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또 다른 방문자
진양은 계속해서 구덩이 가장자리에 선 채 검을 휘둘러댔다.
검 끝에서 발산되는 파동은 아까와는 다르게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고 파동 역시 눈에 보일 정도로 물결치기 시작했다.
힘의 파동은 아까와는 달리 잔잔한 물결이 아니었다.
거대한 파도가 되어 소년을 향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영혼의 힘이 허공을 타고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수도사, 아니, 영혼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든 이 파도에 휩쓸리는 순간 영혼이 찢겨 나가고 말 것이다.
소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개는 점점 더 짙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진양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도는 더욱더 맹렬하게 휘몰아쳤다.
비록 겉보기엔 제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 석상과 같이 굳건하던 모습의 소년이었으나 휘몰아치는 파도에 의해 조금씩 흔들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공격하던 진양은 돌연 듯 검을 거두었다.
그리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서며 한마디 했다.
“내일 다시 보자!”
한참을 걸어온 진양은 그제야 멈춰섰다. 그리고 진원 회복 단약을 복용한 뒤 가부좌를 틀고 공법을 운용하여 진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힘의 소모는 크지 않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영혼을 뒤흔드는 파동의 파도만 계속해서 유지해 주면 되었기에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들어가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반나절 넘게 검을 휘두르다 보니 어느 정도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반나절의 공격은 생각보다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은 듯했으나 소년의 몸을 감싸고 있던 안개를 한 겹이나 벗겨놓았다.
진양은 가슴이 마구 뛰었다.
공격하는 동안 적지 않은 것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소년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구덩이 바깥 범위까지 벗어날 수 있는 힘은 오직 사람을 현혹시키는 힘뿐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소년을 상대할 때는 현혹만 조심하면 그만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봉인에 대한 사실도 알아냈다.
구덩이에 걸려 있는 봉인은 오직 소년을 대상으로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외의 존재는 아무런 영향 없이 마음껏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녀석이 봉인 안에서는 힘을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대로 소모전을 벌이며 벼랑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녀석은 결국 밀려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진원을 모두 회복한 진양은 부문 장검을 꺼내 들며 생각했다.
‘고대 부문을 하나만 더 새겨볼까?’
한참을 고민하던 진양은 새로운 물건을 꺼내 우선 실험해 보기로 했다.
두 개의 부문이 충돌할 위험도 있었고, 장검이 두 개나 되는 부문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진양은 또 다른 영기 장도를 꺼내 들었다.
이것은 지난번 비밀창고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다.
하지만 진양은 도를 쓸 줄 몰랐기 때문에 장도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진양은 아까 장검에 했던 것처럼 손끝에 진원을 모아 부문을 새겨넣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두 개의 부문을 새겨넣었다는 점이다.
부문이 완성되자 장도는 장검이 그랬던 것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맹렬한 살기가 장도에서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장도 내부에 있던 금제도 강제로 밖으로 밀려 나와 완전히 파괴되었다.
금제가 파괴된 뒤 장도에 서려 있던 빛은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장도는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버렸다.
진양은 벙찐 표정으로 장도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장검보다 훨씬 더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장도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라니.’
땅에 떨어진 잿가루를 보고 있다니 진양은 속이 쓰렸다.
“이렇게 귀한 영기가 날아가 버리다니!”
들고 있는 물건 중 몇 없는 영기가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진양은 더 이상 실험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저 지금과 같은 재질의 장검은 하나의 부문만 견뎌낼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고대 부문에 대해 조금 더 연구해 보도록 해야겠어.’
아직은 아낌없이 영기를 갈아 넣으며 실험을 할 만큼 부유한 수준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진원 회복을 완전히 마친 진양은 곧바로 다시 구덩이로 향했다.
그리곤 소년의 모습이 보이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침이다! 일어나!”
강렬한 힘의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소년이 구덩이 중앙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째서 이러시는 겁니까? 우리가 서로 고대의 피의 계약을 맺는 건 오히려 당신에게 큰 이득이 될 텐데요. 설령 이렇게까지 한다고 해도 절 죽이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씨익 웃으며 점점 더 빠르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진양의 검 끝에서 만들어진 강렬한 힘의 파동은 또다시 거대한 파도가 되어 소년을 덮쳐가기 시작했다.
반나절 넘는 시간이 지났다.
지친 진양은 숨을 몰아쉬며 손을 털었다.
진양은 다시 뒤돌아서며 소년에게 인사했다.
“내일 또 보자고!”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진양의 모습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잔뜩 화가 난 소년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졌으나 마지막엔 다시 극도로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전날보다 한층 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 * *
그렇게 소년을 공격하기 시작한 지 무려 십칠 일이 지났다.
