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65
1365화 도움이 필요할 때
지하 모래 바다에선 곧 이곳으로 찾아올 서사 신에 대한 매복 공격 준비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서사 신이 이런 순간에 천궁을 빠져나온 것이 하나의 함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양은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기운도 완전히 숨긴 채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정말로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이들이 서사 신을 확실하게 끝내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먼저 나설 생각은 없다.
“놈이 곧 도착합니다.”
망토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잊지 마세요. 시간을 끌수록 여러분께 불리해질 겁니다.”
진양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모두에게 말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의 심장이 계속해서 빠르게 뛰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자꾸만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특히 다섯 개의 금단에서는 시시각각 흐릿한 빛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건 결코 착각이 아니다.
엄청난 위험이 다가오자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게 분명했다.
특히 방금 누군가 ‘놈이 곧 도착합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이러한 반응은 한층 더 강해졌다.
그렇다면 지금 다가오고 있는 위험은 서사 신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하다.
모래 바다 입구를 빠져나온 진양은 조용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무언가 느껴졌다.
진양은 그것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 다경도 채 지나지 않아 누군가 허공을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몸에 은은한 빛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가 움직이는 속도는 빛에 휩싸여 날아가는 것보다도 훨씬 더 빨랐다.
그는 현임 유령호의 선장인 온우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정의? 저 녀석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진양은 소리 없이 다가가 그의 뒷목을 붙잡았다.
장정의는 발걸음을 멈추며 목을 움츠렸다.
황급히 지면으로 내려왔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방금 목에 느껴졌던 서늘함도 더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목 뒤로 느껴지던 그 느낌은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었다.
장정의는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은 뒤 두 손을 배에 올려놓은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소식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제가 이름을 부르면 곧바로 이를 눈치챌 수 있는 한 신관이 저를 불러 심문했습니다.
서사 신에 대한 정보를 흘렸냐고 묻더군요.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소식을 전하러 나왔습니다. 천궁에는 대비책을 남겨뒀으니 소식을 전하면 바로 돌아갈 겁니다.’
그의 손짓을 알아본 진양의 표정은 다소 어두워졌다.
과연, 예상대로 서사 신 자체가 함정이었던 것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봐. 무슨 일이 있었고, 또 어떤 상황이 벌어졌었는지 말이야.”
진양의 목소리가 장정의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장정의는 빠르게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전부 밀어(密語)로 설명했다.
물론 아무리 밀어를 쓰고 있긴 해도 혹여나 신이 눈치챌 만한 민감한 단어는 최대한 피해서 설명했다.
진양은 그가 극도로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장정의가 이렇게까지 신중하게 나온다는 것은 분명 대신관 영감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진양의 추측은 어느 정도 빗나갔다는 뜻이다.
천궁에선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 보단 권력이 천궁에 속해있는지에 훨씬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러나 일원 여신이 죽고 별별자가 권력을 계승했던 이 사건은 영감의 경계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별별자가 조력자인 장정의를 죽이긴 했지만 영감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어쩌면 이 일에는 숨겨진 내막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은 초장에 잡지 못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아예 싹을 뽑아버리려는 것이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겠지만…….
다만 진양은 또 다른 가능성과 함께 상고 지부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일원 여신은 상고 지부의 한 강자를 죽였다.
그리고 상고 지부에서 이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일원 여신을 죽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진양이 벌인 일들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고 지부에서 꾸민 음모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런 가닥으로 생각을 해 보면 영감이 이런 일을 벌인 가장 큰 목적은 아마도 불가계 밖에 있는 상고 지부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영감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이들뿐이다.
태호 세계에 내분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설령 이 내분에 신의 죽음이 연관되어있다고 해도 천궁의 힘은 본질적으로 아무 변화가 없다.
오히려 훨씬 더 강해질 수도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신이 후임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후임자가 권력을 계승하게 된다면 원래의 신보다도 훨씬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결국은 이익이 빠져나가지만 않으면 되는 것.
진양이 지금까지 대담하게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고 지부가 엮이게 된다면 성질이 아예 바뀌게 된다.
생각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건 높은 확률로 상고 지부의 사람들을 대신했던 사람들이 덤터기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 무언가 진양의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분명 무언가 있다.
대신관 영감의 주의를 끌고 그가 이런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무언가 있다.
어쩌면 상고 지부 사람들이 이미 불가계 안까지 침투해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양은 장정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장정의의 머릿속에 진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잘 알았으니까 이만 돌아가도록 해. 꼬리 밟히지 않게 조심하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양은 시간 순서대로 장정의의 기억을 소멸시켰다.
