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02
1202화 상관없어 보이는 공법
“정리를 해 보자면, 누군가는 사후 세계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미리 모든 걸 계획하고 있었다는 거네요.
그 사람은 당신이 사후 세계를 만들어내길 바랐지만, 당시의 당신은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단 당신에게 미리 새로운 개념을 주입하는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이어서 그는 천신만고 끝에 사후 세계라는 개념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머릿속에 단단히 뿌리 내리도록 만들죠. 그리고 오늘 모든 게 이루어진 겁니다.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충분한 힘과 미리 준비가 되어있던 당신의 굳은 신념, 그리고 능력을 통해 진정한 사후 세계가 만들어지게 된 거죠.”
“그래. 바로 그걸세! 어째서, 어째서 이토록 복잡하고 거창한 계획까지 세워가며 사후 세계를 만들어야 했던 걸까?
난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일개 소설가에 불과한데 말이야.”
“…….”
진양은 머릿속에 상고 천정과 지부를 떠올려보았다.
상고 천정에선 신의 권력이 가장 강하다.
게다가 상고 시대가 끝난 뒤 천정의 형편은 지부보다는 훨씬 나았다.
대황에 상고 천정 조각이 있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반대로 상고 지부 조각은 사방에 널려있다.
처음 천정과 지부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자신의 개념 속에 있던 그런 존재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이 되어서야 천정과 지부는 상고 시대에 존재했던 초거대 신조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천정과 지부는 이미 신조의 범주를 넘어서긴 했지만, 초거대 세력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사후 세계와 상고 지부는 일말의 관계도 없다.
그러나 이 이름, 그리고 소설가가 방금 했던 말들까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한 사람이 떠올랐다.
‘부군!’
진양은 부군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진양을 부군으로 의심해왔다.
가끔은 자신이 정말로 부군이라는 녀석이 환생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자신이 부군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이 들었다.
생각이라든지, 일 처리 방식이라든지.
모든 방면에서 그와 큰 차이가 났던 것이다.
그나마 공통점이 있다면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전부다.
“당신이 말한 그 사람, 혹시 부군이라는 사람 아닌가요?”
“응? 그걸 어떻게 알았나?”
소설가가 크게 놀란 듯 물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제게 부군이 환생한 거 아니냐고 물어봤었거든요.”
진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진양의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소설가가 눈알을 부라리며 발끈했다.
“그게 네 녀석이었구나! 네놈이 괜히 소설가가 되라고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내 능력에 잡아먹혀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진양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진정하세요. 전 부군이 아니라니깐요. 제가 부군이라는 건 다른 사람의 주장일 뿐이라고요.”
소설가는 진양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확실히 사람만 보면 자네가 부군보다는 훨씬 더 좋지.”
“이전부터 쭉 궁금하던 게 있는데, 부군은 어떤 사람이죠? 그 사람은 어떻게 죽었나요?”
“유감이지만 그건 나도 모르네. 내가 죽었을 때 그는 아직 살아있었으니까. 자네가 얘기해 주지 않았다면 그가 죽었다는 것조차 몰랐을 거야.”
“뭐, 모른다면 어쩔 수 없죠.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생각해 봅시다.”
소설가의 머릿속에선 계속해서 새로운 기억들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당장 상황에서 쓸 만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일단 사후 세계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생전에 익혔던 공법들은 지금까지도 쓸 수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지고 있는 힘은 전부 써버리면 더 이상은 보충이 불가능했다.
일단 자아와 기억을 지켜내고자 했던 목적은 달성했다.
이곳에 있으면 더 이상 자아를 잃거나 기억이 소멸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앞으론 무엇을 해야 할까?
최종적인 목표는 당연히 부활이다.
다시 살아나서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늘 하던 대로 따사로운 햇볕을 쬐는 것.
이곳에 태양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부활을 이루기 위해선 우선 사후 세계의 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할 듯했다.
“혹시 책에 새로운 규칙을 더 추가하는 건 어렵나요?”
“어떤 규칙 말인가?”
“예를 들어 태양 비슷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든지. 아니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공법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있는 공법으로 만들어낸다든지 말이에요.”
“그런 건 불가능하네. 아니, 더 이상 내가 써 내려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네. 지금은 그저 책 스스로 변화하도록 내버려두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그럼 전 결국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거네요.”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법상 수도사가 되었다.
그런데 스스로 공법을 새로 만들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수련을 하라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잠깐, 공법을 창조한다?’
문득 자신을 성불시켰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진양은 자신이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공법이 하나로 합쳐지며 만들어진 하나의 공법을 얻었다.
게다가 영제가 다시 도기를 만들 때도 분명 새로운 공법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영제를 성불시킬 때 황금색 광구 세 개와 하얀색 광구 하나를 얻었었다.
