩한 눈에선 고마움은커녕 그 어떤 지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릇이 비어있기 때문이리라.
“…”
세상에서 가장 우둔하고 어리석은 자.
그리고….
위대한 자의 육신.
“그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마지막에 제가 모든 파편을 삼키고 당신 앞에서 자살하면 됩니까?”
“…”
“싫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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