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47
747화. 하 씨
타르난, 세린 드림 여관.
사장 아이노는 최근 달력을 수차례나 자세히 훑어보고 있었다.
‘거의 한 달이 다 돼가는데 왜 신룡교 각성자는 아직 오지 않는 거지? 내가 구한 건 길치인 깨진 거울 영역 각성자가 아니라 최면을 걸 줄 아는 말인 영역의 각성자인데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매일 악몽을 꾸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결국 용기를 낸 아이노는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재차 문을 나섰다.
목적지는 남가관, 주명희를 만나려는 것이었다.
“주 관주, 교파의 최면을 걸 줄 아는 각성자는 아직입니까?”
아이노가 겸손하게 물었다.
주명희는 그녀의 옷을 자세히 살핀 뒤 눈을 크게 떴다.
“아이노 부인, 그때 포기하고 악몽에 적응하기를 택한 거 아니셨나요? 그래서 전 본부에 신청도 안 했는데요?”
아이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가 언제요! 매일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이니 진지하게 임할 필요 없다고 매일 날 위로하면서 한 달을 버텼어요!”
‘주명희, 당신 얼굴만 못 알아보는 게 아니라 머리도 어떻게 된 거 아냐!’
주명희는 상대의 반응이 더더욱 의아할 따름이었다.
“부인께서는 분명 그냥 안고 가시겠다고, 악몽으로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겠냐고 하셨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도 같지만⋯⋯.’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던 아이노가 말했다.
“하지만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됐습니다, 됐어요.”
주명희는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양팔을 펼치고 몸을 살짝 뒤로 젖혀 허공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노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래도 자신과 주명희는 그때의 상황을 서로 완전히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심지어 자신이 주명희에게 도움을 청한 게 혼자만의 환상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내 아이노는 저도 모르게 주명희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감실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감실 안의 깨진 거울 파편들로 이루어진 용 모양의 상징이 미약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 * *
점심을 먹고 구조팀은 지프에 올랐다.
거래를 할 수 있을지 보겠다는 명목 아래 절벽 마을을 떠난 구조팀은 골짜기 마을로 향했다. 엔드이어 시티 사람들과의 접촉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산골짜기 마을은 집이 대부분 다 무너져 있었다.
엔드이어 시티 차량 행렬이 그 작은 광장과 주위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일부는 구조팀이 전에 보지 못한 차량이었다.
절벽 마을 규칙을 똑똑히 아는 엔드이어 시티 사람들이 이미 차량 행렬을 분리해 중요한 물건을 실은 차들은 먼저 골짜기 마을로 보낸 모양이었다.
그런 차들은 전부 큼지막했다. 어떤 차에는 기름 따위가 들었을 법한 커다란 드럼통이 실려 있었고, 어떤 차에는 철제 울타리 안에 양, 육우, 흑돼지 등을 싣고 있었다.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기복을 이루며 이어지고 있었다.
동물들의 악취는 이미 멀리까지 퍼진 상태였다. 거기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진 도살로 인한 피비린내에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잠시 숨을 멈췄다.
잠시간 적응의 시간을 가진 후, 용여홍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빙원에서 가져온 건가?”
그도 엔드이어 시티가 자리한 산골짜기가 온난하고 토지도 비옥해서 농사도 할 수 있고 방목도 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엔드이어 시티에서 절벽 마을까지 오는 길은 기본적으로 흰 눈에 뒤덮여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 듯한 황원이었다.
짐승들이 대대적으로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요행히 살아남는 녀석이 있다 해도 몇 마리 되지 않을 것이었다.
용여홍도 누가 답해주길 바라며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호기심에 튀어나온 혼잣말이었고, 동료들도 엔드이어 시티에 가본 것이 아니기에 그곳의 구체적인 상황이 어떤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혼잣말 끝에 용여홍은 알아서 조용히 추측에 돌입했다. 차에 실린 동물들은 엔드이어 시티 사람들이 이곳에 오기 전 남쪽으로 거래하러 갔을 때 얻은 것이거나 추위에 대항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목축 방식이 있지 않을까?
그때, 근처에 세워진 어느 SUV 옆, 두툼한 솜옷 차림의 한 중년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엔 눈과 바람에 오래 시달린 흔적이 역력했다.
