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987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987)
116. 환영 인사 (7)
백호군이 유리창을 잘 갈라 둔 덕에 균열이 점점 벌어져 바람이 흘러들어 왔다.
맑은 공기를 마시니 의식이 점차 명료해졌다.
제정신을 차렸으니 다음 수를 둘 차례였다.
‘들키지는 않았겠지?’
백호군의 존재가 발각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둘 수 있는 수가 크게 달라진다.
그렇게 자신만만했으니 유리 좀 깼다고 들키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코즈카 야시로가 보통 여우가 아닌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호랑이굴, 호랑이 냄새가 어쩌고 하는 코즈카 야시로가 인간 같진 않았다.
‘호족과 적대하는 인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대에 이른 후 최근까지 호족의 활동은 거의 없었어. 만약 대립각을 세운다면 그보다 오래 산 존재여야겠지.’
그렇다면 진족이거나 후예일 가능성이 올라간다.
불로의 수단을 얻은 인간일 수도 있고, 본인이 직접 호족과 대립한 게 아니나 선조의 뜻을 이어받았을 가능성도 있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름이었다.
황지호나 용제건, 서돌, 옥토연 등을 보면 알겠지만 인간 사회에 섞여 살면서도 성이나 이름에 자신의 종족을 드러내는 걸 아주 좋아하는 진족이 존재한다.
그리고 코즈카 야시로는 진족에 관해 잘 알면서도 성에 여우 호(狐)가 들어가니 진족이 아닌가 의심이 갔다.
은광고의 코치진에 용제건이 포함되어 있으니 일본 대표팀에도 진족이 있다 한들 이상하진 않았지만, 그 진족이 안다인에게 장난질을 치고 있다면 큰 문제가 된다.
‘아직 진족인지 후예인지 인간인지 판단할 근거가 적어. 나중에 백호군에게 물으면 확실하겠지.’
제법 거리가 있긴 했겠지만, 코즈카 야시로의 기운을 읽긴 했을 거다.
나도 백호군의 머릿속을 들여다봤으니 지금 당장 수를 두기 수월해졌을 텐데 좀 아쉬웠다.
내가 짧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코즈카 야시로는 디바이스로 무언가를 지시하고, 확인하고 있었다.
일본어로 무언가를 작게 말하는 게 들렸는데, 호텔 주변을 수색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척 깨진 유리창과 코즈카 야시로를 혼란스러워하는 얼굴로 번갈아 바라봤다.
“……근처에 호랑이가 없다고?”
코즈카 야시로가 의심스러워하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오면서 호랑이 대비를 철저히 했나 본데, 어설프게 대비를 하고 왔다면 바로 들켰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나와 같이 온 백호군은 어설픈 호랑이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이유로 들키지 않았을 수도 있어.’
백호군에게는 진명이 없다.
그리고 진족과 후예는 진명의 기척으로 서로를 판단한다.
그동안 다른 진족들이 백호군을 인간이라 착각하지 않은 건 워낙 유명한 신화계 진족이고, 진명을 잃었다는 소문이 자자한 덕에 얼굴만 봐도 대충 알아본 덕분이었다.
어떤 의미로 진명을 내다 놓은 덕을 본 것 같았다.
물론, 진명을 던진 건 여전히 미친 짓으로 보이니 얼른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은 변함이 없다.
“지력이 강한 지역이기에 이런 현상이 없는 건 아니다라…….”
“현재 호텔 입점 시설 중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 곳이 있어 피해를 파악하는 중입니다.”
한편, 백호군의 존재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탓에 유리창 건은 레스토랑 설비 문제 탓이 되었다.
은광구는 지력도 강하고 유동 인구 중 플레이어 비율이 높아서 이능 현상 대비를 철저히 해 두는 편인데, 그럼에도 가끔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백호군도 그걸 노리고 유리창을 부순 듯했다.
그것도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이 레스토랑 말고도 여러 층의 유리창을 동시에 깨 버려 이곳만을 노렸다는 의심을 옅게 하였다.
