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19
1219화 부활은 개뿔
촉룡은 화신의 모습으로 곧장 괴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응백의 화신을 따라 대영 조상 묘지에 오게 되었다.
“뭐 하고 있어요? 얼른 문 열어요. 진룡이 되고 싶다면서요. 누가 왔는지 확인해 봐요. 가희 소저를 살리러 왔어요.”
응백이 소리치자 황금용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문을 열었다.
황금용은 한시라도 빨리 진룡이 되어 신조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앞에 진룡이 나타난 게 아닌가?
게다가 응백은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어준 것이다.
묘지 안쪽으로 들어선 촉룡은 불타오르는 화염 가운데 잠을 자듯 눈을 감고 누워있는 가희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미안하지만 난 살릴 수 없소. 이미 열반의 화염에 휩싸인 상태라 스스로 열반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소.”
“지금 누워있는 인간이 현재 대황에서 가장 강한 인간입니다. 만약 그녀가 죽고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더 이상 아무도 나서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 타오르고 있는 열반의 화염, 이건 진양이 남긴 거죠. 무슨 뜻인지 알아요?”
“그렇게 말한다 해도 방법이 없는 건 마찬가지요. 도문 놈들이 내 촛불을 가져가서 아직 돌려주지도 않았단 말이오!”
“그럼 어쩔 수 없죠. 아쉽지만 손을 잡기로 했던 건 없던 일로 해요.”
응백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렇게 응백이 문을 나서려는 순간.
촉룡은 도저히 그녀를 이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자, 잠깐 기다려주시오! 설마 날 속이고 이곳으로 데려온 게요?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인데.”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돌아다니면서 진양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시든지요. 만약 그녀를 살려준다면 진양은 최대한 성심껏 당신의 부탁을 들어줄 겁니다. 이건 장담하죠.”
촉룡은 한참의 고민 끝에 한숨과 함께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는 적금색의 광구가 하나 들려있었다.
“이게 뭔지는 알고 있을 거요. 인간들이 거짓말을 좋아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날 속이지 않길 바라오.”
“그렇게 못 믿겠으면 직접 나가서 확인해 보라니깐요.”
응백은 마음에 걸릴 게 없었기에 떳떳했다.
사실 촉룡에게 진양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어떤 일생을 살아왔는지 알아보는 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촉룡도 마음 같아선 직접 나가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겨우 이런 걸로 관계에 흠집을 낼 필요는 없다.
이왕 도와주기로 한 거 제대로 도와주는 게 서로에게 이득이니까.
“좋소. 그럼 이번 한 번은 믿어보기로 하지.”
촉룡의 손에 들려있던 광구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열반의 화염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화염이 한층 더 강하게 타올랐다.
적금색의 불꽃은 가희를 완전히 삼켜버렸고,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화염 속에선 마치 한 마리의 봉황이 날개를 펼치며 힘찬 울음소리를 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강한 생기가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촉룡, 그는 이 세상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진룡답게 활로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외물(外物)이란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지칭한다.
물건의 가치에 상관없이 죽게 되면 결국 그것은 남의 것이 되는 법.
숨이 붙어있는 한 자신의 소중한 보물을 남에게 빌려주고 못 받게 되더라도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돌려받을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돌려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인간은 인정을 베푸는 것을 좋아하니, 그 역시도 인정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또 하나의 보물을 인간의 손에 내어주게 되었으나 사실 아깝진 않았다.
다시 한번 인정을 베푼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응백은 계속해서 그를 속이고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충분한 인정을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촉룡은 비록 순진한 편이긴 해도 멍청하진 않다.
멍청했다면 결코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광구는 화봉(火鳳)이 열반을 할 때 남겨진 겁회(劫灰).
상당히 귀한 물건인 건 사실이지만 진룡인 그가 가지고 있어봤자 크게 쓸 만한 곳은 없다.
예전에 이것을 따로 챙겨둔 것도 그저 눈앞에 있어서 챙겨둔 것뿐이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응백, 아니, 응룡은 어떻게 그가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아니, 응백은 분명 응룡에게 들었을 게 뻔하니 굳이 생각할 것도 없다.
과거 화봉은 너무 강한 상태에서 죽어버리는 바람에 죽은 뒤 겁회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시기가 썩 좋지 않았기에 겁회 속에서 부활하지 못하고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 겁회는 당시 기념으로 따로 챙겨둔 것.
열반의 화염에 휩싸여있는 가희의 모습을 보자마자 겁회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건 지금으로서 그가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겁회가 열반의 화염 안으로 녹아들자 화염에 변화가 일어났다.
뜨겁게 타오르는 화염은 상상 이상의 강력한 위력을 내뿜고 있었다.
가희의 생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산 자 특유의 느껴지는 신선한 기운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촉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깨어날 거요.”
“잘됐네요. 그럼 일단 회복하도록 놔두고 우린 이만 떠나도록 하죠.”
“그럴 순 없소. 막상 깨어났는데 내가 없으면 누가 그녀를 구했는지 어떻게 알겠소? 게다가 겁회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진귀한 보물이오. 혹여나 나중에라도 당신이 말을 바꾼다면 난 뭐가 된단 말이오? 그녀가 깨어나면 반드시 내가 직접 나의 입으로 이 사실을 얘기할 것이오.”
