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25
1425화 장기전은 예견된 거나 마찬가지
미궁을 빠져나온 진양은 며칠 동안은 최양평의 곁을 지켰다.
그가 정성들여 만든 탕도 마시고, 그동안 모아온 좋은 술을 꺼내 스승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흘 정도가 지난 뒤.
최양평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얘야, 이곳에서 제자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 네 볼일을 보러 가야 하지 않겠느냐?
이만 가보거라.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언제든 가능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들은 시기를 놓치면 다시 할 수 없을 게다.”
진양은 거절하려고 했으나 최양평의 눈빛을 보곤 이내 단념했다.
“스승님,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황천마종을 빠져나온 진양은 소책자를 꺼냈다.
그곳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계획들이 적혀있었다.
가희의 말이 맞다.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군대를 이끌고 최전방에서 적과 싸우는 건 할 수 없다.
대신 다른 건 충분히 가능하다.
진양은 조용히 태호 세계로 건너왔다.
그리고 장정의를 찾아갔다.
“이곳에 있는 거대 세력, 과거에 있었던 거대 세력, 그리고 경전 공법을 가지고 있었던 세력의 조상 무덤이 어디 있는지 얼마나 알고 있어?”
“글쎄요. 거의 다 알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대략 구 할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겸손을 떨기는.”
진양은 피식 웃었다.
‘누굴 속이려고 해? 이곳으로 건너온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겨우 구 할이라고?’
어쩌면 수만 년 전에 사라진 세력의 조상 무덤이 어디 있는지조차 구 할 이상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바쁘니까 얼른 그곳으로 안내해. 망자들을 성불시키러 가야겠어.”
장정의는 하마터면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사형, 도대체 언제부터……. 고고학에 관심을 갖게 되신 겁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건 너나 실컷 하라고. 난 애초에 그럴 능력도 없으니까. 난 그저 망자들을 성불시키러 가려는 것뿐이야.”
“…….”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마지막으로 반짝이던 진양의 눈빛은 상당히 위험했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어버렸다.
‘됐다. 이런 놈이랑 입씨름 해봐야 좋을 것도 없지.’
장정의는 진양을 데리고 태호 세계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조상 무덤을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특히 어떤 경전 공법을 계승한 세력의 조상 무덤은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방문했다.
장정의는 평범한 보물에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무덤을 살펴본 뒤 ‘보수공사’만 해 주는 게 전부였다.
진양은 그보다 한층 더 눈이 높았다.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고 이곳에 있는 망자들만 성불시켜줬을 뿐이다.
그렇게 한때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실전된 경전들, 그리고 아직 실전되지 않은 경전들을 전부 살폈다.
예전에는 새로운 공법을 얻게 돼도 되도록이면 배우지 않으려고 했다.
배울수록 백옥 신문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모든 걸 포기했다.
백옥 신문은 이미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은 지 한참이다.
무엇보다 진양은 자신의 ‘특제 붓’으로 경전보책을 써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는 무시하고 지나쳤던 경전의 가치가 무제한으로 솟구치게 된다.
한편, 이곳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십이는 혹여나 두 사람이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충실하게 보조의 역할을 수행해냈다.
덕분에 진양과 장정의는 놓치는 물고기 없이 모든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진양이 열심히 망자들을 성불시키고 다닌 덕분에 태호 세계엔 더 이상 강시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마 한동안은 이곳에서 죽은 강자가 강시가 되는 상황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진양은 그동안 모은 경전과 신통력을 살펴보았다.
대략 마흔 개 정도였다.
이 중 절반은 태호 세계에서 이미 실전된 것들이다.
수집 임무를 마친 진양은 장정의와 함께 다시 대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계속해서 망자를 성불시키는 대업을 이어나갔다.
실전된 공법을 수집할 때도 아무거나 전부 수집하는 건 아니었다.
주로 경전이나 경전급의 신통력만 수집했다.
진양은 습득 능력을 통해 망자를 성불시키며 얻은 기능서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나중에 시간이 될 때 천천히 경전보책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한편 장정의는 잔뜩 상기된 모습이었다.
진양 덕분에 목숨의 위협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 놓고 고고학을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며 그의 실력은 전대미문의 속도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대황을 모두 휩쓴 뒤에는 은월계로 넘어왔다.
은월계를 살펴보던 진양은 위흥조와 만나게 되었다.
진양은 그에게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받은 뒤 곧바로 장정의와 함께 길을 나섰다.
풍도대제가 이 세계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건인지는 알 수 없다.
이곳에는 오직 상고의 은월만 존재한다.
해는 없으며 오직 달이 뜨고 지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사방에 수많은 귀신들이 우글거렸지만, 세력을 이룬 자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디에서든 귀신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세계에서 귀신은 흔한 존재였지만,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최근에 은월계의 인간들은 대황에서 몰려온 세력이 은월계를 뒤집어놓고 다니는 걸 썩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물론 실력은 대황 세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강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들 중 대황에서 온 손님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대황에서 온 세력들은 귀신이든 이곳에 있는 사람이든 쉽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특히 유명성종이 그랬다.
차마 이곳에 있는 인간들에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 살며 환경의 영향을 받은 인간들은 후일 유명성종의 제자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무 범인이나 데려온다고 해도 유명성종 입문 기준을 가뿐히 뛰어넘을 정도였다.
