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42
1342화 연결고리가 형성된 것
대신관은 진화를 일으켜 온몸을 불태웠다.
그러나 무슨 짓을 해도 가슴에 느껴지는 통증은 없앨 수가 없었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차가웠던 그의 눈빛엔 살아있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드러났다.
이러한 감정이 강해질수록 고통은 더욱 커갔다.
그는 포효성을 내지르며 광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자기 자신을 불태웠다.
“네 잘못이 아니야…….”
진화의 마음속에 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뜻한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그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주저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잠시 뒤.
그의 몸을 불태우던 태양진화는 그의 앞으로 모여들며 성모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녀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뻗어 가볍게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화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기운도, 영혼, 힘도 모두 여전했다.
그러나 그의 이성은 이 순간 스스로 괴멸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순간.
태양진화가 자제력을 잃고 그의 육신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진화가 사라진 자리엔 주먹만 한 크기의 태양진화가 남아 있었다.
대신관 진화의 권력이 실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순간, 권력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허공을 가로질렀다.
권력은 다시 대신관 진화의 궁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태호가 다시 대신관 진화를 임명할 때까지 이곳에서 조용히 기다림으로 시간을 보냈다.
대신관이 사라지고 나자 지면에선 다시 한번 검은 문이 솟구쳐올랐다.
거대한 문 양쪽에는 푸른 얼굴에 큼직한 송곳니를 가진 역귀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문이 열리며 차가운 기운을 풍기는 이들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신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라. 흐흐, 아주 완벽하군.”
“신 두 녀석 정도를 잡아 번기(幡旗)의 주혼(主魂)으로 삼는다면 더욱 완벽하겠어.”
* * *
눈을 가늘게 뜬 채 번쩍거리고 있는 절점을 지켜보던 진양은 크게 놀랐다.
침략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급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힘의 양으로 보아 대량의 인원이 나선 듯했다.
이쯤 되니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것 같았다.
대량의 병력이 사라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은 오직 풍도대제 한 사람뿐이었기 때문이다.
부군은 소수정예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처럼 불필요한 곳에 소모할 만큼 여유가 없다.
그런데, 순간 일자결의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대량의 병력 사이에 뒤섞여 태호의 세계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일자결의 힘이었는지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사자결이나 애자결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진양은 온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일자결을 가진 고수가 직접 나선다면 대량으로 투입시킨 병력은 전부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모든 것이 진양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애초에 불씨를 일으킬 것도 없이 만나자마자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온몸이 근질거리긴 했지만 진양은 일단은 참기로 했다.
대신 직접 이곳을 더욱 철저하게 봉쇄하여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한창 다리를 봉쇄하고 있을 때.
어떤 힘이 다리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우려하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겁대가리 없이 다리에서 뛰어내린 미친놈이 정말로 나타난 것이다.
진양은 곧바로 그것을 붙잡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일념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것을 완전히 제압하는 순간 일념이 눈앞에 본모습을 드러내며 한 장의 서신이 나타났다.
그곳에 적힌 것들은 스스로 진양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자로 바뀌며 종이에 나타났다.
상당히 정갈한 글씨였다.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높은 집안의 여인이 적은 글씨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보았을 것이다.
‘누구든 이걸 본다면 날 구해주십시오. 아니면 절 말살해 주셔도 좋습니다.
저는 결코 신의 꼭두각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큰 음모가 있습니다.
제발, 제발 저를 구해주십시오. 전 결코…’
이제 보니 누군가 혼란을 틈타 무의식적으로 던진 일념이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다리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일종의 ‘물병편지’였던 것이었다.
누가 그것을 줍게 될지는 순전히 인연에 맡겨야만 한다.
하지만 이곳에 적힌 내용이 사실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를 낚으려고 이런 짓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으로선 일자결을 펼친 고수가 놓은 덫일 가능성이 높았다.
설령 아니라고 해도 쉽게 믿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얼마나 떠돌았는지 모를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믿고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어떤 세계로 향해야 할지조차 이곳엔 적혀있지 않았다.
그래서 진양은 결론을 내렸다.
‘나랑 무슨 상관이야!’
진양은 일념을 소멸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물병편지에 대한 기억도 베어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였다.
* * *
며칠 뒤.
구름 위로 펼쳐진 아름다운 한 저택 내부.
