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666
666화. 의외의 발견
그렇게 10여 분이 흘렀을 무렵, 우베이 쪽에서 구조팀의 지프를 포함한 자동자 2대가 달려와 구조팀 앞에 섰다.
차 운전을 맡은 건 성영희였다.
그녀는 차 문을 열고 내린 뒤, 장목화에게 열쇠를 살짝 던져주었다.
그 순간, 성건우가 재빨리 몸을 날려 대신 잡아챘다.
‘⋯⋯?’
성영희의 얼굴에는 얼떨떨한 표정이 떠올랐다.
뒤쪽의 다른 차에 탄 구세군 전사들은 이쪽으로 접근하는 대신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아마도 구조팀을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열쇠를 잡은 성건우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성영희에게 다가갔다.
“황 위원님과 장 씨 어른을 비롯한 분들이 희생됐어.”
성영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오다가 들었어. 저 차에 무전기가 설치돼 있거든.”
이후 다시 고개를 든 그녀가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그 눈은 여전히 울고 있는 듯했다.
“난 구세군이 된 첫날부터 희생은 불가피하단 걸 알았어. 우베이 주위 전사들과 달리 변경 거점에 장기간 머물면서 수시로 위험을 직면하고, 몇 번이나 다치기도 했었으니까. 나랑 주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희생당할 수도 있다는 건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그런 상황이 와도 안 슬플 순 없겠지만 중요한 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거야.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을 아끼고, 잘 어울리고, 최대한 모두의 삶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해야지.”
장목화도 성영희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던 찰나, 언제나 솔직한 게네바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럼 정평안이 너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나? 그 아이한테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좋은 시간을 보냈었나?”
이 순간 용여홍 뿐만 아니라 백새벽과 장목화까지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직 성건우만이 또 손뼉을 치고 싶은 눈치였다.
‘그게 대체 무슨 질문이야! 겐, 지금이 그런 질문을 할 때야? 그건 실례라고! 심지어 말싸움으로도 번질 수 있는 얘기라고!’
뒤늦게야 정신이 든 장목화는 마음 같아선 로봇을 그냥 분해해버리고 싶었다. 그녀도 정평안이 누구인지 똑똑히 기억했다. 변경 초소의 그 앳된 청년, 작년에 발발한 퍼스트 시티와의 탐색전에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총을 몇 발이나 맞아가며 성영희를 구해낸 바로 그 청년이었다.
장목화가 상황을 수습하며 사죄의 뜻을 표하려던 그때, 왠지 복잡한 눈빛이 된 성영희가 입을 열었다.
“그 애랑 자기는 했어.”
‘⋯⋯?’
장목화, 용여홍, 이번엔 성건우도 짧은 순간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 백새벽 뿐이었다.
뒤이어 게네바가 캐묻기 전, 성영희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한테 남편이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심지어 빙원에 가서 남편을 찾아달라고 하지 않았냐고 묻고 싶겠지.
벌써 2년이야. 빙원으로 간 사람은 소식 하나 없고, 난 변경에 처박혀 고향만 수호하고 있어. 난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랑 새살림을 차리기라도 한 건지, 아무것도 몰라. 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무엇보다 우린 다음 순간 우리 중에 또 누가 무심병에 걸릴지, 누가 총알에 심장을 뚫리게 될지도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어.
난 여전히 남편을 사랑해. 근데 내 전우들도 많이 아끼고 가엽게 여겨.
늘 내 뒤에서 날 보호해주고, 날 위해 총까지 막아준 아이가 목숨이 위태로운 와중에도 애정이 넘치는 눈으로 나를 보는데, 어떻게 그걸 거절해?
그 애는 황야유랑자 출신으로 일찍이 부모를 잃고 힘겹게 살아왔어. 그러다 가까스로 우리 구세군에 찾아와 필요 기한을 채운 뒤 부대에 가입했지.
태어나 단 한 번도 사랑을 느껴본 적 없는 애야. 그 애가 마지막 소원도 이루지 못한 채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 뒀어야 해?
하하, 나도 다신 만나지 못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은 있어. 근데 그건 사치야. 애쉬랜드엔 오직 오늘만 있지, 내일이 있을지도 불명확해. 나도 전에는 그러길 바랐지만⋯⋯.”