앞으로 이곳에서 발전해나가려면 이곳의 사람들을 제자로 받을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제자를 이곳 사람들로 구성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비율은 채워야 하는 법.
진양은 그들은 무시한 채 장정의와 함께 곳곳을 누비며 ‘은월계 청소’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살펴본 곳은 온갖 귀신들이 득실거리는 황무지 무덤이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귀신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무덤에 살고 있었다.
열심히 청소를 할수록 진양의 수집품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진양이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십이도 이곳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되었다.
십이는 이렇게 얻은 정보를 전부 진양에게 제공했다.
이러는 동안 백옥 신문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지만, 이미 개방을 포기한 지 오래였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무엇보다 백옥 신문이 강해질수록 신문 안에 살고 있는 십이의 능력도 한층 더 강해지게 된다.
심하게 부패한 시신을 성불시키자 보라색 기능서가 나왔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장정의는 아니었다.
비록 진양을 따라다니며 원 없이 무덤을 도굴할 수 있어 좋았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사형,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왜 이러긴. 네 녀석을 도우려는 거지. 그래도 빠르게 고고학 능력이 성장하는 걸 보니 내가 기분이 다 좋네. 앞으로도 기회는 많으니까 열심히 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많은 경전을 수집해서 어디에 쓰시려는 거죠?”
“너, 내가 도문에서 어떤 신분인지 잊은 거냐?”
“문주요?”
“아니, 그거 말고.”
“전도인이요?”
“그래, 그거.”
진양은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까 경전이나 경전급의 신통력은 전부 실전됐더라고. 그래서 기회가 되는대로 전부 파내서 보책으로 만들 생각이야.”
“네?”
장정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영 신조의 덩치가 불어나면 우리 도문의 세력도 함께 강해지게 되는 법. 설령 대영 신조의 발전이 순조롭지 않더라도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돼. 수천 년이든 수만 년이든 기다리다 보면 결국은 언젠간 모든 문파가 우리 도문의 휘하에 들어오게 될 날이 올 테니까.
세 천제들은 인간이 함부로 도를 계승할 수 없도록 제약을 걸어두었지. 하지만 이제 남은 건 태일 하나뿐이야.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녀석과 싸우겠어? 직접 싸우는 것보단 차라리 십방 신조에 반란이 일어나서 태일이 몰락하는 걸 기다리는 게 훨씬 더 빠를지도 몰라.
녀석은 십방 신조의 제존이 되었지. 그렇다면 난 모든 인간들의 전도 도조(傳道道祖)가 될 생각이야.”
군자의 복수는 십 년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팔백 년 전만 했어도 진양은 이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오래 살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높은 곳으로 향하다 보니 생각이 점차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도 하나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상고의 고수들이 계획을 세울 때 만 년 단위로 세우는 이유였다.
지금 상황은 결코 단시간 내에 끝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장기전은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
때문에 진양도 그에 맞춰서 문제를 대면하기 시작했다.
세 천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제약을 만들어냈다.
겨우 두 대세계를 다녔을 뿐인데도 진양은 그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대략적으로 추산할 수 있게 되었다.
상고 시대의 경전들, 함부로 계승될 수 없는 제약에 걸린 신통력이나 공법들.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 팔 할 이상이 완전히 실전되어버렸다.
더 이상 지금 시대에 해당 공법을 익힌 사람이나 경전보책이 존재하지 않는 것.
이것이 완전한 실전의 기준이다.
하지만 완전히 실전되지 않은 것들 중에서도 절반 이상은 다소 애매한 처지에 놓인 것들이 있다.
그 예로 자소도경을 들 수 있다.
이 세상에 자소도경을 익힌 사람은 진양 한 사람이 유일하다.
그러나 자소도경의 경전보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계승을 하려면 진양이 충분한 실력을 갖췄을 때 전수자 한 사람을 지정하여 계승해야 한다.
경전보책을 집필하여 영구히 전승을 남길 수 있는 것도 최소 봉호도군의 경지에 올라야만 꿈꿀 수 있는 것.
이것은 전부 일반적인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지금으로선 진양이 망자의 세계에서 얻게 된 붓이 유일했다.
이 붓은 근본적으로 세 천제가 함께 걸어둔 제약을 압도할 수 있다.
만약 진양이 지금 죽는다면 수많은 경전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아있는 경전의 수는 상고 시대의 일 할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경전을 익힌 수도사의 수도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이다.
상고 시대의 십 대 대신관들은 십이사와도 대등하게 싸울 정도로 강한 자들이었다.
이 중 가장 약한 자조차도 진양을 한 손으로 눌러 죽일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의 볼품없는 십 대 대신관과는 전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므로 천제를 상대로는 지구전을 벌이는 것이 전면전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정상급 강자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설령 운 좋게 어디선가 귀재가 튀어나와 경전급의 공법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전체적인 상황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의 환경에선 그 정도의 강자가 만들어지는 것조차 어렵다.
우후죽순으로 경전이 생겨나는 나날들이 지속되며 현시대의 환경은 더 이상 기초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은 오히려 진양에게 기회가 되었다.
천하에 널리 알릴 기회,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 모든 인간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상대를 죽이고 천하를 정벌하며 굴복시키는 건 진양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짓을 해봐야 원한만 늘어날 뿐이고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자신이다.
낮잠을 잘 때조차 눈을 뜨고 자야 할 정도로 긴장되는 나날들이 이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진양은 결코 그런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