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65
1265화 필요 없소
뱀 머리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진심으로 웃긴 건지, 아니면 본인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웃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다급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화를 잠재웠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사상의 사람들은 과연 하나같이 미친놈들뿐이군.
사경업, 어서 가자. 대제께서 이미 오래 기다리셨다.”
진양은 진지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흑검을 다시 거둬들였다.
“내 검에 찔리고도 아무 반응조차 하지 않는 걸로 봐선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모양이군.”
뱀 머리는 진양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먼저 날아가 버렸다.
진양은 급할 것 없다는 듯 여유롭게 그의 뒤를 따랐다.
이런 시기에 돌연 사람도 아닌 녀석이 튀어나와 풍도대제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니.
아무 의심 없이 졸졸 따라가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하지만 상대는 진양에게 공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반격은커녕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상당히 독한 녀석이었다.
이렇게 되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이 사람은 정말로 풍도대제의 명을 받고 진양을 찾아온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의 목숨보단 풍도대제가 내려준 임무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할 정도로 충심이 깊은 사람인 듯했다.
이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다.
풍도대제는 엄청난 매력을 지닌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랫사람을 부리는 데 능숙하거나, 혹은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타의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뱀 머리는 감히 명을 어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풍도대제를 만나게 된다면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을 듯했다.
물론 이대로 만남을 거절하는 건 불가능하다.
둘째, 뱀 머리는 풍도대제의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훨씬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방금 전 상황에서 화를 참아 눌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방금 상대를 찔렀던 건 자신의 안전 때문이기도 했고 상대를 떠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만약 상대가 풍도대제의 사람이 아닌 게 사실일 경우, 진양이 상대를 풍도대제의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연기를 한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떠올린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게 우연처럼 딱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어디선가 날아온 폐허 조각에 자신을 습격했던 자가 숨어있었다.
그리고 뱀 머리는 근처에 숨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 일은 뱀 머리 녀석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가 정말로 풍도대제의 사람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비록 지금까지도 뱀 머리 녀석의 신분이 의심되긴 했지만, 지금 신분으로 풍도대제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진양이 수많은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뱀 머리는 앞장서며 아무 말 없이 길을 재촉했다.
혹여나 한 대 더 맞을까 봐 두렵기라도 했던 걸까?
진양에겐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크고 작은 폐허를 한참 동안 헤쳐나가다 보니 마침내 앞쪽에 빛이 번쩍이는 곳이 보였다.
다소 어둑어둑한 빛이었다.
거대한 폐허 조각을 지나고 나니 마침내 그것이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 빛인지 알 수 있었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회색 태양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태양의 크기는 점점 더 커져 갔다.
태양 표면에서 강한 힘과 기세가 느껴졌다.
그리고 회색 물질을 내뿜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것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태양이 뿜어내는 빛은 한층 더 강해졌다.
잠시 뒤.
한층 더 강력한 빛과 함께 태양풍이 발생하며 진양을 덮쳤다.
진양은 빛 가운데 서려 있는 힘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진한 죽음의 기운으로부터 흘러나온 힘이었다.
진양은 얼굴을 찌푸리며 팔을 들어 눈앞을 가로막았다.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망자의 세계에 태양이 나타날 리 없다는 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이 태양은 절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즉, 본질적으로 그것은 태양이 아닐 것이다.
그 말은 곧 태양이 풍도대제거나, 혹은 그 안에 있다는 뜻이다.
진양은 비로소 의심을 거두었다.
망자의 세계에서 이 정도 힘을 낼 수 있는 건 오직 상고 시대의 정상급 고수들뿐이다.
일반적인 강자의 능력으로는 이 정도의 힘을 낼 수 없다.
망자의 세계에 속한 공법이 없다면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의 일부가 망자의 세계와 충돌을 일으키며 스스로의 힘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심각해지면 완전한 제어불능에 빠지게 된다.
이건 상고 시대의 정상급 강자들이 이곳에 절대 나타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강자들이 제어불능 상태에 빠지면 그들이 밟고 있던 곳은 완전히 파괴되어버릴 것이다.
부유섬만 해도 그렇다.
수많은 섬 중에 눈앞에 있는 회색 태양의 폭발을 감당해낼 수 있는 섬은 아무도 없다.
애초에 이 세계 자체가 이런 상태의 고수들이 나타나는 걸 허락할 리 없다.
“대제시여, 사경업이 왔습니다.”
두 사람은 회색 태양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곳에 멈췄고, 뱀 머리는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회색 태양 안에서 대량의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흘러와 한 쌍의 눈을 이루었다.
회색 눈은 진양을 빤히 쳐다보았다.
진양은 의복을 단정히 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신 사경업, 풍도대제를 뵙습니다.”
진양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 두 눈동자에서 번쩍이던 화염 속에 진양의 모습이 비춰졌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며 진양의 모습도 흐릿해졌다.
그리고 소용돌이 징표가 나타났다.
징표가 드러나기 무섭게 화염 속에 비춰지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이어서 두 사람의 마음속에 위엄 넘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를 거두거라. 네게 다른 이를 환생시켜줄 수 있는 신통력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불확실한 요소가 훨씬 더 많습니다. 때문에 계속해서 연구 중에 있습니다.”
