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18
1418화 장님으로 만들어버린다
한 달 뒤.
많은 사람과 물자가 호량으로 몰려들었다.
이곳까지 오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믿기지 않을 정도의 효율이었다.
가희는 비로소 진양의 휘하의 세력들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외부의 압박을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정상급 강자들뿐이다.
그러나 위험부담이 있으면서도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이런 일은 위부터 아래까지 모두가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한 달 정도의 준비 과정이 모두 끝나자 마침내 대황 원정군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진양이 만들어놓은 다리를 통해 은빛 달이 뜨는 은월 세계로 향했다.
원정군에는 다섯 명의 도군과 여덟 개의 세력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몇몇 세력에서 보낸 소수의 정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원정군의 선봉은 다섯 명의 도군 강자들이 맡았다.
은월 세계로 넘어온 원정군은 가장 먼저 다리의 입구부터 틀어막았다.
아예 적의 퇴로를 차단해버린 것이다.
은월 세계로 넘어온 대황의 고수들은 이곳의 환경과 기운부터 살폈다.
유명성종의 현임 종주는 더 이상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과거 귀신 소굴을 두고 귀신들과 피 터지게 싸웠던 걸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이곳은 그야말로 귀신 소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한 대세계였다.
설령 이곳을 통째로 유명성종에게 넘겨준다고 해도 배가 불러서 전부 삼킬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천천히 소화시킨다고 해도 족히 만 년 동안은 순조롭게 발전세를 이어나갈 것이다.
윤전사의 승려들은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경문(經文)을 외우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이 정도면 시골맥과 경쟁할 필요도 없었다.
사방에 널린 귀신을 성불시키다 보면 불골금신마저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승려들은 천천히 눈을 뜨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내가 지옥으로 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으로 가겠소…….”
짧은 한마디와 함께 황금빛이 뿜어져 나와 다리 근처를 지키고 있던 귀신들을 덮쳤다.
귀신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승려들의 힘에 의해 성불되어버렸다.
심지어 귀신들이 뿜어내고 있던 기운조차 전부 소멸되어버렸다.
위흥조는 한시라도 날뛰고 싶어 안달이 난 고수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들의 반응만 봐도 얼마나 들떠있는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자들의 상태만 봐도 대세계의 중견 세력의 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봉호도군급의 귀신은 절대 없을 것이다.
도군급의 귀신도 아마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머릿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간층은 아마도 도궁에서 법신에 해당하는 귀신들일 것이다.
하지만 귀신은 태생적으로 인간에게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경지의 인간 강자라고 하더라도 결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험부담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고 이익은 그대로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세한 방향은 스스로 결정하시면 됩니다. 다만 대략적인 방향은 무조건 안정적으로 나아가기로 한 만큼 모두들 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위흥조가 모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다만 위세를 부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의 임무는 이곳에서 강자들을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협조적인 자들까지 그대로 놔두는 건 아니다.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다시 대황으로 쫓아내 버리면 그만이다.
모든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위흥조도 함께 데려온 외후들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당장은 정보 수집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선 적당한 땅을 확보하고 거점을 세우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보는 안심하고 발을 붙일 수 있는 거점을 세우고 난 뒤에 수집해도 늦진 않는다.
* * *
십만 리 떨어진 곳, 숲속에 위치한 어느 돌로 지은 한 궁전 내부.
한안명은 옥패를 꺼내 들었다.
옥패에선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궁전 밖으로 나와 다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안도의 한숨을 푹 쉬었다.
“스승님께서 오셨군.”
“위흥조? 그 미친개 말입니까?”
대귀는 썩 못미덥다는 듯 입을 쭉 내밀었다.
“스승님께서 오셨다는 얘기는 대영에서도 총공세를 펼치기 시작하셨다는 뜻이지.”
한안명의 말에 대귀의 눈이 번쩍 뜨였다.
“벌써 말입니까?”
“그렇다. 일단 앞서 수집한 정보들을 보고하러 다녀와야겠구나. 중요한 정보이니 한시라도 빨리 보고를 올려야 한다.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하자.”
은빛 달이 지며 음산한 기운이 줄어들기 시작할 무렵.
한안명은 대귀의 호위를 받으며 다리가 있는 곳을 향해 출발했다.
* * *
태호 세계 밖.
부군은 허공을 걸어 어떤 곳에 도달했다.
그는 시간을 살피며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뒤.
멀리 허공에서 상고 지부 조각이 빠른 속도로 이곳으로 날아왔다.
그는 곧바로 붉은빛에 휩싸여 조각을 향해 날아갔다.
조각 내부는 완전히 황폐해진 상태였다.
이곳에선 살아있는 자는커녕 귀신의 그림자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익숙하게 폐허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궁전의 폐허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기둥을 발로 밀어내자 석화된 눈알 하나가 굴러 나왔다.
