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16
1216화 성질 더러운 조타수
진양은 곧바로 해안으로 들어가 붓을 들었다.
생명체가 나타났다는 건 곧 이 세계의 변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재 진양은 한시라도 빨리 변화의 속도를 높여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야 어렵사리 손에 넣은 장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에 새로운 생명체의 등장이라니.
손이 근질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일단 이미 완전히 자리 잡은 규칙을 지우는 건 불가능하다.
단, 수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선 사방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만물의 근원으로 삼는 것도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다.
현재 황무지 가운데 흐르는 강을 제외하면 자원으로 쓸 만한 건 파리떼가 유일하다.
앞으로 자라날 초목이나 생명체들의 양분으로 파리떼를 쓴다면 ‘평생 먹어도 다 못 먹어 치울 만큼의 벌레’들을 처리하는 것도 훨씬 쉬워진다.
다만 무한으로 증식하는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할 듯했다.
그래서 딱 아홉 번까지만 되살아날 수 있도록 했고 그 이후엔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수정했다.
이동 범위도 어느 정도 제약을 둘 필요가 있다.
마음껏 날뛰도록 놔뒀다간 온 세상을 갉아먹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진양은 일정 범위를 지정하여 이곳 안에서만 벌레들이 멸종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아니, 그래도 여전히 골칫덩이였다.
이번에는 수명을 사흘로 고쳤다.
수정을 마치고 책을 꺼내는 순간 수정한 내용들이 즉각적으로 반영되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수정이 상당히 수월했다.
어쩌면 파리떼의 존재 자체가 이 세계에 큰 위협이 되는 단점이기 때문인 듯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파리떼는 어느새 진양이 펼쳐둔 장막을 새까맣게 뒤덮은 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파리의 수는 점점 줄어갔다.
아홉 번의 부활, 그리고 사흘의 수명 제한을 둔 덕분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장막 밖으로 나오니 바닥에 파리시체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시체는 빠르게 썩어 흙과 하나로 뒤섞였다.
황무지에 불과하던 대지는 빠르게 비옥한 토지로 바뀌었다.
진양이 소설가의 팔을 잡아끌었다.
“자, 이만 갑시다.”
“갑자기 어딜?”
“그건 묻지 마시고. 어쨌든 좋은 게 있을 테니까 가보시면 알 겁니다.”
한참을 날아온 끝에 움푹 파여있는 지대를 발견했다.
이곳에는 대량의 파리떼가 몰려있었다.
진양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사방을 살피며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땅을 파헤쳤다.
이틀 뒤.
진양의 손에는 총 마흔아홉 개의 검은깨 비슷한 껍질이 쥐어져 있었다.
이것은 최초로 이곳에 나타난 마흔아홉 마리의 파리가 탈피한 후 남겨진 껍데기다.
과연 예상대로 파리떼는 갑자기 무에서 유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현재 이 세계의 변화의 힘으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없다.
게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건 이 세계의 기본 법칙에도 어긋난다.
나중에 나타난 파리들은 전부 이 마흔아홉 마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이 파리떼 자체는 그다지 특별한 게 없다.
특별한 게 있다면 파리떼를 번식시킬 수 있는 무언가다.
이것이야말로 천지의 변화에 따라 나타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즉,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진양은 그것을 습득한 뒤 천천히 느껴보았다.
가장 먼저 발견한 특징은 마흔아홉 개의 껍데기 모두 파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특징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곳은 산 자의 세계와는 다소 다르므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경험이 모두 먹혀들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양은 흑검을 꺼내 검은깨처럼 생긴 껍데기를 하나 녹여 넣었다.
검에 손을 얹어보니 재질에 다소 변화가 일어난 것이 느껴졌다.
이어서 여섯 개 정도를 더 녹여 넣으니 더 이상은 넣을 수가 없었다.
흑검의 재질이 벌레의 껍데기처럼 변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려보니 맑은소리가 났다.
일부러 흑검에 강한 충격을 줬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흑검이 손상되는 걸 막아주고 있는 게 느껴졌다.
“뭐, 이 정도면 손해는 아니네요. 열심히 머리 써서 수정한 보람이 있었네요.”
“그게 뭔가?”
“아까 그 파리 녀석들이 탈피하고 남은 껍데기요. 녀석들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자 이곳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양분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어쩌면 이 껍데기는 망자의 세계의 선천지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필요하면 조금 나눠드리죠.”
선천지물은 하늘과 땅의 힘을 빌어 창조되었고, 기이한 위력을 품고 있고, 재생이 불가능하고, 거기에 선천지기를 품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특징을 제외하면 이 껍데기도 거의 일치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소설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허, 후회하실 텐데요. 앞으로 이런 물건은 다신 못 얻을지도 몰라요. 정말 안 필요하세요?”
“이 사람이. 누군 선천지물을 본 적이 없는 줄 아나?’
“됐어요. 싫으면 마세요.”
진양은 남은 마흔두 개의 껍데기를 조심스럽게 상자에 담아 보관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죽음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변화가 있을지 살펴보기로 했다.
진양은 소설가와 함께 그곳을 떠났다.
사방에서 파리떼가 모여들며 두 사람을 쫓아왔지만, 얼마 가지 않아 수명이 다했는지 전부 지면에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진 않았다.