그땐 생기가 최후의 빛을 발하고 있을 때라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될 거란 사실에 정신이 없었던 것!
진양은 기억을 다시 되짚으며 하얀 광구부터 살펴보았다.
의외로 광구엔 영제의 태자 시절의 기억 일부가 들어있었다.
기억의 주인공은 청금, 당시의 태자비였다.
이 기억은 영제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기억 중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자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잊지 못했던 기억이다.
한참 동안 기억을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건 없었기에 황금색 광구로 넘어갔다.
첫 번째 광구에서는 예상대로 주도경 전권이 나왔다.
지금 당장은 전혀 쓸모가 없는 쓰레기나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두 번째 광구에는 귀허(歸墟)라는 공법이 들어있었다.
영제가 다시 도기를 쌓을 때 사용했던 공법으로, 자기 자신을 허무로 삼아 만물을 제련하고 스스로의 몸을 만드는 공법이다.
상당히 패기 넘치는 공법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사용하기 위해선 극한의 제어력이 필요했다.
충분한 기반과 완전한 제어력을 갖춰야만 입문과 수련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두 제련시키다가 막다른 길에 부딪힐 수도 있다.
일념의 바다의 본질은 신이 남긴 유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수도사가 영기를 연화시킬 땐 잡다한 것들은 모두 가려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저것 모두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공법은 겉보기엔 상당히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실제론 그다지 실용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단점만 크다.
다만, 지금의 진양은 더 이상 단점 따위에 얽매여있을 필요가 없는 상태다.
즉, 눈앞에 있는 공법은 지금 상황과 조건에 매우 잘 어울리는 공법이라는 뜻이다.
불필요한 것은 제외하고 오직 정수만 취하여 자신의 공법 안에 녹이고 이것을 발판으로 삼는다면?
기대한 만큼 결과가 나올지 확실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해 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살아있는 자는 많은 힘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체내에 있는 진원이 유일하다.
공법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망 상태가 되며 진양은 더 이상 영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공법을 사용하는 건 가능했지만 영기를 흡수하여 수도사의 힘의 근원이 되는 진원으로 제련시키는 건 불가능한 것.
아무리 이름 날리던 절세 고수라도 죽은 뒤에는 얌전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함부로 힘을 낭비하고 다녔다간 금세 껍데기만 남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령은 한 가지 힘을 다룰 수 있다.
바로 죽음의 기운이다.
생명체는 살아있는 동안 영기를 만들어낸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여러 만물과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때문에, 좋은 환경이 갖춰질수록 더욱 진한 영기가 만들어지는 법.
이와 상반된 개념이 죽음의 기운이다.
죽음의 기운은 죽은 자들, 즉 사령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지금까진 감히 죽음의 기운을 부리거나 흡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죽음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순간 죽음과 한층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망자들이 강시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죽음의 기운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망자의 세계라는 사후 세계가 만들어지며 상황은 달라졌다.
이곳에서 진양은 그야말로 물을 만난 물고기와 같았다.
사망 상태라는 점과 이곳의 환경이 상당히 열악하다는 점만 빼면 생전의 대황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영기가 죽음의 기운으로 바뀐 것일 뿐.
죽음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는 공법을 익히고 죽음의 기운을 하나의 힘으로 삼는다.
영제의 ‘귀허’에서 정수만 골라낸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힘을 모두 낭비하고 껍데기만 남게 되는 최악의 상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사후 세계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러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힘을 회복하는 것까진 좋지만 어떻게 증가시키느냐가 또 하나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회복과 증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만약 계속해서 힘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다시 산 자들의 세계로 돌아가 부활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게 된다.
귀허는 일단 내려놓고 우선 공법부터 갖추고 난 다음 계속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계속해서 마지막으로 남은 황금색 광구를 살폈다.
대영 신조를 오랜 시간 이끌며 대황 전체를 압도했던 고수인 만큼 황금색 광구 세 개는 당연한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영제에게 평범한 하얀색, 파란색, 보라색, 황금색 광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무리 못해도 그것보단 훨씬 더 강한 공법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 것.
그러나 실제로 습득하고 보니 특별한 건 없었다.
공법은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특별한 것은 영제 본인일 수밖에 없다.
진양은 마지막 남은 광구를 열었다.
진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제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름의 공법이 나온 것이다.
‘태미십성(太微十星)’
태미십성은 태미 천제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태미 천제로부터 비롯된 위엄이자 그가 관장하고 있던 성궁(星宮)이다.
마찬가지로 태미 천제가 십궁(十宮)의 권력을 나눈 공법이기도 하다.
공법에 따르면 그의 아래는 운명을 함께하는 열 명의 성관이 있다.
그러므로 성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태미 천제의 둘도 없는 충신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태미 천제의 권력은 사후 세계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곳까지는 그의 손길이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태미십성도 단지 조금 특별한 공법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