“우리 엔드이어 시티의 돼지, 소, 양은 전부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먹는 양이 좀 많긴 한데 육질은 아주 훌륭해. 한 마리 사 갈래? 아니면 여기 이 모피들은 어때? 엄청 싸!”
남자는 이야기하는 동시에 옆쪽 SUV 트렁크를 열면서 모피들을 꺼내 보였다. 개중 더러는 흔히 볼 수 있는 소나 양 모피였지만 또 더러는 빙원 생물의 것도 있었다.
“저 짐승들은 왜 추위에 견디는 능력이 그렇게 대단한 건데?”
중년 남자는 비슷한 질문을 수없이 받아본 듯 망설임 없이 답했다.
“어떤 녀석은 구세계 때부터 원래 그런 종자였고, 어떤 녀석은 정상이었는데 변이된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그것들을 분간하고 먹어봤는데 문제없었어. 우리 장로님 말씀을 빌리자면 양성 변이인 거지.”
고개를 끄덕이던 성건우가 진지하게 물었다.
“엔드이어 시티 평균 수명이 어떻게 돼?”
“어⋯⋯.”
중년 남자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엔드이어 시티에서는 평균 수명의 통계를 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선생 노릇 하기를 좋아하는 성건우가 설명했다.
“내 말은 엔드이어 시티에서 청장년 시기에 죽는 사람이 많냐는 거야. 마흔 살 전에 죽는 사람이 많아?”
중년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을 내놓았다.
“글쎄⋯⋯. 남쪽의 대형 거점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뒤이어 그는 자신의 차에 실린 모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흡사 골짜기 마을 전체가 대형 전시회장으로 바뀐 것 같았다.
차들 하나하나가 곧 상점이자 좌판인 셈이었다.
장목화는 예의 바르게 그 중년 남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서 무두질이 잘 된 모피를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당신들의 대장은 누구야?”
중년 남자의 눈이 반짝 빛났다.
“큰 거래를 하려고?”
장목화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은 채 말을 받았다.
“봐서.”
중년 남자는 곧장 바닥이 온통 피바다가 된 도살장을 가리켰다.
“저쪽에 있어. 곰 가죽 코트를 입고 담뱃대를 들고 있는 사람. 혹시 잎담배에는 관심 없어? 우리 엔드이어 시티는 빙원에 있긴 해도 산골짜기 등지의 기후와 토양은 담배 재배에 적합해. 남쪽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성건우는 가지런한 이가 다 드러나도록 씩 웃었다.
“우리가 담배를 피우게 생겼어?”
장목화가 물었다.
“당신들 대장은 뭐라고 불러야 해?”
“하 씨, 그냥 하 씨라고 부르면 돼.”
중년 남자는 열정적으로 답했다.
* * *
구조팀은 작은 광장 측면의 한 거리에 자리한 임시 도살장으로 향했다.
이 현장에서 도살된 소, 양, 돼지는 거래용이 아니라 이곳에 자리한 이들이 며칠 동안 지내며 먹을 식량이었다.
물론 만약 정말로 어느 절벽 마을 주민이 개인적으로 소금이나 찻잎, 공업 제품을 가져와 몇 근 얻어가고자 한다면, 엔드이어 시티의 사람들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 씨라 불리는 차량 행렬의 우두머리는 피로 범벅된 거리 가장자리에 서서 부하들이 고기를 자르고 잘 분류해 보관하도록 지시 중이었다.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는 곰 가죽 코트 차림에 털이 보송보송한 모자를 쓰고, 수시로 담뱃대를 들어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비쩍 마른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목화는 엔드이어 시티의 차량 행렬 중 말인이나 장생 영역의 각성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운을 쓴 게네바를 힐긋 바라보았다.
게네바도 그녀의 의사를 알아차리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구조팀의 최후 방어선이었다.
로봇 역시 전류 방해, 물질 간섭과 일부 능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인류보다 훨씬 더 각종 능력에 면역이 되어 있었다.
“하 씨, 하 씨!”
성건우가 차량 행렬의 우두머리를 향해 열정적으로 인사했다.
소리를 듣고 돌아선 하 씨는 구조팀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
“당신들은?”
어째서 자신에게 이렇게 친하게 구느냐는 표정이었다.
