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03
1303화 망천과 기억우선주의자들
장정의는 고개를 들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분명 그의 눈에는 진양이 망천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진양이 망천을 벗어났다는 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의 시선이 진양의 발아래로 향했다.
그제야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 진양은 밖으로 나갔지만 끓어오르고 있는 망천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격렬한 파동 가운데 느낄 수 없을 만큼 미세한 왜곡이 느껴졌다.
진양은 분명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왜곡 가운데 제자리걸음을 했을 뿐.
두 발 모두 수면을 벗어나긴 했으나 망천의 범위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진양이 다시 내려와 수면을 밟자 진양을 막아섰던 격렬한 파동도 잦아들었다.
“어때? 많이 놀랐어?”
진양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마터면 네 녀석에게 깜빡 속을 뻔했네. 그리고 그런 말을 할 거면 내가 완전히 떠나고 난 뒤에 해야지. 대놓고 면전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어디 있냐?”
장정의는 차가운 눈빛으로 진양을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아예 달라졌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려고 안달이 났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해 답답해하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진양이 웃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눈치챈 건지 궁금하지 않아?”
“그런 건 물어도 의미가 없다.”
“성심껏 질문을 했으니 나도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대답을 해줘야겠지.”
진양은 당연하다는 듯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내가 살던 곳에선 어린아이들이 남을 속일 때 목소리를 높이고 세 번을 반복하거든. 이렇게 하면 왠지 모르게 상대에게 더욱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하마터면 정말로 완전히 벗어날 뻔했어. 내 한쪽 다리는 벌써 망천 밖으로 나간 상태였거든. 하지만 네가 부군이 아니라고 세 번이나 강조하던 부분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지. 예전에 이런 식으로 날 속이려던 어떤 녀석이 하나 떠올라서 말이야.
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참고하여 이것을 기반으로 몇 번이나 모습을 바꿨지. 네가 누구냐고 묻는 순간 내 머릿속에선 본능적으로 여러 사람의 이름이 스쳐 지나가게 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네가 누군지 추측을 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이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거고.
여기서 넌 몇 가지 쓸 만한 사람의 이름을 포착하게 된 거야. 그중 하나가 부군인 거지.
하지만 왜 하필 네가 부군이라고 대답을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단 하나뿐이더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네 대답을 듣고 크게 놀랐겠지. 하지만 난 분명 얘기했어. 거짓말을 하면 바로 떠날 거라고. 그래서 듣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돌아섰지.
효과는 꽤 훌륭했어. 넌 내가 망천을 떠나게 만들려고 했던 거지.
솔직히 이런 결론을 냈을 땐 나 스스로도 크게 놀랐었어. 그래서 다시 모든 과정을 살펴보면서 역으로 추리를 해봤지.”
장정의의 미간은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발을 내딛는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많은 걸 생각하다니.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난 사자결을 익혔거든.
난 내 추측 중에 작은 부분 하나가 잘못된 게 있다는 걸 발견했지. 대부분은 맞았지만 단 하나, 네가 영원히 지금 모습으로 이곳에 갇혀있게 된다는 부분이 이상했어.
넌 아마 내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알았을 거야. 그래서 내가 진짜 규칙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역으로 널 이용할까 봐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넌 날 희생양으로 삼으려다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적은 이미 규칙을 이룬 거지.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게 한 가지 있어. 이 규칙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강하진 않았던 거야. 어쩌면 오직 망천 안에서만, 우리 두 사람이 모두 망천 안에 있어야만 충분한 강제력이 발휘되어 규칙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거지.
내가 이런 사실을 알까 봐 두려웠던 너는 일부러 멍청한 척 연기를 하며 조금씩 날 찔러봤어. 일부러 나 때문에 평정심을 잃은 척하며 진실을 얘기하는 척했던 거지. 그리고 최후의 일격으로 네가 부군이라고 말을 하며 나의 인내심을 완전히 무너뜨렸어.
즉, 날 화나게 만들고 네게 복수를 할 명분을 준 거야. 네가 규칙에 사로잡혀 영원히 이곳에 서 있도록 말이지. 내가 보기엔 이건 죽음이나 영원한 소멸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형벌이야.
여기까지가 내가 추측한 결과다. 그래서 생각했지. 넌 어째서 내가 진짜 규칙을 알게 되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장정의의 표정은 한층 더 굳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한마디 받아쳤다간 그로 인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까 두려웠던 탓이다.
진양이 차갑게 웃었다.
“처음엔 멍청한 척 연기하며 날 안으로 유인했지. 안으로 들어오게 만든 다음엔 계속해서 멍청한 척 연기했고.
너 같은 녀석들은 잡생각이 너무 많아. 내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 네가 계획이 실패한 걸 알았다면 끝까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며 버티는 것도 가능했겠지.
그럼 난 정말로 여길 떠났을 거야. 그래도 넌 여기서 못 벗어나진 않았겠지. 하지만 넌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았어.
넌 내가 네 목적을 간파할까 봐, 망천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될까 봐 두려웠던 거지. 네가 조급한 티를 내면 나의 의심을 사게 될 거고, 그럼 난 이곳을 벗어나지 않게 될 테니까.
