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24
1424화 경전보책 제작
진양과 조영휘는 과거 술잔을 나누던 장소에서 다시 술잔을 나누며 한참 동안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모든 것이 과거의 그대로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조영휘는 비로소 마음의 큰 짐을 덜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진양도 한층 마음이 놓였다.
이로써 황천마종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렇게 이틀 정도가 지나고.
마침내 제전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졌다.
조영휘가 먼저 제전을 준비하러 간 사이 진양은 홀로 남게 되었다.
어차피 잠깐 얼굴만 비치고 나오면 되기 때문에 마땅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제전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최양평은 최고 연장자로서 공식으로 조영휘가 종주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이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진양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오며 말했다.
“종주님, 예전에 제가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후일 정식으로 종주가 된다면 선물을 하나 드리겠다고 했던 것 말입니다.”
조영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진양이 손가락을 탁- 하고 튕기자 빛이 번쩍이며 무언가 조영휘의 앞에 나타났다.
빛이 점차 사그라들며 두터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책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진양의 의지에 따라 쉬지 않고 흐르는 거대한 황천의 모습을 이루며 엄청난 위엄을 뿜어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황천비전을 익힌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 위엄에 압도되었다.
“화, 황천보책!”
누군가 놀란 듯 소리쳤다.
사라진 줄로만 알고 있었던 황천보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어서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진양에게 향했다.
진양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종주 계승 제전에 이게 빠지면 섭섭하죠.
그런 눈으로 쳐다보실 것 없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던 걸 빼앗아온 거니까요.”
물론 누가 가지고 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일단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에 황천마종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황천보책이 없는 황천마종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아무리 최양평이 보책의 첫 번째 권을 다시 복원해냈다곤 하지만 결코 원본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모두가 최양평처럼 황천지맥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는 법!
진양은 보책을 남긴 채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황천보책을 주머니 구석에 박아두고 한참 동안 잊고 있었다고 말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괜한 소리를 하는 것보단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게 서로에게 이득이었다.
혹여나 최양평이 어디서 보책을 구한 것인지 묻기라도 할까 봐 불안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 누구도 보책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진양은 단 한 번도 자신이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모두들 진양이 망자의 세계에서부터 돌아올 만큼 강한 실력을 가진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황천보책을 되찾아온 것도 이들의 입장에선 크게 놀랄 만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일부 고위급 인물들은 최양평이 지금까지 종주 계승을 미룬 것은 어쩌면 먼저 황천보책을 찾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황천마종의 큰 한이 풀리게 되었다.
황천비전조차 없는 황천마종은 진정한 황천마종이라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러갔다.
모두가 크게 기뻐했다.
조영휘는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인물이었고, 그동안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황천보책까지 되찾게 되었다.
이제 황천마종에 남은 후환은 모두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사실 진양은 처음부터 황천보책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황천보책은 결국 돌고 돌아 진양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마음을 품고 있던 것도 아니다.
황천보책이 주머니 한쪽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떠올린 것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분간은, 아니, 평생 비밀로 남겨두기로 했다.
마종 내의 청년들 앞에서 만큼은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게 좋을 듯했다.
진양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눈빛에는 존경과 경외심이 가득했다.
심지어 천 년 후에는 자신도 저런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상상을 하는 자도 있을지 모른다.
생각해 보니 사망 상태로 망자의 세계에서 보냈던 시간까지 모두 합한다면 진양은 어느덧 천 살에 가까워졌다.
아무리 바쁘게 산다고 해도 세월은 계속해서 흘러가는 법.
새로운 제자는 물론이고 황천마종의 고위급 인물들조차도 대부분 못 알아보는 사람들뿐이었다.
제전은 일주일 동안 더 진행되었다.
진양은 첫째 날에 잠시 얼굴을 비친 후로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
마땅히 할 일이 없었기에 지하로 뻗어진 복잡한 지하미궁을 지나 음하에 왔다.
현재 이곳에는 제단만이 남아있었다.
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깡마른 뱃사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음하에 우글거리던 귀신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황무지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진양은 제단에 앉아 조용히 음하를 바라보았다.
본인은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쨌든 진양은 대황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고수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이전에 다녔던 곳을 다시 방문하며 후세를 위한 기연이나 선물을 남겨두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진양은 주머니에 든 물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모은 것들이었는데, 대부분 진양에겐 쓸모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장해비전을 꺼내 들게 되었다.
하지만 진양은 잠깐의 고민 후 다시 그것을 집어넣었다.
순수한 장해비전을 익히는 것은 큰 위험부담이 따르게 된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생긴다면 십중팔구 스스로를 매장시켜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장해비전을 세간에 흘렸다가 의도치 않게 마두가 나타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게 될 건 황천마종이다.
