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45
845화. 협력
같은 시각,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탑 안에는 한 겹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듯했다.
성건우가 아주 덤덤하게 말했다.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게 힘을 합쳐 찌르면 어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대로 무너져 내리면서 우리에게 기류를 분사하지는 않을까요? 그러면 어쩌죠?”
미약한 빛이 어린 기류는 신세계 강자의 의식을 녹여버릴 수 있었다.
이때 현장의 신세계 강자들은 전부 그 기류를 고도로 경계하며 언제든 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등한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버나드와 진문을 비롯한 이들에게 그건 확실히 주의해야 할 점이었다. 애쉬랜드로 돌아갈 수 있는 이 중요한 순간에, 희망의 빛을 눈앞에 둔 이 순간에 불필요한 희생양이 되고 싶진 않았다.
다음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그 낮고 흐릿한 목소리가 한번 더 울렸다.
“내가 너희들을 보호해줄 것이다. 그럼 세부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하지 마라. 승리가 눈앞에 있느니라.”
왠지 버나드는 그 음성이 이를 악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좋습니다!”
성건우의 답은 굉장히 호쾌했다.
이후 솔선해서 걸음을 내디딘 그는 분사되고 있는 기류 사이, 거대한 어둠을 향해 다가갔다.
유천과 진문, 그리고 버나드를 업은 신세계 강자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번득이는 빛, 혼란스러운 기류,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어둠은 꼭 종말이 강림한 듯 긴장된 분위기를 형성했다.
“잠깐!”
성건우의 목소리가 또 그 분위기를 깨뜨렸다.
걸음을 늦춘 유천은 결국 짜증을 냈다.
“또 무슨 질문을 하려고?”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유천은 그 답에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지금의 그는 정신체, 의식 생명이라 토해낼 피가 없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이내 성건우는 측후방에 자리한 버나드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걱정 안 되십니까?”
바들바들 떨고 있는 버나드도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무슨 걱정?”
성건우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대로 신세계에서 빠져나가면 애쉬랜드에 재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임해 연맹 최초의 레드리버인 총통으로 그곳 사람들을 수호하기 위해 미리 대문을 열고 이곳에 진입했다고 하셨잖습니까.
말하자면 당신은 그들의 영웅인 거죠. 지금의 이 행동이 임해 연맹에 막기 힘든 재난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안 되십니까?”
버나드는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난 이미 결정했네. 다른 것들은 신경 쓸 수가 없어. 계속 여기 머물다가는 난 그만 미쳐버리고 말 거야. 자살 충동만 가득 안고 살아가겠지. 이로 인해 발생할 재난은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자고. 때가 되면 난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남김없이 바칠 거야. 자, 어둠으로 가세.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그는 성건우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을 업은 신세계 강자를 재촉했다.
그의 말이 막 떨어지자마자 어둠이 순간 팽창했다. 거의 극치에 이른 가장자리가 몇 사람 코앞에 이를 정도였다.
이로 인해 미약한 빛이 어린 기류는 더 많아지고 거칠어졌다.
그것에 계속 신경 쓰며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던 성건우 일행이 빠르게 쪼그려 앉거나 곧장 바닥으로 몸을 날리지 않았더라면 그중 일부는 그것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쾅! 쾅! 쾅!
분사된 기류들은 탑 내벽과 충돌하면서 망치로 때리는 듯한 매섭고 우렁찬 굉음을 울렸다.
쨍그랑!
유리들도 깨지고 회반죽 조각이 추락하며 얼룩덜룩한 벽체를 드러냈다.
이 탑 자체에 처음으로 생긴 손상이었다.
문 근처 지면에도 최초의 균열이 나타났다. 바깥쪽으로 퍼져나가는 이 균열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그사이, 문 쪽으로 쏘아져 나가던 한 덩어리 기류가 다른 길을 통해 이곳에 이른 한 신세계 강자와 그대로 부딪혔다.