성영희가 흐린 말끝 속엔 짙은 아쉬움과 공허한 공기가 가득했다.
용여홍도 성영희를 질책할 수 없었다. 같은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히 어떤 말도 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속으로만 욕설을 뇌까릴 뿐이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
빠르게 감정을 회복한 성영희는 구조팀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우리 남편이 돌아온다면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알리고. 우리의 미래도 그 사람이 선택하도록 할 거야. 너희가 부디 그 사람을 찾고, 내가, 내가 그 사람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꼭 알려줬으면 해.”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희망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약속한 거잖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게. 지금 우베이 상황은 좀 어때?”
그녀는 성영희를 위해 자연스럽게 화제를 틀었다.
이내 성영희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숨겨진 핵탄두가 있는지 조사하고 있어. 수많은 구세군 전사가 폭발로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분투 중이지. 아무 문제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이주시킨 주민들은 다시 복귀시킬 거야. 곧 그렇게 될 거고.”
“그렇게 빨리?”
성건우가 협조적으로 말을 받았다.
성영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신세계 강자의 위협은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었어. 최대한 빨리 그 많은 주민을 이주시키려고 아무 검사 없이 도시 밖으로 내보냈어. 핵탄두는 이미 우베이 밖으로 반출됐을 가능성이 커.
하하, 일어나려는 일을 인력으로 어떻게 막겠어. 그냥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지. 어쨌든 우리 구세군에 핵탄두가 그거 하나뿐인 건 아니니까.”
보아하니 핵탄두를 훔친 사람도 구세군의 어느 중요 도시를 날려버릴 생각은 없었던 듯했다. 우베이와 필적할 정도로 중요한 도시는 구세군의 본부인 핑난시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천천히 조사하는 수밖에 없겠네.”
장목화가 위로했다.
성영희는 뒤에 세워진 구세군 차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만 가볼게. 우베이로 돌아가 물자를 보충하든, 이대로 빙원으로 가면서 물자를 보충하든 마음대로 해도 돼. 통행증 잃어버린 건 아니지?”
“물론이지.”
“음, 우베이로 돌아가고 싶다면 사흘 정도는 기다렸다가 출발하거나 확실하게 안전해졌다는 통지를 받은 뒤에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그럼 너희가 좋은 소식을 전해오기를 기다릴게!”
손을 흔들며 차에 오른 성영희는 우베이를 향해 떠났다.
그렇게 구세군의 차가 떠난 뒤, 장목화는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상자 차에 싣자.”
용여홍은 얼른 앞으로 몇 발짝 옮겨 지프의 트렁크를 열었다.
그 안을 한번 훑어보던 그는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뭐가 이렇게 많지? 구세군의 선물인가?”
원래 약소했던 트렁크 안 물자가 3분의 1이 넘게 채워져 있었다.
“와, 이게 웬 횡재야?”
신이 나 다가온 성건우는 쌓인 물건들을 이리저리 뒤적여 보았다.
좌르륵-
소리를 내며 쓰러진 물건들 아래에 꽤 큰 상자 하나도 보였다.
“에이, 그냥 한두 겹 정도 쌓여있던 것뿐이네⋯⋯.”
성건우는 퍽 실망한 듯하면서도 호기심을 안고 그 상자를 열어 보았다.
달칵!
상자가 열린 순간, 구조팀원들의 눈빛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상자 안에 얌전히 누워있는 건 굉장히 묵직한 은회색 탄두였다.
그걸 몇 초간 응시하던 장목화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거, 그 핵탄두는 아니겠지?”
‘범인이 나였던 거야?’
순간 용여홍의 머릿속에 흐릿하게 잠든 기억 하나가 또렷이 깨어났다.
장목화, 성건우가 황 위원을 만나러 간 뒤 용여홍은 게네바와 순서를 교대해 창가에서 지프 부근의 동정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때, 용여홍은 밀차를 끌고 온 누군가가 구조팀의 지프 트렁크를 열더니 제법 큰 상자 하나를 쑤셔놓고 나머지 물자들로 위장을 하는 광경을 혹시, 어쩌면, 아마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상대는 모든 감시카메라를 빠짐없이 피했을 뿐만 아니라 주차장 상황에 대해서도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알고 있었다.