손끝으로 가볍게 눈알을 건드리자 겉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가 떨어져나오며 새까만 눈알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나마 화신이 있는 곳을 기억하고 있으니 다행이군. 네가 이 근처에 있을 줄은 전혀 몰랐구나.”
부군 화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알은 허공에 뜬 채 화신을 위아래로 살폈다.
이어서 그는 차가운 얼굴을 한 화신의 모습으로 변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가진 정보를 공유했다.
잠시 뒤.
차가운 얼굴을 한 화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주도권을 잡는 게 좋을 듯하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눈알만 남게 되었다.
눈알은 곧장 부군의 화신의 오른쪽 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두 화신은 하나로 합쳐졌다.
그의 오른쪽 눈에서 은은한 빛이 피어오르며 한 장면이 흘러나왔다.
장면에선 붕대를 감은 남자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괜찮다. 그저 시도해 보는 것뿐이니까. 마저 볼일을 마치거라. 단, 절대로 진양을 죽게 만들어선 안 된다.”
붕대를 감은 남자의 눈알에서 빛이 번쩍이며 진양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진양은 구름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상고 지부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비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진양은 무언가 느낀 듯 고개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입만 벙긋거리며 말했다.
“한 번만 더 훔쳐보면 장님으로 만들어버리겠어.”
붕대를 감은 남자의 시선은 재빨리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긴 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시선을 공유하고 있던 부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자 여자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몸에서 기이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생명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빛.
모든 수도사들이 가지고 있는 기장(氣場)이다.
형태, 색깔, 크기까지.
눈알을 통해 보면 상대의 생명의 본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눈은 이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자에게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약한 빛도, 색깔도, 기장도, 영혼의 빛도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붕대를 감은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연 시선이 높은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지에 있던 모든 것들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굵직한 강줄기는 전부 얇은 실처럼 변해버렸고, 산맥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축소되며 대략적인 색깔만 구분할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 부군은 보았다.
대지에 검은 화염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거대한 흑봉황이 새겨져 있는 것을.
이것은 그 사람의 영혼의 빛과 기장, 그리고 생명의 본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게 아니다.
상대의 생명의 본질로 인해 만들어진 형상이 너무 커서 한 번에 다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악작!”
부군은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나 다시 한번 그것을 자세히 보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악작은 아니군.”
“이럴 수가! 악작이 죽었다고? 이건 신임 명황이잖아!”
“그러니까 이자가 진양의 사제란 말인가?”
부군은 크게 놀랐다.
그는 자신의 왼쪽 눈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져올 수가 없었다.
왼쪽 눈은 자신이 해야 할 임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화신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만 뜻밖의 재미를 보게 될 줄은 전혀 생각조차 못 했다.
부군은 다시 진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래쪽은 새까만 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위쪽은 눈부신 일곱 빛깔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빛 가운데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둥둥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작은 종이쪽지 하나가 공간을 가르며 날아와 부군의 얼굴을 때렸다.
이어서 분노로 뒤섞인 진양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자꾸 훔쳐보면 장님으로 만든다고 했지! 도무지 정도를 모르는 놈이구나!”
한 줄기의 검광이 피어오르는 순간 부군은 흠칫 놀라며 재빨리 눈을 감았다.
붉은 선혈이 그의 눈가를 타고 주륵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붕대를 감고 있던 남자의 몸에 있던 눈알도 터져버렸다.
부군은 오른쪽 눈을 부여잡은 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진곤도 참. 검법을 알려준 건 그렇다고 쳐도 대검까지 넘기다니.
그냥 한번 살펴본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란 말인가!”
더 이상 진양을 함부로 훔쳐볼 수가 없었다.
그는 진양에게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형상 없는 순수한 빛이 전부였다.
위쪽은 하얗고 아래는 까맸으며, 사람의 형상은커녕 도과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 * *
진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일전에 진곤이 개벽해낸 곳이다.
처음에는 붕대를 감은 남자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십이는 그 시선이 태호 세계의 외부에서부터 온 것이라고 했다.
“십이, 누가 날 훔쳐보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겠어?”
“불가능해요. 상대가 어떤 신통력으로 훔쳐본 것인지조차도 모르는걸요. 기록을 전부 살펴봤지만 이런 신통력에 관한 기록은 없어요.”
“어쩔 수 없지. 일단 하던 일부터 마저 하도록 해.”
진양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과연 부군의 말대로였다.
진곤이 대놓고 강력한 힘을 뿜어내는 바람에 누군가 이곳을 훔쳐보기 시작한 게 틀림없었다.
십이조차도 파악할 수 없는 신통력으로 진양을 훔쳐봤다는 건 상고의 거물급 강자 중 하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진양의 일 검으로도 상대에겐 그다지 큰 상처를 입히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