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이보시오. 혹시 여양후가 왜 무언자를 낙찰받은 건지 말해줄 수 없겠소?”
마치 가볍게 안부를 묻는 듯 평온한 어조였다.
순간 진양은 마음 한구석이 찔린 듯한 기분이었다.
‘뭐야? 설마 무언갈 눈치챈 건가? 그건 그렇고 왜 그걸 나한테 묻는 거지?’
“그딴 걸 왜 저한테 물어요?”
진양의 반응에 외후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첫 번째로 만났을 때 여양후는 당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소. 그러나 두 번째로 만났을 땐 전혀 딴판이었지. 게다가 무언자가 멍하게 있는 걸 발견하기 무섭게 곧바로 당신의 눈치를 살폈었소. 자, 그럼 이제 왜 여양후가 무언자를 낙찰받은 건지 말해 줄 수 있겠소?”
외후는 죽일 듯 진양을 노려보았다.
진양이 무언가를 알고 있거나, 혹은 이번 일을 그가 주도했다고 확신을 하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진양이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이런 방법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침 잘 왔어요.”
외후는 ‘그게 무슨 말이오?’라는 표정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대를 도발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어디 힘이라도 써보시던가. 그러면 입이 열릴지도 모르겠는데.”
순간 외후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진양의 목을 붙잡아 제압했다.
“당신이 화신인 걸 모를 줄 알았소?”
“멍청하긴. 여기서 살인을 저질렀다간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죠? 그리고 미안하지만 이건 화신이 아니라 분신이라고요.”
목이 졸린 상태였기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진양은 그래도 할 말은 모두 했다.
화신과 분신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화신은 손상을 입으면 그만큼 손해지만 분신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 외후는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미쳐 손을 쓸 틈이 없었다.
펑-!
진양은 번갯불과 함께 폭발하며 사라져버렸다.
작은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말이다.
갑자기 터져 나온 폭발음에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외후가 누군가의 목을 조르고 있던 도중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고, 외후에게 당하고 있던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곧바로 유령 해적단의 사람들에게 발각되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위 대부에게 보고가 되었다.
위 대부는 보고를 듣자마자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한편 외후는 뒤늦게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너무 늦고 말았다.
이곳의 출입구는 유령 해적단이 관리하고 있다.
사건이 터지기 무섭게 곧바로 출입구가 모두 봉쇄됐기 때문에 도망은 꿈도 꿀 수가 없게 되었다.
한편 이 소식은 빠르게 유령호 전체로 퍼져나갔고, 어느새 선장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허허……”
선장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친구로군. 모두를 한 방씩 먹이다니.”
이곳에 있던 진양이 분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선장이 유일했다.
“선장님.”
어둠 속에서 창백한 얼굴의 한 남자가 걸어 나오며 물었다.
“혹시 소인이……”
“가서 정천사 외후의 목을 잘라 풍림호로 보내도록 하거라.”
유령호 선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장님?”
“진양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중요한 건 수많은 사람들이 외후가 우리 유령 해적단의 사람을 죽이는 걸 보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증명할 필요 뭐 있겠느냐? 감히 경매장에서 방자하게 굴었다면 그만한 각오는 했었겠지. 죽이거라. 마침 정천사 놈들에게 경고를 할 때가 되었어.”
“그럼 진양은 어떻게 합니까?”
“녀석은 내가 손을 쓸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은 없다. 마침 나도 핑곗거리가 필요하니.”
선장이 손을 휘휘 내젓자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잠시 후, 선장 방에 있던 창백한 남자가 비경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일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졌다.
교전으로 인한 파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는데, 정천사 외후의 머리는 어느새 창백한 남자의 손에 들려있었다.
옆에 있던 이들조차 도무지 어떻게 된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유령호에서 그를 죽임으로써 모두에게 본보기 보이려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한편 이 모습을 지켜보던 여양후는 기가 차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 그 역시도 진양이 분신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분신 따위로 정천사 외후를 속이다니.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용 문양이 새겨진 옥책을 가져왔다.
옥책을 건네받는 순간, 손을 타고 강력한 용혈의 기운이 느껴졌다.
어떤 공법인지 당장 확인할 순 없었으나 이 공법이 육신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쪼잔한 녀석이로군. 한 번 익히고 나면 다른 사람들은 다시 쓸 수 없게 만들다니……”
하지만 오히려 더 마음이 놓였다.
이는 곧 이것이 진귀한 공법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을 타고 느껴지는 기운에서도 크게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양후는 조용히 옥책을 만지작거렸다.
누군가 이것을 대신 전달했다는 것은 곧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더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법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좋았기에 그는 상당히 만족한 듯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선물을 하나 보내도록 해야겠어.’
