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70
1070화 조금 더 먹어야지
진양은 기분이 좋았다.
음패수가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나니 다소 똑똑해진 것 같았다.
물론 무엇보다 가장 기쁜 건 자신의 주인에게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녀석이 되었다는 점이다.
흑구는 애초에 진양조차도 썩 못미더워 하는 눈치였다.
흑피는 착하긴 착하지만, 지능 수준은 묵양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에 불과했다.
아니, 그렇다고만 할 순 없다.
흑피는 단순히 천진난만한 것이다.
그는 아직 어린아이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뿐이니 지능이 부족한 거라고 할 순 없다.
닭 녀석은 매일 진원만 축내는 게 전부다.
평소 진원을 소비할 일이 없을 때도 닭 녀석이 상당량의 진원을 갉아먹는다.
게다가 녀석은 심심할 때마다 뒤에서 진양을 욕하고, 새로 들어온 신참들에게 잘못된 오해를 심어주기도 한다.
심지어 진양을 면전에 두고 대놓고 욕을 하기도 한다.
그나마 녀석이 진양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살려둔 것이지 다른 녀석이 이랬다면 곧바로 솥 단지행이었을 것이다.
돼지 녀석은 그저 봉인을 풀 궁리밖에 하지 않았다.
이 외에 다른 녀석들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나머지는 전부 멍청한 녀석들이거나, 조금 똑똑하면 어떻게든 헛수작을 부리려는 녀석들이었다.
처음에는 음패수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죽을 뻔한 위기와 황천 뱃사공의 돈통에서 빠져나오는 등의 일을 겪고 난 뒤로는 다시 새사람이 되었다.
진양은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진양은 황천과 가까운 곳을 지날 때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꽤 많은 사람이 몰려있었다.
그곳을 최대한 멀리 돌아 흑림해를 빠져나갔다.
할 일 없이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만 봐도 이곳에 별다른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다행이다.
황천에 갇힌 소녀가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흑림해를 빠져나온 진양은 곧장 귀신 소굴로 향했다.
음패수는 상당량의 힘을 소모했다.
그러나 현재 진양에겐 녀석에게 줄 만한 몸보신 재료가 없었다.
검은 기름은 아직 남겨둬야 한다.
나중에 백령에게 영혼을 더 빼앗아온다면 그때 가서 비협조적인 녀석이나 이성, 혹은 지성을 잃는 녀석이 있다면 음패수에게 던져줄 생각이었다.
이렇게 되면 진양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귀신 소굴뿐이었다.
이곳에서 거리도 가장 가깝고 음패수가 먹을 수 있는 것도 잔뜩 있다.
진양은 곧바로 비주를 타고 귀신 소굴로 향했다.
* * *
어느덧 귀신 소굴 상공에 도착한 진양은 고개를 쑥 내밀며 구름층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거야? 유명성종 녀석들도 참 징하군. 아니면 소굴 안에 있는 우두머리 녀석이 실성이라도 한 걸까?”
물론 서로 벽을 맞대고 있는 사이인 만큼 이익을 두고 어느 정도 싸움을 벌이는 건 이해가 된다.
그런데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싸우고 있단 말인가?
박 터지게 싸워봤자 결국 양쪽 모두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까지 싸우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진양은 음패수를 쳐다보았다.
녀석이 너무 많이 먹어대는 바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를 눈치챘는지 음패수는 강하게 고개를 휘저으며 부정했다.
모르겠다는 건지 아니면 자신은 무관하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녀석은 범인이 아닌 듯했다.
진양은 귀신 소굴에서 흘러나오는 전투의 파동을 피해 최대한 멀리 돌아갔다.
그리고 모습을 숨긴 채 음패수와 함께 몰래 귀신 소굴 안으로 잠입했다.
진양은 음패수를 귀신 소굴 가장자리에 풀어주었다.
괜히 서로 싸우기라도 할까 봐 공평하게 양손으로 두 개의 머리를 모두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한 판 붙은 모양이다. 앞으로는 무한으로 즐기기 어려울 테니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두도록 해.”
음패수는 크게 관심 없다는 듯 귀신 소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지나간 곳에 있던 귀신들은 전부 음패수의 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에는 가려서 먹을 필요가 없었기에 닥치는 대로 전부 먹어 치웠다.
진양은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괜히 음패수가 발각되기라도 했다간 곤란하다.
녀석이 죽는 건 결코 원치 않았다.
그러나 걱정과는 다르게 음패수는 하루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음패수는 배가 살짝 볼록해져 있었다.
배가 불러 더 이상은 먹을 것에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슬금슬금 진양의 팔목에 휘감긴 녀석들은 여전히 서로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진양은 근처에 있는 성지로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았다.
금세 자초지종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유명성종과 귀신 소굴의 귀신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싸우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돌연 큰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귀신 소굴의 귀신들은 유명성종 녀석들이 귀신 소굴 깊은 곳까지 쳐들어와 닥치는 대로 귀신을 쓸어가 버린 것은 물론이고 우두머리 귀신에게까지 상처를 입혔다고 했다.
