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286
1286화 모든 건 세 천제 때문이다
흑검을 가져간 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십중팔구 대머리 녀석이 분명했다.
지금 상황에서 무려 세 사람에게 마검을 수련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하지만 첫 번째 수련자가 대머리가 아닐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어쩌면 대머리 녀석이 한층 더 신중하고자 다른 실험자에게 첫 번째 실험의 기회를 넘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불안하여 세 사람이나 되는 실험자를 더 두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즉, 아직 본인은 하나도 익히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직접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수라야, 혹시 마종 땅 근처에 상고 천정 사람들이 모여있을 만한 곳은 없을까? 특히 태호 천제의 사람들이 모여있을 만한 곳이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일찍 죽어서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 하지만 지금 가는 곳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응?”
진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이 과거 상고 천정 사람들이 몰려있던 임시 근거지라는 얘기야?”
“그렇습니다.”
수라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
진양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안 될 것도 없었다.
현재 수라는 전생보다도 더 강력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단신으로 마종 땅에 있던 모든 이들을 휩쓸어버렸을 정도니 충분히 검증된 실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수라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소 대담하게 행동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진양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네 명이나 되는 마검 수련자들을 만나게 된다니. 기대되는걸!’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여러 가지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지 조각이 나타났다는 증거였다.
그 말은 곧 이미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익숙한 등대가 보였다.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 눈으로 볼 필요 없어. 확실히 저긴 상고 천정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맞는 것 같아. 네 사존께서 저런 곳에 계실 리는 없잖아.”
“삼사숙, 저곳에서 누군가 마검 공법의 힘을 다루는 게 느껴집니다. 삼사숙께서 빼앗기신 흑검이 저곳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수라야, 딱 한 번만 더 얘기해 줄 테니까 잘 들어. 흑검은 결코 중요한 게 아니야. 흑검에 세 천제의 음모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히 가서 빼앗아 올 생각은 하지 마.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으란 말이야. 알겠어?”
진양은 엄숙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여러 번이나 재차 강조했다.
혹여나 수라가 눈이 뒤집혀 정말로 흑검을 찾아오겠다며 난동을 부릴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 의심 없이 흑검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건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수라는 썩 달갑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이 도대체 왜 흑검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회수해서 직접 연구해 보는 게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보단 나은 것 아닌가?
“어디서 힘이 흘러나오는지 알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안내해. 최대한 옆으로 돌아서 접근해야 돼.”
두 사람은 조각 지대의 가장자리를 돌아 최대한 가까운 곳까지 다가갔다.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나 혼자 가서 보고 올 테니까.”
진양은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라를 진정시킨 뒤 홀로 배에서 내려 조용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쪽에서 누군가 전투를 벌이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대머리 녀석의 힘도 느껴졌다.
진양은 눈을 감고 사자결을 발동했다.
주위에서 흘러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토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머리가 다른 사람들과 비무를 하고 있는 듯했다.
다만 상대의 마검 수준이 형편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네 번째 수련자와 비무를 하는 듯했다.
진양이 눈을 가늘게 뜨며 사자결 두 번째 단계를 발동하는 순간.
그곳의 상황이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뚜렷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네 번째 수련자가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는 순간 곧바로 도화선에 불이 붙게 될 것이다.
그는 문제가 생길 확률이 가장 높은 수련자다.
그러니 당장 폭주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이건 때마침 심어둔 함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진양은 조용히 자신의 흑검을 느껴보았다.
그리고 몰래 흑검에 스며든 마검의 기운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마검의 기운이 품고 있던 한 가지 경지가 반응을 일으키며 네 번째 수련자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 그의 이성으로 흘러 들어갔다.
* * *
사성 대신관은 자신의 부하와 비무를 벌이고 있었다.
생전에 쌓아둔 충분한 실력 덕분에 모든 상황이 그에게 유리했다.
마검 공법을 확실하게 다루는 게 다소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금방 적응해나가며 자신의 실력으로 녹여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공법과 힘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다루는 것까지는 힘들었다.
말이 좋아 비무지 사실상 하나의 실험이나 마찬가지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배우게 할 수 있을지, 각 사람마다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직접 살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몸에는 감히 실험해 볼 엄두조차 못 내던 것들을 실험해 보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의 세 부하는 전부 마검 공법에 입문했다.
입문 속도는 서로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입문엔 성공했다.
즉, 마검 공법의 입문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뜻이었다.
무려 삼 장에 이르는 거구의 외눈박이 이족이 흑검을 든 채 마검 공법을 다시 한번 깨닫기 시작했다.
그 옆에는 사성 대신관과 문어처럼 생긴 요괴, 그리고 우울한 표정이 가득한 장발의 인간 여인이 있었다.
