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44
1344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진양은 강한 살인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편지가 진양이 설치한 진법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하며 자신의 코앞에 떨어지는 순간은 더더욱 그랬다.
아예 대놓고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난리를 쳤지만, 상대는 조금도 포기할 의사가 없는 듯했다.
장정의보다도 더 끈질긴 녀석이었다.
왼쪽 뺨을 맞고 오른쪽을 들이대는 상황은 딱 한 가지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선 이 정도 모욕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사기꾼조차도 이 정도로 인내심을 발휘하진 못한다.
상대가 어떻게 대세계 너머에 있는 자신을 속인 건지 궁금하긴 했다.
이대로 속고는 도무지 살 수가 없었다.
그때, 상대가 보낸 편지가 진양에게 도착했다.
편지를 열어보니 상당히 긴 내용이 들어있었다.
진양은 첫 줄을 읽자마자 상대가 작정하고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게 아니라면 거친 말을 뱉어내는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할 리 없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진양의 얼굴에선 차가운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태호조차도 이렇게 많은 단서를 가지고 있을 리는 없다.
게다가 대황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니.
진양은 대황에 대한 단서는 일단 기억해두기로 했다.
마침 사해에 있으니 상대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속이려는 건지 파악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해는 매우 위험한 곳이다.
영기조차도 거의 사용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양에겐 안방이나 다름없었다.
편지에 적힌 곳은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편지에 대략적으로 그려진 지도나 묘사를 보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유령호를 타고 해저를 가를 때 지나가 본 곳들이었다.
진양은 즉시 호량을 벗어났다.
* * *
며칠 뒤.
아직 편지에 적힌 곳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의 인물과 만나게 되었다.
“형님, 살아나신 겁니까?!”
상대는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살아나긴 무슨. 그런데 끝없는 바다로 갔었던 거 아니었어? 벌써 수백 년은 지난 걸로 기억하는데. 왜 아직도 사해에 있는 거야?”
진양이 만난 뜻밖의 인물은 바로 오징어였다.
녀석은 몸집이 상당히 거대해져 있었다.
예전에 알던 그 오징어 녀석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서혼수를 짊어진 채 수백 개의 촉수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해저를 걸어 다니고 있었던 것!
“누군가 형님이 부활하려고 하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와 큰형님의 의견을 물어보더라고요.
형님, 도대체 언제 죽으신 겁니까? 왜 저는 모르고 있었던 거죠?”
“벌써 수백 년도 더 된 얘기야. 어쨌든 다시 살아났으니 됐지. 그래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니깐?”
“형님께서 위험에 빠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도와드리러 가는 중이었죠. 물론 제가 먼저 얘기를 꺼낸 건 아니고요, 큰형님이 먼저 가자고 하셨습니다.”
“…….”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진양은 이미 한참 전에 부활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도 진양이 있던 곳에 도착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와준 성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진양은 아무 반응 없는 서혼수를 힐끔 바라보았다.
‘서혼수가 먼저 돕자고 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과 관련 없는 것들이라면 전부 먹이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그가 먼저 진양을 돕자고 하려고 했다니.
애초에 그에게 지능이라는 게 존재했단 말인가?
물론 자신을 도우러 온 사람에게 이런 생각을 말로 뱉을 순 없었다.
“이미 부활은 다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티가 날 정도로 상투적인 감사 인사긴 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질 않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식사를 대접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징어 녀석은 몸길이만 해도 수천 장에 이르고, 촉수를 쭉 펼치면 최대 만 장에 달하는 것도 있다.
심지어 이 녀석은 육식 동물이다.
이런 녀석을 배불리 먹일 정도로 대접을 하려면 상당한 양의 고기가 필요할 것이다.
서혼수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아마 호량에 있는 모든 것들을 먹이로 던져준다고 해도 부족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두 사람이 호량 근처로 다가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릴 것이다.
‘식사는 넘어가도록 하자.’
다만 생과 사의 경계선이 있는 곳이라면 서혼수에겐 매우 잘 맞을 듯했다.
그곳엔 죽지 못해 살아있는 영혼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서혼수가 그곳에 간다면 불쌍한 영혼들을 성불시켜주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오징어에겐 크게 득이 될 만한 게 없다.
‘알아서 고르라고 하지 뭐.’
진양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얘기해 주었다.
오징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서혼수 역시 깊은 잠에 빠져있던 탓인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천천히 생각해 봐. 언제든 원하면 데려다줄 테니까. 그럼 난 이만 먼저 가볼게. 이만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두 녀석과 인사를 나눈 뒤 진양은 계속해서 보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감히 진양의 앞길을 막는 사람은 없었기에 여정은 순탄했다.