여양후가 옆에 있던 호위병을 불렀다.
“가서 오늘 낙찰받은 합환문의 요녀를 진양에게 전해 주고 오거라. 해적들에겐 거래 때문이라고 하도록.”
거래 때문이라면 감히 누군가 다른 마음을 먹거나 중간에 끼어들 수 없을 것이다.
호위병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여양후는 옥책을 만지작거리며 흡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녀석이란 말이지. 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이건 거래와는 별개로 넌 내게 빚을 진 셈이다! 하하!”
* * *
풍림호, 외눈의 거처.
진양은 쥐 죽은 듯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진법 수리가 완료되자마자 곧바로 이곳으로 돌아와 있던 것이다.
분신이 사망하고 나자 분신에 있던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을 차린 진양은 옥책을 하나 꺼내 용혈문신(龍血紋身)을 새겼다.
이어서 옥책을 보내고 난 진양은 본격적으로 불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유령호 선장은 죽음을 맞이한 것이 진양의 분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물론 그것이 분신이라는 것이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아무리 분신이라 하더라도 살인을 벌였다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사실 경매가 모두 끝난 상황이었기에 더 이상 분신을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거래도 무사히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조용히 사라질 생각이었었다.
그러던 도중 외후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쓸데없이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에 진양은 곧장 분신을 자폭시켜 그를 난처한 상황에 빠뜨렸다.
물론 유령호 선장을 한 방 먹이려는 심산도 있었다.
정천사의 외후를 죽인다면 유령호는 정천사와 지독한 은원을 맺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살려두자니 위신이 말이 아닐 것이었다.
물론 죽이기로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외후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는 없었다.
아마 한바탕 큰 난리가 벌어지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진양의 예상과 크게 달랐다.
분신을 터뜨리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유령호에서 무언가를 보내온 것이었다.
상자 안에 든 내용물은 석회가 잔뜩 뿌려진 사람의 머리였다.
‘이거 왠지 익숙한 상황이군.’
두 눈을 부릅뜬 채 숨이 끊어진 외후의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걸려있었다.
입까지 살짝 벌려진 것으로 보아 상당히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잘 정리되어 있었고, 목에 난 상처는 자로 대고 긋기라도 한 듯 깔끔했다.
외후는 아무리 못해도 영태 경지에 오른 실력자였다.
이런 사람이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게 목이 깔끔하게 잘릴 정도라니.
이러한 점으로 보아 그는 유령 해적단이 일말의 고민 없이 그를 베어버린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렇게 쉽게 당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해 놀란 듯했다.
놀란 진양은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첫째로는 유령호에 선장 외에 고수가 한 사람 더 있다는 부분에서 크게 놀랐고, 둘째로는 유령호 선장의 과감함에 놀랐다.
진양이 일부러 외후를 난처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살수를 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반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소식이 선장의 귀로 전해지고, 소식을 받은 선장이 사람을 보내고, 그 사람이 외후를 죽이고, 죽인 자의 목을 진양에게 보내기까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진양은 당장이라도 배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유령호 선장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이었으나 필요할 땐 일말의 망설임 없이 살수를 휘두를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양은 곧바로 단념했다.
유령호 선장이 자신을 강제로 풍림호에서 끌어내지 않았다는 건 곧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혹은 강제로 진양을 끌어내렸을 경우 치러야 하는 대가가 수지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이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아마 풍림호, 혹은 선장과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풍림호와 유령호는 서로 맞서지 않았다.
그러나 큰일 앞에선 서로를 견제하려 들고 타협도 했다.
진양은 풍림호를 손에 넣고 싶다고 했던 유령호 선장의 말을 떠올렸다.
풍림호의 실력은 유령호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선장은 주먹을 사용하는 대신 화신을 만들어 비교적 온화한 방법으로 풍림호를 손에 넣고자 했다.
어째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선장이 손에 넣고자 하는 건 무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해적선엔 엄격한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해적선에 타고 있는 단원이라면 누구든 철저하게 그 규칙을 따랐다.
하지만 이 규칙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모든 규칙은 그저 안정적이게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했다.
눈앞에 규칙을 압도할 만한 엄청난 이득이 놓이게 된다면 규칙은 순식간에 쓰레기가 되어버릴 것이었다.
반대로 규칙을 포기할 만큼 충분하지 않은 이익이라면 당연히 모두가 규칙을 우선으로 여길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대로 풍림호에 머문다면 적어도 안전은 보장됐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엇보다 도망치는 게 가능한지조차 보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유령호 선장에게 진양을 붙잡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훌륭한 핑곗거리를 제공하는 꼴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진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나쁜 건지.’