상대와 대면한 장목화는 그의 눈이 굉장히 그윽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생김새나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눈이었다.
“우리는 절벽 마을에서 왔어. 하지만 절벽 마을 사람은 아니지.”
장목화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 씨는 그녀와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을 몇 차례 훑어보았다.
“알만하군. 하지만 당신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우리 손님이니까. 원하는 게 뭐지?”
성건우가 장목화보다 앞서 답했다.
“돼지, 소, 양, 모피는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야.”
“응, 우리에겐 밀가루랑 잎담배, 빙원 특산물도 있어.”
하 씨는 상당히 침착했다.
“아니, 아니, 아니, 그것도 우리가 원하는 건 아냐.”
성건우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하 씨가 시종일관 자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 상황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하 씨의 이마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장목화가 얼른 덧붙였다.
“우리가 거래하려는 건 정보야. 우린 앞으로 빙원에 임무를 수행하러 가야 하는데, 당신들한테 그곳 기후, 지형, 유적과 관련한 정보 좀 얻고 싶어서.”
하 씨의 표정이 그제야 약간 풀어졌다.
“그런 거라면 우리가 확실히 잘 알고 있지. 근데 어떤 정보의 가격은 상당히 비싸. 그 정보는 뭐로 사려고?”
“평범한 무기들, 혹은 고성능 배터리 하나. 오렌지 컴퍼니산이야.”
장목화의 머릿속엔 이미 계획이 서 있었다.
이번 임무에 나서기 전 구조팀은 고성능 배터리 여러 개를 신청했었다. 원래 가진 배터리도 수십 개는 돼서 현재 배터리 보유량은 상당했다.
이내 하 씨가 웃었다.
“하나로는 부족할 수도 있을걸. 물론 뭘 묻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빙원 내 대부분 지역에서 고성능 배터리는 휘발유나 등유 등의 물자만 못했다. 하지만 엔드이어 시티가 자리한 산골짜기는 기후가 온난한 덕분에 배터리가 필요한 설비도 꽤 쓰였다.
장목화는 일단 성건우 부친이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그 도시의 구체적인 위치부터 물었다.
“그런 도시가 있다는 건 알아. 오래전에는 그 주민들과 접촉한 적도 있고. 근데 지난 십수 년간 그들과 만난 적은 없었어. 그 도시가 구체적으로 어느 구역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대략적인 방향만 알뿐이야.
그 도시는 화이트 기사단 근처에 있어. 기후에 근거해서 찾아볼 수도 있을 거야. 빙원에서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왔다면 그곳 기후도 꽤 괜찮은 편일 테니까. 우리 엔드이어 시티만은 못하더라도 일반적인 빙원보다는 훨씬 따뜻하겠지.”
몇 가지 세부 사항을 더 물은 장목화는 꽤 만족한 답을 얻었다.
그때, 성건우가 못 기다리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럼 혹시 제8 연구원의 특파원을 본 적은 없어?”
하 씨가 약간 멍한 표정을 드러내자, 장목화가 황급히 질문을 보완했다.
“빙원에서 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적 있느냐는 거야. 그 사람들도 빙원 모처에 사는 것 같거든.”
하 씨가 고개를 저었다.
“난 없어. 우리 엔드이어 시티의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경험이 있을지는 모르겠네. 이따가 한번 물어봐.”
장목화는 알겠다고 답한 뒤 고성능 배터리를 하나 꺼냈다.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물을 게 없네.”
거래가 끝나자 성건우는 돌연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두 팔을 들어 아이를 안아 어르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끝은 사명에게로 돌아가지니!”
장목화도 엔드이어 시티의 신앙을 떠보기 위한 행동임을 눈치챘다.
그러자 하 씨가 웃었다.
“너도 사명 신도야? 우리 엔드이어 시티 주민도 거의 그 달지기를 믿어.”
성건우가 바로 앞으로 나가서 친한 척하려는데, 하 씨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안타깝게도 난 아냐.”
“그럼 당신은 뭘 믿는데?”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하 씨는 옷깃 안에서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목걸이에는 나무로 조각된 작은 사람 모양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얼굴은 이목구비 없이 텅 빈 채였다.
그 펜던트를 쥔 하 씨는 신실하고도 장엄하게 말했다.
“내가 믿는 건 진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