그다음 손을 뻗어 장정의를 완전히 소멸시켜버렸다.
* * *
일원궁 내부.
장정의가 남겨놓은 머리에서 육신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진 뒤.
장정의는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이제 막 부활한 그의 머릿속에는 한참 진법을 만들어냈을 때까지의 기억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곧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외부에 남겨둔 대비책에 문제가 생겼을 리는 없다.
만약 대비책에 문제가 생겼다면 곧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원궁에서 다시 부활을 했다는 건 단 한 가지 경우뿐이다.
진양을 만나긴 했으나 그 망할 자식이 전부 기억을 지워버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게 된 게 분명했다.
즉, 이론적으로는 누가 묻던 자신 있게 자신은 그저 진법을 연구하다가 약간의 사고로 죽게 되었고, 다시 시간이 지나며 부활하게 되었다고 대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껏해야 비장의 무기가 하나 드러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정 숨길 수 없다면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상관없다.
영혼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머리만 남아있다면 제자리에서 부활할 수 있다고 말이다.
“쳇, 정말 너무하군.”
장유덕은 입술을 쭉 내밀며 계속해서 진법 연구에 매진했다.
* * *
같은 시각.
진양은 대략적으로 시간을 계산해 봤다.
천궁을 빠져나온 서사가 나타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그는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서사는 다른 일을 먼저 하러 갔을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서사는 애초에 장기알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일부러 영감에게 협조하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잠시 고민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전자의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 보였다.
이건 신을 미끼로 한 거대한 함정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영감은 결코 서사에겐 아무것도 얘기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사가 마치 일원 여신처럼 태호에게 감정을 빼앗겨 희노애락조차 느끼지 못하는 신이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시간은 급박했고 정보는 너무 부족했다.
진양은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활시위는 이미 팽팽하게 당겨졌다.
반드시 이번 일을 성사시켜야만 상황을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 수 있다.
성공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천궁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할 때다.
진양은 스스로 어떠한 허점도 남기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별별자는 물론이고 장정의조차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오직 진양 한 사람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진양은 천궁에 들어갈 때 자신의 기억 일부를 잘라 몽경에 단독으로 보관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천궁 밖에 나오고 나서야 다시 그것을 꺼냈다.
불가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꼬리를 밟힐 만한 요소들은 전부 철저하게 제거를 한 것이다.
때문에 조사를 받는다고 해도 두려울 건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상고 지부의 사람들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구경만 하고 있게 만들 순 없다.
진양은 빠르게 불가계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분신을 하나 만들어 상고 지부의 사람들을 찾도록 했다.
그다음 자신은 다시 돌아와 자리를 지켰다.
* * *
분신은 새로운 모습으로 얼굴을 바꾼 채 곧장 상고 지부의 점령지로 향했다.
그는 마치 가볍게 산책을 하듯 발걸음을 옮기며 곧장 상고 지부의 군영 중심으로 들어왔다.
잠시 뒤.
주변에서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귀곡성에 분신은 있는 대로 미간을 찌푸렸다.
“전 기껏해야 화신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절 죽여도 별다른 소용은 없을 겁니다.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죠. 전 당신의 사람들이 대신관 영감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러 온 겁니다. 당신들의 계획도 이미 영감의 계획 속으로 휘말리게 되었죠.”
순간 주변을 가득 채운 귀곡성이 모두 사라졌다.
이어서 수많은 귀신들이 분신을 에워쌌다.
건장한 남자가 하나 걸어나왔다.
그리곤 진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계속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으신 모양이죠? 좋습니다. 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까요. 하지만 과연 똥줄 타는 건 어느 쪽일까요?”
남자가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를 데리고 와라.”
그러자 진양의 분신을 둘러싸고 있던 귀신들이 알아서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만들었다.
남자는 진양을 길 끝으로 안내했다.
길 끝에는 저택이 한 채 있었다.
그곳에서 여자 수도사는 한참 차를 우려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어서 그녀는 진양의 분신을 발견하자마자 반갑게 미소로 맞이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자리에 앉은 분신은 아무 말 없이 차를 우려내는 여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차가 모두 우려지고 난 뒤.
진양의 분신이 감탄하며 말했다.
“자유롭게 마음을 따르며, 억지로 꾸민 것이 없으며, 의도가 자연스럽고 깊게 침착하며, 도와 법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갖춘 듯하군요.”
여인은 차를 한 잔 따라 진양의 앞에 놓아주며 지긋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분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비웃음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부드러운 것 같아도 그 속에는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으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뜻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죠. 허나 예상외로 제가 여러분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모양입니다.”
여인에게 흘러나오던 온화한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싸늘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