유일하게 진양이 껍데기를 주워온 곳에서만 파리떼가 계속해서 부활하고 있었다.
검은 물이 차오르며 움푹 파인 지대는 호수가 되었다.
호수 깊은 곳.
한 마리의 벌레가 수명을 다하여 검은 물 위로 곤두박질쳤다.
녀석의 몸이 썩어 문드러지며 껍데기가 몸에서 분리되었다.
운 좋게 진양의 손길을 피한 녀석이었다.
몸에서 분리된 껍데기는 천천히 호수 아래에 가라앉았다.
껍데기는 진흙과 죽음의 기운에 깊게 파묻히며 언제쯤 다시 빛을 보게 될지 기약이 없어져 버렸다.
* * *
“글쎄 장담한다니깐요. 이건 망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선천지물이 맞다고요. 일곱 개를 줄 테니까 이걸 소설책에 녹여 넣어보세요. 그렇게 하면 책이 단단해지며 아무도 부술 수 없게 된다고요!”
“그 책은 애초에 부서지지 않는 책일세. 필요 없다니깐.”
“싫으면 마요! 무슨 놈의 고집이 이렇게 센 건진 모르지만, 좋은 물건을 준다고 해도 마다하다니!”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소설가 때문에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붓에 녹여 넣는 수밖에.
아쉽지만 이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붓이 강화되면 앞으로 소설책 내용을 수정하기가 더 수월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일단 어떻게든 세계의 변화의 속도를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자원 하나 구하는 데도 직접 나서서 규칙을 수정해야 하다니.
게다가 기껏 먼 길을 왔지만, 손에 넣은 건 겨우 벌레 껍데기 몇 개가 전부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야.’
부활하고 싶다는 마음이 한층 더 간절해지면서도 다들 무엇을 위해 망자의 세계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건지 궁금해졌다.
* * *
끝없이 이어진 바다, 고해.
애초에 누가 이런 설정을 추가한 건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말 그대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상고 지부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발목을 잡기엔 충분했다.
오랜 시간 지부의 뱃사공으로 지내 온 이들은 고해 뱃사공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들만의 힘으로는 결코 누군가를 바다 건너까지 태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까지도 ‘배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진양은 배표 몇 장을 만들어 뿌릴 생각이었다.
운 좋게 이걸 줍는 사람들이 바다를 건널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만난 도문 사람들로부터 허겁지겁 도망치느라 그만 이 일을 잊고 말았다.
그리하여 현재 고해에는 적지 않은 수의 뱃사공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허가’를 받은 배는 겨우 두 척이 전부였다.
진양을 태워주었던 뱃사공은 현재 지부와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지부에 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보일 때마다 전부 멀리 돌아갔다.
시간이 흐르며 사령들 사이에는 한 가지 전설이 돌기 시작했다.
고해엔 신출귀몰한 여자 뱃사공이 있는데, 그녀에게 배표를 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면 흔쾌히 배를 태워준다고 말이다.
하나 일반적으로 그녀와 만날 확률은 거의 무에 가까웠다.
이 외에도 하나의 거대한 배가 더 존재한다.
큼직한 덩치 덕분인지 눈에도 잘 띄어서 여자 뱃사공의 배보단 마주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거대한 배답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고 또 그만큼 강한 실력자들이 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배의 뱃사공이 상당히 고약한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희로애락 등의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살기는 매우 강했으며, 기본적인 규칙 외에도 잡다하게 지켜야 할 ‘추가적인 규칙’이 상당했다.
하지만 추가적인 규칙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유명한 규칙이 하나 있다.
용족이나 몸에 비늘이 뒤덮인 자가 배에 오르면 반드시 죽게 되고, 동행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는 뱃사공들 사이에 금기시되는 일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처음엔 이제 막 임무를 시작한 터라 시간이 초기화가 된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임무 시간이 곱절로 쌓이고 나서야 모두들 깨달았다.
그는 애초에 고해를 떠날 생각이 없는 게 확실했다.
뱃사공의 패기 넘치는 행동 덕분일까?
누구든 이 배에 오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분고분해졌다.
심지어 성깔이 더러운 자도 배에만 오르면 온순한 양처럼 변했다.
애초에 고해에서 탈 수 있는 배는 두 척뿐이고, 그나마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건 이 배 하나가 유일하다.
그러니 부당한 일을 당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령들을 바다 건너에 내려주고 돌아온 조타수는 다시 새로운 사령들을 배에 태웠다.
그는 새로 배에 탄 사람 중 한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이마에 원형 안에 왕관 비슷한 것이 새겨진 징표가 있는 남자였다.
조타수는 그를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예전에 널 죽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너, 상고 천정 사람 아니냐?’
상대는 표정이 살짝 굳히며 완강히 부인했다.
“아닙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타수의 쇠사슬이 상대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강한 살기가 뿜어져 나와 상대는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이미 예전에 죽인 적이 있고, 심지어 상고 천정 사람이라면 더더욱 살려둘 필요가 없지.”
이 모습에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사령들은 한층 더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상고 천정 사람을 처리한 조타수는 다시 조타를 붙잡으며 승객을 둘러보았다.
“뱃삯을 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