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667
667화. 우연의 결과
“우리가 군용 외골격 장치랑 인공지능 갑옷을 차에 다시 넣을 때, 상자가 늘어났다는 걸 발견할 가능성은 왜 걱정하지 않은⋯⋯.”
용여홍의 목소리가 점점 줄었다. 해답을 알아서 찾았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분명 그 사실을 발견한 구조팀원의 기억을 즉시 흐리게 했을 것이다.
“겐의 주의를 돌려 물건 운반을 담당하지 않도록 할 방법도 마련했겠지.”
장목화가 용여홍을 도와 추측의 빈틈을 메웠다. 본래 그 누구도 게네바의 기억은 흐릴 수 없었다.
뒤이어 성건우가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해킹 수단에 의지해 무선 신호로 겐의 동체에 침입한 뒤, 일정한 환각을 일으켜 늘어난 상자의 존재를 무시하게 하려 했을지도 모르죠.”
게네바는 금속 목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후자가 더 그럴듯해. 214호 투숙객은 현재 기억을 정확하게 열람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이거든. 그러니 내가 머신 헤븐에서 생산된 진정한 지능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평범한 로봇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커.
또 그 사람이 보인 기술적 능력에 전자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까지 더하면 아무도 모르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백새벽이 말을 받았다.
“우리랑 성영희 대화를 감청한 건 구세군 대장이 애쉬랜드 그랜드호텔에 묵는 외부인을 만나러 온 것 자체가 관심을 둘 만했기 때문일 거예요.”
“맞아. 그 사람 계획은 거의 순조롭게 진행됐었어.”
장목화가 말했다.
“한 가지 의문점이 있어요.”
장목화는 바로 손을 든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무슨 의문?”
성건우가 그 상자를 가리켰다.
“저거 무게 한번 가늠해봐요, 왼손 말고 오른손으로요.”
잠시 생각하다 트렁크 앞으로 다가간 장목화는 상체를 살짝 숙여 오른손으로 핵탄두가 든 상자를 밖으로 잡아당겼다.
“100킬로그램은 더 될 것 같은데. 겨우 100킬로그램밖에 안 된다고?”
그 묵직함에 놀랐던 장목화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우베이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살상 능력을 자랑하는 무기가 겨우 100킬로그램이라니, 구세계의 기술 수준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영생인 프로젝트, 소스 브레인의 존재, 이제는 이 핵탄두가 그것을 증명했다.
성건우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214호 투숙객의 몸으로 이렇게 무거운 상자를 옮겨 지프 트렁크에 싣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장목화가 반박했다.
“그냥 고혈압을 앓고 있을 뿐이지, 몸이 약한 건 아니잖아. 내가 그 사람이면 대가를 약으로 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몸 상태를 조절했을 거야. 유전자 개량 약제 복용을 시도도 예가 될 수 있고.
효과는 우리처럼 모태에서부터 개량하는 것만 못하겠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또 장년 남성이면 힘은 들어도 100킬로그램 정도 트렁크에 옮기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힘을 들이면 혈압이 오르잖아요.”
성실한 성건우는 끝까지 의혹에 집중했다.
“약을 먹고 있었으니 그렇게까지 약하진 않았겠지⋯⋯.”
말을 잇던 장목화가 문득 핵탄두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지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저걸 어떻게 처리하느냐야.”
“당연히 구세군에 돌려줘야죠!”
인류 구원을 목표로 삼는 정의롭고 숭고한 성건우는 망설임이 없었다.
“맞아요, 맞아요.”
용여홍 역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핵탄두는 엄연한 주인이 있었다. 또 구조팀이 이걸 가지고 있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었다. 불을 붙여 던진 뒤 기를 쓰고 달아나도 그 영향 범위를 벗어나기는 불가능했다.
백새벽도 두 사람과 생각이 같았지만, 게네바는 다른 요소들을 분석하느라 바빠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곧이어 장목화는 기폭장치와 상응하는 암호까지 딸린 은회색 핵탄두를 힐긋 보더니 뭔가 생각에 잠겼다.
“있잖아, 전체적인 상황이 너무 공교롭단 생각은 안 들어? 214호 투숙객이 외출한 사이에 이대로 우베이를 떠나는데 아쉬움을 느낀 한 유적 사냥꾼이 그 사람 혈압강하제를 훔쳐 갔어.
