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84
1084화 반드시 멸문시켜주겠다
새롭게 만들어진 육신, 수많은 영혼으로 다져진 기반, 그리고 이 영혼들의 힘을 흡수하여 만들어낸 신통력까지.
수많은 종족의 강자들의 신통력을 한 몸에 담고 있었기에 백령의 출발점은 과거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그러나 무언가를 해 보기도 전에 성질머리 더러운 황천 뱃사공과 마주쳤다.
하마터면 그의 성질머리에 목이 날아갈 뻔했다.
이어서 두 번째, 상고 지부 조각에선 이상한 규칙에 휘말려 평생을 갇혀 살 뻔하기도 했다.
다행히 도망쳤나 싶었지만, 이번에는 귀신들에게 몰매를 맞아 반죽음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 끝나나 싶었지만 어떻게 쫓아왔는지 모를 흑포인이 나타나 그의 영혼과 이성을 빼앗아가려 했다.
수많은 영혼을 빼앗기며 육신이 붕괴되기 직전의 상황에 간신히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건 또 어디서 나타난 대머리 녀석이란 말인가?
대머리 녀석은 대뜸 아무 말도 없이 백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절망스러운 순간이 연달아 찾아왔지만, 이상할 만큼 마음은 평온했다.
심지어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멍하게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거대한 손바닥을 바라보던 백령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며 눈에는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모든 화가 한순간에 폭발하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입에서 새까만 불씨가 쏘아졌다.
작은 불씨는 금세 수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로 변하여 거대한 손바닥을 감쌌다.
치지직- 하며 타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바닥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던 상대는 흠칫 놀라며 빠르게 손바닥을 거두었다.
그의 한쪽 손은 새까맣게 그을려있었고, 살은 수축되어 있었으며, 관절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런 모습만 보면 그의 손은 완전히 못쓰게 되어버린 듯했다.
분명 아무런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대머리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마심염(魔心焰)? 그렇다면 당신은 사해 흑교룡의 후예입니까?”
아무 대답 없는 백령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흐물거렸고, 보이지 않는 갈고리에 걸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등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척추는 몇 군데나 부러져있었고, 희미하게 내장의 모습까지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 수도사였다면 아마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정도에 불과했을 모습이었다.
백령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일개 사악한 도사 따위가 감히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백령의 낡은 장포 위로 부문이 나타났다.
이어서 그의 혀끝에서 작은 물방울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비눗방울을 부는 듯한 모습이었기에 겉보기엔 특별히 조심할 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순간 대머리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고개를 젖힌 채 꼬꾸라지는 그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바닥 위로 쓰러지려는 순간 그의 몸은 수십 리 밖에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백령이 뱉어낸 물방울이 방금 전까지 대머리가 있었던 곳에 나타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 장 조금 더 되는 크기의 물방울이 나타나며 방원 일 장 내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감쌌다.
이어서 물방울이 땅 위로 떨어졌다.
톡-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터졌다.
그리고 물방울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대머리의 반짝이는 머리 위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그의 얼굴엔 어느새 긴장한 기색이 가득했다.
“창룡기포(滄龍氣泡)? 네 이놈,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월치가 보내온 마지막 소식에서 기괴한 기운이 느껴졌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기운만 보고는 결코 상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처음 마주하게 된 상대는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처참한 상태였다.
그러나 현재 그는 무려 두 개의 강력한 종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통력을 시전하고 있었다.
아무리 혈맥에 각성을 이뤘다고 하더라도 마심염과 창룡기포를 동시에 쓰는 건 불가능하다.
대머리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갈고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은 백령은 허공을 가로지르며 그를 쫓아왔다.
추격적이 이어지는 동안 백령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신통력을 발휘했고, 대머리는 대응하느라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어느덧 흑림해의 범위를 벗어나며 온몸을 강하게 누르고 있던 제약이 모두 사라졌다.
다시 기운을 되찾은 대머리는 곧바로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그어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리고 손톱으로 이마의 정중앙에 상처를 냈다.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 사이로 새까만 눈이 뜨였다.
검은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검은색뿐이었다.
오직 생명체만이 다른 색으로 보였다.
검은 눈으로 바라보니 백령에게선 수많은 종족의 기운이 뒤섞인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수많은 이들의 기운이 강제로 그곳에 뒤섞여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신통력을 발휘할 때마다 낡은 장포에선 새로운 부문이 떠올랐다.
검은 눈으로 바라보니 은연중에 다른 종류의 영혼의 허상이 백령의 몸 위로 나타나는 게 보였다.
대머리는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맥주가 자신을 혼자 보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는 이미 어느 정도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머리는 계속해서 도망치며 기괴한 주문을 외웠다.
마치 수백 마리의 파리와 모기가 한 곳에 뒤엉켜 앵앵거리는 듯한 소리가 백령의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귓가로 흘러 들어간 소리는 그의 영혼 안까지도 닿았다.