그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극도로 일그러진 얼굴만 드러낸 채 기류와 함께 소멸했다.
어둠의 팽창으로 인한 지진과 돌풍이 계속 바깥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어둠은 전과 마찬가지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성건우와 유천을 비롯한 이들이 속속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들의 귓가에 낮고 흐릿한 목소리가 울렸다.
– 가라, 가⋯⋯.
* * *
소용돌이형 건물 안.
장목화는 세 구의 백골 주머니를 모두 뒤져보았지만 발견한 것이라고는 초콜릿 등등뿐이었다. 현재로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물건밖에 없었다.
또한 백골의 상태로 볼 때 심각한 타격을 받은 듯한 흔적도, 중독된 흔적도 없었다. 유일하게 상처가 난 것은 피영우라는 보안요원이었다. 기관단총 위에 얹힌 그의 오른팔에는 뼈에 금이 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장목화는 이에 근거해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피영우는 어느 한순간에 타이 시티 사람들이 그랬듯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듯했다. 그의 기관단총이 먼저 바닥에 떨어졌을 테고, 바로 다음에 쓰러진 그의 오른팔은 총기의 어느 돌출부와 충돌하며 뼈에 금이 갔을 터였다.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게 죽었겠지.’
장목화는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그녀의 가장 큰 의혹은 이것이었다.
‘곰돌이 크래커와 그 초콜릿은 눅눅해지지도, 곰팡이가 피지도 않고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데 왜 시신들은 오염된 옷과 백골로만 남은 걸까?’
지금으로선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장목화는 다시 소파 위 백골로 향했다.
이 백골 역시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옆에 놓인 기관단총은 없었다. 허리춤의 권총집에 권총만 들어있었다.
그녀는 곧 시신의 오른쪽 가슴팍을 보았다.
역시 검은색 바탕 명찰에, 금색 애쉬랜드 문자가 쓰여 있었다.
「보안 책임자 브라이언 스탠리」
그 아래쪽에 레드리버 문자가 작은 크기로 병기돼 있기도 했다.
‘성도,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데.’
장목화는 반쯤 쪼그려 앉아 브라이언 스탠리 주머니 수색에 들어갔다.
이 주머니에도 먹을 것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없었다,
“관리가 꽤 엄격했나 보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는 시간 낭비하지 않고 다른 백골들을 살폈다.
빠르게 검사를 마친 후, 그녀는 대기 구역 안쪽 통로를 쳐다보았다.
미닫이 형식의 금속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장목화가 시험 삼아 안쪽으로 한 걸음 내디딘 순간, 갑자기 머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너무도 익숙한 느낌에 장목화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더는 앞으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통로 끝만 바라봤다.
‘핵심적인 물건이 저 안에 있나?’
당분간 안으로 진입할 수 없는 장목화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찾았다. 현재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그쪽으로 다가가 계단을 올랐다.
모든 것은 평탄했다. 무심병도 나타나지 않았다.
* * *
– 가라, 가⋯⋯.
낮고 흐릿한 목소리 속, 진문과 유천, 성건우를 비롯한 이들은 미친 듯이 분출되는 미약한 빛이 어린 기류를 피해 어둠 앞에 이르렀다.
어둠과 수축과 팽창은 더는 전처럼 격렬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힘이 없는 듯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진즉 성건우 일행을 그대로 뒤덮었을 터였다.
– 시작하지.
진리의 명령에 따라 유천이 먼저 오른손을 어둠의 표면에 얹었다.
“좋습니다!”
언제나 적극적인 성건우는 그의 오른손을 유천의 손에 포갰다.
유천은 의아함과 혼란이 어린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이건 또 무슨 짓이냐는 표정이었다.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건우가 뭐가 문제냐는 듯 물었다.
그의 재촉에 버나드와 진문, 그리고 버나드를 업은 신세계 강자도 각자의 자리에서 오른손을 뻗어 성건우와 유천의 손에 그들의 손을 얹었다.