반대로 유명성종은 우두머리 귀신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자기가 귀신을 잡아먹어 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략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모두들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정황상 우두머리 귀신이 중상을 입은 건 확실했다.
유명성종은 이 기회에 귀신들을 소탕하고 귀신 소굴을 점령하기로 마음을 굳힌 듯했다.
다만 유명성종은 귀신 소굴을 과소평가했다.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었으나 서로가 비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서로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양쪽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유명성종이 재기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고 귀신들에게 덤벼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다.
이에 비하면 황천마종은 양반이었다.
그들은 안정적인 추세로 발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설령 절세의 고수를 배출해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황천마종은 여전히 남만 마도 삼종 중의 서열 일 위를 지켜내고 있었다.
진양은 자신이 살려냈던 영혼들과 했던 얘기를 떠올려보았다.
그들 중 누군가 귀신 소굴을 지나간다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보아하니 세간에 떠돌고 있는 소문이 사실인 듯했다.
유명성종은 이번 기회에 귀신들을 소탕하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빨이 빠져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날카로운 발톱과 거대한 몸뚱이만 멀쩡하다면 여전히 적과 싸울 수 있다.
그렇게 호랑이 등에 탄 꼴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빠진 게 분명했다.
귀신들을 모두 쫓아내고 귀신 소굴을 차지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입은 피해는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
다시 재기할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과거를 능가하는 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 테니까.
중상 입은 우두머리 귀신을 붙잡아 법보로 제련시킨다면 전설에만 존재하는 유명성종의 진파도기(鎮派道器)를 다시 한번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돌고 있는 유명성종의 이름에 유래에 대한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유명성종은 처음 세워질 때 사람의 몸으로 우매한 귀신들을 부리고 귀신을 통해 인간의 큰 뜻을 이룬다는 이념을 기반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성종이라고 부른 것.
유명이라는 이름은 유명성종의 진파도기인 유명귀번(幽冥鬼幡)에서 비롯되었다.
유명귀번을 휘두르면 깃발 안에 있던 우두머리 귀신이 수억 마리의 귀신을 이끌고 나와 압도적인 힘으로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고 한다.
물론, 이건 세간에 떠돌고 있는 수많은 유명성종과 관련된 전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소문의 진위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유명성종은 스스로를 성종이라고 칭했지만 스스로도 마도 문파임을 인정하고 있다.
당사자가 세간에 떠돌고 있는 소문을 단호하게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 중에는 필히 진실인 부분이 포함되어있다.
물론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진양은 이 사건에 개입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서로 박 터지게 싸우다 어느 한쪽이 나가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냥 구경만 할 생각이었다.
최양평이 황천마종에 있기 때문에 황천마종은 남만 마도 종문 서열 일 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힘으로 주변을 압도하고 있진 않았다.
이것만 아니었다면 진양은 애초에 상황을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유명성종이 정말로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다음 목표는 황천마종이 될 테니까.
정말로 일이 잘 풀려 황천마종을 노리게 된다면 이들은 최양평을 가장 주된 목표물로 삼을 것이다.
유명성종은 이미 최양평을 한 번 이용해 먹은 전과가 있다.
때문에, 진양은 자신이 조금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최양평은 진심으로 진양을 대하고 있었다.
많은 걸 바라거나 부담을 주지도 않았다.
굳이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진양이 항상 무사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게 전부였다.
그는 아무 야심도 없이 매일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를 하는 게 전부였다.
과거 이성을 잃고 날뛸 때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최양평에게 위해를 가할 징조가 보인다면 결국은 진양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최양평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편안하게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물론 지금 당장은 그럴 징조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 징조가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대비한다면 적절한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길게 놓고 봐야 하는 법.
하는 김에 귀신 소굴과 유명성종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허구한 날 치고받고 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양은 음패수의 양쪽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자. 조금 더 먹어야지. 앞으론 이렇게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을걸.”
음패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방금 전에 했던 말이잖아. 왜 또 간다는 거지?’
* * *
진양은 음패수를 데리고 다시 귀신 소굴 외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유명성종과 가까운 쪽이었다.
멀리서 보니 유명성종이 자리 잡고 있는 귀신 소굴의 외곽부터 하얀 깃발이 땅에 꽂혀있는 게 보였다.
깃발은 유명성종의 거점에서 시작하여 귀신 소굴 안쪽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진양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보아하니 유명성종 녀석들 정말로 끝까지 가볼 생각인 모양이군.’
두 줄로 이어진 하얀 깃발은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귀신 소굴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음기과 귀기, 그리고 살기를 깃발 사이로 뻗어진 길로부터 밀어내고 있었다.
그 어떤 귀신도 펄럭이는 깃발 근처엔 감히 다가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지성을 가진 녀석들은 이미 멀리 물러서 있었고, 지성이 없는 녀석들은 겁 없이 가까이 다가왔다가 깃발에서 흘러나온 음뢰(陰雷)에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버렸다.
음뢰는 깃발 사이사이에 흐르며 귀신 소굴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