문어의 촉수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촉수가 흔들릴 때마다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흘러나왔다.
그 옆에 있는 장발의 인간 여인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우울함이 묻어있었다.
두 사람은 비교적 순조롭게 마검 공법에 입문한 사람들이다.
그 순간.
외눈박이의 몸에서 사악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에 있던 죽음의 기운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검 공법 수련에 필요한 힘으로 전환되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분노로 가득 찬 힘이 그의 이성을 깊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게 정상적이었다.
그러나 마검의 기운에는 진양이 심어둔 함정이 뒤섞여있었다.
분명 같은 분노의 힘처럼 보였지만 진양이 심어둔 함정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잇달아 연쇄반응이 일어나며 모든 분노가 진양의 함정을 따라 흘러갔다.
외눈박이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성이 당장이라도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그는 사성 대신관에게 충성을 다했다.
과거에도 사성 대신관을 위해 싸우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고, 일생을 태호 천제를 위해 바쳤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이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태호 천제, 아니, 세 천제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이성이었다.
문득 최근에 이곳에 떠돌던 마검 공법에 관한 소문이 떠올랐다.
마치 그의 일부 이성이 잔뜩 성난 듯 마음속에서 고함을 치는 듯했다.
‘이 모든 건 태미 천제 때문이다. 허나 다른 두 천제 녀석들도 썩 좋은 놈들은 아니다.
처음부터 놈들이 신의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전황이 걷잡을 수 없을 때까지 흐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눈거인 일족이 그와 함께 멸족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 종족, 그리고 자유까지. 넌 이미 모든 걸 태호 천제를 위해 바쳤다. 한데,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는데 어째서 계속해서 같은 길을 걸으려는 것이냐?
왜? 또 죽고 싶기라도 한 것이냐?’
동포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과 동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참혹한 전장의 모습이 빠르게 그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강한 분노가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며 빠르게 커져 갔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이성은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넌 태호 천제의 충신이다. 절대로 배반해선 안 돼. 외눈거인 일족 중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배신자나 도망자가 나왔던 적은 없다. 죽을 땐 죽더라도 모두가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
동시에 이와 관련된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빠르게 커져 가는 분노에 의해 금세 부서지고 말았다.
강한 분노의 기운을 뿜어내는 이성은 점점 더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신의 전쟁이 아니었다면, 태호 천제만 아니었다면 과연 이런 일을 겪을 필요가 있었을까? 굳이 위험한 마검 공법을 익히고, 아직까지도 아등바등 발버둥 칠 필요가 있었겠느냔 말이다!
이 모든 게 무엇 때문이겠느냐?’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가 강력한 폭발음처럼 그의 이성 속에 울려 퍼졌다.
‘이 모든 건 세 천제 때문이다!’
순간 이성의 바다가 무너져내렸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외눈박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새까만 눈에는 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이들.
사성 대신관, 그리고 그의 두 동료.
지금 이 순간 모두 분노 표출의 대상이 되었다.
“크아아아!”
외눈박이는 광기 어린 포효성과 함께 들고 있던 흑검으로 사성 대신관을 베었다.
검은빛이 천지를 뒤덮는 검은 장막이 되어 소리 없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장막이 지나간 곳엔 오직 죽음뿐이었다.
수많은 조각이 검은 장막에 의해 베어져 나갔다.
외눈박이는 마침내 완전히 이성을 잃고 미쳐버렸다.
그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눈앞에 있는 모든 상고 천정의 사람들이 그의 목표였다.
사성 대신관은 굳은 표정으로 그의 공격을 피했다.
이어서 두 손을 뻗자 음침한 빛과 함께 그의 품에서 사성(死星)의 허상이 나타났다.
빛은 곧장 외눈박이를 덮쳤다.
외눈박이의 몸은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러자 외눈박이의 몸에서 검은빛이 솟구쳐올랐다.
그의 기세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갈수록 점점 더 강한 광기에 휩싸여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 * *
한편, 멀리 떨어진 곳에서 편하게 누워 이 상황을 느끼고 있던 진양은 소책자를 꺼내 상세한 과정을 모두 기록해나갔다.
함정을 심어놨다는 사실이 발각될 확률은 일단 무시해도 무방하다.
네 번째 수련자는 완전히 미쳐버리며 태호에게 반기를 들게 되었다.
광기에 사로잡히며 힘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늘어나긴 했으나 이성을 잃었기 때문에 그를 제압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비록 흑검을 손에 쥐고 있긴 하나 심각할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하진 못할 것이다.
반 시진 후
네 번째 수련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거의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진양은 비로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흑검은 계속해서 인연 닿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흘러가도록 놔두기로 했다.
그렇게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진양이 돌연 뒤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또 다른 힘이 폭발하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건……. 수라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