“시작하죠!”
퍽 흥분한 듯한 성건우가 외쳤다.
신세계 강자 다섯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내어 동시에 물질 간섭 능력을 발휘했다.
그들의 손 아래에서 빠르게 응집된 공기는 극도로 단단하고도 예리한 칼날이 되었다.
그리고 그 칼끝은 곧장 어둠 깊은 곳을 찔렀다.
순간 어둠이 정지했다. 그것은 더 이상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았다.
잠깐 응고되는가 싶던 거대한 어둠은 이내 거칠게 폭발했다.
펑!
터진 풍선 같은 폭발음과 함께, 수많은 미약한 빛 덩어리가 사방팔방으로 분출되었다.
유천과 성건우 등은 폭발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도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미약한 빛이 어린 기류 덩어리들은 그들의 얼굴과 몸으로 날아들며 의식을 뒤덮었다.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은 기운이 빠르게 흩어져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리가 말한, 보호 같은 건 받을 수 없었다.
번뜩 정신을 차린 성건우는 재빨리 의식을 자신의 심령 방에 옮겼다.
그의 131호는 이미 마디마디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아직 그 방 자체는 존재했다.
성건우는 두 걸음을 내달린 뒤 몸을 훌쩍 날려 기원의 바다로 이루어진 액정 TV 안으로 들어갔다.
* * *
성건우의 기원의 바다.
미약한 빛으로 이루어진 바다는 빠른 속도로 증발하고 있었고, 하늘은 조각조각 혼돈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저지할 수 없는 이러한 변화는 곧 성건우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내 성건우는 수종이를 대표하는 틈 앞으로 냅다 파고들었다.
하지만 혼돈으로 바뀌는 하늘은 멈추지 않았다.
그 추세는 틈 앞으로까지 뻗었다.
성급한 성건우는 이 광경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나가면 죽어! 도박하는 수밖에 없어!”
이번에는 어느 성건우도 그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성건우는 검은 그림자로 뒤덮인 채 미약한 빛을 번득이고 있는 수종이의 틈 속으로 나아갔다.
순간 성건우는 마치 깊은 해저에 떨어진 듯했다. 몸은 무겁게 짓눌렸고 눈앞은 캄캄했으며 귓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중요한 때에, 성건우들은 일찍이 축적해둔 힘을 모아 크게 외쳤다.
“수종아!”
짧은 정체 후 바닷물이 층층이 억누르는 듯하던 느낌이 사라졌다.
성건우는 다시 광명을 보게 되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심령의 복도처럼 도처에 방이 널린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복도는 하나가 아니라 종횡으로 교차돼 있었다. 이리저리 굽어있기도 한 것이 꼭 미궁 같았다.
미궁의 벽, 천장, 길에 흰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지만 방문의 색은 아무런 규칙도 없이 제각기 달랐다.
“각각의 방에 하나의 장생이 사는 건가?”
성건우는 상당히 흥분한 얼굴로 추측에 나섰다.
그도 장생의 인격이 분열돼 있고, 각각의 인격은 독립적으로 행동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는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 꿈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높은 탑 주위의 불이 환하게 밝혀진 건물들 역시도 제법 유용한 근거가 됐다.
성건우는 잠시 고개를 돌려 왔던 곳을 돌아봤지만 대응하는 틈은 없었다. 흰 벽이 그가 돌아갈 길을 막고, 눈앞에 놓인 위험을 제거해줬을 뿐이었다.
성건우는 이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뛰기 시작하면서 복도 양쪽 방문을 끊임없이 열었다.
쾅! 쾅! 쾅!
성건우는 마치 장난치는 아이처럼 열린 문틈 사이를 힐긋 보고 지나쳤다.
방 안에는 머무는 사람도, 가구도 없었다.
방금 막 건설된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