난 너같이 속이 새까만 녀석들은 아주 잘 알고 있어.”
여기까지 말한 진양은 잠시 멈춰 섰다.
왠지 모르게 말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왜 더 이상 멍청한 척 연기하지 않는 거야? 어째서 내가 진짜 규칙에 대해 알게 될까 봐 두려워했던 거지?
내가 알게 된다고 해도 기껏해야 내가 망천을 떠나지 않으면 네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전부일 텐데.
하지만 문제는 내가 영원히 이곳에 있을 순 없다는 거야. 만약 내가 망천을 떠나게 되면 너도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되겠지.
그렇다면 가능성은 오직 하나뿐. 만약 내가 자세한 규칙에 대해 알게 된다면 설령 내가 망천을 벗어나게 된다고 해도 넌 여전히 이곳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
장정의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단 한마디도 대답할 생각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말하기 싫으면 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방법이 없을 줄 알아? 계속 버텨보라고. 어디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봐!”
진양은 눈을 감고 해안 안으로 들어가 소설책을 펼쳤다.
소설책에는 반짝이는 규칙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뼈대는 갖췄지만, 완전히 진리로 자리 잡지 않은 것들이었다.
진양은 망천이라고 적힌 곳을 펼쳤다.
규칙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망천, 망각의 강. 이곳을 지나게 되면 모든 기억을 망천에 남기게 된다.’
이건 가장 기본적인 규칙으로 아직 상세한 규칙은 정해진 게 없었다.
지금까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망천에 들어선 자는 다시 돌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망천을 건너야만 한다.
그리고 망천을 건너게 되면 모든 기억을 망각하게 된다.
처음에는 망천의 효과가 흑검과 같은 맥락의 효과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단순히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전부 망천에 녹아들게 되는 것이었다.
흑검보다 미세하게 다루는 건 힘들었지만 상당히 강력한 효과인 건 확실했다.
과연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게 있는 걸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떠올려보았다.
분명 예전에 보았던 기록에선 망천이 탁한 색을 띠고 있다고 기록되어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보게 된 망천은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았다.
하지만 가짜 장정의가 튀어나오자 이곳 망천 지맥의 색은 혼탁해졌다.
아마도 이곳에 녹아있는 기억 때문에 혼탁해진 듯했다.
그렇다면 기록된 대로 망천은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색을 띠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망천은 하나의 백지와도 같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기록에 적힌 망천과 진양이 직접 본 망천은 단순히 산 자의 세계의 망천과 망자의 세계의 망천 정도의 차이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인 차이다.
두 세계 모두 같거나 두 세계 모두 다르다.
진양은 붓을 꺼내 규칙에 한마디를 추가했다.
‘두 세계의 망천의 본질은 같다.’
규칙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로써 한 가지는 확인된 셈이었다.
이어서 진양은 희생양에 대한 규칙도 추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생양이라는 말은 찰떡같이 잘 어울렸다.
심지어 망천이 수많은 ‘기억우선주의’를 가진 강자들이 화를 피하거나 시간을 몰래 거슬러 오르기 위해 만든 하나의 방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이곳에 남겨둔 채 본체는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본체가 밖에서 죽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들이 가진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기억이다.
이것이야말로 핵심이다.
기억은 전부 망천에 보관되어있다.
때문에, 희생양과 관련된 규칙만 적절히 이용한다면 다시 망천을 빠져나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망천은 그 자체로도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상고 지부와 함께 부서지긴 했지만, 망자의 세계에서 또 하나의 온전한 망천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기억우선주의자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 안전하게 기억을 보관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부군이 망천을 만들어낸 건 나중을 위한 준비를 한 것일까?
그 역시도 기억우선주의자였던 걸까?
진양의 생각은 또다시 쓸데없는 방향으로 새어 나갔다.
진양은 다시 생각을 다잡고 새롭게 희생양에 대한 규칙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규칙인지 아니면 단순한 결점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일단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
우선 결점을 적어보았다.
다 적고 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진양은 붓을 쥔 채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지?”
가짜 장정의가 세운 탈출 계획은 결점이 확실하다.
글자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인정받은 결점’이라는 뜻이다.
인정을 받은 결점을 결점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좋아. 일단은 규칙으로 보는 수밖에.’
이어서 세분화해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
수십 개를 시도해 본 끝에 마침내 한 규칙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심지어 혹시나 해서 ‘희생양 계약’이라는 글씨까지 적었는데, 이것마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서로 계약을 맺고 상대에게 원하는 일 한 가지를 부탁할 수 있다. 한쪽이 부탁받은 일을 완수한다면,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선 남은 한쪽도 반드시 부탁받은 일을 완수해야 한다.’
희생양 계약과 관련된 규칙은 큰 문제 없이 자리를 잡았다.
이건 진양이 추가로 덧붙인 게 아니다.
본래부터 있던 걸 적어넣은 것에 불과하다.
이쯤 되니 가짜 장정의가 두려워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규칙을 이용하여 빈틈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