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43
1343화 과연 좋은 사람이라 그런지……
진양은 고민 끝에 신목을 힐끔 바라보며 상대에게 답장을 날렸다.
“미안하지만 난 이미 선초를 가지고 있어서 말이야.”
사실 신목은 다시 정상적인 선초로 회복될 수 없는 잘못 자란 선초다.
그러나 신목이 선초라는 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진양은 답장을 날리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상대를 체념하게 만들기엔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마디를 더 날렸다.
“그리고 네가 도움을 청해야 할 사람은 신과 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야. 그 사람들만이 널 구해줄 만한 힘을 가지고 있거든. 그리고 난 주심 성관이다. 널 구해줄 만한 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으니까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마.”
단순히 진양을 속이기 위해 보낸 편지인지, 아니면 정말로 도움을 청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 정도라면 어느 쪽이든 충분한 답변이 될 것이다.
오히려 속이는 쪽이길 바랐다.
주심 성관이 깨어났다는 걸 알린다면 모두들 자연스럽게 태미가 부활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 *
구름 저택.
소녀는 여전히 창밖의 복숭아나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한 장의 꽃잎이 나무에서 떨어져나와 창가에 있는 소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어서 스스로 책상 위로 날아든 꽃잎은 한 장의 종이가 되어 펼쳐졌다.
‘백날 나한테 빌어봐야 아무 소용 없다!
난 그저 선초를 가진 일개 수도사일 뿐. 그리고 난 태미 천제의 휘하에 있는 주심 성관이다.
천제께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거라.
상고 지부 녀석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다. 내가 놈들을 전부 죽였거든.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신의 계획을 방해하려는 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자꾸 귀찮게 편지 보내지 마! 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랑 편지 주고받으면서 연애질할 생각은 없으니까!’
종이는 소녀가 내용을 모두 확인하기 무섭게 완전히 소멸되었다.
누가 봐도 거절의 의사가 매우 명확한 답장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한층 더 상기되었다.
수락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답장을 받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 답장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답장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까지 했다.
태미 천제 휘하의 성관이면서도 천제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글씨가 상당히 개판인 것으로 보아 외모는 그렇게 기대할 수준은 아닌 듯했지만.
어쨌든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상대가 누군가를 연민하는 마음을 가진 착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소녀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다시 답장을 쓰기 위해 새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바깥의 구름이 용솟음치며 고요하던 세계에 커다란 파장이 일어났다.
하얀 구름 가운데 강한 냉기를 품은 먹구름이 나타났다.
이어서 꿈틀거리던 먹구름은 새파란 얼굴에 거대한 송곳니를 가진 무려 만 장에 이르는 몸을 가진 거대한 귀신의 형상으로 변했다.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들 듯한 차가운 기운이 순식간에 저택을 가득 채웠고, 거무스름한 눈꽃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웅장한 외침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태호를 찬미하라!”
거대한 태양이 떠오르며 강력한 빛이 온 세계를 비췄다.
지금 이 순간 빛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이 사라지고 나자 거대한 귀신은 사라졌다.
구름 저택엔 또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창가에 앉아 목을 길게 빼고 바깥을 바라보던 소녀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잠시 뒤.
그녀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붓을 들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착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누구신진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저를 구하려고 보내주신 귀신은 잘 봤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네요. 그래도 고맙습니다.
당신이 어디 계신지, 또 무엇을 좋아하시는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많은 걸 알고 있으니 좋아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말씀해 드리도록 하죠.’
여기까지 쓴 소녀는 씨익 웃으며 한 줄을 더 보충했다.
문득 진양이 마지막으로 쓴 한마디가 떠오른 것이다.
‘제 이름은 십이. 인간이고 남자랍니다.’
소녀가 쓴 편지는 꽃잎이 되어 창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구름 너머로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 * *
태호의 대세계.
전쟁은 그 어떤 전조도 없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오직 전투력만으로 높은 서열에 올라있던 대신관 진화가 가장 먼저 사망했다.
다음 대신관 진화가 다시 부임하기까진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부임하고 나서도 완전히 권력을 손에 쥐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
대지 위, 여러 종족이 모여있는 종문 내부.
이곳에선 격렬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이 익힌 공법은 태양진화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태양진화를 마주해 본 사람은 극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였다.
종문 내에 있는 자들은 전부 대신관 진화를 대신할 예비자들이었다.
태호가 신임 대신관을 선택할 때 우선적으로 진화종을 가장 먼저 고려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상고 시대에 맺어진 원한과 갈등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곳에서의 신의 명성은 진양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이곳에서 신은 그저 신일 뿐이다.
모두가 감히 우러러볼 수조차 없는 태호 천제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신도 마찬가지였다.