* * *
진양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해구에 도착했다.
희미하게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서혼수 때문에 이곳에 있던 바다 괴수들이 전부 겁에 질려 도망쳐버린 듯했다.
진양은 해구 깊은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아직 살기와 사악한 기운이 짙게 남아 있었다.
게다가 해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천에서도 짙은 사악한 기운이 뒤섞여있는 게 느껴졌다.
분명 무시무시한 괴수가 보금자리로 삼았던 곳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살아있는 존재는 단 한 마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과연 바다에서 서혼수를 이길 만한 존재는 없는 듯했다.
그나마 서혼수의 이동 속도가 느린 게 다행이었다.
만약 그가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면 생명체들이 번식하는 속도보다 먹어 치우는 속도가 더 빨랐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다 생물은 아예 씨가 말라버렸을지도 모른다.
진양은 사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깊숙한 곳으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동굴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공허로 이루어진 공간이 펼쳐졌다.
진양이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공간이 수축될 기미를 보였다.
뒤에 있는 공간 입구도 점점 줄어들었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린 채 흑옥 신문을 꺼내 줄어드는 입구를 강제로 막았다.
이쯤 되니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 것 같았다.
과거 장해비전을 익힌 어느 고수가 죽은 뒤 남겨진 해안이었던 것이다.
고수는 죽었으나 해안은 곧바로 수축되지 않았다.
상당한 양의 힘이 축적되어있었기 때문에 외부로 방출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해안을 가진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며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평행이 깨져버렸다.
그 바람에 수축하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상대의 함정인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굳이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진양을 함정에 빠뜨릴 방법은 널려있다.
게다가 겨우 이 정도로는 진양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없다.
진양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사방에 온갖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 있긴 했지만 대부분 형상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진양은 거대한 그물을 만들어낸 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싹싹 긁어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챙겨 유유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와 흑옥 신문을 거두자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던 동굴의 입구가 천천히 닫혔다
* * *
동굴을 빠져나온 진양은 적당한 무인도 한 곳을 찾아 손에 넣은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우선 이미 영기를 완전히 잃은 영석 한 무더기, 그리고 아주 미약한 양의 영기만 남아 있는 팔품 영석이 있었다.
영기로 가득한 곳에서 일정 시간 회복기를 가진다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외에 고철도 잔뜩 있었다.
전부 힘을 잃은 법보들이었다.
보아하니 해안의 주인은 죽은 지 꽤 시간이 지난 듯했다.
한참을 뒤적이던 진양은 곳곳에 녹이 피어있는 흑철로 만든 책 하나를 발견했다.
진양은 책을 향해 장해비전을 사용했다.
강력한 힘이 책 안으로 흘러드는 순간 사방에 피어있던 녹이 벗겨지며 강한 마기를 뿜어내는 보책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렇게 큼직하게 적혀있었다.
‘장해비전’
진양은 무표정으로 보책을 펼쳐보았다.
내용을 보니 진품인 건 확실했다.
예전에 부도마교가 아주 오래전에 장해비전의 경전보책을 잃어버렸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장해도군이 나타나며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아하니 그 말은 사실이었던 듯했다.
진양은 보책에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잠깐의 고민 끝에 소책자를 꺼내 지금까지의 기록을 살펴봤다.
반신반의로 여기까지 오긴 했으나 정말로 경전보책을 찾게 되었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편지를 보낸 사람은 처음부터 그를 속이고 있던 게 아니라는 뜻이다.
도대체 누가 진양에게 편지를 보낸 것일까?
누군진 몰라도 상당한 정보력을 가진 인물인 건 틀림 없었다.
과거 부도마교 사람들이 사해에서 수많은 희생을 감내했던 것도 분명 장해비전의 경전보책을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장해비전 경전보책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로 누군가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절세의 고수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을 십이라고 소개했다.
이름만 들어도 여러 가지의 추측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십이와 연관된 것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인간 십이사다.
그렇다면 그녀는 완전히 소식이 끊겨버린 십이사 중 한 사람인 걸까?
물론 거짓말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일단 사실을 하나 보여주고 진양이 자신을 믿게끔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민 끝에 진양은 일단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일단 묵양은 아직 봉인된 상태라 물어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풍수사를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망자의 세계는 이미 오래전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풍수사는 여전히 무덤 속에 처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 찾아가 보기로 했다.
* * *
진양은 부지런히 달려 풍수사 무덤 근처에 도착했다.
그러나 무덤의 입구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번 그는 어떻게 해야 묵양이 자신의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게 할지 모두 계산해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진양이 올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