때문에 장해비전은 아직은 뿌리지 않기로 했다.
괜히 황천마종에 후환을 남겨서 좋을 건 없으니까.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진양은 몇몇 재료를 꺼내 금속으로 된 보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소도경의 집필을 시작했다.
진양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자소도경의 공이 크다.
하지만 자소도경 그 자체만으로는 강력한 위력을 가진 공법이라고 볼 수 없다.
단지 하나의 기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기연으로 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것이다.
누구든 이것을 손에 넣는다면 완벽한 기반을 갖게 될 것이다.
손을 움직여 첫 번째 글자를 새기는 순간.
천지지간에 흩어져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진양의 몸을 압박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양이 계속해서 글을 새기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두 번째 글자를 새기자 이번에는 한층 더 강력한 힘이 밀려오며 영혼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마치 방자한 진양을 세뇌시키려는 듯 한마디의 말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도는 함부로 누설해선 안 되며, 법은 함부로 전해선 안 된다.’
세 번째 글자를 새기고 나니 한층 더 강력한 힘이 도기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양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계속해서 글을 적어 내려갔다.
절반 정도 글씨를 새겼을 무렵.
이제는 천지지간의 힘이 진양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한층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진양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집필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아직 절반밖에 완성시키지 못한 금속보책은 돌연 펑- 하며 폭발과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보책의 재료가 품고 있던 본연의 기운도 전부 강제로 흩어져버렸다.
진양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연 태일이 죽고 나면 이런 제약도 사라지게 될까? 세 천제여, 애석하게도 시대는 이미 바뀌었답니다.”
진양은 무려 일곱 개의 선천충각을 녹여 넣은 붓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층 더 좋은 재료로 바꿔서 새로운 금속보책을 만들어냈다.
붓이 거침없이 움직이며 보책에 글씨를 새겼다.
강한 압박의 힘이 몰려오긴 했지만 마치 거대한 바다에 조약돌을 던지는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일 다경 뒤.
금속보책에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부문들이 새겨졌다.
보책에 흐르는 신비로운 기운들은 금속보책을 제대로 된 경전보책으로 만들어주었다.
이미 완전히 실전된 자소도경의 보책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순간이었다.
진양은 겉표지에 ‘자소도경’이라는 큼직한 글씨와 함께 바로 아래쪽에는 작은 글씨로 ‘제 일 권’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그다음엔 맨 마지막 장엔 짧은 문장을 남겼다.
‘나 진유덕은 운 좋게 실전된 자소도경의 첫 번째 권을 손에 넣었다. 비록 첫 번째 권이긴 하지만 경전이 실전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보책을 남긴다.
애석하게도 다음 권은 찾지 못했다. 또한 나의 학식이 얕아 뒷부분을 보충할 능력은 닿지 않는다. 누구든 기연이 닿아 이 보책을 손에 넣게 된다면 나를 대신하여 뒷부분을 보충해 주었으면 한다.
다만, 비록 한 권이긴 해도 자소도경이 천하제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공법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진양은 한층 상쾌해진 표정으로 붓을 내려놓았다.
처음 자소도경을 발견했을 땐 한 권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빌어먹을 자소도경은 애초에 한 권뿐이었던 것이다.
‘나만 당할 순 없지!’
이어서 진양은 분신을 하나 만들어냈다.
분신은 경전보책을 꿀꺽 삼킨 뒤 제단 위로 올라가 미소 짓고 있는 조각상의 모습으로 변했다.
조각상 아래에는 한 줄의 글자가 나타났다.
‘윗사람을 보면 예의를 갖출 것’
진양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기본적인 예절도 없는 자에겐 기연 따위 허락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나마 무시무시한 수단을 남겨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진양은 이미 수백 보 양보한 셈이다.
과거 응룡의 문을 열 때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
당시 예의를 차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전부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니 말이다.
진양은 마지막으로 몇 개의 금제를 남긴 뒤 자리를 떠났다.
그래도 다행히 붓은 세 천제가 남긴 제약을 잘 견뎌내는 듯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진양이 가지고 있는 다른 경전들도 전부 보책으로 만들어버리기로 했다.
되도록 여러 권으로 나눠서 보책을 만드는 게 좋을 듯했다.
나중에 대영 신조가 본격적으로 천하를 정벌하기 시작할 때 가희는 손에 몽둥이를 들게 될 것이고 진양은 달콤한 사탕을 들게 될 것이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며 금세 수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빛도 반짝이기 시작했다.
한참 생각하던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이 남겨둔 조각상을 보며 큰소리로 웃은 뒤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기연이나 남겨둘 생각으로 왔다가 뜻밖의 수확을 얻은 진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