레스토랑 홀 매니저의 설명을 들은 코즈카 야시로는 걱정스러워하는 척 나를 보았다.
“괜찮아요?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은데, 이런 사고까지 발생하다니…… 자리를 옮겨서 계속 대화하죠.”
코즈카 야시로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능파 탓에 플레이어의 정신을 파고드는 건 어렵기 때문에 정신계 이능을 사용하기 전 빈틈을 만드는 건 기본이었다.
그 빈틈은 물리적으로 공격하거나 방금 코즈카 야시로가 내게 가족 얘기를 꺼낸 것처럼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방식 등을 통해 만든다.
코즈카 야시로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나는 가족 이야기를 듣고 동요한 데다 갑작스럽게 유리창 파괴 사건까지 겪었으니 공격하기 딱 좋은 상태로 여기고 있을 거다.
계속 속는 척해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코즈카 야시로에게 더 끌려다니면 위험할 것 같았다.
“창문을 열 수 있는 장소로 갈 수 있을까요? 긴장해서 그런지 좀 어지러워서요.”
“저런, 많이 놀랐군요. 알았어요.”
코즈카 야시로는 동정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고, 레스토랑의 사환이 개별룸으로 안내했다.
저렇게 주저 없는 태도를 보면 밀폐된 공간으로 유도해 향으로 허튼짓을 하려던 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정말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창가에 자리 잡고 창문을 열었다.
다시 둘만 남자 코즈카 야시로는 가만히 내 말을 기다렸다.
‘얼핏 보기엔 상대의 말을 기다리는 상담사의 모습으로 보이긴 하지만, 아니야. 아직 방금 사고 건을 두고 의심하고 있는 거겠지.’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미안한 척, 여전히 당황한 척 조금 말을 더듬다가 다시 정리해 말했다.
“가족 이야기가 나와서 저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쳤어요. 말씀하신 대로 제 고민의 시작은 가족에게 닥친 사건 이후인 것 같아요.”
나는 고민의 핵심을 짚어 준 상담사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처럼 말했다.
가족이라고 말하는 동안 혀와 목에 가시가 돋은 것처럼 소리가 울리는 곳이 다 따끔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이 코즈카 야시로에게도 보인 건지 의심이 좀 더 옅어진 것 같았다.
다음 수를 둘 방향은 생각해 뒀다.
다시는 코즈카 야시로가 내게 가족 얘기를 하지 않도록 유도할 생각이다.
“하지만 제가 계속 이러고 있으면 가족들이 걱정하겠죠. 그러니까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마음가짐이에요. 그럼 고민의 시작에 관해 이야기했으니, 그다음을 봐야겠네요.”
그 이후로는 가족 얘기에서 벗어나 상담을 가장한 대국을 시작했다.
코즈카 야시로는 향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직접 내 약점을 건드려 정신을 헤집진 않았으나 허점을 잡기 위해 교묘한 화법을 사용했다.
나는 코즈카 야시로에게 끌려가고 공감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안다인이나 호족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전부 삼켰다.
한참 어린 학생답게 다루기 쉬워 보이면서도 좀처럼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면 코즈카 야시로가 가지고 있는 체스 피스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곧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
“전 상담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돕고 싶답니다.”
코즈카 야시로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달라고 말해야 구실이 생기고 증거가 생기니 저쪽에서도 세게 나온 것 같았다.
이제 슬슬 내가 원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저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요. 하지만 한국 학생이 일본 대표팀의 교사분께 도움을 청하면 곤란해하는 분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예의만 바른 게 아니라 생각이 깊네요. 생각해 주셔서 고마워요.”
코즈카 야시로는 감동 어린 눈으로 말했다.
저런 표정을 지어도 속으로는 아마 답답해서 한 대 치거나 향을 뿌려서 정신을 장악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소싯적에 한 성격 했다는 흰 호랑이가 유리만 깨고 튀는 게 아니라 검을 던지고 난입할 것 같지만 말이다.