“불확실한 요소?”
“환생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고, 마찬가지로 어떤 종족으로 환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환생을 한다고 해도 언제 산 자의 세계에 나타날지도 미지수고요.
즉,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양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혹여나 누군가를 환생시키라고 하신다면, 혹은 대제께서 환생을 원하신다면 비록 부족하긴 하나 최선을 다해 해결책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진양은 진지한 얼굴로 붓과 소책자를 꺼내 들었다.
아무리 풍도대제라고 해도 이 과정만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이건 전부 환생할 사람을 위한 과정이다.
“됐다…….”
사실 풍도대제는 절반 정도 들었을 때부터 흥미를 잃었다.
거기에 진양이 직접 묻기까지 하니 환생에 대한 생각은 한층 더 깔끔하게 사라져버렸다.
이 정도 지위와 경지를 가지게 되면 쉽게 불확실한 곳에 자신의 운명을 걸 수가 없다.
차라리 망자의 세계에서 발전해나가는 게 오히려 더 안정적이니까.
아직 이곳에서 이루지 못한 일은 많이 남아있었다.
질문을 던진 것도 단순히 호기심에 불과하다.
풍도대제의 눈이 진양을 응시했다.
“보아하니 이곳에서 많은 기연을 얻은 모양이구나. 온몸의 힘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있는 것도 그렇고, 완전히 숨겨진 것도 그렇고. 분명 망자의 세계에 적합한 공법을 손에 넣은 것이겠지.”
“과연 훌륭하십니다. 소신 우연히 기연을 얻어 다른 이로부터 공법을 전수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필요하시다면 숨김없이 모두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양은 숨김없이 사실만을 얘기했다.
뿐만 아니라 먼저 공법을 권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진심인 모습이었다.
“누군가에게 전수를 받았다고?”
“그렇습니다. 도문의 사람에게 전수받았습니다.”
진양은 여유롭게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대제가 원한다면 기꺼이 줄 수 있다.
그가 수련할 배짱이 있다는데 진양이 고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풍도대제는 화제를 돌렸다.
“사상은?”
“사상 대인께선 환생부에 계십니다. 일이 밀려있어 벗어날 수가 없는 몸이시라 소신이 대신 왔습니다.”
“하하하! 사상 그 녀석이?”
풍도대제는 큰소리로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뭐, 상관은 없겠지. 다만 사상의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의 입방아에 내리 오르는 건 결코 보기 좋진 않겠구나. 그러니 널 환생부 판관으로 정식으로 임명하마. 앞으로 환생부의 모든 일은 네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거라.”
“감사합니다.”
사실 이름뿐인 감투라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정식으로 임명을 받게 되었으니 이제는 더욱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회색 태양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태양에서 흘러나온 죽음의 기운은 회색 면사포처럼 너풀거리며 태양 표면을 뒤덮었다.
눈부신 빛과 함께 무시무시한 죽음의 기운의 힘이 덮쳐왔다.
진양과 뱀 머리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거꾸로 날아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마음속에 풍도대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만 물러가거라!’
진양은 얼떨떨하다는 듯 태양을 바라보았다.
겨우 이게 전부란 말인가?
풍도대제의 힘은 또다시 제어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폭발의 힘은 비록 강하긴 했지만 금세 다시 제어 가능한 범주 내로 돌아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풍도대제와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최악의 상황부터 시작하여 온갖 경우의 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풍도대제가 제어불능 상태에 빠지며 흘러나온 힘이 태양을 이루고 있던 게 전부일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겁먹을 필요 없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태양이라고 해도 결국은 제어불능 상태다.
싸워서 이기는 건 불가능해도 도망치는 건 충분히 가능하기에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풍도대제가 아직 할 말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양과 뱀 머리가 자리를 떠나고 나자 풍도대제의 거대한 두 눈도 죽음의 기운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같은 시각.
태양 뒷면에 한 털보가 태양에서 겨우 수십 리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 표면에 수십 리에 이르는 거대한 눈이 형성되었다.
이어서 코와 입도 생기며 태양에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회색빛이 폭발하며 강력한 죽음의 기운의 힘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털보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껄껄 웃고 있었다.
“풍도대제. 공법을 원하면 내게 묻도록 하시오. 그 녀석의 공법은 내가 전수해 준 거라 내가 더 잘 알고 있거든. 원한다면 전부 전수해 주도록 하겠소.”
풍도대제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단칼에 거절했다.
“도문의 공법은 필요 없소.”
“어허, 사양하지 말고 가져가라니깐.”
털보는 태양 쪽으로 광구 하나를 던졌다.
그 안에는 그 무엇도 더해지지 않은 순수한 영원의 연옥 공법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풍도대제가 입김을 불자 죽음의 기운이 뒤섞인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소멸시켜버렸다.
선뜻 받을 수도 없었고, 쉽게 믿을 수도 없었다.
이곳은 망자의 세계.
산 자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곳이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이나 견문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털보가 공법 안에 이상한 걸 넣어놨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일부로 중요한 부분을 빼놓거나 수정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만약 풍도대제가 도문의 공법을 익히게 된다면 도문과 엮이게 된다는 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도문과 함께 움직이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신분으로는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없다.
털보가 주는 것이라면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
참고용으로 살펴보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