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506
1506화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
막상 조윤에게 큰돈을 받긴 했지만 묘배는 여전히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충분한 능력은 있었지만 그래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단은 한 작은 정보상 아래로 들어갔다.
물론 단순히 이들 밑에서 일을 하려고 들어온 건 아니다.
기회를 보아 아예 송두리째 세력을 빼앗을 생각으로 들어온 것이다.
인력도 충분하고, 기반도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었으니 본인의 기반으로 삼기엔 제격이었다.
성지에 가까워지자 그는 곧바로 기운을 거두었다.
그리고 범인과 수도사가 뒤섞여 살고 있는 성지 내부로 들어섰다.
그가 어느 한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한 깡마른 거지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마치 잠꼬대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묘배, 이쪽으로 오세요.”
놀란 묘배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거지였다.
그는 조용히 거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묘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거지가 계속해서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렸다.
“책도 함께 모아주세요. 뭐든 좋습니다. 눈에 보이는 책이란 책은 전부 빠짐없이 부탁할게요.
자금이 부족하면 알아서 조달해 줄 사람이 있을 테니까 그쪽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 단, 항상 조심히 움직여야 합니다.”
묘배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거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불필요한 질문은 넘어가도록 하죠. 그저 해야 할 일만 잘해 주시면 됩니다. 조만간 누군가 당신에게 연락을 취할 겁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거지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이었다.
묘배는 곧장 맞은편에 있는 한 주루로 들어갔다.
이 층에 자리를 잡은 그는 유심히 거지를 살폈다.
그리고 잠시 뒤 거지가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구역 문제로 다른 거지와 주먹다짐까지 벌이기 시작했다.
묘배는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그는 평범한 거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방금 중얼거렸던 말은 결코 잠꼬대가 아니다.
분명 자신을 정확하게 지목하며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한참의 고민 끝에 묘배는 답을 찾지 못한 채 주루를 떠났다.
그리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책이란 책은 전부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범인들이 살고 있는 곳을 바람처럼 휩쓸고 다니며 여러 차례 신분을 바꾸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최대한 평범한 범인처럼 보이도록 행동하며 다녔다.
* * *
같은 시각.
진양은 천천히 눈을 떴다.
제천투영을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개발하는 작업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이제 범인을 강림 대상으로 삼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꿈속에서 범인을 잠시 속이는 건 물론이고, 직접 현신(現身)할 필요도 없이 잠시 몸을 빌려 소식을 전달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때, 진양의 머릿속에 문득 재미있는 발상이 하나 떠올랐다.
적은 진양의 안방까지 찾아와 진양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걸 그냥 넘어갈 진양이 아니다.
진양이 팔을 휘두르자 십방계의 정보 나무가 나타났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계율사의 정보가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계율사 일원에 대한 여러 정보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이건 그다지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이렇게 쉽게 신상이 드러났다는 건 이미 수면 위에 드러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마 십방계 내에서도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일지도 모른다.
진양은 이곳에서 한 사람의 정보를 찾아냈다.
그는 계율사 거점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계율사 사주의 오른팔의 오른팔 정도 되는 인물이었다.
대략 구천 살 정도 되는 그는 계율사 사주의 오른팔의 휘하에 있는 자들을 벌하는 일종의 징벌관이었다.
상부 조직을 대신하여 지저분한 일을 하는 사람인 만큼 상부의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상당히 색을 밝히는 인물이었다.
‘너로 정했다!’
진양은 그를 주시하며 조용히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상대의 ‘강림 거부감’이 거의 바닥에 가까워졌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그에게 강림했다.
* * *
몽경 내부.
사방에 분홍빛 연기가 자욱했다.
이따금 한 번씩 끙끙 앓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진양이 이곳에 나타나자 상대는 본능적으로 저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양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상대의 몽경에 변화를 일으켰고,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깊게 빠지게 만들었다.
몽경의 중심에는 상대가 누군가와 동침을 하고 있었다.
무려 넷이나 되는 상대와 동침을 하고 있었는데, 인간은 물론이고 이족의 모습도 보였다.
잠시 뒤.
넷 중 한 사람이 진양의 영향을 받아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모든 저항은 사라졌다.
몽경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좋았어.’
진양은 그가 당분간은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몽경을 수정해나갔다.
대략 일 다경 후.
상대의 몸에 강림한 진양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 뒤 무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징벌관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상태다.
즉, 몽유병처럼 걸어 다니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진양은 상대의 몸을 조종하여 계율사로 향했다.