“정 제가 걱정되면, 제 지인에게 부탁하는 건 어떨까요? 소문 때문에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 있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랍니다.”
코즈카 야시로가 명함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아날로그한 종이 명함에는 이름이나 직위 등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디바이스 코드가 인쇄되어 있었다.
드디어 내가 찾던 피스를 얻은 것 같았다.
* * *
호랑이 저택.
명함을 받은 후에도 코즈카 야시로와는 길게 대화를 나누다 돌아왔다.
코즈카 야시로는 나를 길게 붙잡아 두고 저녁 식사까지 할 생각인 것 같지만, 그전에 내가 먼저 수를 썼다.
나는 안색을 바꾸어 반쯤 겁에 질린 얼굴로 ‘미루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약속이 있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호족 관계자와 약속이 있는 척했더니 붙잡지 않고 보내 주었다.
‘지금 나는 호랑이들에게 협박 당하면서 실력을 숨길 수밖에 없는 입장으로 되어 있으니까 변명하기엔 저게 최고지.’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다정하게 인사한 코즈카 야시로와 헤어진 후, 나는 홀로 호랑이 저택으로 향했다.
호랑이 저택 부지 안에 들어오자마자 불쑥 보이지도 않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던 백호군이 나타났다.
바람 소리나 기척도 없이 그냥 눈앞에 불쑥 튀어나온 걸 보고 조금 감탄했지만 티는 안 내려 했다.
하지만 머릿속을 읽히는 바람에 의미는 없었다.
“미행이 있었다.”
피식 한 번 웃은 백호군이 말했다.
울컥했지만 중요한 걸 묻기로 했다.
“이 앞까지 따라왔어?”
“아니, 저택의 모습을 확인하기 전에 황호의 결계에 걸러졌다.”
호랑이 저택의 결계는 인식하기도 어려울 만큼 고도로 발전해서 허락하지 않은 자는 모습을 보기도 어렵다고는 들었다.
코즈카 야시로가 붙인 미행이라면 거대한 힘이 존재했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것 같지만 말이다.
“코즈카 야시로는 진족이다.”
내가 묻기도 전에 백호군이 술술 말했다.
묻기 전에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건 편했다.
문제는 백호군이 각 잡고 질문한 것에는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백호군은 내 생각을 무시하고 이어서 오늘 동행하며 보고 알아낸 것들을 설명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그냥 국제 교류전에 참가하러 온 이들이 한 것치곤 상당한 수준으로 무장하고, 대비했다라…….’
그냥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서 저런 준비를 한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잠깐이라고는 하나 코즈카 야시로는 내 약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찔렀다.
그 상황에 나 혼자였다면 내가 지닌 광림이나 상보심금파의 존재를 숨긴 채로 발을 빼긴 상당히 어려웠을 거다.
‘내 약점은 체스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어.’
체스에 대한 트라우마는 다소 가벼워졌는데, 가족에 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이걸 극복해도 좋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부모님과 동생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한때는 생활에 치여서 사느라 잊을 뻔한 적도 있는데, 얼마 전에 성형우의 능력으로 다시 볼 일이 있어서 그런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떻게 잊고 괜찮아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조의신, 약점을 없애지 않아도 된다.”
백호군의 말에 생각이 멈췄다.
약점을 없애지 않아도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진 힘의 위험성은 백호군이 더 잘 알 텐데 뭔 소린가 싶었다.
“오늘처럼 내가 돕겠다.”
백호군의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말에 생각이 멈췄다.
잠시 생각을 멈춘 사이 발도 멈춰 있었다.
내가 백호군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호랑이 저택 별채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황지호와 은호가 보였다.
“조의신, 여우를 만나고 왔다는 게 무슨 소리냐.”
“황호 님,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어요. 두 분 다 여우를 상대하느라 많이 피곤하셨을 테니까요.”
백호군에게 감사 비슷한 말을 하려고 한 것 같기도 한데 쑥 들어갔다.
백호군이 그새 호랑이들에게 일러바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