그래서 혈압이 오른 214호 투숙객은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았고, 핵탄두는 우베이에 갇혀버렸지. 그 후에 우리는 애쉬랜드 그랜드호텔에 수시로 찾아와 돌아다니는 장 씨 어르신한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황 위원은 계엄령이 떨어진 첫날 마침 우리를 초대했어. 이에 214호 투숙객은 훔친 핵탄두를 우리 차에 숨겨야겠단 생각을 실행에 옮겼지. 거기다 내가 대가 때문에 다른 방을 살피고도 214호에 아무도 없다고 결론 내버렸어.
마음을 놓은 214호 투숙객은 경계심이 풀어졌지. 그러다 의식 박탈로 쓰러진 그는 불행히도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히고 목숨을 잃었어. 결국 아무 증언도 할 수 없이 세상을 떠난 거지.
그리고 박사의 갑작스러운 기습 때문에 구세군은 도시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검문할 수 없게 됐어. 이렇게 많은 우연이 겹친 결과 핵탄두는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됐어.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용여홍의 표정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가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도 전, 백새벽이 물었다.
“누군가 우리가 비밀리에 이 핵탄두를 얻길 의도했다는 건가요?”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에이돌른이 레드스톤 마켓의 교구 회의에서 한 줄기 기운을 옥부처에 슬쩍 주입해줬을 때랑 같은 상황인 거야. 다만 그때는 직접적이었고, 지금은 한결 완곡했다는 게 다른 거지.”
성건우가 턱을 쓸었다.
“그 존재는 우리한테 언젠가 이 핵탄두를 이용해야 할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걸까요? 오늘 박사에게 맞섰을 때처럼?”
“응.”
“우리가 나중에 어느 불가 성지를 파괴하려는데, 일반적인 방법은 안 통해서 이 핵탄두를 설치하고 먼 곳에서 폭발시켜야 할 때가 온다는 걸까요?”
‘파괴랑 불가 성지를 한 세트로 여기는 이유가 뭐냐.’
장목화는 성건우를 보며 속으로만 무기력하게 반박했다.
뒤이어 백새벽은 성건우의 추측에 동조했다.
“보아하니 핵탄두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네요.”
“맞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굳이 이걸 돌려주려고 할 경우 안 좋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 우리에게든, 구세군에게든. 공교로운 우연을 안배한 그 존재가 우리가 이를 돌려주려 할 경우까지 대비하지 않았을 리는 없으니까.”
음험하고 악랄한 성건우는 민주협의회 구성원들을 설득하려는 듯 말했다.
덧붙여 용여홍이 물었다.
“회사에 알려야 할까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표결 결과, 성건우를 제외한 구조팀원들은 핵탄두를 가지고 있는 데에 동의했다. 구세군의 핵탄두가 이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이것을 이용해 구세군에 맞설 수 있는 것도, 맞설 생각도 없기 때문이었다.
성건우는 조용히 돌아서서 중얼거렸다.
“이 일로 황 위원과 장 씨 어른을 비롯한 분들이 희생됐는데⋯⋯.”
“언젠가는 그 복수도 할 거잖아!”
장목화는 그의 어깨를 두드린 뒤 게네바에게 말했다.
“최대한 빨리 기폭장치를 개조하고 명령을 재설정해줘. 혹시 다른 사람이 원거리에서 폭발을 일으키면 안 되니까.”
게네바가 그 작업에 돌입하고, 성건우가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동안 나머지 팀원은 트렁크를 정리하고 부근의 삼림장 형 거점에서 어음으로 물자를 교환했다.
* * *
저녁 무렵, 구조팀은 거점 밖 공터에서 야영을 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회사에서 애쉬랜드로 나왔을 때는 화장실에 갈 때도 짝을 이뤄 움직여야 했다. 이에 장목화는 백새벽을 끌고 부근의 숲으로 향했다.
볼일을 본 뒤, 백새벽을 힐끔 바라보던 그녀가 돌연 목을 흠흠 풀더니 정색을 하고 물었다.
“작은 흰둥이, 너 진짜 작은 빨강이에 대한 마음이 뭐야? 진짜 네 솔직한 마음. 성영희 말 들었잖아. 여홍이한테 별 감정 없다면 최대한 빨리 말하고 단념하게 해. 회사에 돌아간 뒤에 다시 나올지 말지 고민하지 않게.”
백새벽의 걸음이 좀 느려졌다. 그리고 곧 덤덤한 대답이 새어 나왔다.