신분 영패를 보여주며 무사히 계율사 안으로 들어간 진양은 사주가 이곳에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마침 사주는 계율사 거점에 머물고 있었다.
‘좋아. 어디 한번 깜짝 놀라게 만들어볼까?’
진양은 곧장 사주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양은 계속해서 아무도 없는 길을 따라 걸었다.
이따금 한 번씩 누군가와 마주치긴 했으나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저 사주 대인께 긴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물론 무슨 일인지 물어보는 사람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말끝을 흐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 모두들 기겁하며 진양을 보내주었다.
괜히 자신이 듣지 말아야 할 얘기를 듣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진양에게 친절하게 지름길을 알려주기까지 했다.
진양은 포권을 취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계율사와 같은 조직은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곳이다.
계율사는 비록 외부에는 대황의 정천사와 같은 곳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명성은 거의 바닥을 친다고 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심지어 사적인 자리에선 모두가 입을 모아 비판을 할 정도였다.
규칙을 엄격하게 지켜야 할 녀석들이 규칙은커녕 아예 말이 통하지 않는 일만 일삼고 있었다.
마치 계율사가 하는 모든 일이 법인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보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부에서는 더욱 삼엄하고 엄격한 법과 규칙들이 존재하는 법.
진양이 대담하게 제천투영을 개발하는 도중에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건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계율사 내부에서 계율사의 규칙을 진양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할 정도였다.
계속해서 안쪽으로 향하다 보니 어느덧 중심부에 도착했다.
이곳은 계율사의 주요 업무가 이루어지는 곳이자 사주의 집무실이 있는 곳인 만큼 상당히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앙에는 무려 아홉 층에 달하는 높은 탑이 우뚝 서 있었고, 탑을 중심으로 방원 삼 리 내의 땅은 전부 새하얀 백옥 벽돌이 깔려있었다.
뿐만 아니라 백옥 벽돌마다 대량의 부문과 도문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이곳까지 몰래 침입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겉으로 보았을 때 공터의 넓이는 탑을 중심으로 방원 삼 리 정도였지만, 기상천외한 공법과 진법이 다수 존재하는 만큼 실제로 얼마나 큰 곳인지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본체의 크기가 무려 수 리에 달하는 거대 괴수들이 봉인되어 있는 벽돌도 일부 있었다.
중심에 자리 잡은 탑으로 향하는 길은 직선으로 길게 뻗어진 길이 유일했다.
누구든 허락 없이 이곳에 발을 들이거나 조금이라도 불순한 의도를 보인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진양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누구도 진양이 징벌관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신분 확인만 되면 그의 목적도 크게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누가 감히 사주에게 긴급하게 보고할 일이 있다는 거짓말 따위를 하겠는가?
그 누구도 징벌관이 감히 사주에게 불리한 일을 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인다면 찍소리도 못하고 사라지게 되겠지만 말이다.
진양은 당당하게 중앙으로 뻗은 길을 따라 탑을 향해 다가갔다.
거대한 탑 입구에 도착한 진양은 천천히 문고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새까만 양 머리 같은 것이 문에서 튀어나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진양은 침착하게 신분 영패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진양에 대해 긴급하게 사주께 보고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양 머리의 눈이 새까맣게 물들며 눈 안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진양이 내뱉는 모든 글자들은 문자가 되어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빨려 들어간 문자는 전부 소용돌이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양 머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상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이건 확실히 직접 사주께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해당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사주께선 구 층에 계십니다만, 안으로 들어가면 사주님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양 머리는 다시 대문 안으로 사라졌고,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대문이 스스로 열렸다.
진양은 안쪽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거대한 서고였다.
길게 이어진 책장에는 엄청난 수의 책들이 꽂혀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죽간부터 금박이 입혀진 옥간, 그리고 철로 된 표지의 책까지.
없는 것 빼고는 거의 다 있었다.
진양은 책장을 힐끔 살폈다.
아무런 방어 조치도 되어있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게 있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진 않았을 것이다.
진양은 책장으로 가까이 다가가 한 권의 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상당히 대충 살펴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공법을 통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용을 읽고 머릿속에 새기고 있었다.
물론 어떤 책이냐에 따라 속도는 다소 달라졌다.
종이로 된 책은 거의 한 번 훑어보기만 해도 전부 내용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금박이 입혀진 옥간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계율사 사주는 문자 화신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것의 기반이 될 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가 어떤 책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것이 사주의 안방, 즉 이곳 계율사 거점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상당히 귀한 물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 아무 곳에나 숨겨뒀을 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