소년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얇은 안개는 마침내 완전히 소멸되었다.
구덩이 중앙에 봉인되어 있는 소년은 피할 수도, 그렇다고 반격할 수도 없기에 그저 무방비 상태로 공격에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강렬한 물결이 소년의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소년의 형상은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왜곡되었고 물결이 파도칠 때마다 형상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서 있는 진양은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진원을 절반이나 소모한 탓에 매우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소년은 비록 아직까지는 멀쩡한 모습이었으나 이제 더 이상 다급할 것이 없었기에 진양은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그럼 내일 또 계속하자고. 어차피 난 남는 게 시간이라서 말이야.”
다시 구덩이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온 진양은 미리 설치해둔 진법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며 진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소모전이 길어질 것 같았기에 진법까지 설치해두었던 것이다.
진양은 소년이 매우 두려웠다. 녀석의 진면목을 보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괴롭힌 것도 있었기 때문에 만약 언젠가 그가 풀려난다면 진양은 더 이상 무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타협은 고사하고 원한까지 맺고 말았으니 이렇게 된 이상 손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처지할 수 있으면 일단은 최대한 처치하는 게 진양으로선 이득이었다.
물론 소년 역시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진양이 자신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진양을 죽일 게 분명했다.
진양은 회복 단약을 복용한 뒤 눈을 감고 본격적으로 진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휴식이 끝나고 나면 계속해서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한 시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
구덩이 반대편 너머 멀리에서 챙이 긴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누군가 나타났다.
비록 꽁꽁 싸매긴 했으나 꽤 잘 빠진 몸매를 가진 여성이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적막 가운데 사기(死氣)가 서려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기운이었다.
만약 이곳에 진양이 있었다면 단번에 그녀가 연욱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짙어진 죽음의 기운으로 보아 그녀의 수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이곳에 연욱이 나타났다는 것은 곧 양범도 함께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양범의 모습을 털끝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연욱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귓가에 묵직한 힘이 실린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있는 듯 없는 듯 귓가에 나타나기 무섭게 사라져버렸다.
마치 환상처럼 말이다.
연욱은 몸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녀의 눈에 거대한 구덩이가 들어왔다.
구덩이의 가장자리에 선 연욱은 갑자기 심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어찌나 심하게 떨었는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조차 떨릴 정도였다.
구덩이 중앙에는 빼빼 마른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매, 오랜만이야.”
“사, 사형? 이럴 수가……”
연욱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왔다.
연욱은 자신도 모르게 구덩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두 걸음쯤 다가갔을 때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지자 무시무시할 정도로 망가진 모습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럴 리 없어. 사형께선 이미 돌아가셨다고. 분명 돌아가셨는데……”
“사매, 당장 설명할 순 없겠지만 난 아직 살아있어. 혹시 이걸 기억하고 있니?”
구덩이 중앙에 선 강천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잔뜩 녹이 슨 꽃 모양 머리 장식이 들려 있었다.
어찌나 녹이 슬었는지 곳곳이 얼룩덜룩할 정도였다.
연욱은 멍한 눈으로 강천의 손바닥 위에 놓여진 머리 장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심하게 떨려왔다. 눈물은 마치 봇물이 터진 것처럼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내 연욱은 성큼성큼 구덩이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매, 위험해! 이곳으로 들어오면 안 돼!”
연욱이 구덩이 안으로 발을 들이려는 순간, 구덩이 중앙에 있던 강천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큰소리로 연욱을 멈추게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강천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처음 보이는 기이한 모습의 한 소년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에 보았던 꽃장식이 아닌 검푸른 색의 괴상한 뱀이 들려 있었다.
소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멈춰선 연욱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소년은 구덩이에 봉인된 상태였기 때문에 마음대로 나가거나 움직이는 게 불가능하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건 남을 현혹하는 능력뿐.
그러나 황무지와 마찬가지인 이곳에선 사람은 커녕 살아있는 벌레 한 마리조차 보기 힘들었다.
얼마 전에 보기 드물게 살아있는 사람, 즉 진양이 이곳까지 들어오면서 소년은 극도로 상기되었었다.
상대의 육신과 생기를 빼앗아 이곳에서 탈출할 기대에 부풀었던 것이다.
진양은 대략 스무 살 정도 되는 앳된 얼굴의 청년이라 소년은 충분히 그를 현혹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막상 상대의 생각을 들여다보니 온통 기괴한 것들로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소년이 진양을 아무리 살펴봐도 겉으로 드러나는 욕망은 어떤 보물에 대한 욕망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