흐릿한 기억이 색을 찾자, 용여홍은 바르르 몸서리를 치다 외쳤다.
“기억났다! 기억났다! 누가 이 상자를 우리 지프 트렁크에 실었었어요!”
상세한 설명 없이도 장목화는 곧장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214호 투숙객 영향 때문에 기억이 흐려져 있었던 거야? 언제 그랬어?”
용여홍은 잔뜩 겁을 먹은 목소리로 답했다.
“자, 작은 흰둥이랑 게네바랑 돌아가면서 지프 주위를 감시했었잖아요. 그때 누가 밀차를 끌고 와서 우리 차에 이 상자를 싣고 위장하는 걸 봤어요. 근데 그 기억은 금방 흐려졌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기억까지 덧씌워져서 지금 막 이 상자를 보고서야 깨달았어요.”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214호 답네. 우리 중에 누가 가장 물렁한지도 잘 알고 있었고.”
“⋯⋯.”
용여홍은 대화 주제가 다른 곳으로 빗나가지 않게 애써 말을 아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장목화는 황급히 스스로를 다잡았다.
“지금 문제는 214호 투숙객이 이런 짓을 한 목적이 뭐냐는 거야.”
백새벽이 추측에 나섰다.
“핵탄두랑 분리돼 있어야 우베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장목화는 그 말에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끼며 오른손을 몇 번 흔들었다.
“자자, 천천히 생각해보자. 214호 투숙객은 천이통 능력이 있는 브로치가 있었어. 즉, 그 사람은 우리가 하는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었어. 그냥 자기가 듣고 싶으면 언제든 우리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는 말이야.”
성건우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작은 빨강이가 제일 물렁한 걸 잘 아는 이유가 있었네!”
장목화는 일단 그를 팩 쏘아본 뒤 말을 이었다.
“우리랑 황 위원의 만남은 직접 찾아온 성영희의 초청으로 이뤄진 일이었어.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성영희는 황 위원이 군사 물자 통계와 분배를 관장하고 있다고 말했었지.”
“아니, 성영희가 황 위원을 직접 언급한 적은 없어. 우베이 물자 총괄 위원회의 한 위원이라고만 말했을 뿐이지.”
이 자리에서 기억력이 가장 뛰어난 게네바가 지적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장 영역을 바탕으로 우리랑 만날 위원이 핵탄두에 대한 조사를 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추론할 수 있어. 우리가 그런 상대의 초청을 받았다는 건, 그와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건 당시 우리가 성영희랑 나눈 대화만 들으면 어렵지 않게 얻어낼 수 있는 결론이야.
그렇다면 214호 투숙객이 이 대화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최대한 빨리 도시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더라도 직접 핵탄두를 가지고 우베이에서 빠져나가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구세군은 도시에서 나가려는 이들을 대상으로 분명 일정한 검사를 진행하려 할 거고, 특정 각성자 능력의 방해에도 대비하려 할 테니까. 이런 방면에 있어서 황 위원은 말인 영역의 능력을 겨냥하는 데 전문이잖아.
하지만? 핵탄두를 우리 차에 숨긴다면 우리랑 황 위원의 특수한 관계를 바탕으로 검문을 피할 수 있어. 그렇게 탄두가 도시 밖으로 반출되는 사이 그 사람 역시도 당당하게 아무 문제 없이 우베이를 떠날 수 있겠지. 그 후에 몰래 우리를 따라와 핵탄두를 회수하면 되는 거야.
음, 아무 흔적도 없이 우베이 방송 시스템을 하이잭했을 만큼 뛰어난 해커가 경보를 안 울리고 지프 트렁크 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을 거고.”
구조팀의 지프는 전기자동차로, 차 문의 개폐는 모두 제어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짝! 짝! 짝!
탁! 탁! 탁!
성건우와 게네바가 동시에 장목화의 추측에 갈채를 보냈다. 논리와 인간 심리에 가장 부합하는 추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