한 소녀가 턱을 괸 채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창밖에 있던 복숭아나무에서 꽃잎이 하나 떨어져 그녀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그녀는 크게 기뻐하며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것을 붙잡았다.
손바닥에 잡힌 잎사귀는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며 작은 종이쪽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나랑 무슨 상관이야!’
“엥?!”
소녀는 휘둥그렇게 눈을 뜬 채 쪽지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뚜렷했던 글씨가 점점 일그러졌다.
마치 심하게 휘갈겨 쓴 것처럼.
그러다 결국 희미해지며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한참을 멍하게 있던 소녀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화를 낼 틈도 없이 곧장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붓을 들고 글을 적었다.
화를 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니,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는 기뻤다.
그녀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 갇혀있었다.
그동안 밖으로 흘려보낸 편지만 해도 수천 통에 달할 정도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답장이 오지 않았었는데 오늘 드디어 답장이 온 것이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편지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기엔 충분했다.
이것은 그녀에게 희망이 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소녀는 금세 한 편의 편지를 완성시켰다.
그러나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완성시킨 편지를 찢어버렸다.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뭐라고 말을 해야 되지?’
답변을 보낸 사람은 애초에 자신을 상대해 줄 생각조차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상대의 답변을 보고 나니 그동안 아무도 그녀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상대의 관심을 끄는 것이야말로 핵심이었다.
소녀는 곰곰이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그리고 단번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날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해 준다면 선맥(仙脈)이 어디 있는지…….’
그녀는 편지를 완성시키기도 전에 다시 찢어버렸다.
이건 생각보다 매력적인 정보는 아니다.
상고 천정이 선맥을 쥐고 있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
다만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손에 넣을 방법이 없을 뿐.
한참의 고민 끝에 소녀는 다시 새 종이를 꺼냈다.
‘날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해 준다면 이제 곧 다 자랄 선초가 있는 곳을 알려드리도록 하죠.’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그녀는 기대 가득한 얼굴로 종이를 곱게 접어 다시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종이는 꽃잎이 되어 바람을 타고 저택 먼 곳으로 날아갔다.
꽃잎은 이내 구름 너머로 사라지며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 * *
같은 시각.
진양은 계속해서 절점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고 지부에선 아예 작정을 한 듯 병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며칠이나 흘렀지만 병력은 줄어들 추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이쯤 되니 진양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진양이 직접 지키지 않는다면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이들은 세계의 경계를 지나면서 자신의 힘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 다리가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다 함께 사이 좋게 끝없는 허공 너머로 사라지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들에겐 일말의 두려운 기색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양은 두려웠다.
다리가 무너지면 이들이 떨어질 곳은 끝없는 허공이 아니라 대황 세계였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대황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면 태호의 부하들과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일이 복잡해질지도 모른다.
이어서 무려 열흘이나 지나고 나서야 대부분의 병력들이 모두 다리를 건넜다.
진양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진법을 펼쳤다.
굳이 진양이 이곳을 지키지 않아도 충분히 다리가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줄 만한 진법이었다.
진법 설치를 마친 진양은 그제야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진양은 다시 발을 거두며 뒤를 돌아보았다.
또 하나의 일념이 다리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진양은 심각한 표정으로 사자결 두 번째 단계를 발동했다.
그리고 세세한 것까지도 모두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미 온갖 조치가 취해졌기 때문에 어떤 녀석들이 건너가도 다리가 무너질 일은 없다.
여기에 신목의 힘까지 더해지며 빈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일념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다리를 빠져나온 것이다.
이쯤 되니 진양도 한층 진지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상대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거나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상대가 진양을 주시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분명 일념을 소멸시킬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흘러나간 게 분명했다.
진양은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뻗어 일념을 잡았다.
그러자 그것은 종이로 변했다.
‘날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해 준다면 이제 곧 다 자랄 선초가 있는 곳을 알려드리도록 하죠.’
‘선초’라고 적힌 부분은 특별히 굵직한 글씨로 강조되어 있기까지 했다.
내용을 확인한 진양은 혀를 끌끌 찼다.
지난번의 내용은 큰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세계의 경계를 넘을 만큼의 신뢰는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물론 여전히 쉽게 믿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성의는 보였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그냥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상대가 보낸 편지가 정확하게 진양이 있는 이곳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진양이 지난번 무심결에 흘려보낸 일념이 일종의 답장이 되어 상대에게 닿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서로의 연결고리가 형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