소식의 근원이 사라지며 시간은 모든 결점을 씻어낸다.
특히 이 시간이 충분히 길게 유지된다면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를 다시 파낸다고 하더라도 단지 불순한 명예훼손에 불과하다.
상고 지부의 침략은 그저 사악한 자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는 감투를 쓰는 게 전부다.
그러므로 태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반응을 한 것은 대신관과 기타 다른 신들뿐이었다.
이 외에 반응을 한 자들은 단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진화종을 들 수 있다.
대신관 진화가 죽지 않는다면, 이들 중 강한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경지를 돌파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수명을 다하여 죽는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 하늘에서 기회가 뚝하고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대신관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 만큼 다른 신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내부에선 벌써부터 암투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앞잡이를 자처하며 몰래 상고 지부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일단 이 모든 것은 진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 * *
진양은 계속해서 다리를 지켰다.
며칠 동안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눈을 감은 채 한참 햇볕을 쬐고 있을 때.
또다시 편지가 날아들었다.
‘뭐야? 왜 또 보낸 거지? 내 편지의 내용을 못 알아본 건가?’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한 진양은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사람을 보내 도와줬다고? 전혀 모르는 일인데……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을 베기라도 한 건가?’
진양은 황급히 소책자를 살펴보았지만 그런 기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어쩌면 상고 지부의 사람들이 한참 싸움을 벌이는 걸 보고 상대가 오해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양은 계속해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뭘 좋아하냐고? 내가 뭘 좋아하든 네 녀석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잖아!’
이어서 편지 맨 마지막 줄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남자’라는 글씨가 밑줄까지 더해져 강조되어 있었다.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편지를 찢어버렸다.
‘이게 뭐야! 그러니까 지금 내가 얼굴도 못 본 적 없는, 그것도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거야?’
얼굴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는 알 수 없다.
때문에, 진양은 단 한 번도 상대를 우호적인 쪽으로 여긴 적이 없다.
연애 심리는 당연히 더더욱 없다.
진양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한마디를 상대에게 답장으로 보냈다.
“썩 꺼져!”
* * *
매일 답신을 손꼽아 기다리던 소녀는 마침내 답신을 받게 되었다.
꽃잎이 날아오자 그녀는 기쁜 얼굴로 그것을 받았다.
이어서 편지를 확인한 그녀는 읽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제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긴 합니다만, 도저히 당신을 찾을 방법이 없네요.
그리고 그 귀신이라는 녀석은 제가 보낸 게 아니라 상고 지부 놈들이 제멋대로 날뛰다가 거기까지 간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구해줄 거라는 생각은 버리세요.
제가 뭘 좋아하냐고 물었죠?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전 경전보책을 모으는 걸 좋아합니다. 과연 당신이 구해줄 수 있는 물건일까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그런 걸 물어서 뭐 하려고요?
그리고 남자라뇨? 무슨 뜻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죠?
이럴 줄 알았습니다. 전 당신처럼 여자인 척하는 사람이 제일 싫습니다.
다시는 편지 보내지 마세요!’
소녀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편지 너머로 분노가 느껴지긴 했으나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과연 좋은 사람이라 그런지 굉장히 솔직하네요.”
편지를 모두 읽은 소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상대가 좋아하는 물건이 하필 경전보책이라니.
이렇게 되면 조금 번거로워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내용만 원하는 거라면 어려울 게 없었지만, 수집을 목적으로 한다면 직접 실물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녀는 한참의 고민 끝에 방 안에 있는 책장을 뒤졌다.
그리고 한참 뒤.
여러 권의 책이 그녀의 앞에 쌓였다.
여러 가지 문자로 기록된 책들이었다.
전부 상당히 놀라울 만한 수준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한참 책들을 뒤적이던 소녀는 마침내 다시 답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좋으신 분이라 그런지 말씀도 솔직하게 하시네요.
말씀하신 책은 모두 구했지만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어서 전해드릴 수가 없네요.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책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향계라는 곳에 관통이라는 바다가 있는데, 해구에서 북쪽으로 가다 보면 동굴이 하나 나옵니다. 그곳에 묵향경이라는 경전보책이 숨겨져 있죠. 인간 십이사 중 한 사람인 화사가 사용하던 먹을 제조할 수 있는 비법이 기록된 책이라고 하죠.
대황이라는 곳에는 사해라는 바다가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소녀는 경전보책이 있을 만한 장소를 줄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 기억으로 저는 인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자랍니다. 그냥 농담 한번 해본 것뿐이에요.’
소녀는 긴 편지를 잘 접어 창밖으로 날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턱을 괸 채 다음 답장을 기다렸다.
잠시 뒤.
소녀는 고민 끝에 이곳에 있는 기록들을 정리해두기로 했다.
혹여나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