백령의 몸 안에 숨겨져 있던 모든 영혼들은 강한 분노를 일으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성조차 남아있지 않은 순수한 영혼들이 마침내 소요(騷擾)하기 시작했다.
백령은 탈출하는 과정에서 영혼과 육신에 중상을 입어 신형합일(神形合壹)을 이뤄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것만 아니었다면 이런 허접한 주문 따위에 휘둘릴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백령은 우뚝 멈춰 섰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귀를 틀어막고 연신 포효성을 내질렀다.
도망치기 바쁘던 대머리는 다시 길을 되돌아왔다.
그는 경문이 적힌 묵록 하나를 꺼내 불태웠다.
이어서 무수히 많은 주문이 아직 멀쩡한 그의 손을 감쌌고, 그 손은 곧장 백령을 향해 뻗어졌다.
백령은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영혼과 육신의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대머리의 손이 백령에게 닿으려는 순간 그의 입에서 새까만 불씨가 튀어나왔다.
불씨는 대머리를 노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며 자기 자신을 감쌌다.
그러나 대머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새까만 불덩이 속으로 멀쩡한 자신의 손을 쑥 집어넣었다.
새까만 불꽃이 그의 살을 태웠다.
그러나 그의 손은 마치 환영을 지나는 것처럼 백령의 육신을 꿰뚫었다.
그는 빠르게 다시 손을 회수했다.
회수한 손에는 작은 빛 덩어리가 들려있었다.
빛 덩이 안에선 교룡의 영혼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반격이라도 하려는 듯 두 다리를 들어 올렸으나 대머리에 의해 막히고 말았고, 두 손 역시 귀를 막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령의 갈비뼈 아래에서 네 개의 팔이 뻗어져 나왔다.
두 개는 대머리의 손을 꽉 붙잡았고 나머지 두 개는 마치 예리한 병기처럼 대머리의 허리를 꿰뚫으며 단숨에 골반을 박살 내버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머리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입에서 빠른 속도로 흘러나오던 주문, 그리고 이마에 뜨여진 독안은 소용돌이가 되어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교룡의 영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대머리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주문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가 주문을 외울 때마다 입에서 새까만 연꽃이 튀어나왔다.
백령에게 붙잡힌 육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백령의 손에는 검은 연꽃대가 들려있었다.
대머리가 사라지고 나자 희미해져 가던 백령의 모습도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이어서 그의 머리는 날카로운 톱날 이빨을 가진 물고기 머리의 형상으로 바뀌어 두세 입 만에 검은 연꽃대를 완전히 삼켜버렸다.
* * *
수백 리 밖.
대머리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두 손은 완전히 못쓰게 되어버렸고, 두 눈은 멀었으며, 골반은 가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일 다경 정도 지났을 무렵.
한 줄기의 빛이 먼 하늘에서부터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그는 마교 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둔법을 펼칠 수 있는 월치 맥주였다.
그가 월치 둔법을 전력을 다해 펼친다면 동급 무인들 중에 그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덧 바닥에 착지한 월치 맥주는 차마 눈을 뜨고는 봐줄 수 없는 대머리의 모습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나 일단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를 데리고 둔법을 펼치며 신속히 자리를 벗어났다.
부도마교.
대머리는 운 좋게 다시 거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온갖 방법과 자원이 모두 동원된 덕분에 그는 사흘 만에 간신히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이성이 회복되자 검은 눈이 다시 번쩍 뜨였다.
그의 눈에서 흑교룡의 영혼이 둘러싸인 광구가 튀어나왔고 그는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마불 맥주는 광구를 쥔 채 두 눈을 반짝였다.
“사해 흑교룡의 영혼이잖아. 게다가 이건 이성은 없는 순수한 영혼!”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쟁녕 일맥이 완전히 무너지고도 꽤 시간이 흘렀으니 새로운 일맥을 세우는 작업에 슬슬 착수할 때가 되었다.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구해와야 합니다.”
* * *
흑림해 가장자리.
백령은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망가졌던 육신도 점차 안정되어가고 있었고 신형합일도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였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부도마교 쪽을 바라보았다.
“허허, 부도마교 놈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지금도 장해도군이 있을 때와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부도마교 마불일맥의 고수가 갑작스럽게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건 우연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상대가 대뜸 자신에게 살수를 쓴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사마외도 녀석들이 중상을 입은 요괴를 상대로 악랄한 수를 쓰는 건 너무나도 정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선심을 베풀어 치료를 해줬다면 오히려 더 의심이 되었을 것이다.
백령은 동거울을 꺼내 살핀 뒤 자리를 떠났다.
곧바로 부도마교로 가는 대신 우선 동해로 향했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한번 부도마교 방향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언젠간 반드시 네 녀석들을 멸문시켜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