“저도 걔 엄청 좋아해요.”
“……?”
흠칫한 장목화는 좌우를 두리번대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어⋯⋯, 너도 좋아하고 걔도 널 좋아하는데, 네 스타일상 원래 진작부터 주도적으로 행동했어야 하는 거 아냐?”
장목화가 여태 백새벽의 마음을 종잡지 못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새벽이 행동 방식대로면 이미 한참 전에 여홍이 멱살 같은 거 잡고 나는 너랑 자고 싶은데 넌 어떠냐고 물었어야 하는 거 아냐?’
물론 이런 과장된 장면을 직접적으로 상상할 수는 없었다. 장목화는 누구처럼 예의를 모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백새벽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대꾸했다.
“여러 면에서 제 행동 방식이 회사 내부의 분위기랑은 안 맞는 거 같아서요.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잖아요. 제가 지나치게 주도적인 부분이 제 이미지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것보다는 걔를 놀라게 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걔를 부끄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게 걱정스러웠어요. 그래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걔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하, 난 또. 과거에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상처가 커서 그러는 줄 알고 어떻게 위로하고 카운슬링해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장목화는 기쁜 빛을 보였다. 이 틈에 구세계 콘텐츠에서 배운 ‘카운슬링’이란 표현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후로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물었다.
“우리 팀원이 몇이나 된다고. 나랑 야랑 겐만 입 다물면 너랑 작은 빨강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누가 알겠어?”
“야가 정말로 입을 다물까요?”
“…….”
장목화도 말을 잃었다. 정말로 장담할 수가 없었다. 이건 아마 성건우 본인도 자신할 수 없지 않을까?
그녀는 다시 화제를 전환했다.
“성영희 말이 맞아. 애쉬랜드에는 오늘만 있지, 내일은 없잖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대해야 하고, 쓸데없는 고민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돼. 넌 황야 유랑자 출신이니까 나보다 더 잘 알지?”
몇 초간 침묵하던 백새벽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겠어요.”
장목화는 더 이상의 말은 얹지 않았다. 다른 사람 마음과 관련된 일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건 선을 넘는 짓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말없이 야영지로 돌아갔다.
* * *
성건우와 용여홍은 한창 지프 주위를 돌며 음식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백새벽이 걸음을 빨리해 용여홍 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용여홍은 굳어버렸고 성건우는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경계를 맡은 게네바도 이를 보고 다시 야영지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 무슨 일이야?”
용여홍은 코앞에 선 백새벽을 내려다보며 더듬더듬 물었다.
백새벽이 덤덤하게 물었다.
“너 나 좋아해?”
‘와우!’
성건우가 막 휘파람을 불려던 그때, 옆에서 손 하나가 쑥 뻗어 나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장목화의 손이었다.
백새벽의 질문에 멍해진 용여홍은 이내 급격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나, 나는 유전자 개량을 했는데도 175센티미터밖에 안 되고, 생긴 것도⋯⋯.”
“좋아해, 안 좋아해?”
백새벽은 가차 없이 그의 말을 끊었다.
한참을 어물거리던 용여홍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빨갛게 달아오른 볼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조, 좋아해. 그렇다고 너 불편하게 할 일은 없⋯⋯.”
“나도 너 좋아해.”
“⋯⋯.”
몇 초간 초점을 잃었던 용여홍의 눈동자에 순간 빛이 쏟아져 내렸다.
“정말? 아니, 널 못 믿는 게 아니고. 그냥 한 번 더 확인하려고…….”
떨고 있는 그를 보며, 백새벽이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
용여홍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한동안은 말도 잊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텅 빈 머리엔 금세 각종 생각이 뒤엉키고, 고삐 풀린 야생마가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때, 백새벽이 손을 뻗어 용여홍의 왼손을 쥐었다. 그러곤 지프를 흘깃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밖에 나와 있는 상황이라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잖아. 지금 당장 아이라도 갖게 되면 곤란해져. 그것만 아니면 오늘 밤이라도 당장⋯⋯.”
“그, 그렇게 급할 필요는 없어!”
기쁘고도 당황한 표정의 용여홍이 기계 팔로 손사래를 쳤다.
그 후 그는 백새벽의 입가에 걸린, 장난기 어린 엷은 미소를 보았다. 그제야 백새벽이 자신의 고백을 진지하게 받고 농담을 건넨 거란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