촉룡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끝까지 지켜볼 생각인 듯했다.
응백의 약속보단 눈앞에 있는 신임 대제의 약속이 훨씬 더 힘도 있고 신뢰성도 있다.
그리고 진양에게 직접 부탁하는 것보단 신임 대제를 통해 부탁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들은 대부분 애처가니까.
“…….”
응백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예전에 응룡이 촉룡에 대해 얘기를 하려다가 한숨을 쉬며 그만두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럼 기다리든지요.”
한편, 이 모습을 지켜보던 황금용이 촉룡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늘 국운의 화신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진룡이 되는 꿈을 꿔왔다.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나 마찬가지다.
촉룡은 이왕 인정을 베풀기로 한 거 조금 더 베푼다고 해서 크게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녀석에게 가르침을 주기로 했다.
“어떤 이의 길을 따르고 싶은 겐가? 웬만하면 나와 같은 길은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 비록 산 채로 토막 나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긴 했지만, 자네에겐 황룡의 길이 가장 어울릴 것 같네.”
“…….”
황금용은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이내 한숨과 함께 입을 닫아버렸다.
* * *
한창 선천지물을 살피고 있던 진양은 돌연 자기 자신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동술까지 사용하여 몇 번이나 살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뭔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분명 몸에 변화가 느껴졌지만, 정확히 어디가 바뀐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두 눈을 감고 자신의 몸 상태를 전반적으로 점검해 보았다.
잠시 후.
손을 뻗으며 손가락을 비비자 작은 불씨가 나타났다.
진양은 의아하다는 듯 불씨를 바라보았다.
“열반의 화염이 더 강해졌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난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대황에 있는 가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망자의 세계로 건너오기 전 열반의 화염으로 가희를 감싸두고 왔었으니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쪽에서 무엇을 했길래 진양에게까지 영향이 간 걸까?
감각에 집중하여 느껴보니 열반의 화염이 한층 더 강해진 게 느껴졌다.
좋은 쪽으로 위력도 상당히 크게 증가했다.
손끝에 피어난 화염을 비벼 끄고 나니 멍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설가의 모습이 보였다.
“왜요?”
“자, 어서 날 태워 죽이게.”
“이미 죽은 사람을 어떻게 또 죽여요? 불을 붙여봤자 잿더미가 되는 것밖에 더 되겠어요?”
“그럼 날 잿더미로 만들어 주시게!”
소설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진양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도대체 뭘 봤길래 이러는 거예요? 설마 잿더미가 되고도 부활할 수 있을 거라 확신이라도 하는 건가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나?”
“어떻게 알긴요. 얼굴에 다 적혀있구만…….”
소설가는 그제서야 사실대로 실토했다.
“화봉의 겁회의 기운이 느껴졌다네. 화봉의 열반의 화염에서 비롯된 물건이지. 시도해 본다고 해서 나쁠 건 없을 걸세. 어차피 이미 죽어 망자의 세계까지 왔는데 더 못해 볼 것도 없지. 어쩌면 겁회 속에서 부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잠깐만요. 그럼 누가 제 열반의 화염 속에 화봉의 겁회를 집어넣었단 말인가요? 그 덕분에 열반의 화염이 한층 더 강력해진 거군요.”
“생사의 경계를 넘어 자네의 신통력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힘은 오직 겁회만이 유일하네.”
진양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간만에 산 자의 세계에서 소식이 날아온 것도 반가운데 그 소식이 좋은 소식이라니!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일단 가희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한 게 분명했다.
이제 가희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어쩌면 깨어난 뒤 한 층 더 높은 경지를 뚫고 강한 힘을 손에 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미 도군의 경지에 올랐다.
만약 여기서 한 경지를 더 뚫고 올라간다면 이젠 봉호도군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진양은 계속해서 죽음의 기운으로 수련을 이어나가고 있긴 했으나 큰 변화가 없었다.
힘이 계속해서 강해지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경지는 제자리였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당장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으므로 일단은 기뻐하기로 했다.
적어도 산 자의 세계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수확이었다.
생과 사를 뛰어넘는 특수한 힘을 이용하면 가능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열반의 화염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양은 벌레 껍데기 일곱 개를 따로 별도의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열반의 화염을 피워 그것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성공한다면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는 선천지물을 제련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소설가는 벌레 껍데기가 선천지물이 아니라고 한마디를 하려다가 말았다.
열정적으로 눈빛을 불태우고 있는 진양을 보니 괜히 김빠지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손해를 보거나 문제가 될 것도 없었으니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놔두기로 했다.
“뭐 하고 있나? 어서 날 잿더미로 만들어 달라니깐.”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어디서 부활을 하게 될지 생각은 해 봤어요?
여긴 죽은 자의 부활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곳이라고요. 잿더미로 만든다고 해도 결국은 산 자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때까진 부활할 수 없다는 뜻이죠.
게다가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요? 그러지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 실험해 보는 건 어떨까요?”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군…….”
소설가는 결국 자신이 직접 실험체가 되겠다는 생각은 포기하며 다시 책에 푹 빠져들었다.
진양은 열반의 화염을 아주 조금 일으켜 자신의 몸을 불태웠다.
그리고 자세히 느껴보았다.
부활은 개뿔, 아무런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몸만 잿더미가 되는 게 전부였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건 곧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
이렇게 된 이상 진양은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